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3]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청파리는 지금의 서울 남부에 있는 동리다. 이곳에 설생이라는 선비가 살았는데, 의지가 있고 문학을 좋아했다. 설생은 기이한 재주를 가진 이로서, 과거 공부에 힘썼지만 운수가 나빠 번번이 시험에 떨어지고 말았다. 

 광해군 말에 계축옥사*가 일어나자 세상사에 염증을 느끼고는 속세를 떠나 은거하고자 했다. 마침 친구 하나가 설생의 집을 방문했는데, 이 친구는 평소에 설생과 마음이 잘 통하던 이였다. ㉠ 두 사람은 마주 앉아 손바닥을 치며 강개한 마음으로 시사(時事)를 논하다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설생이 이렇게 말했다. "㉡ 삼강오륜이 무너졌으니 선비가 이 세상에서 어찌 처신해야 하겠는가! 나는 이제 은거하려 하는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친구가 대답했다.

 "㉢그게 바로 내 생각일세. 지금 자네 말도 있고 하니 함께 은거하고 싶지만, 부모님이 계셔서 쉽게 허락할 수가 없네."

친구는 곧 작별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중략 부분 줄거리] 한 달 뒤 친구가 찾아가 보니 서생은 훌쩍 사라진 뒤였다. 새 임금이 즉위하자 등용되어 승진을 거듭한 친구는 갑술년(1634) 어느 봄날, 강원도 관찰사가 되어 영랑호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며 배를 타고 있었다. 이때 멀리서 배를 저어 오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간 행방을 알 길 없던 설생이었다. 관찰사는 설생을 자기 배에 오르게 하고 몹시 기뻐하며 근황을 물었다.

 

 "나는 지금 양양부 관아에서 동남쪽으로 60리쯤 떨어진 곳에 있는 회룡굴이라는 데 산다네. 몹시 외진 곳이라서 속인은 오는 이가 드물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지. 마침 오늘이 길일이고 시절도 좋기에 흥이 나서 문득 여기까지 오게 되었네."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옛날 친하게 지내던 때의 일이며 헤어진 뒤의 일로 이야기꽃을 피웠는데, 흥미진진하여 그칠 줄 몰랐다. 잠시 후 비가 조금 그치면서 바람이 일어 배가 쏜살같이 움직였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앞산을 몇 개나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마침내 설생이 일어나 말했다. 

 "내가 사는 곳이 여기서 그리 멀지 않네. 땅으로 걸어가면 수십 리쯤 될 걸세. 순풍이 불면 배를 타고 반나절이면 갔다 올 수 있지. 예전에 나에게 '평생 좋은 벗으로 지내며 서로 잊지 말자.'라고 하였으니 한번 들러 주었으면 하네."

 관찰사가 좋다고 하고 배를 재촉하여 설생과 함께 떠났다. 

 

[A]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갈 즈음 육지에 이르렀다. 관찰사는 말과 따르는 사람들을 물리치고 종들로 하여금 가마를 메게 하여 숲이 우거진 골짜기로 들어갔다. 험한 길을 힘들게 몇 리 걸어가니 푸른 벼랑이 우뚝 서 있었다. 저절로 그렇게 깎여 모양이 기기묘묘했는데, 높이가 수십 길은 되어 보였으며 가운데가 벌어져 있었다. 벼랑을 둘러싸고 좌우로 콸콸 물이 쏟아지며 물과 바위가 부딪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벼랑 앞에는 문이 하나 있었는데, '회룡굴'이라고 쓰여 있었다. 문 앞으로는 돌길이 구불구불 오른쪽으로 가파르게 나 있었는데, 좁고 험해 새들이 다닐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두 사람은 벼랑의 벌어진 곳을 지나 칡덩굴을 붙잡거나 등나무에 매달려 앞으로 나아갔으며, 어깨를 구부려 회룡굴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가 바로 설생의 집이었다. 굴 안의 땅은 터가 넓어 집 100여 채가 들어설 만한데, 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토지가 비옥했다. 물에서는 물고기를 잡고 산에서는 산나물을 채위할 수 있었으며, 뽕나무· 배나무 · 밤나무 등의 나무도 많았다. 아마도 옛사람이 일컫던 도원이나 귤주*가 바로 이런 곳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생이 관찰사를 인도해 마루 위에 오르게 하고는 아이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채소를 담아내거라."

