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핵심정리

 

1. 작가: 김시습

2. 연대: 세조 때

3. 갈래: 한문 소설, 전기 소설, 단편소설

4. 성격: 전기(傳奇), 명혼소설(冥婚小說)

5. 표현: 직유, 은유, 과장법

6. 구성: 추보식 구성, 3단구성

7. 시점: 전지적 작가 시점

8. 배경: 시간적(고려 공민왕), 공간적(송도)

9. 제재: 남녀간의 사랑

10. 주제: 죽음을 초월한 남녀간의 사랑

11. 의의: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 소설로 조선시대의 소설, 특히 한문 소설의 발달에 큰 영향을 주었다.

12. 출전: ‘금오신화(金鰲新話)'

13. 기타: 중국 나라 瞿佑(구우)가 쓴 전등신화(剪燈神話)의 영향을 받음

 

* 작품 해제

한문 소설의 효시인 {金鰲新話(금오신화)} 중의 한 작품으로, 삶과 죽음을 초월한 사랑의 성취를 그린 冥婚小說(명혼 소설; 귀신과 결혼하는 내용의 소설) 또는 屍愛小說(시애 소설; 죽은 사람과 사랑을 나누는 내용의 소설)이라 불리는 작품이다.

 

전반부는 이승의 현실적 사건을, 후반부는 이승과 저승을 초월한 세계를 그린 2단 구성으로 된 작품이다.

 

작품 전반부에서 이생은 부모의 완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최 낭자와의 결혼에 성공한다.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 의사에 의한 만남과 혼인을 표현한 점에서 작자의 남녀의 애정에 대한 진보적 시각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렵게 성취한 두 사람의 사랑은 홍건적의 난리에 최 낭자가 죽음으로 해서 깨어지고 만다. 작자는 깨어진 두 사람의 사랑을 최 낭자의 幻身(환신)과 이생의 사랑이라는 전설적 구성으로 다시 이어 놓았다. 이 작품에 드러나는 귀신과의 사랑은 최치원의 <수이전(殊異傳)>에 나타나 있어 작자는 이러한 전설을 바탕으로 삼아 작품을 창작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설화가 아닌 소설인 까닭은 자신들의 사랑을 좌절시키려는 세계의 횡포에 대해 주인공들이 치열하게 저항하는데 있다. 즉 주인공과 세계 사이의 갈등이 치열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극적 모습이 귀신과의 사랑이다. 현실적으로 좌절된 사랑을 귀신과의 사랑으로 바꾸어 성취시키는 것은 분명히 逆說이지만, 이 점이 이 소설의 전기적 특성을 드러내는 요소이다.

 

이 작품은 전등신화'의 영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플롯이나 테마 면에서 독창성을 발휘하고 있으며, 또한 등장 인물의 개성적인 성격이나 구성, 장면 묘사에 있어서도 소설다운 면모를 지니고 있으며, 현실적이고 사실적으로 사건이 전개되기 때문에 금오신화에 실린 나머지 다른 작품에 비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래엔 수록 부분]

 

앞부분 줄거리

 

 개성에 사는 이생은 어느 봄날 우연히 담 너머로 아름다운 여인을 보게 되고, 여인(최 씨) 역시 이생에게 마음이 끌린다. 편지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두 사람은 결국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두 사람의 관계를 눈치챈 이생의 아버지는 이생을 지방으로 보내고, 최 씨는 상사병을 얻는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최 씨의 부모는 간곡한 딸의 청에 따라 이생의 부모를 설득하고 결국 이생과 최 씨는 혼례를 올린다. 

 

 

신축년(1361)에 홍건적이 서울을 점거하자 임금은 복주(福州)로 피난 갔다. 적들은 집을 불태워 없애버렸으며, 사람을 죽이고 가축을 잡아먹었다. 부부와 친척끼리도 서로 보호하지 못했고 동서로 달아나 숨어서 제각기 살길을 찾았다.

