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2 문학/고2 미래엔

내 여자의 열매 - 한강

최고봉 국어 2023. 3. 15. 10:54

내 여자의 열매 한강

 

[미래엔 수록 부분]

 

 앞부분 줄거리

 도시에서 사는 아내와 남편은 점점 서로 소통하지 못한다. 바닷가 빈촌에서 성장한 아내는 도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시에서 성장한 남편은 그런 아내를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결국, 자유를 꿈꾸던 아내는 마침내 침묵한다. 그러던 중 아내에게 연두색 피멍이 생기고, 그것은 점점 커져 그녀의 온몸에 퍼진다. 음식도 먹지 않고 베란다에서 햇볕을 쬐는 것만 좋아하던 아내는 점점 나무로 변해 간다.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은 그런 아내의 모습에 처음엔 놀라지만 그녀를 정성껏 돌본다. 말하는 것이 어려워진 아내는 어머니를 향해 마음속으로 편지를 쓴다.

 

 

 어머니.

 이제 어머니께 편지를 쓸 수 없게 되었어요. 어머니가 두고 가신 스웨터(생명의 근원인 모성(母性)을 환기함.)를 입어 볼 수도 없게 되었어요. 지난겨울 여기 올라오셨다가 깜빡 잊고 두고 가신 자주색 스웨터 말예요.

 그이가 출장 간 다음 날, 아침부터 오한이 들길래 그 옷을 입어 보았어요. 제때 빨아 두지 않았던 덕분에 묵은 반찬 냄새며 어머니 살냄새가 그대로 배어 있었어요. 다른 날 같으면 빨아 입었을지도 모르지만 너무 추워서, 또 그 냄새를 오랫동안 맡고 싶어서 그냥 입고 잠들어 버렸어요. 다음 날 새벽까지 오한은 멈추지 않고, 어머니, 얼마나 춥고 목말랐는지, 마침내 아침 햇빛이 안방 유리창에 비칠 때 나는 소리를 죽여 울었답니다. 그 따뜻한 빛을 좀 더 깊숙이 받아들이고 싶어서 베란다로 나가 옷을 벗었어요. 벌거벗은 살에 내리박히는 햇빛이 꼭 어머니 살내 같아서, 그 자리에 무릎을 끓고 앉아 어머니만 불렀어요.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요. 며칠일까 몇 주일일까, 아니면 몇 달일까요.(시간의 흐름을 느끼지 못함.) 제법 대기가 뜨거워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열기가 가시고, 그 뒤로 조금씩 쌀쌀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뿐이에요.

멀리 중랑천 너머 아파트의 창문들은 지금쯤 주황빛으로 밝혀졌겠지요. 거기 사는 사람들은 나를 볼 수 있을까요. 간선 도로에서 전조등을 내쏘며 달려가는 차들은 나를 볼 수 있을까요. 나는 지금 어떻게 생겼을까요.

 

 그이는 무척 친절해졌답니다. 커다한 화분을 구해 와서 거기 나를 심어 주었어요. 일요일이면 오전 내내 베란다 문턱에 걸터앉아 잔딧물도 잡아 줘요. 내가 수돗물을 싫어한다는 것을 기억하고는, 그렇게 피곤해만 하던 사람이 아침마다 물통 가득 뒷산 약수를 길어 와서 내 다리에 부어 준답니다. 얼마 전에는 기름진 새 흙을 한 아름 사 와서 갈아 주었어요. 비가 내린 다음 날, 오랜만에 도시의 공기가 깨끗해진 새벽녘이면 창문과 현관문을 활짝 열어 공기를 바꾸어 준답니다.

 

 이상하지요, 어머니. 보는 것, 듣는 것, 냄새 맡고 맛보는 것(동물적인 감각)이 없어도 모든 것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져요.(식물이 되어 오히려 주변을 생생하게 느끼는 ’) 선 도로를 거칠게 미끄러져 가는 차들의 질주를, 그이가 현관문을 열고 나에게로 다가오는 발소리의 미세한 울림을, 비 내리기 전이면 비옥한 꿈에 젖어 있는 대기를, 안개를 품은 새벽하늘의 희부연 빛을 나는 느껴요.

 가깝고 먼 곳에서 싹이 돋고 잎이 피는 것, 애벌레들이 알을 깨고 나오고, 개들과 고양이들이 새끼를 낳고, 옆 동 노인의 맥박이 멈출 듯 멈출 듯 멈추지 않고, 윗집 주방의 냄비에 시금치가 데쳐지고, 아랫집 전축 위에 놓인 항아리 가득 허리 잘린 국화 다발이 꽂히는 것을 느껴요. 낮이나 밤이나 별들은 유연한 포물선을 그리고, 해가 뜰 때마다 간선 도로변 플라타너스들의 몸은 간절히 그쪽으로 기울어집니다. 내 몸도 따라서 그쪽으로 활짝 펼쳐져요.(식물적인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것들)

이해할 수 있으세요? 이제 곧 생각할 수도 없게 되리라는 것을 알지만 나는 괜찮아요. 오래전부터 이렇게 바람과 햇빛과 물만으로 살 수 있게 되기를 꿈꿔 왔어요.

