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1~03]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앞부분 줄거리] 생계를 책임지고 있던 엄마의 만두 가게가 아버지의 빚보증으로 망하고 난 후, ‘나’는 언니가 사는 서울 변두 리 반지하 셋방으로 어린 시절부터 쳐 온 피아노를 옮겨 와 살게 된다. ‘나’는 타자 아르바이트를, 언니는 편입 준비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하루하루를 고되게 살아간다.

 

 나는 어서 학교에 가고 싶었다. 얼추 한 학기 등록금을 모았고, 무엇보다도 사람들과 관계 맺으며 ‘피로’ 나 ‘긴장’을 느끼고 싶었다. 긴장되는 옷을 입고, 긴장된 표정을 짓고, 평판을 의식하며, 사랑하고, 아첨하고, 농담하고, 험담하고, 계산적이거나 정치적인 인간도 한번 돼 보고 싶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 일 수도 있고 나쁜 사람일 수도 있지만, 사실 아무것도 될 수 없었다. 지금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은 가전 제품뿐이었다. 나는 냉장고에게 잘 보이거나, 전기밥통을 헐뜯고 싶지 않았다. 첫 월급을 탔을 때 누구를 만나, 어떻게 돈을 써야 할지 몰라 당황했었다. 이대로 아무도 모르게, 아무도 모르는 일만 하다 죽을 수는 없다고, 매일 어깨에 의자를 이고 등교하는 아이처럼 평생 아르바이트만 하고 살 순 없다고 생각했다. 가끔은 손가락이 나뭇가지처럼 기다랗게 자라나는 을 꾸기도 했다. 나는 손가락만 진화한 인간 타자수가 되어 ‘다음 중 맞는 답을 고르시오.’라는 문장을 끊임없이 치고 있었다. 그리고 산더미만 한 문제지를 들고 인쇄소에 찾아가면, 그걸 전부 나더러 풀라는 것이었다. 나는 건포도를 오물거리며 ‘가을이 얼마 남지 않았으 니까’ 하고 안도했다. ‘8월에는 동대문에 옷을 사러 가야지. 화장은 언니에게 배우고, 아르바이트는 반드시 집 밖에서 하는 걸로 해야겠다.’ 도 다음엔 레가 오는 것처럼 여름이 끝난 후 반드시 가을이 올 것 같았지만, 계절은 느릿느릿 지나가고, 우리의 청춘은 너무 환해서 창백해져 있었다.

 

 방 안은 눅눅했다. 자판을 치다 주위를 둘러보면, 습기 때문에 자글자글 운 공기가 미역처럼 나풀대며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벽지 위론 하나둘 곰팡이 꽃이 피었다. 피아노 뒤에 벽은 상태가 더 심했다. 건반 하나 라도 누르면 꼭 그 음의 파동만큼 날아올라, 곳곳에 포자를 흩날릴 것 같은 모양이었다. 나는 피아노가 썩을 까 봐 걱정이었다. 몇 번 마른걸레로 닦아 봤지만 소용없었다. 우선 달력 몇 장을 찢어 피아노 뒷면에 덧대 놓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곧 피아노 건반을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시골에서부터 이고 온 것인 데, 이대로 망가지면 억울할 것 같았다. 한날 마음을 먹고 피아노 의자 위에 앉았다. 그런 뒤 두 손으로 건반 뚜껑을 들어 올렸다. 손안에 익숙한 무게감이 전해져 왔다. 내가 알고 있는 무게감이었다. 곧 88개의 깨끗 한 건반이 눈에 들어왔다. 악기는 악기답게 고요했다. 나는 건반 위에 손가락을 얹어 보았다. 손목에 힘을 푼 채 뭔가 부드럽게 감아쥐는 모양을 하고. 서늘하고 매끄러운 감촉이 전해졌다. 조금만 힘을 주면 원하는 소리가 날 터였다. 밖에선 공사 음이 들려왔다. 며칠 전부터 주인집을 보수하는 소리였다. 문득 피아노를 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사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일단 그런 마음이 들자, 주체할 수 없는 감정 이 솟구쳤다. 한 음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소리는 금방 사라져 아무도 모를 것이다. 나는 용기 내어 손가락 에 힘을 주었다. / “도─”
 ㉠도는 방 안에 갇힌 나방처럼 긴 선을 그리며 오래오래 날아다녔다. 나는 그 소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가슴속 어떤 것이 엷게 출렁여 사그라지는 기분이었다. 도는 생각보다 오래 도─ 하고 울었다. 나는 한 음이 완전하게 사라지는 느낌을 즐기려 눈을 감았다.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쿵쿵쿵쿵. 주먹으로 네 번이었다. 나는 얼른 피아노 뚜껑을 덮었다. 다시 쿵쿵 소리가 들렸다. 현관문을 열어 보니 주인집 식구들 이었다. 체육복을 입은 남자와 그의 아내, 두 아이가 나란히 서 있었다. 사내아이는 아빠와, 계집아이는 엄마 와 똑 닮아 있었다. 외식이라도 갔다 오는지 그들 모두 입에 이쑤시개를 물고 있었다. 남자가 입을 열었다.
 “학생, 혹시 좀 전에 피아노 쳤어?” / 나는 천진하게 말했다. 