 관찰사가 먹어 보니 맛이 담박하면서도 달아 속세의 음식 맛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이윽고 두 사람은 아름다운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있기도 하고 물가에서 고기를 잡기도 하고, 숲속을 거닐기도 하고 연못가를 산보하기도 했다. 물고기와 새들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구름과 안개가 마음을 즐겁게 했다. 산봉우리와 수석의 괴이하고 웅장한 모습이 사랑스럽고도 볼 만하여 아침저녁으로 천만 가지 변화 무쌍한 모습을 보여 주니, 셈을 잘하는 사람이라도 그 모습이 몇 가지로 변하는지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관찰사는 기쁜 마음에 돌아갈 것을 잊고 며칠을 그곳에 머물렀다.」

 

 관찰사가 마침내 떠날 차비를 하고 작별 인사를 하며 설생에게 농담을 건넸다.

 "산수가 맑고 기이한 곳에 사는 것이야 은자들이 본래 그렇다지만, 자네는 집도 이렇게 부유하니 산속에 살면서 어찌 이렇게까지 될 수 있단 말인가?"

 설생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노닐며 오가는 곳은 여기뿐이 아닐세. 세상을 벗어나 살게 된 뒤로는 내키는 대로 산수를 유람하여 다니는 것을 몹시 좋아해서 하루도 안 다닌 적이 없지. 서쪽으로는 속리산의 기이한 경치를 찾고, 북쪽으로는 묘향산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았으며, 남쪽으로는 가야산에 오르고 지리산을 넘었어. 우리나라 산천을 베어 집을 짓고 산비탈을 깎아 밭을 만들었지. 그렇게 2년도 살고 3년도 살다가 싫증이 나면 또 다른 곳으로 옮겨가 살았어. 이런 까닭에 내가 있었던 거처 중엔 산이 기이하고 물이 아름다우며 밭이 넓고 집이 좋기가 여기보다 열 배나 더한 곳도 여러 군데 있다네. 다만 세상 사람들이 모를 뿐이지."

 관찰사가 그 말을 듣고 기이하게 여기며 오래도록 탄식했다. 관찰사는 이별을 기념하여 시 한 편을 지어 설생에게 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훗날 서울로 나를 찾아와 주게."

 그렇게 약속하고 떠났다. 

 ㉣3년 뒤 설생이 서울에 가 관찰사를 찾았다. 관찰사는 마침 이조 판서로 있었는데, ㉤설생에게 벼슬을 주고자 했다. 하지만 설생은 그것을 수치스럽게 여겨 세상으로부터 달아나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 뒤 관찰사가 예전에 갔던 '회룡굴'이란 곳을 다시 가 보았지만 그곳은 이미 폐허가 되어 있었고, 설생이 어디로 갔는지도 알 길이 없었다. 

 

* 계축옥사 : 계축년(1613)에 광해군이 인목 대비를 서궁에 유폐하고, 이복 대군인 영창 대군을 서인으로 만든 사건. 

*도원이나 귤주 : '도원'은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그려진 이상향이며, '귤주'는 풍토가 좋아 귤이 많이 나는, 중국 호남성의 섬임.

 
 

 

01. 윗글의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설생은 과거 급제를 위해 노력했지만 뜻을 이룰 수 없었다.

② 설생은 길일에 외진 곳으로 거처를 옮기려고 배를 몰고 나타났다.

③ 설생은 과거의 약속을 언급하며 관찰사에게 회룡굴 방문을 요청했다.

