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정리

 

1. 갈래 - 단편 소설, 액자 소설

2. 성격 - 사실적, 현실 고발적

3. 배경 - 시간 : 1920년대 일제 강점기

          - 공간 : 서울행 기차 안

3.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부분적으로 서술자의 개입이 드러남)

4. 주제 - 일제 강점기하 우리 농민의 참담한 생활상의 폭로

5. 출전 - 『개벽』(1922)

6. 작가 - 현진건(1900- 1943)

 소설가. 호는 빙허. 우리나라 근대 단편 소설의 틀을 확립하였으며 단편 소설을 통해 사실주의를 개척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빈처」, 「운수 좋은 날」, 「B사감과 러브레터」 등이 있다.

 

7. 이해와 감상

 

 1926년 『조선의 얼굴』에 수록된 작품으로, 일제의 수탈로 황폐해진 식민지 농촌의 현실을 생생하면서도 집약적으로 그려 내고 있다. 액자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작품은, 대구에서 상경하는 기차에서 만난 한 유랑민의 처절하고 기구한 삶의 이야기에 서술자인 '나'가 동감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초반부에서 보여졌던 '그'에 대한 '나'의 거리감은 '나'가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서로간의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하게 됨으로써 제거되고, 이는 독자로 하여금 '그'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사실주의 문학의 일반적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현실의 폭로'에 주안점을 둔 작품으로, 일제의 수탈로 찌그러진 두 남녀의 모습에서 우리는 사실적인 조선의 얼굴을 볼 수 있으며, 마지막 부분의 노래에서 민족의 고뇌를 함축하고 있는 풍자성을 볼 수 있다.

 

8. '그'에 대한 '나'의 태도의 변화

 

경멸감 - '그'의 잘난 척하는 태도

  ↓

호기심 - '그'와의 대화를 통해 새로운 점을 발견함

  ↓

동정심 - 고난에 찬 '그'의 과거 내력

  ↓ 

동질감 - '그'와 '나'가 같은 조선 민중임을 깨달음

 

9. 인물

 * 나 - '그'와 우연히 기차에 동승하게 되어 그를 관찰하는 서술자. 처음에는 그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갖지만 점차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다.

* 그 - 다소 경망스러워 보이지만, 일제 강점하의 우리 민족의 모습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 그녀 - '그'와 한때 혼담이 오갔었으나 농촌의 황폐화로 유곽으로 팔려 가게 된 인물. 당대 한국 여성의 비참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인물이다.

 

10. 이 작품의 액자 구성 방식과 주제

 

 이 소설은 이야기 속에 또 하나의 이야기를 안고 있는 액자 구성 방식을 취하고 있다. 외면적 사건은 '나'가 기차 안에서 만난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으나 중요한 사건은 '그'의 이야기 속에 들어 있다. 전체적인 사건의 윤곽은 '기차 안에서 기묘한 차림의 사내를 만나 이야기를 나눔→ 그가 들려주는 과거의 체험담 → 다시 현실로 돌아와 취흥에 겨워 노래를 부름'으로 요약된다.

 '그'가 들려주는 과거의 체험담은 실상 작가가 본격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주제가 담긴 부분으로, 순박한 농사꾼이 유랑민이 될 수밖에 없었던 기막힌 사연, 혼담이 있었던 여인과의 비극적 해후 등을 통해 당시 일제 강점하에서 핍박받는 망국민의 비참한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액자 구성의 전개는 보통 독자에게 신뢰감을 주며, 독자로 하여금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게 하는 기는을 한다.

