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3]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새처럼 모든 구속으로부터 나를 해방시키고 싶었다. 내 고통의 원인을 제공한 ㉠이 땅을 떠나 멀리로 완전한 자유인이 되어 떠나고 싶은 마음이 나그네새를 볼 때마다 간절하게 사무쳤다. 윤회설을 믿지 않지만 이승에서 새로 변신할 수 없다면 내세에서라도 새가 되어 태어나고 싶었다. 인간이 되기를 소원하는 새가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 새와 나를 바꾸고 싶었다. 선택권을 준다면 새 중에서도 시베리아나 저 툰드라가 고 향인 도요새가 되어 높게 멀리 날고 싶었다.
 나는 동진강 하구로 내려가다 삼각주 갈대밭을 채 못 가 남쪽으로 뚫린 큰길로 접어들었다. 한쪽으로 바다를 낀 그 길로 오백 미터쯤 내려가면 해안 경비군 파견대가 있었고, 다시 그만한 거리를 더 내려가면 웅포리란 옛 포구가 나섰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적만도 축항에 소형 발동선이 닻을 내렸고 모래펄에 그물이 어수선하게 널렸던 웅포리였는데, 내륙 쪽에 공단이 조성되고 난 뒤, 이제 포구가 아니었다. 동남만 연안이 폐수 오염으로 고기가 잡히지 않을 즈음, 때마침 웅포리까지 포장도로가 닦이자 그곳은 유흥가로 변했다. 불과 삼 년 전이었다. 처음, 어민들은 해변가에 포장 주막을 차리고 즉석 매운탕과 생선회를 팔기 시작했 다. 물론 물고기는 부근 어촌에서 받아 왔다. 그러자 작업복에 안전모를 쓴 공장 기술자들이 출퇴근용 자전 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웅포리로 몰려나왔다. 장사가 쏠쏠히 잘되자 버스 노선까지 생겼다. 돈깨나 만지는 시내 투기꾼들이 웅포리에 여자까지 갖춘 큰 방석집을 벌였다. 웅포리는 단박 소문난 유흥가로 발전했다.
 [A] 「나는 웅포리로 가는 참이었다. 그곳으로 가면 내가 늘 찾는 집이 있었다. 유흥가에서 좀 떨어진 암벽 아래 ㉡아바이집이란 해묵은 소줏집이 있었다. 칠순에 가까운 할머니가 손자 하나를 데리고 소주에 매운탕을 파는 들어앉은 주막이었다. 그 할머니는 함경남도 함흥에서 육이오 전쟁 ‘흥남 철수’ 때 피란 나온 삼팔따라지로, 나는 그 술집을 아버지로부터 소개받았다. 서울서 내가 낙향했을 무렵, 어느 날 아버 지는 나를 데리고 아바이집으로 갔다.
 “이젠 너도 아비와 같이 자, 잔 나눌 나이가 된 것 같애. 너가 어릴 적부터 나는 사실 오늘같이 이, 이런 날을 기다린 셈이지. 자식과 수, 술잔 함께할 날을 말이야. 내 맺힌 과거지사를 들어 줄 놈은 여, 역시 맏아들밖에 없으려니 하고 말이야.”
 목로에 소주병 놓고 마주 앉아 아버지가 나에게 말했다. 그날 나는 아버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버지가 동해를 볼 때 느끼는 의미며, 도요새를 왜 사랑하느냐를 처음으로 가슴 깊게 새겨들었다.
 “……내가 유엔군 포로가 되자, 나는 곧 전향했어.” / 아버지가 말했다.
 “나는 내 뜨, 뜻에 따라 국군으로 자원입대한 셈이지. 육 개월 뒤 금화 전투에서 훈장을 받고 난 육군 소위로 승진되었어. 그때가 이, 일사 후퇴 끝난 뒤였으니 그로부터 다시 고, 고향 땅을 못 밟고 말았 잖았는가. 고향 땅이 수복되면 가족 데리고 이남으로 내려오려 꿈을 꿨던 게 모두 수, 수포로 돌아갔 어. 내가 변하기 시작한 게 그때부터야. 껍질 깨고 세상으로 나오려던 벼, 병아리가 다시 달걀 집으로 들어가고 싶어 했으나 이미 워, 원상태 복귀가 불가능한 그런 경우랄까…….”
 아버지는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냈다. 수첩을 뒤지더니 낡은 편지 봉투를 집어냈다. 아버지 손이 떨렸 다. 나는 아버지가 또 고향 ㉢통천에 두고 온 조부모님과 두 삼촌, 고모 두 분과 함께 찍은 옛 사진을 보 여 주는 줄로만 알았다. 나는 이미 그 낡은 사진을 수십 차례도 더 보았다. 그러나 아버지가 꺼낸 사진은 명함 크기의 그 가족사진이 아니었다. 색 낡아 누렇게 바래진 우표만 한 증명사진이었다.