④ 관찰사는 설생이 보통의 은자들과 다른 점을 거론하며 설생에게 농담을 했다.

⑤ 관찰사는 설생과 다시 이별하게 되는 것을 아쉬워하며 후일의 만남을 기약했다.

 

 

02. <보기>를 고려할 때, ㉠ ~ ㉤에 대해 추론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가) 신돈복의 야담집 학산한언』과 이규경의 백과사전 오주연문장전산고』에도 설생전」과 거의 똑같은 내용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거기에서는 설생의 친구인 관찰사가 오도일의 조부인 오윤겸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오윤겸은 강원도 관찰사, 이조 판서, 좌의정 등을 지낸 문신이다. 중앙 정계에 있던 당시 계축옥사가 일어나자 그는 광해군에 반대하는 뜻을 품고 광주 목사로 물러앉기를 자원하기도 했지만 결국 관직을 그만두지는 않았으며, 인조가 반정으로 권좌에 오른 후에도 그 밑에서 고위직을 역임했다. 손자인 오도일 또한 인조의 계보를 잇는 임금 밑에서 부제학, 이조 참판 등 요직을 거쳤기에 광해군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할 수는 없었다. 그가 설생전」을 쓴 데에는 이러한 자기 가문에 대한 옹호도 창작 동기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있다.

 

 (나) 설생전」에는 '나아감'과 '물러남'에 대한 오도일의 관점이 반영되어 있다. 이 작품의 말미에는 설생에 대한 작가의 논평이 붙어 있는데, 그 일부는 이러하다. "선비는 세상이 태평하면 벼슬에 나아가 뜻을 펴고, 세상이 어지러우면 은둔하여 내 한 몸을 조촐히 한다. 이는 군자가 상황에 따라 나아가기도 하고 물러나기도 하는 도이다. 설생은 혼란한 시절에 정치가 어지러우므로 은둔했지만, 어진 새 임금이 다시 나라를 일으키고 어진 뭇 선비들이 함께 일어서던 때에 관을 털고 기운을 내어 조정에서 벼슬을 했어도 괜찮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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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가)를 고려할 때, ㉠을 통해 오도일은 조부가 비록 광해군 밑에서도 관직을 그만두지는 않았지만 의로움을 아는 인물이었음을 알리고 싶었을 것 같아.

② (가)와 (나)를 고려할 때, 오도일은 자신이 요직에 앉은 시기가 ㉡과 같은 일이 벌어진 광해군 때와 달리 '나아감'을 선택할 때라고 여겼을 것 같아.

③ (가)를 고려할 때, ㉢을 통해 오도일은 계축옥사 당시에 조부가 곧장 은거하지 않은 데에 나름의 이유가 있었음을 말하려 했을 거 같아.

④ (나)를 고려할 때, ㉣로 보아 오도일은 설생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물러남' 대신에 태평한 세상으로 '나아감'을 선택하기로 결심했음을 보여 주려 했던 것 같아.

⑤ (나)를 고려할 때, 오도일이 생각하기에 ㉤은 어진 새 임금이 다스리는 세상에서 설생이 받아들여도 좋았을 법한 제안이었던 것 같아.

 

 

03. <보기>를 참고하여 [A]를 이해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조선 시대 문인들은 직접 산수를 유람한 뒤 유람의 경험과 자취를 기록한 산수유기를 남겼다. 여러 가지 여건 때문에 극소수 선비만 유람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던 당시에는 많은 사람이 사랑채에 누워 타인의 산수유기를 읽으며 산수를 간접 체험하는 와유를 즐겼다. 대체로 산수유기는 목적지로 향하는 여정을 유람 주체의 관점에서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풍광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며 음미한다. 「설생전」의 화룡굴에 대한 서술에는 이러한 산수유기의 성격이 반영되어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이 창작된 17세기 당시 문인들에게 산수는 유교적 차원에서 도덕적 의미를 탐색하는 공간이라기보다는 어지러운 현실을 잊는 도피처로 여겨졌고, 이에따라 산수유기 속의 산수도 정신적 휴식을 보장하는 환상적 공간으로 그려질 때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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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험한 길을 힘들게 몇 리 걸어가니 푸른 벼랑이 우뚝 서 있'다는 진술은 산수유기에서 목적지까지의 여정을 드러낸 것에 해당한다.