 

11. '그'가 부르는 '노래'의 의미

 

               볏섬이나 나는 전토는

               신작로가 되고요 -

               말마디나 하는 친구는

               감옥소로 가고요 -

               담뱃대나 떠는 노인은

               공동묘지로 가고요 -

               인물이나 좋은 계집은

               유곽으로 가고요 -

 

 이 노래는 신민요로 '그'가 어릴 적 멋모르고 불렀으나 지금은 그 의미를 알고 부르는 노래이다. 이 노래는 당시 사회상을 집약적으로 보여 주고 있으며 일제의 가혹한 통치에 의해 조선인이 겪었던 비참한 삶, 즉 일제의 농토 강탈과 지식인에 대한 탄압, 망국의 비운을 체험한 노인들의 한 맺힌 죽음과 극심한 가난 때문에 창기가 될 수밖에 없었던 조선 여인들의 비극상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작품의 주제 의식이 담긴 부분으로 당대의 시대상을 효과적으로 고발하며 작품을 마무리하고 있다.

 

12. 이 작품에 나타난 '나'의 심리 변화와 거리감의 변화를 통한 효과

 

 

 '나'는 처음에 단순한 관찰자의 입장에서 '그'를 흥미의 대상으로 보다가 '그'의 어쭙잖은 행동에 반감을 느끼며, '그'에 대한 거리감을 드러낸다. 그러다가 '그'의 신산스런 표정에 마음을 열게 하되고 '그'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점차 '그'의 이야기에 공감을 하게 되고, 마침내 정서적인 합일 상태에 이르게 된다.  별개의 존재이던 '나'와 '그'는 한민족이라는 유대감을 가지게 되면서 심리적 거리가 제거된 것이다.

 특히 이러한 거리감의 변화는 '문체'의 변화를 통해서도 감지된다. '나'가 처음에 '그'를 묘사할 때에는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문체가 나타나다가 '그'의 행적을 서술하는 부분에서는 주관적인 감정이 개입된 해설체로 표현된다. 이러한 문체의 변화는 처음에 객관적 관찰의 대상이었던 '그'가 나중에는 '나'와 심정적으로 융합되는 대상으로 변화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이와 같이 '그'에 대한 '나'의 심리적 거리가 좁혀짐으로써, 이야기를 전해 듣는 독자들로 하여금 '그'의 이야기에 대해 관심을 증가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참고 자료

 

디딤돌 문학 소설, 디딤돌, 2006.

 

 

13. 고향(전문)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차중에서 생긴 일이다. 나는 나와 마주앉은 그를 매우 흥미있게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두루마기 격으로 기모노를 둘렀고, 그 안에서 옥양목1) 저고리가 내어 보이며 아랫도리엔 중국식 바지를 입었다. 그것은 그네들이 흔히 입는 유지2) 모양으로 번질번질한 암갈색 피륙3)으로 지은 것이었다. 그리고 발은 감발4)을 하였는데 짚신을 신었고, 고부가리로 깎은 머리엔 모자도 쓰지 않았다. 우연히 이따금 기묘한 모임을 꾸미는 것이다. 우리가 자리를 잡은 찻간에는 공교롭게 세 나라 사람이 다 모였으니, 내 옆에는 중국 사람이 기대었다. 그의 옆에는 일본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는 동양 삼국 옷을 한 몸에 감은 보람이 있어 일본말도 곧잘 철철 대이거니와 중국말에도 그리 서툴지 않은 모양이었다.

"도꼬마데 오이데 데스까? (어디까지 가십니까?)" 하고 첫마디를 걸더니만, 도꾜가 어떠니, 오사까가 어떠니, 조선사람은 고추를 끔찍이 많이 먹는다는 등, 일본 음식은 너무 싱거워서 처음에는 속이 뉘엿거린다5)는 등, 횡설수설 지껄이다가 일본 사람이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짧게 끊은 꼿꼿한 윗수염을 비비면서 마지못해 까땍까땍 하는 고개와 함께 "소데스까(그렇습니까)"란 한 마디로 코대답을 할 따름이요, 잘 받아 주지 않으매, 그는 또 중국인을 붙들고서 실랑이를 하였다. "니상나얼취?(어디 가십니까?)……" "니싱섬마?(이름이 무엇입니까?)"하고 덤벼 보았으나 중국인 또한 그 기름 낀 뚜우한 얼굴에 수수께끼 같은 웃음을 띨 뿐이요 별로 대꾸를 하지 않았건만, 그래도 무에라고 연해 응얼거리면서 나를 보고 웃어 보였다.

