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古記)』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한서』에 선제(宣帝) 신작(神爵) 3년 임술년(기원전 59년) 4월 8일에 천제(天帝)가 오룡거(五龍車- 천체가 타는 용 다섯 마리가 모는 수레를 말하며, 5라는 숫자는 고구려의 성수(聖數)다)를 타고 홀승골성(訖升骨城-대요 의주 경계에 있다)으로 내려와 도읍을 세우고 왕이라 하며 국호를 북부여(北扶餘)라고 했다. 스스로 이름을 해모수(解慕漱)라 하고 아들을 낳아 이름을 부루(夫婁)라 했는데, 해(解)를 씨로 삼았다. 왕은 이후에 상제의 명에 따라 동부여로 도읍을 옮겼다. 동명제가 북부여를 이어 일어나 졸본주(卒本州)에 도읍을 세우오 졸본부여라 했는데 바로 고구려의 시조다."

 

 

* 참고 문헌

일연, 김원중 옮김, 『삼국유사』, 민음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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