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4]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앞부분 줄거리] 해방이 된 후에 ‘나’는 친구인 방과 함께 만주에서 서울로 돌아오다가 그와 헤어지게 되고 화물차를 얻어 타 함경도의 수성까지 오게 된다. ‘나’는 제방을 따라 내려가다가 한 소년을 만나는데, 그 소년은 뱀장어를 잡아 일본인에게 파는 일을 하고 있었다.

 

 “첨엔 돈 많이 주는 것도 좋기는 했어요. 정말—했는데 그놈의 조합장 해 먹은 일본 놈 잡구 나서 하루는 위원회 김 선생이 우리 집에 와서 이 양복을 주며 하는 말씀이 퍽 이상한 말씀이 아니겠어요. 너 남의 집 초상 난 데 가 본 일 있니, 담박에 그러십니다—가 봤습니다 하니까, 그 사람 죽은 방에서 일가친척이며 온 동네 사람들이 왜 모여서 들끓고 날을 새우는지 알어?—모릅니다 했습니다. 그랬더니 웃으시며 김 선 생 하는 말이 다른 할 일이 있어서 그렇기도 하지마는, ㉠죽은 사람이 벌떡 일어나는 수가 있단 말이야 하시고는 하하하 하고 자꾸 웃으셨습니다.”/ “응.”
 “글쎄 그래요. 무슨 소린지를 몰라서 왜 벌떡 일어나요, 어떻게 벌떡 일어나요, 하고 무서워서 물으니 깐—죽은 사람 몸뚱이 위를 고양이가 넘어 지나가면 일어난다고 왜 그러지들 안 해?!—그러시구는 또 깔깔거리고 웃으십니다. 날 놀리듯이 그렇게 자꾸만 웃으시구 나서, 그러니까 고양이가 오는지 안 오는 지 시체가 벌떡 일어날려는지 안 날려는지 잘 지켜야만 된단 말이야. 네가 잡은 그놈의 조합장 놈도 그렇게 얌전하게 자빠졌던 놈인데 벌떡 일어나서 달아날려는 것 보겠지.”
 “그런 말씀을 하셨어? 그러니까 네가 잡은 이 뱀장어가 ㉡꽤 엉뚱한 것을 하는 셈이었단 말이지. 사람이 못 지키는 고양이를 다 지키구.”
절반은 소년의 말 대답으로 또 절반은 그의 안색을 살피는 놀라움으로 나는 이랬다. 

 “그 김 선생이란 이가 누구니?”
 “위원회에서 뭔가 하시는데, 꽤 높은 사람이야요. 전에 감옥서 나왔지요. 감옥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 집 동네에 살다가 지금은 포항동에 일본 놈 살던 집 얻어 가지구 게서 지내지요. 김 선생넨 선생 어머니하고 나만 하고 나보다 적고 한, 아버지 없는 조카들하고 지내다가 김 선생이 잡혀 들어가고 난 뒤에 그 할머니 가 혼자 살 수가 없어서 그것들을 데리고 포항동 어느 집에 가서 지금껏 남의 집을 살았었지요.”
 “응, ㉢그런 분이시야?”
 “이번엔 그런 사람이 참 많았어요.”

  “그랬겠지.”
 나는 아무 말도 아니하고 잠잠하였다. 소년도 입을 다문 채 더는 재잘거리지를 아니하고 무엇인가 중대한 것을 생각하는 사람처럼 고개를 소긋하고 걸어갈 뿐이었다.
 “그건 그런데 에에또 너, 그 김 선생이란 이가 죽은 사람을 대놓고 하신 말씀 그래 그때 알아들었단 말이냐?”
 나는 다시 이렇게 입을 열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알어듣구말구요. 그걸 몰라요?”
 소년은 한번 내 얼굴을 치켜 올려다보고,

