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역사 속 문학

모죽지랑가 배경 설화 - 삼국유사 권 제2 기이 제2 효소왕 대의 죽지랑

최고봉 국어 2020. 8. 25. 18:59

 제 32대 효소왕 대에 죽만랑(竹曼郞)의 무리 가운데 득오(得烏-혹은 득곡(得谷)이라고도 한다) 급간이 있었는데, 화랑의 명부에 이름을 올려놓고 날마다 나오다가 열흘 동안 보이지 않았다. 죽만랑이 그의 어머니를 불러 물었다.

 "당신 아들은 지금 어디 있소?"

 득오의 어머니가 말했다.

 "당전(幢典)인 모량부(牟梁部)의 아간(阿干) 익선(益宣)이 제 아들을 부산성(富山城- 富山의 꼭대기에 있는 널따란 구릉)의 창고지기로 보냈는데, 급히 가느라 낭께 말씀을 드릴 겨를이 없었습니다."

 낭이 말했다.

 "네 아들이 만약 사사로운 일로 그곳에 갔다면 찾아볼 필요가 없겠지만 공적인 일로 갔으니 내가 가서 대접해야겠다."

 그리고 나서 떡 한 합과 술 한 동이를 갖고 좌인(左人-향언에서 모두갯지라고 하니, 노복을 말한다)들을 거느리고 떠나는데, 낭의 무리 137명 역시 의장을 갖추어 따라갔다.

 

 부산성에 도착하여 문지기에게 득오실(得烏失- 여시서 실은 골짜기나 고을을 뜻하는 향언 '실'의 음차라고 본다)의 행방을 물어보자 그가 말했다.

 "지금 익선의 밭에서 관례에 따라 부역을 하고 있습니다."

 낭은 밭으로 가서 가지고 간 술과 떡으로 득오를 대접했다. 그리고 익선에게 휴가를 얻어 득오와 함께 돌아오려고 했으나, 익선이 완강히 반대하면서 허락하지 않았다.

 

 그때 사리(使吏) 간진(侃珍)이 추화군(推火郡)의 세금 30석을 거두어 성안으로 수송하다가 선비를 귀중히 여기는 낭의 풍모를 아름답게 여기고 융통성 없는 익선을 야비하게 여겨, 가지고 가던 30석을 익선에게 주고 도움을 요청했으나 여전히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사지(舍知-신라 시대 17관등 중 제13위 관등) 진절(珍節)이 기마와 말 안장을 주니 그제야 허락했다.

 

 조정의 화주(花主-화랑을 관할하는 관직)가 그 소식을 듣고 사신을 보내어 익선을 잡아다가 그의 더럽고 추잡함을 씻어 주려 했는데, 익선이 달아나 숨었으므로 그의 맏아들을 잡아갔다. 이때는 몹시 추운 날이었는데, 성안에 있는 못 가운데서 익선의 아들을 목욕시키니 그대로 얼어 죽고 말았다.

 

 대왕은 그 말을 듣고는 모량리 사람으로 벼슬에 종사하는 자는 모두 내쫓아 다시는 관공서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고 검은색 옷[승복]을 입지 못하게 했으며, 만약 승려가 된 자라면 종을 치고 북을 울리는 절에는 들어가지 못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또 간진의 자손을 올려 평정호손(枰定戶孫)으로 삼아 표창했다. 이때 원측법사(圓測法師)는 해동의 고승이었으나 모량리 사람이었기 때문에 승직을 받지 못했다.

 

 이전에 술종공(述宗公)이 삭주도독사(朔州都督使)가 되어 임지로 부임하게 되었는데, 삼한에 전쟁이 있어 기병 3000명으로 그를 호송하게 했다. 가다가 죽지령(竹旨領)에 도착하니, 한 거사가 고갯길을 닦고 있었다. 공은 그것을 보고 감탄하고 칭찬했다. 거사 역시 공의 위세가 매우 큰 것을 좋게 보고 서로 마음 속으로 감동하게 되었다.

 

 술종공이 삭주에 부임하여 다스린 지 한 달이 되었을 때, 거사가 방 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그런데 아내도 같은 꿈을 꾸었다고 하여 매우 놀라고 괴상하게 여겼다. 이튿날 사람을 시켜 거사의 안부를 물으니 사람들이 말했다.

 "거사는 죽은 지 며칠 되었습니다."

 심부름 갔던 사람이 돌아와 보고하니, 거사가 죽은 날이 꿈을 꾼 날과 같은 날이었다. 공이 말했다.

 "아마 거사가 우리 집에 태어날 것 같소."

 다시 군사를 보내 고갯마루 북쪽 봉우리에 거사를 장사 지내게 하고 돌로 미륵 한 구(軀)를 만들어 무덤 앞에 세웠다.

 

 아내가 꿈을 꾼 날로부터 태기가 있어 아이를 낳자 이름을 죽지(竹旨)라 했다. 그는 장성하여 벼슬길에 올라 김유신 공과 함께 부수(副帥)가 되어 삼한을 통일하고 진덕, 태종, 문무, 신문 등 4대에 걸쳐 재상이 되어 나라를 안정시켰다.

 

 처음에 득오곡이 낭을 사모하여 노래를 지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나간 봄 그리매

   모든 것이 시름이로다.

   아름다운 모습에 주름이 니니

   눈 돌릴 사이에 만나 보게 되리.

   낭이여! 그리운 마음에 가는 길에

   쑥 우거진 마을에 잘 밤 있으리.

 

 

* 모죽지랑가 핵심정리

 

1. 작품의 구조

 제1· 2구 - 좋았던 젊은 날을 그리워함

 제3· 4구 - 낭의 늙은 모습이 안타까움

 제5· 6구 - 낭에 대한 충동적 그리움

 제7· 8구 - 재회할 수 없음에 대한 탄식

 

2. 작자 - 득오(득오곡)

3. 연대 - 효소왕(629 ~702때)

4. 성격 - 찬양과 추모의 노래

5. 의의 - 주술성이나 종교적 색채가 없는 순수한 개인적 서정시

6. 주제 - 죽지랑에 대한 추모, 또는 사모(思慕)의 정

 

* 참고 문헌

일연, 김원중 옮김, 『삼국유사』, 민음사, 2019.

 

* 참고 자료

정경섭 엮음, 고전 문학의 이해와 감상1, 문원각,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