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백석(1912 -?)은 평북 정주군 갈산면에서 수원 백씨 용삼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기행이고 백석은 필명이다. 오산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에 유학, 아오야마 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였다.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시작한 것은 1935조선일보정주성이란 작품을 발표한 이후였다. 1936년에는 시집 사슴을 상재하였고, 이후 교원 생활과 잡지사 편집일 등을 하면서 틈틈이 시작 활동을 하였으며, 1939년에는 만주국 신경으로 건너가 해방 직후까지 그곳에서 생활하였다. 해방 이후 고향 정주에 돌아와서 1948년에 이르기까지 적막강산등 다수의 작품을 발표했으나, 이후의 행적은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

 

2. 백석의 시세계를 특징짓는 것은 평북 지방의 독특한 방언을 구사하여 향토적인 분위기를 강하게 풍겨준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그는 시에서 자신의 유년시절 체험, 특히 평북 지방의 고유한 설화와 민속의 세계를 형상화함으로써 주목을 받았다. 특히 백석의 시세계는 자아와 세계, 삶과 죽음 그리고 인간과 귀신이 미분화된 채 원초적인 합일을 누리고 있는 토속적이고 신화적이고 공동체적인 공간과 민중적인 생활세계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3. 백석의 시의 성격은 930년대 후반 우리 민족의 상황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의 시가 보여주는 토속적이고 신화적인 공간과 민중의 생활세계에 대한 애정 그리고 토속적인 언어 등은 나름대로 민족의 자기동일성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4. 백석의 시적 관심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이의 조화와 유대가 깨어져가는 과정에 있지 않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이미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는 세계, 따라서 끊임없이 현재로 흘러들어와서 현재를 형성해주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는 무관하게 아득한 시간 속에 유폐되어 있는 과거의 세계이다. 그런 의미에서 백석의 시가 더 이상의 발전을 보여주지 못한 것은 과거(공동체적 유대와 합일이 보장된 유년세계)를 현재를 비추어보는 거울로서, 또는 현재를 형성하는 힘으로 인식하기보다는 그 자체로 자립화시키고 그것에 신화적인 의미를 부여하려 한 데 따른 필연적인 결과

 

5. 대표 작품

 

⓵ 「여승(1936)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웠다

 

평안도 어늬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리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를 찾아 금점판을 떠다니다가 급기야는 어린 딸마저 잃고 여승이 되어버린 한 여인의 기구한 생애를 통해서 가족공동체조차 유지할 수 없도록 만드는 일제의 식민지 수탈의 참혹상을 그림

 

⓶「팔원(1939)

 

차디찬 아침인데

묘향산행 승합자동차는 텅하니 비어서

나이 어린 계집아이 하나가 오른다

옛말 속같인 진진초록 새 저고리를 입고

손잔등이 밭고랑처럼 몹시도 터졌다

계집아이는 자성(慈城)으로 간다고 하는데

자성은 예서 삼백 오십리 묘향산 백오십리

묘향산 어디메서 삼촌이 산다고 한다

쌔하얗게 얼은 자동차 유리창 밖에

내지인 주재소장 같은 어른과 어른아이 둘이 내임을 낸다

계집아이는 운다 느끼며 운다

텅 비인 차안 한구석에서 어느 한 사람도 눈을 씻는다

계집아이는 몇 해고 내지인 주재소장 집에서

밥을 짓고 걸레를 치고 아이보개를 하면서

이렇게 추운 아침에도 손이 꽁꽁 얼어서

찬물에 걸레를 쳤을 것이다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나 내지인 주재소장의 집에서 고생스러운 식모살이를 하다가 다시 어디론가 팔려가는 어린 계집아이이 운명을 통해 가족공동체조차 철저히 파괴되어 버린 식민 현실과 민중들의 고난을 형상화

 

 

참고 문헌

 

김재용· 이상경· 오성호· 하정일 지음, 한국근대민족문학사, 한길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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