이생은 가족들을 데리고 외진 산골로 숨었는데, 한 도적이 칼을 빼어들고 뒤를 쫓아왔다. 이생은 달아나 목숨을 건졌지만, 최랑은 도적에게 사로잡혔다. 도적이 최랑의 정조를 빼앗으려 하자, 최랑이 크게 꾸짖었다.

창귀(倀鬼) 같은 놈아. 나를 죽여 먹어라. 내 차라리 죽어서 시랑(豺狼)의 밥이 될지언정 어찌 개돼지 같은 놈의 짝이 되겠느냐?"

도적이 노하여 최랑을 죽이고 살을 도려내었다.

 

이생은 거친 들판에 숨어서 겨우 목숨을 보전하다가, 도적이 이미 다 없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부모님이 사시던 옛집을 찾아갔다. 그러나 그 집은 이미 싸움 통에 불타 없어졌다. 또 최랑의 집에도 가보았더니 행랑채는 황량했으며, 쥐와 새들의 울음소리만 들려왔다.

이생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작은 누각으로 올라가서 눈물을 거두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날이 저물도록 우두커니 홀로 앉아 지나간 일들을 생각해 보니 완연히 한바탕 꿈만 같았다.

二更(이경)쯤 되자 희미한 달빛이 들보를 비춰 주는데 낭하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멀리서부터 차츰 가까이 다가왔다. 이르고 보니 바로 최랑이었다.

이생은 그가 이미 죽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너무도 사랑하는 마음에 의심하지도 않고 물어 보았다.

당신은 어디로 피난 가서 목숨을 보전하였소?"

여인이 이생의 손을 잡고 한바탕 통곡하더니, 이내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저는 본디 양가의 딸로서 어릴 때부터 가정의 교훈을 받아 수놓기와 바느질에 힘썼고, 시서(詩書)와 예법을 배웠어요. 그래서 규방의 법도만 알뿐이지, 그 밖의 일이야 어찌 알겠어요? 마침 당신이 붉은 살구꽃이 핀 담 안을 엿보았으므로, 제가 푸른 바다의 구슬을 바친 거지요. 꽃 앞에서 한번 웃고 평생의 가약을 맺었고, 휘장 속에서 다시 만날 때에는 정이 백년을 넘쳤었지요.

여기까지 말하고 보니 슬프고도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군요. 장차 백년을 함께 하자고 하였는데, 뜻밖에 횡액을 만나 구렁에 넘어질 줄이야 어찌 알았겠어요? 늑대 같은 놈들에게 끝까지 정조를 잃지 않았지만, 제 몸은 진흙탕에서 찢겨졌답니다. 천성이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지, 인정으로야 어찌 그럴 수 있었겠어요?

저는 당신과 외딴 산골에서 헤어진 뒤에 짝 잃은 새가 되었었지요. 집도 없어지고 부모님도 돌아가셨으니, 피곤한 혼백을 의지할 곳도 없는 게 한스러웠답니다. 절의(節義)는 중요하고 목숨은 가벼우니, 쇠잔한 몸뚱이일망정 치욕을 면한 것을 다행스럽게 여겼지요. 그러나 마디마디 끊어진 제 마음을 그 누가 불쌍하게 여겨 주겠어요? 한갓 애끊는 썩은 창자에만 맺혀 있을 뿐이지요.

해골은 들판에 내던져졌고 간과 쓸개는 땅바닥에 널려졌으니, 가만히 옛날의 즐거움을 생각해 보면 오늘의 슬픔을 위해 있었던 것 같군요.

이제 봄바람이 깊은 골짜기에 불어오기에, 저도 이승으로 돌아왔지요. 봉래산 십 이년의 약속이 얽혀 있고 삼세(三世)의 향이 향그러우니, 오랫동안 뵙지 못한 정을 이제 되살려서 옛날의 맹세를 저버리지 않겠어요. 당신이 지금도 그 맹세를 잊지 않으셨다면, 저도 끝까지 잘 모시고 싶답니다. 당신도 허락하시겠지요?"

이생이 기쁘고도 고마워하며 말하였다.