 “너, 넌 이제 이해할 거야. 이 사진 보더라도 나를 미워하지 않을 줄…….”
아버지는 그 사진을 내게 건네주었다. 모서리는 이미 닳았고 거북등같이 가로세로 주름마저 진 색 바 랜 사진엔 처녀 얼굴이 박혀 있었다. 갈래머리를 저고리 어깨 앞에 내린 곱상한 사진 주인이 누구인지 나는 짐작할 수 있었다.」
“통천에 계신다던 옛 약혼자시군요.”

 

 [중략 부분 줄거리] 병국의 아버지는 철새가 도래할 때면 새를 보며 이북의 기억을 떠올리고 그 시간만을 살아 있다고 느낀다. 병국의 어머니는 그런 남편과 학생 운동을 하다가 대학에서 제적된 병국이 경제적 능력을 갖추지 못한 채 새 떼나 보러 나다니 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하루는 병국이 군에 억류되는 사건이 벌어지는데, 자신을 데리러 온 아버지에게 병국은 새가 집단 으로 죽은 사건을 조사했었고 병식이 그 사건에 연루되어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B]「 “너 그날 ㉣석교천 방죽에서 말이야, 새를 독살하고 오던 길이었지?”

 “그래서, 그게 뭘 어쨌다는 거야?”
병식 표정에서 비로소 장난기가 사라졌다. 그는 조금 전 얘기의 종호처럼 아주 당당한 얼굴이었다. 

 “뻔뻔스런 자식. 언제부터 그 짓 했냐? 그건 그렇고, 왜 새를 죽여. 죽인 새로 뭘 해?”
병국의 목청이 높아졌다. / 주모가 술 주전자와 안주를 날라 왔다.
 “나 원, 별 말코 같은 소릴 다 듣는군. 아니, 날아다니는 새도 임자 있나? 형, 이 지구에 사는 새를 누 가 몽땅 사들였어? 아님 형이 매입했다는 거야?”
 병식이 스테인리스 잔을 형 앞으로 밀었다. 잔에 술을 쳤다.

 “형, 우선 한잔 꺾지. 형제 우정을 위해서.”
 “누가 네게 그 일을 시키고 있어? 그 사람부터 대!” / 병국이 술잔을 밀며 소리쳤다.
 “왜 그래? 두루미나 크낙새 같은 보호조가 아닌, 흔해 빠진 잡새 죽였다고 고발할 테야? 날아다니는 새 잡아 박제해서 호구 잇는 건* 죄가 되구, 돈 많은 놈 허가 낸 사냥총으로 새를 잡아 영양 보충하는 건 죄가 안 된다 이 말씀이야?”
 병식이 코웃음을 치곤 술을 들이켰다.
 “이 지구상에 희귀조가 계속 멸종되는 건 너도 알지? 인간이 새로운 새를 창조해 낼 수는 없어.”
 “그 개떡 같은 이론은 집어치워. 내가 알기론 이 지구상에는 삼십 억이 넘는 새들이 살아. 그중 내가 오십 마리쯤 죽였다 치자. 그게 형은 그렇게 안타까워? 그렇담 숫제 참새구이도 없애 버리지 뭘. 가 축인 닭도 진화를 도와 하늘로 해방시키고.”
 “박제하는 놈을 못 대겠어?”
병국이가 의자에서 일어나 아우 멱살을 틀어쥐었다. 주모가 달려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개시도 안 한 ㉤술집에서 웬 행패냐고 주모가 다그쳤다.」

 

 

*호구 잇는 건: 입에 풀칠하는 것은.