 “아닌데요.” / 주인 남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친 거 같은데……?”
 나는 다시 아니라고 했다. 주인 남자는 의심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내가 곰팡이 얘길 꺼내자 “지하는 원 래 그렇다.”라고 말한 뒤, 서둘러 2층으로 올라갔다. 나는 방으로 돌아와 피아노 옆에 기대어 앉았다. 그런 뒤 무심코 휴대 전화 폴더를 열었다. 휴대 전화는 번호마다 고유한 음이 있어 단순한 연주가 가능했다. 1번 은 도, 2번은 레, 높은 음은 별표나 영을 함께 누르면 되는 식이었다. 더듬더듬 버튼을 눌렀다. 미 솔미 레도 시도 파, 미 솔미 레도시도 레레레 미…… ㉡‘원래 그렇다’는 말 같은 거, 왠지 나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부터 폭우가 내렸다. 언니는 아르바이트 때문에 늦는다고 했다. 벌써 퇴근했어야 하는 시간인데 정 산을 잘못한 모양이었다. ㉢언니는 계산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살펴본 뒤, 안 맞을 경우 다시 계산기를 두드리고, 같은 일을 반복하며 밤을 새울 터였다. 나는 만두 라면을 먹으며 연속극을 보고 있었다. 볼륨을 한껏 높였는데도 배우들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리모컨을 잡으니 뭔가 축축한 게 만져졌다. 한참 손바닥을 들여다본 후에야 그것이 빗물이란 걸 깨달았다. 나는 화들짝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관에서부터 물이 새고 있었다. 이물질이 잔뜩 섞인 새까만 빗물이었다. 그것은 벽지를 더럽히며 창틀 아래로 흘러내렸다. ㉣벽 면은 검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누군가의 얼굴 같았다.

 

                                                                                               (중략)
 빗물은 어느새 무릎까지 차 있었다. 나는 피아노가 물에 잠겨 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저대로 두다간 못 쓰게 될 게 분명했다. ㉤순간 ‘쇼바’를 잔뜩 올린 오토바이 한 대가 부르릉— 가슴을 긁고 가는 기분이 들었다. 오토바이가 일으키는 흙먼지 사이로 수천 개의 만두가 공기 방울처럼 떠올랐다 사라졌다. 언니의 영어 교재도, 컴퓨터와 활자 디귿도, 아버지의 전화도, 우리의 여름도 모두 하늘 위로 떠올랐다 톡톡 터져 버렸다. 나는 피아노 뚜껑을 열었다. 깨끗한 건반이 한눈에 들어왔다. 건반 위에 가만 손가락을 얹어 보았다. 엄지는 도, 검지는 레, 중지와 약지는 미 파. 아무 힘도 주지 않았는데 어떤 음 하나가 긴소리로 우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도—” / 도는 긴소리를 내며 방 안을 날아다녔다. 나는 레를 짚었다.
 “레—” / 사내가 자세를 틀어 기역 자로 눕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편안하게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하나 둘 손끝에서 돋아나는 음표들이 눅눅했다.
 “솔 미 도레 미파솔라솔…….”
물에 잠긴 페달에 뭉텅뭉텅 공기 방울이 새어 나왔다. 음은 천천히 날아올라 어우러졌다 사라졌다.

 

 

 

 

01. ㉠~㉤을 이해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 청각적인 대상을 시각적으로 표현하여 대상에 대한 공허함을 형상화하고 있다. 

② ㉡: 인용의 방식을 활용하여 인물로 하여금 부당함을 느끼도록 만든 상황을 제시하고 있다. 