 “아직 못 보셨군요. 건 정말 다들 죽은 거 한가집니다.”
그는 다시 처음의 흥분 상태로 돌아가 낯에 엷은 분홍기가 떠오르더니 다음 순간에는 다시 푹 꺼져 들어 가면서,
  [A] 「내 뱀장어깨나 사 먹는 녀석들은 어디다 숨켰던지 간에 숨켜서 돈푼 있는 놈들이 틀림없지만요, 정말 다아들 배가 고파서 쩔쩔맵니다. 다아들 얼굴이 하얗고 가죽이 축 늘어지고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는 걸 가지고 밤낮을 모르고 망깨를 비라리*허러 촌으로 나려오지 않습니까. 배추꼬랑이를 먹는다, 고춧잎을 딴다, 수박 껍데기를 핥는다, 그래 보다가 저엉 할 수가 없으면 ㉣고무산이나 아오지로 가지요. 누가 보 내지 않아도 자청해서 갑니다. 우리 여기는 쌀이 없는 덴데 일본 것들이란 거지반 사내 없앤 것들만인 데다가 애새끼들만 오굴오굴허는 걸 데리고 가기는 어딜 가며 어딜 가면 무얼 합니까.” 」
 

                                                                                           (중략)
 
 “부질없는 말로 이가 어째 안 갈리겠습니까— 하지만 내 새끼를 갖다 가두어 죽인 놈들은 자빠져서 다들 무릎을 꿇었지마는, 무릎 꿇은 놈들의 꼴을 보면 눈물밖에 나는 것이 없이 되었습니다그려. 애비랄 것 없이 남편이랄 것 없이 잃어버릴 건 다 잃어버리고 못 먹고 굶주리어 피골이 상접해서 헌 너즐떼기에 깡통 을 들고 앞뒤로 허친거리며, 업고 안고 끌고 주추 끼고 다니는 꼴들—어디 매가 갑니까. 벌거벗겨 놓고 보니 매 갈 데가 어딥니까.”
 “…….”
 “만주서 오셨다니깐 혹 못 보셨는지 모르지마는, 낮에 보면 ㉤이 조그마한 장터에도 그 헐벗은 굶주린 것 들이 뜨문히 바닥에 깔리곤 합니다. 그것들만 실어서 보내는 고무산인가 아오진가 간다는 차가 저기 와 선 채, 저 차도 벌써 나 알기에 닷새도 더 되는가 봅니다만, 참다 참다 못해 자원해 나오는 것들이 한 차 되기를 기다려 떠나는 것인데, 닷새 동안이면 닷새 동안 긴내 굶은 것인들 그 속에 어째 없겠어요.”

 그러지 아니하여도 나는 할머니의, 아까 그것들이 업고, 안고, 끼고 다닌다는 측은한 표현을 한 것으로부 터, 낮에 수성서 들어오는 길로 맞닥뜨린 사람들이 복작거리는 좁은 행상로 위에 일어난 한 장면의 짤막한 씬을 연상하기 시작하는 중이었는데, 노인은 이러고는 말을 끊고 흐응 깊은 한숨을 들여쉬었다.
 [B] 「참으로 그 일본 여자는 업고, 달고, 또 하나는 손을 잡고, 아마 아오지 가기를 기다리는 차에서 기어 내려온 듯 폼 가까운 행 상로 위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허옇게 퉁퉁 부어오른 낯에 기름때에 전 걸레 같 은 헝겊 조각으로 머리를 질끈 동이고, 업고, 달리고, 잡힌 채, 길 바추에 비켜 서 있었다. 머리를 동인 것만으로는 휘둘리는 몸을 어찌할 수 없다는 모양으로, 골쌀을 몇 번 찌푸렸다가는 펴서, 하늘을 쳐다 보고, 또 찌푸렸다가는 펴서 쳐다보고 하기를 한참이나 하며 애를 쓰는 것을 자기는 유심히 건너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비라리: 구구한 말을 하여 가며 남에게 무엇을 청하는 일.