 

 

 

01.  [A]와 [B]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A]와 [B]는 모두 역순행적으로 장면을 배치하여 사건의 맥락을 드러내고 있다.
② [A]와 [B]는 모두 공간적 배경을 감각적으로 묘사하여 인물의 심리를 암시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③ [A]는 외양 묘사를 통해 인물의 성격을 간접적으로, [B]는 설명을 통해 인물의 성격을 직접 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④ [A]는 이야기 속 서술자의 회상을 통해, [B]는 이야기 밖 서술자의 관찰자적 서술을 통해 인 물의 행동을 나타내고 있다.
⑤ [A]에는 내적 독백을 통해 인물의 내적 갈등이 심화되는 양상이, [B]에는 대화를 통해 인물 간 갈등이 심화되는 양상이 드러나고 있다.

 


02. ㉠~㉤에 대한 이해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 병국이 자신이 속박되어 있다고 생각하여 벗어나기를 소망하는 장소이다.
② ㉡: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감추고 살아온 약혼자가 있었음을 병국이 알게 되는 장소이다. 

③ ㉢: 아버지가 옛 가족들과 함께 살다가 전란으로 인해 떠나온 장소이다.
④ ㉣: 병국이 병식이가 새를 죽인 직후에 지나친 곳이라고 판단한 장소이다.
⑤ ㉤: 병식이 병국의 생각이 지닌 한계를 지적하며 자신의 행위가 정당했음을 항변하는 장소 이다.

 

 

03. <보기>를 참고하여 윗글을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1970년대 한국 사회는 급속한 산업화로 경제 발전을 이루었지만, 그 이면에는 정치적 자유의 억압과 분단의 고착화, 물질 중심주의 풍조의 확산과 환경 파괴 등과 같은 문제들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도요새에 관한 명상」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상처 입고 방황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여 준다. 작중 인물들이 세계에 대응하는 방식은 ‘새’에 대한 태도를 통해 드러나는데, 새를 수단적 가치만을 지닌 대상으로 바라보는 인물과 달리, 새를 통해 실향민으로서 떠나온 고향의 기억을 이어 가거나 억압된 자신의 욕망을 자각하는 인물들은 공통적으로 새에 대해 강한 애착을 가진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인물들 사이에서 소통의 매개 혹은 대립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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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병국이 ‘새처럼 모든 구속으로부터 나를 해방시키고 싶었다.’라고 생각하는 데에서, 새를 자신의 욕망을 떠올리게 하는 존재로 여기며 새에 대해 애착을 보이는 태도가 드러나는군.
② 병국이 ‘고등학교에 다닐 적’ 이후로 ‘웅포리’가 변모해 온 모습을 통해, 경제 발전을 이룬 사회의 이면에 환경 파괴의 문제가 자리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군.
③ 아버지가 ‘도요새를 왜 사랑하’는지를 매개로 병국과 대화하는 내용을 통해, 남북 분단으로 인해 실향민이 지니고 살아가는 아픔이 드러나는군.
④ 병식이 ‘새 잡아 박제해서 호구 잇는’ 것이 죄가 되느냐고 반문하는 데에서, 병식이 물질 중심주의적 사고에 근거하여 새를 수단적 가치만을 지닌 대상으로 바라보는 인물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군.
⑤ 병국이 ‘멱살을 틀어쥐’고 병식과 대립하는 모습에서, 정치적 자유가 억압된 시대적 상황에 맞서고자 하는 태도가 드러나는군.

 

 

 

정답 

 

01. ④

02. ②

03. ⑤

 

 

 

'도요새에 관한 명상' 핵심 정리

 

 

1. 갈래 - 중편소설

2. 배경 : 시간적 - 1970년대 후반 도시의 산업화로 공해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될 시기

( 6.25를 전후한 시기가 회상의 공간에서 다루어짐 )

공간적 - 동진강 유역의 오염지대

3. 시점 - 시점의 이동이 자유로움(1인칭 시점, 전지적 작가 시점)

4. 표현상 특징 - 등장인물들 각각의 시점으로 서술된다는 점.

5. 주제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상처 입고 방황하는 이들의 삶

6. 출전 - <한국문학>(1979) 68호에 발표됨.