그것은 마침 짐승을 놀리는 요술장이가 구경꾼을 바라볼 때처럼 훌륭한 제 재주를 갈채 해 달라는 웃음이었다. 나는 쌀쌀하게 그의 시선을 피해 버렸다. 그 주적대는 꼴이 어줍지 않고 밉살스러웠다. 그는 잠깐 입을 닫치고 무료한 듯이 머리를 덕억덕억 긁기도 하며, 손톱을 이로 물어뜯기도 하고, 멀거니 창 밖을 내려보기도 하다가, 암만해도 주절대지 않고는 못 참겠던지 문득 나에게로 향하며, "어디꺼정 가는 기오?"라고 경상도 사투리로 말을 붙인다.

"서울까지 가요."

"그런기오. 참 반갑구마, 나도 서울꺼정 가는데, 그러면 우리 동행이 되겠구마."

나는 이 지나치게 반가와하는 말씨에 대하여 무어라고 대답할 말도 없고, 또 굳이 대답하기도 싫기에 덤덤히 입을 닫쳐 버렸다.

"서울에 오래 살았는기오?"

그는 또 물었다.

"육칠 년이나 됩니다." 조금 성가시다 싶었으되, 대꾸 않을 수도 없었다.

"에이구, 오래 살았구마, 나는 처음길인데 우리 같은 막벌이꾼이 차를 내려서 어디로 찾아가야 되겠는기오? 일본으로 말하면 기진야도6) 같은 것이 있는기오?"

하고 그는 답답한 제 신세를 생각했던지 찡그려 보였다. 그때 나는 그의 얼굴이 웃기보다 찡그리기에 가장 적당한 얼굴임을 발견하였다. 군데군데 찢어진 겅성드뭇한7) 눈썹이 울울이 일어서며, 아래로 축 처지는 서슬에 양미간에는 여러가닥 주름이 잡히고, 광대뼈 위로 뺨살이 실룩실룩 보이자 두 볼은 쪽 빨아든다. 입은 소태8)나 먹은 것처럼 왼편으로 삐뚤어지게 찢어 올라가고, 죄던 눈에 눈물이 괸 듯 삼십세 밖에 안 되어 보이는 그 얼굴이 10년 가량은 늙어진 듯하였다. 나는 그 신산스러운 표정에 얼마쯤 감동이 되어서 그에게 대한 반감이 풀려지는 듯하였다.

"글쎄요, 아마 노동 숙박소란 것이 있지요."

노동 숙박소에 대해서 미주알 고주알 묻고 나서,

"시방 가면 무슨 일자리를 구하겠는지요?"

하고 그는 매달리는 듯이 또 채웠다,

"글쎄요, 무슨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는지요."

나는 내 대답이 너무 냉랭하고 불친절한 것이 죄송스러웠다. 그러나 일자리에 대하여 아무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이외에 더 좋은 대답을 해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대신 나는 은근하게 물었다.

"어디서 오시는 길입니까?"

", 고향에서 오누마" 하고 그는 휘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그의 신세타령의 실마리는 풀려 나왔다. 그의 고향은 대구에서 멀지 않은 KH란 외따른 동리였다. 한 백 호 남짓한 그곳 주민은 전부가 역둔토9)를 파먹고 살았는데, 역둔토로 말하면 사삿집10) 땅을 부치는 것보다 떨어지는 것이 후하였다. 그러므로 넉넉지는 못할망정 평화로운 농촌으로 남부럽지 않게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세상이 뒤바뀌자 그 땅은 전부가 동양척식회사의 소유에 들어가고 말았다. 직접으로 회사에 소작료를 바치게나 되었으면 그래도 나으련만, 소위 중간 소작인이란 것이 생겨나서 저는 손에 흙 한 번 만져 보지도 않고 동척엔 소작인 노릇을 하며, 실작인11)에게는 지주 행세를 하게 되었다. 동척에 소작료를 물고 나서 또 중간 소작료인에게 긁히고 보니, 실작인의 손에는 소출12)3할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후로 '죽겠다. 못 살겠다'하는 소리는 중이 염불하듯 그들의 입길에서 오르내리게 되었다. 남부여대13)하고 타처로 유리14)하는 사람만 늘고 동리는 점점 쇠진해 갔다.