 

 

01. 윗글을 통해 알 수 있는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소년은 돈 많은 일본인들에게 뱀장어를 팔곤 하였다.
② 소년은 달아나려는 일본인 조합장을 잡은 적이 있다.
③ ‘나’는 만주에서 지내다가 우리나라로 돌아오게 되었다. ④ 궁핍을 겪고 있는 일본인들은 주로 여성과 어린아이들이다. 

⑤ 김 선생은 감옥에서 나온 후 소년이 살고 있는 동네로 이사 왔다.

02. ㉠~㉤을 이해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 패망 후 숨죽이며 살고 있는 일본인들을 빗댄 말이다. 

② ㉡: 돈을 숨겨 가지고 있던 일본인을 찾아낸 일을 지칭한다. 

③ ㉢: 김 선생 어머니처럼 해방 후 남의 집 살이를 한 사람을 말한다. 

④ ㉣: 궁핍한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마지못해 선택하는 공간이다. 

⑤ ㉤: 고무산이나 아오지로 가는 차가 사람들을 기다리는 장소이다.

 


03. [A]와 [B]에 공통으로 나타난 서술상 특징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과거 회상을 통해 관찰 대상이 처한 어려움의 원인을 탐구하고 있다.
② 외양이나 행동을 묘사하여 관찰 대상의 고달픈 처지를 드러내고 있다.
③ 심리 묘사를 통해 주어진 사건에 대한 인물의 내적 갈등을 보여 주고 있다. 

④ 짧은 문장의 연속을 통해 인물이 경험한 사건의 개요를 간결하게 요약하고 있다. 

⑤ 배경에 대한 묘사를 통해 현실에 대한 인물의 심리를 간접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04. <보기>의 밑줄 친 ‘패망한 일본인들’에 대한 인물들의 태도를 이해한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보기>-------------------------------------------------------------------------------------------------------------------------------------------------------

 해방 공간에서 우리 민족이 패망한 일본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복합적이고 다층적이다. 그들이 36년간 보여 줬던 행태에  대한 분노와 그런 그들에 대한 복수의 감정, 그들의 패망에서 느끼는 희 열과 그들에 대한 조롱 등 그들과 우리가 서로 다른 존재라는 이질감에서 비롯된 감정들이 시선의 한 축에 존재한다. 그런가 하면 패망으로 인해 자신이 가진 것을 잃고, 굶주리고 핍박받는 존재들 이 된 그들에 대한 연민과 동정 같은, 어쩌면 고단한 삶을 경험한 사람들이 갖는 동질감에서 비롯 된 감정들이 시선의 다른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허준의 「잔등」은 이와 같은 복합적인 시선들이 잘 나타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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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김 선생이 ‘하하하 하고 자꾸 웃’는 이유는 일본인들의 패망에서 느끼는 희열 때문이겠군.
② ‘날 놀리듯이’ 질문을 던지는 김 선생의 태도에서 일본인들을 조롱하는 태도가 나타나 있군.
③ 김 선생이 ‘일본 놈 살던 집’을 얻어 사는 것은 패망한 일본인들에게 동질감을 느끼기 때문이 겠군.
④ 노인의 ‘매 갈 데가 어딥니까.’라는 말에는 일본인들의 행태에 대한 분노의 감정이 나타나 있군.
⑤ 노인이 ‘흐응 깊은 한숨’을 쉬는 것은 패망한 일본인들에게 느끼는 연민의 감정 때문이겠군.

 

 

 

 

정답

 

01. ⑤

02. ③

03. ②

04. ⑤

 

 

 

 

'잔등' 핵심 정리

 

 

1. 갈래 - 중편 소설

2. 배경 : 시간 - 해방기 시점에서 부각시킨 일제 징용 시대의 현실.

공간 - 만주, 청진 등지

3.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4. 의의 : 해방을 맞이하는 태도에 대한 새로운 조명

5. 제재 : 해방 직후, 다양한 삶의 방식과 일본인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

6. 주제 : 광복 후 새로운 인간 정신의 모색.