7. 주요 인물

 

·아버지 : 실향민, 고향을 그리워하는 소극적이고 이상적이나 자상한 면모를 지님, 실천적이지 못한 소 극적 가장. 진실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

·어머니 : 물질적 삶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인물. 적극적이고 억척 같은 생활인이나 무계획적임.

·병국 : 장남. 수재이나 시국에 연루되어 퇴학을 당함. 현실보다는 이상을 추구하는 행동적이며 적극적 인 인물임. 도요새를 절대 자유의 상징으로 여기며 지키고 보호하려 함. 데모로 대학에서 제적 된 수재(秀才).

·병식 : 동생. 재수생으로 현실적이고 이기적이며 타산적인 인물임. 도요새를 밀렵하여 박제상(剝製商) 에게 내다 판다.

 

8. 전체 줄거리

 

재수생인 병식은 동진강 하구에서 새를 박제사에게 넘기고, 번 돈을 유흥비로 쓴다. 그리고 한때 촉망바든 수재였으나 학생 운동을 하다가 대학에서 제적되어 낙향해 온 병국을 보며 실망한다. 낙향한 병국은 자신을 따뜻하게 맞아 준 아버지에게 아버지가 품고 살아온 상처의 원인을 듣는다. 또 동진강 하구에서 자취를 감춘 도요새를 찾아 헤매면서 인근의 수질 오염 문제에 관심을 쏟는다. 한편 아버지는 이북 출신 실향민으로 철새가 도래할 무렵이면 갯벌에 나가 새를 보며 고향에 두고 온 가족을 추억하는데, 아내는 그런 남편의 무기력한 모습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아버지는 해안 통제 구역에 들어갔다는 이유로 군 당국에 붙잡힌 병국을 데리고 오면서, 병식이 새 떼를 독살했을 것이라는 말을 병국에게 듣는다. 병국은 병식을 찾아가 잘못을 추궁하려다가 병식과 격렬하게 다툰다. 이후 술집에 갔다가 바깥에서 아버지가 친구와 대화를 나누며 통일을 염원하는 말을 듣고는 자신의 말이 아버지에게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여 발걸음을 돌린다. 그리고 바다를 응시하다가 도요새가 날아오르는 호나상을 본다.

 

9. 이해와 감상

 

<도요새에 관한 명상>은 제10회 한국 창작 문학상을 수상한 중편소설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분단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을 서정적인 배경과 더불어, 가족 구성원 간의 갈등의 형태로 더욱 심화하여 다양한 형태로 발전시키고 있다. 또한 작가는 다른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을 통해서도, 타락한 세계에 대한 개인의 또다른 저항 양태를 보여준다. 이것은 곧 순결한 의식의 영역을 스스로 지켜나감으로써 이 타락의 세계에 거부하는 태도임을 뜻한다.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가족들의 이야기를 제각각의 시점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병식의 눈으로, 둘째는 병국이, 셋째는 아버지, 그리고 끝으로 작가가 직접 개입하여 서로 이질적인 인물들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객관적인 시선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아버지의 정신적 상처를 통한 실향민들의 한, 병국이의 퇴학, 공해 문제에 대한 심각성 등 현대 사회의 문제와 지식인들의 갈등을 부각시켜 줄 수 있었다. 이는 내면성의 추구, 사건의 내면화를 최대한 살려 낼 수 있게 하고, 사건의 전개 발전을 밀도있게 다룰 수 있게 하고 있으며, 결말에 이르러서는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전환하여 독자들에게 문제를 제기하는 기법상의 효과를 노리는 소설적 장치인 것이다.

이같이 김원일의 <도요새에 관한 명상>은 기법의 새로움, 소재의 특이성, 그리고 우리 사회의 전형적인 인물 유형의 설정 등을 통해서 참다운 삶의 진정성을 회복하려는 작가 의식을 보여 주는 작품이라 하겠다.

'도요새'는 아버지와 병국 사이에 존재하는 정신적 유대감을 상징하는 기능을 한다. 아버지에게는 고향을, 병국에게는 정신적 자유를 상징하는 이 도요새는 이들의 정신적 상처를 치유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렇지만 이 상처는 민족 분단에서 비롯한 것이므로, 작품 <도요새에 관한 명상>은 곧 6.25라는 비극적 역사에 대한 성찰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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