지금으로부터 9년 전, 그가 열 일곱 살 되던 해 봄에(그의 나이는 실상 스물 여섯이었다. 가난과 고생이 얼마나 사람을 늙히는가) 그의 집안은 살기 좋다는 바람에 서간도로 이사를 갔었다. 쫓겨가는 운명이거든 어디를 간들 신신하랴. 그곳의 비옥한 전야도 그들을 위하여 열려질 리 없었다. 좋은 땅은 먼저 간 이가 모조리 차지하였고 황무지는 비록 많다 하나 그곳 당도하던 날부터 아침거리 저녁거리 걱정이라, 무슨 행세로 적어도 1년이란 장구한 세월을 먹고 입어 가며 거친 땅을 풀 수가 있으랴, 남의 밑천을 얻어서 농사를 짓고 보니, 가을이 되어 얻는 것은 빈주먹뿐이었다. 이태 동안을 사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버티어 갈 제, 그의 아버지는 우연히 병을 얻어 타국의 외로운 혼이 되고 말았다. 열 아홉 살밖에 안된 그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악으로 모진 목숨을 이어가는 중 4년이 못되어 영양 부족한 몸이 심한 노동에 지친 탓으로 그의 어머니 또한 죽고 말았다.

"모친꺼정 돌아갔구마." "돌아가실 때 흰죽 한 모금도 못 자셨구마." 하고 이야기하던 이는 문득 말을 뚝 끊는다. 그의 눈이 번들번들함은 눈물이 쏟아졌음이리라. 나는 무엇이라고 위로할 말을 몰랐다. 한동안 머뭇머뭇이 있다가 나는 차를 탈 때에 친구들이 사준 정종병 마개를 빼었다. 찻잔에 부어서 그도 마시고 나도 마셨다. 악착한 운명이 던져 준 깊은 슬픔을 술로 녹이려는 듯이 연거푸 다섯 잔을 마신 그는 다시 말을 계속하였다. 그 후 그는 부모 잃은 땅에 오래 머물기 싫었다. 신의주로, 안동현으로 품을 팔다가 일본으로 또 벌이를 찾아가게 되었다. 규슈15) 탄광에 있어도 보고, 오사까 철공장에도 몸을 담아 보았다. 벌이는 조금 나았으나 외롭고 젊은 몸은 자연히 방탕해졌다. 돈을 모으려야 모을 수 없고 이따금 울화만 치받치기 때문에 한곳에 주접16)을 하고 있을 수 없었다. 화도 나고 고국 산천이 그립기도 하여서 훌쩍 뛰어나왔다가 오래간만에 고향을 둘러보고 벌이를 구할 겸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라 한다.

"고향에 가시니 반가워하는 사람이 있습디까?"

"반가워하는 사람이 다 뭔기오. 고향이 통 없어졌더마."

"그렇겠지요. 9년 동안이나 퍽 변했겠지요."

"변하고 뭐고 간에 아무것도 없더마 집도 없고, 사람도 없고, 개 한 마리도 얼씬을 않더마."

"그러면, 아주 폐농17)이 되었단 말씀이오?" ", 그렇구마, 무너지다 만 담만 즐비하게 남았드마, 우리 살던 집도 터야 안 남았는기오. 암만 찾아도 못 찾겠더마. 사람 살던 동리가 그렇게 된 것을 혹 구경했는기오?" 하고 그의 짜는 듯한 목은 높아졌다.

"썩어 넘어진 서까래, 뜰뜰 구르는 주추18)! 꼭 무덤을 파서 해골을 헐어 젖혀놓은 것 같더마. 세상에 이런 일도 있는기오, !" 하고 그는 한숨을 쉬며, 그때의 광경을 눈앞에 그리는 듯이 멀거니 먼산을 보다가 내가 따라 준 술을 꿀꺽 들이켜고, "! 가슴이 터지더마, 가슴이 터져."

