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2 문학/고2 미래엔

황진이 - 홍석중

최고봉 국어 2023. 2. 22. 22:07

황진이 홍석중

 

앞부분 줄거리

 송도에 사는 황 진사의 딸 황진이는 시와 음악에 재능이 뛰어나고 용모가 아름답기로 유명했다. 황진이는 서울의 윤 승지댁과 혼약을 맺으나, 집안의 하인인 놈이가 황진이의 출생 배경을 누설하여 파혼을 당한다. 어린 시절 유일한 말동무였던 놈이가 황진이를 사랑한 나머지 그녀가 서출임을 신랑댁에 폭로했기 때문이다. 황진이는 자신의 출생을 둘러싼 사대부가의 거짓과 위선을 알고 괴로워한다. 이 무렵 한 총각이 황진이를 연모하다가 상사병으로 죽어서 그의 장례식이 열린다.

 

 담장 너머는 구경군들로 붐비는데 집 안은 괴괴했다. 안방마님은 진이한테 자초지종을 털어놓은 이후 안방 문턱을 넘어 본 일이 없고 사랑채 서방님은 이금이를 그 꼴로 만들어 놓고 자취를 감춘 후 아직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이른 아침이어서 집 안의 바깥채가 떠들썩하겠건만 안채, 행랑채 할 것 없이 모두 호기심에 들떠서 벌써부터 담장 너머 구경군들 속에 섞여버린 모양인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참으로 박정한 세상이다. 남의 경사나 기쁜 일을 구경하고 즐긴다면 모르겠지만 남의 고통이나 슬픔을 구경해서 자신의 호기심을 만족시킨다면 그것은 벌써 선한 마음이 아니다. 하기는 오정문 밖 장터에서 죄인의 목을 벤다면 먼 촌에서 도시락까지 싸들고 구경을 온다니 그 무지몰각한 마음의 선악을 구태여 따져서 무엇하리.

 진이는 담장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서로 부르고 찾는 소리, 자리를 다투는 걸직한 욕설들, 느닷없이 터져 오르는 너털웃음들…….

 저 사람들은 지금 그의 고통을, 그의 슬픔을, 그의 창피를, 그의 굴욕을 구경하고 싶어 저리도 뒤설레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 그렇다면 응당 그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을 보여 주어야지.’

 진이는 자개함 통을 열고 그 안에 깊숙이 간직해 두었던 자기의 혼수를 꺼냈다.

 사시쯤 되었을 때 상행이 뒤골 어구에 들어섰다. 맨 앞에는 붉은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고 방울 달린 탈바가지를 뒤집어쓴 방상시가 창과 방패를 갈라 든 두 손을 휘저으며 길을 잡고 그 길을 이어 명정, 혼백, 만장, 공포를 차례차례 앞세운 상여가 골목 안으로 꺾어 들어오는데 상여 우에 올라선 상두수번이 요령을 땡그렁땡그렁 울리며 구슬픈 상여 노래의 선소리를 먹이면 생베수건을 눈썹까지 눌러 쓰고 구정닻줄을 걸머멘 상두군들이 음울한 목소리로 후렴을 받았다.

드디어 사람들이 기다리는 그 구경스러운 대목에 이르렀다. 앞으로 움직이던 상행이 황 진사 댁 후원 뒷문 앞에 이르자 제자리걸음을 시작했으니 이것이 이른바 지살받기가 시작되기 전의 그네뛰기였다. 상두수번의 먹임소리와 상두군들의 받는 소리는 원귀의 울음소리처럼 처량하게 들렸다.

 

……산천초목 다 리별하고 황천 먼 길을 떠나가네/ 워 너머차 너호

황 진사 댁 고명 따님 어 잘났다 한 번 보고/ 워 너머차 너호

외기러기 짝사랑에 외로운 혼이 되었구나 / 워 너머차 너호 ……

 

 상여는 앞으로 나갈 듯 뒤로 물러서고 물러설 듯 다시 앞으로 나가며 요령 소리와 상여 노래에 맞추어 그네처럼 한 자리에서 흔들렸다.

 

 진이는 담장 안쪽에서 문고리를 쥐고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담장 밖 구경군들의 눈길이 모두 이 문에 쏠려 있을 것이다. 늦지도 않게, 또 너무 이르지도 않게 제때에 문을 열고 사람들 앞에 나서야 한다.

 상직할멈과 이금이가 등 뒤에서 간을 졸이며 공포에 질린 눈길로 주인 아씨를 지켜보고 있었다. 지금 별당 안마당에서는  주인아씨한테 발목을 묶이운 놈이가 우리 안에 갇히운 범마냥 왔다 갔다 하며 몸살을 앓고 있었다.

상두수번의 먹임소리는 차차 과녁을 조여 갔다.

 

……애달프다 이내 몸은 한 번 가면 못 오리라/ 워 너머차 너호

황 진사댁 여기로다 그대로는 못 가겠네/ 워 너머차 너호 ……

 

 진이는 문을 열었다. 골목을 나서는 순간, 만 사람의 날카로운 눈길이 창끝처럼 날아와 박혔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점 더 커지더니 마침내 상여 노래를 눌러 버렸다.

구경군들은 깜짝 놀랐다. 그들은 감히 황 진사댁 주인아씨가 죽은 혼백은 상문살이 무서워 천리만리로 달아났거나 집 안 구석방에 들어박혀 이불을 뒤집어쓰고 숨어 있을 진이가 직접 상행 앞에 나타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진이는 상두군들이 구정닻줄 우에 흔들거리고 있는 상여 앞으로 다가갔다. ‘그네뛰기가 멎었다. 상두군들이 상여를 내려놓았다. 요령 소리가 멎고 상두수번의 선소리도 멎었다.