 

7. 해제

1946<대조(大潮)>에 발표된 중편 소설로 허준의 대표작이다. 해방 후, 만주의 장춘(長春)에서 함경 도 회령, 청진을 거쳐 서울로 오기까지 와 친구 ()’이 겪은 체험담이다. 광복을 맞이한 한국인의 두 가지 상반된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해방기의 문학은 일반적으로 역사적 해방에 대한 감격을 직설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문학 작품으로 서의 정교함이나 미학성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이 '잔등'은 해방과 귀향의 감격적인 의 식에 함몰되지 않고 냉철한 시각으로 인간애의 의미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따라서 허준의 '잔등'은 귀국의 여정을 다루면서도 당대의 시대적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파하여 인간적 삶의 따뜻한 애정을 잔등의 불빛이라는 상징을 통하여 탁월하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8. 전체 줄거리

 

해방 후, 광복의 열기와 착찹함, 그리고 무질서가 뒤얽힌 시대 상황에서 친구인 ()’과 장춘(長春)에서 청진까지 오던 는 열차를 놓친다. ‘과 헤어진 뒤 화물차를 얻어 타고 청진 못 미친 수성까지 오게 된다. ‘는 제방을 따라 내려가다가 삼지창을 들고 뱀장어를 잡는 한 소년을 발견한다. 이 소년은 뱀장어를 잡아서 일본인에게 파는데, 사실은 숨어 있는 돈 많은 일본인을 알아내어 한국인들에게 알리는 일이 본업(本業)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일본인들에 대한 복수에 열성적으로 앞장서고 있는 모습을 는 망연히 바라만 본다. ‘을 만나려고 청진역으로 왔을 때, 국밥 장사를 하는 어떤 할머니를 만난다. 할머니는 갓 서른에 남편을 여의었고, 독립 운동을 하던 아들마저 일경(日警)에 잃은 사람이다. 그런 불행한 과거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난민들에게 너그러울뿐더러, 일본인에게까지 원한과 저주를 넘어 관대하고 동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는 할머니에게서 인간 희망의 넓고 아름다운 시야를 발견한다. ‘은 다시 군용 열차로 청진을 떠난다. ‘의 머릿속에는 국밥집 할머니의 잔등(殘燈), 뱀장어를 잡던 소년의 잔등(殘燈)이 흐린 불빛으로 새겨진다. ‘는 해방된 조국에서 이국 병사들의 감시를 받으며 남행 열차에 몸을 싣는다.

 

9. 구성

발단 : 친구인 ()’과 함께 장춘에서 청진으로 향함.

전개 : 열차를 놓쳐 과 헤어짐.

위기 : 수성강 둑에서 뱀장어를 잡는 소년을 만남.

절정 : 청진역에서 국밥 장사를 하는 할머니를 만남.

결말 : ‘과 함께 다시 군용 열차로 청진을 떠나 서울로 향함.

 

10. 작중 인물 :

(‘()’) : 화가. 지성인. 징용에 끌려 갔다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내면적 성격의 인물. 해방이 되자 만주 장춘에서 회령, 청진을 거쳐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일본인에 대한 한국인의 두 가지 태도를 체험한다.

() : ‘와 함께 귀국길에 오른 친구. 사교적·행동적인 인물.

소년 : 뱀장어를 잡아 일본인들에게 팔지만 돈 많은 일본인들을 알아내어 한국인들에 게 알리는 것이 본업(本業).

할머니 : 국밥 장수. 일찍 남편을 잃고 외아들이 독립 운동을 하다가 감옥에서 죽음. 아들의 일본인 친구도 죽은 데에서 일본인에게 연민의 정을 가지는 인정 많은 인물.

 

 

11.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해방 직후 만주에서 서울로 이어지는 귀향의 여정을 중심으로, 해방의 환히와 기쁨에 도취되기보다는 행방 직후의 현실을 냉철학 인식하고 객관적으로 그려 내고 있다. 특히 망한 일본인들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을 통해 새로운 시대 정신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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