 어렸을 때 생각이 나요. 부엌으로 달려가 어머니 치마에 얼굴을 묻으면 아, 그 맛난 냄새. 참기름 냄새, 볶은 깨 냄새. 내 손에는 언제나 흙이 묻어 있었지요. 흙 묻은 손으로 어머니 치맛자락을 더럽히곤 했어요.

몇 살 때였을까요. 보슬비가 뿌리던 봄날 아버지가 모는 경운기에 실려 바닷가를 따라 달렸던 기억이 나요. 그때 나를 향해 웃어 주시던 우비 차림의 어른들, 젖은 머리카락이 이마에 찰싹 붙어서는 깡충깡충 뛰며 손 흔들어 대던 아이들의 얼굴이 팔랑개비처럼 맴돌아요.

 어머니한테 세상은 그 바닷가 빈촌이지요. 그곳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라셨지요. 그곳에서 아이를 낳고 그곳에서 일하고 그곳에서 늙어 오셨어요. 언젠가는 그곳의 선산 기슭에 아버지와 나란히 누우실 거예요.

 

 어머니, 어머니처럼 될까 봐 나는 멀리멀리 여기까지 떠나왔어요. 열일곱 살 때였지요. 무작정 집을 나와 달포(한 달이 조금 넘는 기간) 넘게 헤매 다녔던 부산, 대구, 강릉의 시가지들을 잊을 수 없어요. 일식당에서 나이를 속여 일을 하고 저녁이면 독서실에서 새우잠을 자면서도 나는 그곳이 좋았어요. 시가지의 휘황한 불빛, 시가지의 화려한 사람들이 좋았어요.

어머니, 낯선 사람들로 가득한 이 거리를 늙고 망가진 얼굴로 떠돌게 될 줄(도시 생활에 피폐해진 의 상태)을 그때는 몰랐어요. 고향에서도 불행했고 고향 아닌 곳에서도 불행했다면 나는 어디로 가야 했을까요.(삶이 방향성을 상실함.)

나는 한 번도 행복했던 적이 없었어요. 어떤 끈질긴 혼령이 내 목을, 팔다리를 옥죄며 따라다녔을까요. 아프면 울고 꼬집히면 소리치는 어린아이처럼, 나는 언제나 달아나고만 싶었어요. 울부짖고 싶었어요. 무엇이 나를 그토록 괴롭혀서, 무엇으로부터 달아나겠다고 나는 지구 반대편까지 가려고 했을까요. 왜 가지 못 했을까요, 바보처럼. 왜 훌훌 떠나 이 지긋지긋한 피를 갈지 못했을까요.(‘는 결혼 전에 외국에서 자유롭게 살고 싶어 했었음.)

 

 내 내장 속에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고 했어요. 먼 바람 소리 같은 것만 솨솨 메아리친다고 했어요. 손가락 끝으로 청진기를 두들기며 그 늙은 의사(‘의 상태에 대해 기계적인 진단만 내림.)가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어요. 청진기를 탁자에 올려놓은 의사는 초음파 검사기의 흑백 모니터를 틀었어요. 누워 있는 내 배에 희고 차가운 유액을 바르고는, 막대기처럼 생긴 차가운 기구로 명치에서 아랫배까지 살갗을 차근차근 문질러 내려갔어요. 그것을 통해서 내장들의 모습이 모니터에 나타나는 모양이었어요.

 노말(nomal-보통의, 평범한, 정상적인)인데.

 쯧, 하고 입맛을 다시며 의사가 중얼거렸지요.

 지금 보이는 게 위장인데……. 아무 이상 없어요.

 모든 것이 노말이라고 그분은 말했어요.

 위, , 자궁, 콩팥 모두 정상인데.

 그것들이 모두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것을 그는 왜 보지 못했을까요. 휴지를 몇 장 뽑아 유액을 대충 닦아 주더니, 일어나려고 하는 나에게 다시 누워 보라고 하고는 별반 아프지 않은 배 이곳저곳을 꾹꾹 누르기만 했어요. 아파? 하고 대뜸 반말로 묻는 그의 안경 쓴 얼굴을 쏘아보며 나는 연신 고개를 흔들었어요.

 여기도 괜찮고?

 여기도 안 아프고?

 안 아파요.

 

 주사를 맞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토악질을 했어요. 지하철 구내의 차가운 타일벽에 등을 대고 조그려 앉았어요. 통증이 멈추기를 기다리며 숫자를 세었어요.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고 그 의사가 말했거든요. 모든 것이 마음 탓이라고 스님 같은 말을 했어요. 마음을 편하게, 마음을 평화롭게, 하나, , , , 토하고 싶을 때는 숫자를 세면서, 한없이 평화롭게……. 기어이 눈물이 솟구칠 때까지 통증(식물로 변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고통)은 멈추지 않고, 거푸 위액을 게워 낸 뒤 엉덩이를 깔고 주저앉았어요. 흔들리는 지상이 제발, 멈추어 주기를 기다렸어요.

그것은 얼마나 먼 날의 일이었을까요.