 진이는 죽은 총각의 관곽 앞에 마주 섰다. 그러고는 손에 들고나온 꽃무늬의 붉은 슬란치마를 활짝 펴서 관곽을 덮었다.

골목 안이, 골목 안에 꽉 들어찬 사람들이 물 뿌린 듯 조용해졌다

 진이는 마치 눈에 보이는 그 누구와 속삭이듯 입을 열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류두날 밤 달빛 속에서 자기를 넋 잃고 쳐다보던 그 총각의 얼굴이 우렷하게 떠오르는 것이었다.

 “……. 여보세요, 나는 당신을 잘 모릅니다. 한번 얼핏 뵈온 일밖에 없으니까요. 그러나 당신이 죽음으로 보여 준 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은 압니다. 유명의 길이 달라 지금은 당신의 그 진실한 사랑에 보답할 길이 전혀 없군요. 혹시 이후 저승에서 다시 만나 뵙게 될는지……. 이승에서 보답할 수 없었던 사랑을 저승에서는 꼭 갚아드리렵니다. 그 약속에 대한 표적으로 제가 마련해 가지고 있던 혼례옷을 당신의 령전에 바치오니 알음이 있으면 받아 주세요. 인명이 하늘에 매였다고는 하나 인정에 어찌 애달프지 않겠나요. 생사가 영 리별이라고 하지만 후생의 기약이 있으니 바라옵건대 어서 떠나세요…….”

진이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목소리가 갈려서 마지막 말을 채 맺지 못했다.

주위의 모든 것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비늘이 떨어져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진이는 상여 앞에서 물러났다. 문을 열고 후원 안으로 사라질 때까지도 그 무거운 침묵이 골목 안에 그대로 가라앉아 있었다.

 진이는 별당에 돌아와 방 안에 앉았다. 그는 방금 전에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죽은 혼백과 저승의 사랑을 약속했다.

 ‘이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진이는 사람들의 구구한 시비와 말밥에 오르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었다. 한 가지 자신에게 명백히 할 것은 이 행동이 일시적인 충동이나 변덕이 아니라는 것이며 보다 중요하게는 자신이 지니고 있던 사랑의 감정을 송두리째 죽은 혼백한테 바쳐 버렸으니 이제부터 자기는 이승의 목숨이 다할 때까지 사랑이라는 감정은 전혀 있을 수 없는 목석과 같은 녀인이라는 것이었다.

 바로 이것이 지금 진이가 간절히 바라는 바요 진심으로 원하는 바였다.

 

뒷부분 줄거리

결국 황진이는 기생이 되기로 결심한다. 황진이는 뛰어난 미색과 총명함으로 거짓과 위선에 차 있는 양반과 승려를 조롱하며 부조리한 세상에 맞서 살아간다. 한편 황진이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화적패의 우두머리가 되어 떠났던 놈이는 부하를 살리기 위해 자수한다. 황진이는 놈이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고 그를 살리려 노력하지만 결국 놈이는 처형을 당한다. 황진이는 죽은 놈이를 묻어 준 후, 소리꾼으로 전국을 떠돌다 생을 마감한다.

 

 

핵심 정리

 

1. 갈래 장편 소설, 역사 소설

2. 성격 묘사적, 일대기적, 비극적, 비판적

3. 제재 - ‘황진이의 생애

4. 주제 황진이의 격정적인 삶과 비극적인 사랑 / 조선 시대 지배 계층의 위선적 허위의식 비판

5. 전체 구성

발단 - ‘황진이는 송도에 사는 황 진사의 딸로, 비범한 재주와 아름다운 용모를 갖추었으며 황 진사댁 하인 놈이황진               이를 짝사랑함.

전개 - ‘놈이황진이의 혼인을 막고자 그녀의 출생의 비밀을 신랑 댁에 폭로하고, 이 때문에 황진이는 파혼당함.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스러워하던 황진이는 기생이 되고, 죄의식으로 괴로워하던 놈이는 화적이 됨.

위기 - ‘놈이가 송도의 사또인 김희열의 계략으로 목이 잘리는 효수형을 받을 처지에 놓임.

절정 - ‘황진이놈이를 구하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그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지만, ‘놈이는 결국 목이 베여 죽게 됨.

결말 - ‘황진이놈이를 묻어 주고 전국 각지를 떠돌아다니다 죽게 됨.

 

6. 특징

- 역사적 사실에 문학적 상상력을 더하여 개성적인 인물을 만들어냄.

- 속담을 비롯하여 민중의 언어를 풍부하게 살림.

- 우리 민족의 고유한 풍습이 드러남.

 

7. 해제

이 작품은 북한의 소설가 홍석중이 창작한 장편 소설로, 조선 시대부터 전승되어 오던 황진이서사에 놈이라는 새로운 인물을 등장시켜 황진이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당대 민중의 언어와 양반의 언어가 혼용되어 현실감을 주고 있으며,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풍습과 문화가 잘 드러난다.

 

8. 작가

홍석중(1941~ )

소설가. 서울에서 태어나 가족을 따라 월북하여 평양에서 자란 그는, 국어학자 홍기문의 아들이자 <임꺽정>의 작가인 벽초 홍명희의 손자이다. 수학과 물리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문인으로는 활동하지 않았지만, 역사 소설을 써 보라는 김정일의 권유로 마흔이 넘은 나이에 첫 소설 <높새바람>을 발표하게 된다. 2004년에는 <황진이>로 만해 문학상을 받게 되면서 남북 간 문학적 교류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주요 작품에 대하 소설 <높새바람> 등이 있다.

 

출처 : 미래엔 문학 자습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