② '옛사람이 일컫던 도원이나 귤주가 바로 이런 곳이리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관찰사가 산수를 간접 체험하며 와유를 즐기는 모습에 해당한다.

③ '맛이 담박하면서도 달아 속세의 음식 맛과는 전혀 딴판'이었다는 채소에 대한 설명은 회룡굴이라는 공간이 환상적 성격을 지닌 산수라는 사실을 부각하는 것이다.

④ '구름과 안개가 마음을 즐겁게 했'다는 것은 유람 주체라고 할 수 있는 관찰사의 관점에서 보고 느낀 바를 서술한 것이다.

⑤ '산봉우리와 수석의 괴이하고 웅장한 모습'에 대한 찬탄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풍광의 아름다움에 대한 유람 주체의 음미와 관련된다.

 

 

 

'설생전' 핵심 정리

 

갈래 한문 소설, 사회 소설

성격 사실적, 전기적(비현실적), 비판적, 예찬적

주제 부정적인 현실을 등지고 탈속적인 이상향을 지향했던 한 선비의 삶

특징

- 역사적 사건과 실제 지명을 바탕으로 현실성을 확보하고 있음

- 계축옥사를 배경으로 광해군의 패륜에 대한 사대부들의 부정적인 시각을 반영함

- 관찰사의 삶을 통해 사대부들의 현실을, 설생의 삶을 통해 이상과 동경을 보여줌

- 서로 다른 지향을 가진 두 인물의 대조적 삶을 통해 주제 의식을 부각함

- 회룡굴과 그 주변의 묘사를 통해 탈속적 이상향의 모습을 제시함.

 

5. 전체 줄거리

서울 청파리에 살던 설생이라는 선비는 계축옥사가 일어나자 세상사에 염증을 느끼고 은거를 결심한다. 그와 함께 세상을 개탄하던 친구는 은거에 대한 설생의 생각에는 동의했으나, 자신은 부모를 모시고 있다는 현실적 제약 때문에 은거하지 않기로 한다. 친구는 훗날 벼슬에 오르고 승진을 거듭하게 되는데, 강원도 관찰사가 된 뒤 영랑호에서 뱃놀이를 하다가 우연히 설생을 만나게 된다. 관찰사는 서생이 사는 회룡굴에서 며칠을 머무는데, 속세와 단절된 그곳은 풍요롭고 평화로운 이상향이다. 관찰사는 설생에게 나중에 서울로 자신을 찾아와 달라며 시를 주고 떠나고, 몇 년 후에 이조 판서가 된다. 그는 서울로 찾아온 설생에게 벼슬을 주려 하지만, 이를 수치스럽게 여긴 설생은 종적을 감춘다.

 

6.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조선 숙종 때의 문신인 오도일이 지은 한문 소설로, 역사적 격랑 속에서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한 두 친구, 즉 은둔을 택한 설생과 출세를 택한 관찰사의 삶을 다루고 있다. 젊은 시절에 함께 세상을 개탄했던 친구가 벼슬을 하는 동안, 설생은 산수를 두루 유람하며 유유자적한 삶을 산다. 관찰사가 된 친구는 우연히 다시 만난 설생의 인도로 회룡굴이라는 곳에 다녀오는데, 이곳은 풍요롭고 아름다우며 신비로운 곳이다. 설생과 함께 지내는 도안 관찰사는 세상일을 잊고 즐거움을 만끽하지만, 결국 설생이 자신과는 다른 삶의 지향을 지녔음을 확인하게 된다. 개성 있는 인물의 형상화와, 이상향으로 그려진 회룡굴의 묘사가 인상적인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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