하자마자 굵직한 눈물 둬 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나는 눈물 가운데 음산하고 비참한 조선의 얼굴을 똑똑히 본 듯 싶었다. 이윽고 나는 이런 말을 물렀다.

"그래, 이번 길에 고향 사람은 하나도 못 만났습니까?"

"하나 만났구마, 단지 하나."

"친척되는 분이던가요?"

"아니구마, 한 이웃에 살던 사람이구마"하고 그의 얼굴은 더욱 침울했다.

"여간 반갑지 않으셨겠지요."

"반갑다마다, 죽은 사람을 만난 것 같더마. 더구나 그 사람은 나와 까닭도 좀 있던 사람인데……."

"까닭이라니?"

"나와 혼인 말이 있던 여자구마."

"하아!" 나는 놀란 듯이 벌린 입이 닫혀지지 않았다.

"그 신세도 내 신세만이나 하구마."

하고 그는 또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그 여자는 자기보다 나이 두 살 위였는데, 한 이웃에 사는 탓으로 같이 놀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며 자라났다. 그가 열 네 살 적부터 그들 부모들 사이에 혼인 말이 있었고, 그도 어린 마음에 매우 탐탁하게 생각하였었다. 그런데 그 처녀가 열 일곱 살된 겨울에 별안간 간 곳을 모르게 되었다. 알고보니, 그 아버지 되는 자가 20원을 받고 대구 유곽19)에 팔아먹은 것이었다. 그 소문이 퍼지자 그 처녀 가족은 그 동리에서 못 살고 멀리 이사를 갔는데, 그 후로는 피차에 한 번 만나 보지도 못하였다. 이번에야 빈터만 남은 고향을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에 읍내에서 그 아내 될 뻔한 댁과 마주치게 되었다.

처녀는 어떤 일본 사람 집에서 아이를 보고 있었다. 궐녀는 20원 몸값을 10년을 두고 갚았건만 그래도 주인에게 빛이 60원이나 남았었는데, 몸에 몹쓸 병이 들어 나이 늙어져서 산송장이 되니까, 주인되는 자가 특별히 빚을 탕감20)해 주고, 작년 가을에야 놓아 준 것이었다.

궐녀도 자기와 같이 10년 동안이나 그리던 고향에 찾아오니까 거기에는 집도 없고, 부모도 없고 쓸쓸한 돌무더기만 눈물을 자아낼 뿐이었다. 하루해를 울어 보내고 읍내로 들어와서 돌아다니다가, 10년 동안에 한 마디 두 마디 배워 두었던 일본말 덕택으로 그 일본 집에 있게 되었던 것이었다.

"암만 사람이 변하기로 어째 그렇게도 변하기오? 그 숱많던 머리가 훌렁 다 벗어졌더마. 눈은 푹 들어가고 그 이들이들하던 얼굴빛도 마치 유산21)을 끼얹은 듯하더마."

"서로 붙잡고 많이 우셨겠지요."

"눈물도 안 나오더마. 일본 우동집에 들어가서 둘이서 정종만 열 병 따라 뉘고 헤어졌구마." 하고 가슴을 짜는 듯한 괴로운 한숨을 쉬더니만 그는 지난 슬픔을 새록새록이 자아내어 마음을 새기기에 지쳤음이더라.

"이야기를 다하면 무얼 하는기오."

하고 쓸쓸하게 입을 다문다.

나 또한 너무도 참혹한 사람살이를 듣기에 쓴물이 났다.

", 우리 술이나 마저 먹읍시다."

하고 우리는 주거니받거니 한 되 병을 다 말리고 말았다. 그는 취흥에 겨워서 우리가 어릴 때 멋 모르고 부르던 노래를 읊조렸다.

볏섬이나 나는 전토는

신작로가 되고요……

말마디나 하는 친구는

감옥소로 가고요……

담뱃대나 떠는 노인은

공동묘지 가고요……

인물이나 좋은 계집은

유곽으로 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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