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서라벌(徐羅伐) 또는 서벌(徐伐)이라고도 했으며, '서울'은 서벌에서 전래되었다) 시조 혁거세(赫居世)가 자리에 오른 지 19년 임오년 변한(卞韓- 여기서 변한은 낙동강 하류 지방에 있는 가야 제국을 뜻하니 투항했다는 말은 믿기 어렵다 - 이병도 설) 사람이 나라를 바쳐 투항했다.

『신당서(新唐書)』와 『구당서(舊唐書)』에서 이렇게 말했다.

 '변한의 후예는 낙랑 땅에 있다.'

『후한서(後漢書)』에서 이렇게 말했다.

 "변한은 남쪽에 있는 마한은 서쪽에 있으며 진한은 동쪽에 있다."

 최치원이 말했다.

 "변한은 백제(百濟)다."

「본기-『삼국사기』 「백제본기」를 말한다」에 의하면, 온조(溫祚)가 일어난 것은 홍가(鴻嘉-서한 성제(聖帝) 유경(劉驚)의 연호다) 4년 갑진년(기원전 17년)이었으니, 혁거세나 동명왕의 세대보다 40여 년 뒤의 일이 된다.

『당서』에서 "변한의 후예는 낙랑 땅에 있다."라고 말한 까닭은 온조왕의 계통이 동명왕에게서 나왔기 때문일 뿐이다.

 간혹 어떤 사람이 낙랑 땅에서 나와 변한에 나라를 세워 마한 등과 대치한 적이 있었다고 한 것은 온조 이전에 있었던 일로, 도읍이 낙랑의 북쪽에 있었다는 말은 아니다. 어떤 이는 구룡산(九龍山) 역시 변나산(卞那山)으로 불렸다는 이유로 함부로 고구려를 변한이라 하는데, 이는 아마도 잘못된 것이다. 마땅히 옛 현인[최치원]의 견해가 옳다고 할 수 있다. 백제 땅에 변산(卞山)이 있었기 때문에 변한이라 한 것이다. 백제는 전성기에 15만 2300호였다.

 

 

* 참고 문헌

일연, 김원중 옮김, 『삼국유사』, 민음사, 2019.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