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귤자(蟬橘子)에게 벗 한 분이 계시니 그는 예덕 선생(穢德 先生)이라고 하는 분이다. 종본탑(宗本塔) 동쪽에 사는데 마을 안의 똥거름을 져 나르는 것으로써 생계를 삼고 있다. 온 마을에서 그를 엄 행수(嚴行首)라고 불렀다. 행수는 상일을 하는 늙은이를 일컬음이요, 엄은 그의 성이다. 자목(子牧)이 선귤자에게 묻기를,

그 전에 선생님께서 제게 말씀하시기를, 벗은 동거 생활을 하지 않는 아내요, 한 탯줄에서 나오지 않은 형제라고 했습니다. 벗이란 것은 이렇게 소중한 것입니다. 이 세상의 한다 하는 양반님네 중에서 선생님의 지도를 받고자 하는 이가 수두룩한데도 선생님께서는 이런 분들을 상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엄 행수로 말한다면 마을 안의 천한 사람으로서 상일을 하는 하층의 처지요, 마주서기 욕스러운 자리입니다. 선생님께서 그의 인격을 높이어 스승이라고 일컬으면서 장차 교분을 맺어 벗이 되려고 하시니, 저까지 부끄러워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이제 선생님의 문하를 하직하려고 합니다.”

선귤자가 웃으면서 말하기를,

거기 앉게. 속담에도 있거니와 의원이 제 병을 못 고치고 무당이 제 굿 못 한다고 하니 내 자네에게 벗에 대한 것을 이야기 해 줌세. 자기 생각으로는 이거야말로 제 장점이라고 믿고 있는 점도 남들이 몰라준다면 어떤 사람이거나 속이 답답해서 자기 결함을 지적해 달라는 말로 말을 꺼내게 되네. 그러나 이때 칭찬만 하면 아첨에 가까워서 멋대가리가 없고, 타박만 하면 흉보는 것으로 떨어져서 본의와 틀려지네. 그러니까 그의 장점이 아닌 것을 들추어서 어름어름 당치 않은 말을 한단 말일세. 그렇게 적절한 내용이 아닌 만큼 설사 책망이 좀 과하더라도 저 편에서 골을 내지는 않을 것일세. 그러다가 숨겨 놓은 물건을 알아나 맞히는 듯이 슬그머니 그가 장점이라고 믿고 있는 그 점을 언급한단 말일세. 마치 가려운 데나 긁어 준 듯이 속마음으로 감격해 할 것일세. 가려운 데를 긁는 데도 도()가 있네그려. 등에 손을 댈 때에는 겨드랑이에 가까이 가지 말고 가슴을 만질 때에는 목을 건드리지 말아야 하네. 칭찬 같지 않게 하는 칭찬에 그 사람은 왈칵 손을 잡으면서 자기를 알아준다고 할 것일세. 그래, 이렇게 벗을 사귀면 좋겠는가?”

자목이 한 손으로 귀를 가리고 한 손은 내저으며 말하기를,

이건 선생님이 내게다가 장사치의 하는 일이나 하인놈이 하는 버릇을 가르치고 계시는 것입니다.”

선귤자가 말하기를,

그렇다면 자네가 부끄럽게 여기는 것도 과연 저기 있지 않고 여기 있는 것일세그려. 저 엄 행수란 분이 언제 나와 알고 지내자고 요구한 적이 없었지만, 그저 내가 늘 그분을 찬양하고 싶어서 견디지 못하는 것이라네. 그이 손가락은 굵직굵직하고, 그의 걸음새는 겁먹은 듯하였으며, 그가 조는 모습은 어리숙하고, 웃음소리는 껄껄대더구먼. 그의 살림살이도 바보 같았네. 흙으로 벽을 쌓고 볏짚으로 지붕을 덮어 구멍 문을 내었으니, 들어갈 때에는 새우등이 되었다가, 잠잘 때에는 개 주둥이가 되더구먼. 아침 해가 뜨면 부석거리고 일어나, 흙 삼태기를 메고 동네에 들어가 뒷간을 쳐 날랐다네. 9월에 서리가 내리고, 10월에 엷은 얼음이 얼어도, 뒷간의 남은 찌꺼기와 말똥쇠똥, 또는 횃대 아래에 떨어진 닭거위 따위의 똥이나 돼지똥, 사람똥 따위를 가져오면서 마치 구슬처럼 여겼다네.

왕십리의 배추, 살곶이다리의 무, 석교(石郊)의 가지오이수박호박, 연희궁의 고추마늘부추, 염교 청파의 물미나리, 이태원의 토란 따위를 심는 밭들은 그 중 상()의 상을 골라 심는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모두 엄씨의 똥거름을 가져다가 걸찍하게 가꿔야만, 해마다 육천 냥이나 되는 돈을 번다는 거야. 그렇지만 엄 행수는 아침에 밥 한 그릇만 먹고도 기분이 만족해지고, 저녁에도 밥 한 그릇 뿐이지. 누가 고기를 좀 먹으라고 권하면 고기 반찬이나 나물 반찬이나 목구멍 아래로 내려가서 배부르기는 마찬가지인데 입맛에 당기는 것을 찾아 먹어서는 무얼 하느냐고 하네. , 옷과 갓을 차리라고 권하면 넓은 소매를 휘두르기에 익숙지도 못하거니와, 새 옷을 입고서는 짐을 지고 다닐 수가 없다고 대답하네.

해마다 정월 초하룻날이 되면 비로소 갓을 쓰고 띠를 띠며, 새 옷에다 새 신을 신고, 이웃 동네 어른들에게 두루 돌아다니며 세배를 올린다네. 그리고 돌아와서는 옛 올을 찾아 다시 입고 다시금 흙 삼태기를 메고는 동네 한복판으로 들어가는 거지. 엄 행수야말로 자기의 모든 덕행을 저 더러운 똥거름 속에다 커다랗게 파묻고, 이 세상에 참된 은사(隱士) 노릇을 하는 자가 아니겠는가?

엄 행수는 똥과 거름을 져 날라서 스스로 먹을 것을 장만하기 때문에, 그를 지극히 조촐하지는 않다고 말할는지는 모르겠네. 그러나 그가 먹을거리를 장만하는 방법은 지극히 향기로웠으며, 그의 몸가짐은 지극히 더러웠지만 그가 정의를 지킨 자세는 지극히 고항(高亢)*했으니, 그의 뜻을 따져 본다면 비록 만종(萬種)의 녹(錄)을 준다고 하더라도 바꾸지 않을 걸세. 이런 것들로 살펴본다면 세상에는 조촐하다면서 조촐하지 못한 자도 있고, 더럽다면서 더럽지 않은 자도 있다네.

누구든지 그 마음에 도둑질할 뜻이 없다면 엄 행수를 갸륵하게 여기지 않을 사람이 없을 거야. 그리고 그의 마음을 미루어 확대시킨다면 성인의 경지에라도 이를 수 있을 거야. 대체 선비가 좀 궁하다고 궁기(窮氣)를 떨어도 수치스런 노릇이요, 출세한 다음 제 몸만 받들기에 급급해도 수치스러운 노릇일세. 아마 엄 행수를 보기에 부끄럽지 않을 사람이 거의 드물 것이네. 그러니 내가 엄 행수더러 스승이라고 부를지언정 어찌 감히 벗이라고 부르겠는가? 그러기에 내가 엄 행수의 이름을 감히 부르지 못하고 예덕 선생이란 호를 지어 일컫는 것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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