 

 어머니, 자꾸만 같은 꿈을 꾸어요. 내 키가 미루나무만큼 드높게 자라나는 꿈을요. 베란다 천장을 뚫고 윗집 베란다를 지나, 십오 층, 십육 층을 지나 옥상 위까지 콘크리트와 철근을 뚫고(도시적 문명에 대한 비판과 거부) 막 뻗어 올라가는 거예요. 아아, 그 생장점(식물의 줄기나 뿌리 끝에 있으며 생장을 현저하게 하고 있는 부분) 끝에서 흰 애벌레 같은 꽃이 꼬물꼬물 피어나는 거예요. 터질 듯 팽팽한 물관 가득 맑은 물을 퍼 올리며, 온 가지를 힘껏 벌리고 가슴으로 하늘을 밀어 올리는 거예요. 그렇게 이 집을 떠나는 거예요. 어머니, 밤마다 그 꿈을 꾸어요.

 

 하루게 다르게 추어지고 있어요.(계절의 변화를 느낌.) 오늘도 세상의 땅에는 얼마나 많은 잎사귀가 떨어졌는지, 얼마나 많은 풀벌레가 죽어 갔는지, 얼마나 많은 뱀이 허물을 벗었고 어떤 개구리들은 일찌감치 겨울잠에 들었는지요.

자꾸만 어머니 스웨터 생각이 나요. 어머니 살냄새가 잘 기억나지 않아요. 그이더러 그 옷으로 내 몸을 덮어 달라고 말하고 싶지만 말할 길이 없어요.(식물로 변하여 말을 할 수가 없음.) 어쩌면 좋을까요. 그이는 말라 가는 나를 보면서 울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해요. 아시지요, 그이한테 가족은 나뿐이었어요. 그이가 부어 주는 약수에 따뜻한 눈물이 섞이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불끈 쥔 주먹이 겨냥할 곳 없어 허공을 휘저어 대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어머니, 무서워요. 내 사지를 떨구어야 해요(겨울이 되어 잎이 떨어짐). 이 화분은 너무 좁고 딱딱해요. 뻗어 나간 뿌리 끝이 아파요. 어머니, 겨울이 오기 전에 나는 죽어요. 이제 다시는 이 세상에 피어나지 못 하겠지요.

 

 뒷부분 줄거리

 남편은 나무가 된 아내를 화분에 옮겨 심는다. 하지만 겨울이 다가와 나무는 결국 시들어 버리고 마지막으로 열매를 남긴다. 남편은 아내가 남긴 열매(생태계의 순환적 삶을 이어가는 꼬리)를 화분에 심으며, ‘봄이 오면 아내가 다시 돋아날까.’라고 생각해 본다.

 

 

 

핵심 정리

 

1. 갈래 현대 소설, 단편 소설

2. 성격 생태적, 환상적, 회상적

3. 배경 시간 : 1990년대 / 공간 : 서울

4. 주제 도시 문명의 황폐함을 비판하고 자연 순환적인 생명성을 소망함.

5. 구성

      발단 바닷가 빈촌에서 성장한 아내는 도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시에서 성장한 남편과 점차 소통하지 못함.

      전개 자유를 꿈꾸던 아내는 마침내 침묵하고, 아내에게 생긴 연두색 피멍은 서서히 온몸으로 퍼짐.

      위기 아내는 음식도 먹지 않고 베란다에서 햇볕을 쬐며 시간을 보내게 되고, 남편은 어느 날 식물로 변한 아내의 모                    습을 발견함.

      절정 식물이 되어 말을 못하는 아내가 마음속으로 어머니에게 편지를 씀.

      결말 화분에 옮겨 심어진 아내는 늦가을이 되자 결국 시들어 버리고 마지막 열매를 남rla.

 

6. 특징

       - 어머니에게 마음속 편지를 쓰는 형식으로 설정하여 생명의 근원인 모성(母性)을 환기함.

       - 주인공이 식물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생태학적 세계관을 드러냄.

       - 식물로 변해 가는 주인공의 상태를 다양한 감각적 이미지로 형상화함.

7. 해제

 이 작품은 사람이 나무로 변하는 비현실적인 상황을 설정하여 현대 사회의 폭력성을 비판하고 있는 소설이다. 등장인물인 아내는 콘크리트 속에서 점점 더 병들어 가며 말수가 줄어들고, 서서히 인간의 육체를 잃고 식물의 상태로 변화해 간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이러한 상상을 통해 작가는 도시의 인공적인 세계로부터 벗어나 자연스러운 순환 속에 있는 본원적 생명의 세계를 꿈꾸고 있다.

 

8. 작가

   한강(1970~ )

 소설가.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났으며, 소설가 한승원의 딸이다. 1993문학과 사회겨울호에 <서울의 겨울> 등 시 4편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이듬해에는 서울신문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었다. 섬세한 감성과 시적인 언어로 사회의 여러 문제를 근원적으로 진단하는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등이 있으며, 2016년에는 소설 채식주의자로 영국의 맨부커국제상을 수상하였다.

 

 

 

출처 : 미래엔 문학 교과서 + 미래엔 문학 자습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