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하늘과 땅은 어질지가 않다[天地不仁]는 말이 있다. 온갖 생물을 낳고 기르면서도 그 생물들 가운데 어느 것을 편들거나 어느 것을 떼치거나 하지 않고 자연에 그대로 맡긴다는 뜻이다. 서양의 한 자연주의 작가 역시 자연은 인간의 운명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를테면 큰 잉어가 어린 붕어를 먹고, 큰 붕어가 어린 피라미를 먹고, 큰 피라미가 어린 송사리를 먹고, 큰 송사리가 어린 생이를 먹고 살더라도 말리지 않으며, 넓고 넓은 바닷가의 오막살이집에서 늙은 아비가 고기잡이를 하며 철모르는 딸과 함께 살다가 배가 뒤집혀 돌아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모르쇠를 댄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자연스럽다라는 말처럼 매몰스럽고 정나미가 떨어지는 말도 드물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이기주의적인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은 인간의 힘을 더하지 않은 채 우주 사이에 저절로 된 그대로 그냥 있는 것이 제 본성이기 때문이다.

 

 아무 데나 나는 풀도 이름이 없는 풀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농부는 저마다 논밭에 심고 가꾸는 것이 아닌 것은 죄다 잡풀이라고 한다. 자기에게 필요할 때는 나물도 되고 화초도 되고 약초도 되고 목초도 되고 거름도 되고 하는 풀도 필요가 없을 때는 잡풀이 되는 것이다. 잡풀로 그치는 것만도 아니다. 논밭에 나서 서로가 살려고 작물과 경쟁을 할 때는 여지없이 농부으 원수가 되어 낫에 베이거나 호미에 뽑히거나 농약에 마르거나 하여 덧없이 죽어 가기 마련이다. 논밭의 작물은 주인의 발걸음 소리에 자란다는 말을 들을 때 잡풀의 서러움은 그 무엇에 견주어 말한대도 성에 찰 리가 없을 터이다.

 

 나는 장마 전에 시골집에 가서 고추밭과 집터서리에 뒤덮인 잡풀을 이틀에 걸쳐서 뽑고 베고 하였다. 장마가 지면 고추밭이 풀밭이 되고 울안의 빗물도 빠지지 않아서 나간 집이나 다름이 없어질 터이기 때문이었다. 풀을 뽑고 베는 동안에 팔과 다리에 풀독이 올랐다. 뽑히고 베일 때 성이 난 풀잎에 팔과 다리가 긁히더니 이윽고 벌겋게 부르트면서 옻이나 옴이 오른 것처럼 가볍고 따갑고 쓰라려서 안절부절못하게 된 거였다.

 

 약국에서는 접촉성 피부염이라면서 먹는 약과 바르는 약을 주었지만, 열흘이 지나고 보름이 지나도 가라않지 않았다. 누구는 병원의 주사 한 방이면 직방으로 나을 텐데 미련을 떤다고 흉을 보기도 했다. 그러나 장마가 끝나도록 병원을 찾지 않았다.

 

 한갓 잡풀일망정 뽑히고 베일 때 왜 느낌이 없을 수 있겠는가. 느낌이 있다면 왜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자연스럽다는 것은 본디 인간의 뜻과 무관한 것이 아니었던가. 풀독은 근 달포나 되어서야 자연스럽게 가라앉았다.

 

떼치다 어떤 생각이 정() 따위를 딱 끊어 버리다.

생이 새뱅잇과의 민물 새우.

모르쇠 아는 것이나 모르는 것이나 다 모른다고 잡아 떼는 것

집터서리 집의 바깥 언저리.

울안 울타리를 둘러친 안.

옴진드기가 기생하여 일으키는 전염 피부병.

직방 어떤 결과나 효과가 지체없이 곧바로 나타나는 일.

달포 한 달이 조금 넘는 기간.

 

핵심 정리

 

1. 갈래 - 현대 수필

2. 성격 - 사색적, 교훈적

3. 제재 - 풀독이 오른 경험

4. 주제 - 인간 중심적 사고에 대한 비판과 반성

5. 구성 

    처음 - 자연은 우주 사이에 저절로 된 그대로 그냥 있는 것이 본성임.

    중간 - '나'는 풀독이 올라서 고통스러웠지만 병원을 찾지 않음.

    끝 - 병원에 가지 않고 자연스럽게 '나'의 풀독이 가라앉음. 

6. 특징 

    - 글쓴이의 경험을 통해 인식의 변화를 드러냄

    - 자연의 본성과 관련된 말을 인용하여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함. 

7. 작품 감상

 

 이 작품은 풀독이 올라 고생했던 글쓴이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인간 중심적인 사고에 대한 반성과 깨달음을 담은 수필이다. 글쓴이는 작고 쓸모 없다고 생각하는 '잡풀'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성찰하면서 인간 중심적인 가치관을 비판하고, 모든 생명을 존중하며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삶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글쓴이의 이러한 인식과 태도는, 독자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새롭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해 준다. 또한 독자는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삶과 사회에 대해 바람직한 삶의 자세를 정립할 수 있다. 

 

8. 이문구(1941-2003)

  소설가. 호는 (명천). 1966년 <현대문학>에 '백결'이 추천되어 등단하였다. 충청도 지역어를 기반으로 향토적이고 독특한 문체를 구사하였으며, 주로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채 소외되어 가는 농촌 민중들의 삶을 조명하였다. 연작 소설에서 (傳)의 양식을 차용하면서 전통적이면서도 주체적인 형식을 선보였으며, 무분별한 근대화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녹여 낸  작품을 남겼다. 주요 작품으로 「우리 동네」, 「관촌 수필」, 「유자소전」 등이 있다.

           

  출처 : 미래엔 교과서 자습서

 

 

 

문제 맛보기

 

1. 이 작품의 서술상의 특징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글쓴이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인식 변화를 드러내고 있다.

② '농부'와 '나'의 관점을 대조적으로 제시하여 주제를 강화하고 있다.

③ 자연의 본성과 관련된 말을 인용하여 자연에 대한 인식을 제시하고 있다.

④ 기존의 통념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면서 자연을 바라보는 두 관점을 절충하고 있다.

⑤ 크고 강한 것에서부터 점차 작고 약한 것으로 표현하는 점강법을 활용하여 자연의 본성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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