신라 역사 속 문학

제3대 노례왕 - 삼국유사

최고봉 국어 2020. 7. 9. 14:26

 박노례이질금(朴弩禮尼叱今-'이사금'이라고도 하며 윗사람, 우두머리라는 뜻. 나중에 임금이라는 의미로 확장)이 처음에 매부 탈해에게 자리를 물려주려 하자 탈해가 말했다.

 "무릇 덕이 있는 자는 치아가 많다고 하니, 마땅히 잇금으로 시험해 봅시다."

 이에 떡을 깨물어 시험해 보니, 왕의 잇금이 많았기 때문에 먼저 즉위했다. 이런 연유로 왕을 잇금이라고 했다. 이질금이란 칭호는 노례왕에서 시작되었다. 유성공(劉聖公-후한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의 족형 유현(劉玄)이다.) 경시(更始) 원년 계미년(癸未年-23년)에 즉위하여 (연표에는 갑신년에 즉위했다고 했다) 여섯 부의 호를 고쳐 정하고 여섯 성(姓-李氏, 崔氏, 孫氏, 鄭氏, 裵氏, 薛氏다)을 하사했다. 처음으로 도솔가(兜率歌)를 지었는데, 차사(嗟辭-슬퍼하는 말이라는 뜻인데 가사에 자주 나오는 '아으'와 유사하며 향가의 기원과 관련된다.)와 사뇌격(詞腦格-향가 중에서 감탄사를 가진 19체를 말한다)이 있었다. 그때 처음 쟁기와 보습과 얼음 저장 창고와 수레를 만들었다. 건무(建武) 18년(42년)에는 이서국을 쳐서 멸망시켰다. 이해에 고구려 군사가 쳐들어왔다.

 

<삼국유사 권 제1 기이 제1 노례왕>

 

참고 문헌

 

일연, 김원중 옮김, 민음사,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