③ ㉢: 가정적 진술을 통해 인물이 처해 있을 상황을 추측하여 제시하고 있다.
④ ㉣: 사물을 인격체에 비유하는 방식을 통해 인물이 처한 현실의 비통함을 형상화하고 있다.
⑤ ㉤: 음성 상징어와 촉각적 이미지를 활용하여 인물이 느끼는 감정을 감각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02. 에 대해 이해한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나’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후회를 암시하고 있다.
② ‘나’가 벗어나고자 하는 생활의 단면을 보여 주고 있다. 

③ ‘나’와 가족들 간의 불화를 상징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④ ‘나’가 자신의 일에 대해 가진 자부심을 반영하고 있다. 

⑤ ‘나’가 유년 시절에 받은 상처의 치유 과정을 나타내고 있다.

 


03. <보기>를 바탕으로 윗글에 대해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도도한 생활」에서 ‘나’는 쉽게 안주할 수 없는 현실과 사회적 억압을 받는 열악한 환경 속에 놓인 채 자신을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주변적인 존재로 인식한다. 그러나 ‘나’는 자신이 처한 현실 에 쉽게 함몰되거나 환멸에 빠지지는 않으며, 오히려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소망을 바탕으로 스스로의 자존을 지키려 노력한다. 이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해 온 사물인 피아노에 대한 감정과 피아노를 치는 행위를 통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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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사람들과 관계 맺으며 피로나 긴장을 느끼고’ 싶어 하는 것을 통해 ‘나’가 고립된 주변인의 상태에서 벗어나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상황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군.
② ‘매일 어깨에 의자를 이고 등교하는 아이처럼 평생 아르바이트만 하고 살 순 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통해 ‘나’가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생활을 평안하게 안주할 수 있는 삶으로 여기지 않음을 알 수 있군.
③ ‘피아노가 썩을까 봐 걱정이었다’는 것을 통해 오랫동안 함께해 온 사물인 피아노에 대한 ‘나’의 애착을 짐작할 수 있군.
④ ‘한 음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소리는 금방 사라져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통해 ‘나’가 자신이 겪는 사회적 억압에 대한 분노를 억압의 주체에게 직접 표출하고 있음을 알 수 있군.
⑤ ‘나’가 방 안이 물에 잠겨 가는 상황에서 ‘피아노 뚜껑을 열’고 ‘손가락에 힘을 주’며 용감하게 피아노를 치는 행위를 통해 암담한 상황에서도 환멸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군.

 

 

 

 

정답 

01. ①

02.  

03. ④

 

 

 

'도도한 생활' 핵심 정리

 

 

1. 갈래 현대 소설

2. 성격 - 사실적, 상징적

3. 재재 - 피아노, 반지하방

4.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5. 주제 청년들이 처한 고단한 삶과 자존을 지키려는 노력

6. 특징

개인적인 공간과 사물에 주목하여 주제를 형상화

도도한 생활이란 중의적 의미를 지닌 제목을 통해 주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줌.

개인의 일상적인 삶을 그리며 그에 내재된 사회의 문제 표현

참심하고 감각적인 표현 사용

 

7. 구성

 

발단 : 만두집을 하는 엄마는 에게 피아노를 사 주고, ‘가 피아노를 치는 모습을 좋아함

전개 : 아빠의 빚보증으로 인해 집이 망하고, 서울권 대학에 합격한 는 피아노와 함께 언니의 서울 반 지하방으로 이사함

위기: 저녁부터 내린 폭우에 방으로 빗물이 차오르고, ‘는 아르바이트 때문에 늦는 언니를 기다리며 방 에 들어온 빗물을 닦아 냄

절정 : 빗물을 퍼내던 중 돈이 필요하다는 아빠의 전화를 받게 되고, 언니의 예전 애인이 술에 취해 찾아 옴

결말 : 검은 비가 출렁이는 반지하방에서 는 이제 못 쓰게 될 것이 분명한 피아노를 연주하며, 언니의 잠든 예전 애인을 쳐다 봄

 

8.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2000년대를 살아가는 20대 젊은이의 현실을 감각적이고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는 살아갈 발판을 마련하기 힘든 젊은 세대를 대변하는 인물로, 소설은 유년기부터 현재까지의 삶을 피아노와 관련된 사건들을 통해 형상화하고 있다.

가 머물고 있는 지하방과 피아노와 같은 개인적인 공간과 사물에 주목하여 개인의 일상적인 삶과 젊은이들이 겪는 사회적 문제를 함께 제시하고 있다. 제목인 도도한 생활은 피아노 음계 의 반복되는 소리와 피아노를 자유롭게 연주하며 살아가는 도도한 생활을 이중적으로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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