그게 애당초 내 소원이오."

그리고는 서로 정답게 심정을 털어놓았다. 재산을 얼마나 도적들에게 빼앗겼는지 이야기가 나오자, 여인이 말하였다.

조금도 잃지 않고 어느 산 어느 골짜기에 묻어 두었답니다."

이생이 또 물었다.

두 집 부모님의 해골을 어디에 모셨소?"

여인이 말하였다.

어느 곳에다 그냥 버려 두었지요."

정겨운 이야기를 끝낸 뒤에 잠자리를 같이 하였는데, 지극한 즐거움이 예전과 같았다.

 

이튿날 여인이 이생과 함께 자기가 묻혀 있던 곳을 찾아갔는데, 과연 금과 은 몇 덩어리가 있었고, 재물도 약간 있었다. 그들은 두 집 부모님의 해골을 거두고 금과 재물을 팔아 각각 오관산 기슭에 합장하였다. 나무를 세우고 제사를 드려 예절을 모두 다 마쳤다.

그 뒤에 이생도 또한 벼슬을 구하지 않고 최씨와 함께 살게 되었다. 목숨을 구하려고 달아났던 종들도 또한 스스로 돌아왔다. 이생은 이때부터 인간세상의 모든 일을 다 잊어버렸으며, 아무리 친척이나 손님들의 길흉사가 있더라도 방문을 닫아걸고 나가지 않았다. 언제나 최씨와 더불어 시를 지어 주고받으며 금실 좋게 지내었다.

 

그럭저럭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저녁에 여인이 이생에게 말하였다.

세 번이나 가약을 맺었지만 세상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즐거움이 다하기도 전에 슬프게 헤어져야만 하겠어요."

여인이 목메어 울자 이생이 놀라면서 물었다.

어찌 이렇게 되었소?"

여인이 대답하였다.

저승길은 피할 수가 없답니다. 하느님께서 저와 당신의 연분이 끊어지지 않았고 또 전생에 아무런 죄도 지지 않았다면서, 이 몸을 환생시켜 당신과 잠시라도 시름을 풀게 해주었었지요. 그러나 제가 오랫동안 인간 세상에 머물면서 산 사람을 미혹시킬 수는 없답니다."

그리고는 몸종 향아를 시켜서 술을 올리게 하고는, 옥루춘곡(玉樓春曲)에 맞추어 노래 한 가락을 지어 부르며 이생에게 술을 권하였다.

 

칼과 창이 어우러져 싸움이 가득한 판에

옥 부서지고 꽃 떨어지니 원앙도 짝을 잃었네.

흩어진 해골을 그 누가 묻어 주랴.

피에 젖어 떠도는 혼이 하소연할 곳도 없었네.

무산의 선녀가 고당에 한번 내려온 뒤에

깨어진 종()이 거듭 갈라지니 마음 더욱 쓰라려라.

이제 한번 작별하면 둘이 서로 아득해질 테니

하늘과 인간세상 사이에 소식마저 막히리라.

 

노래를 한마디 부를 때마다 눈물이 자꾸 내려 거의 곡조를 이루지 못하였다. 이생도 또한 슬픔을 걷잡지 못하며 말하였다.

내 차라리 당신과 함께 황천(荒天)으로 갈지언정 어찌 무료하게 홀로 여생을 보전하겠소? 지난 번 난리를 겪고 난 뒤에 친척과 종들이 저마다 서로 흩어지고 돌아가신 부모님의 해골이 들판에 내버려져 있었는데, 당신이 아니었다면 그 누가 장사를 지내 드렸겠소? 옛 사람 말씀에, ‘어버이가 살아 계실 때에는 예로써 섬기고, 돌아가신 뒤에는 예로써 장사지내라' 하셨는데, 이런 일을 모두 당신이 감당해 주었소. 당신은 정말 천성이 효성스럽고 인정이 두터운 사람이오. 나는 당신에게 고맙기 그지없고,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하겠소. 당신도 인간 세상에 더 오래 머물다가 백년 뒤에 나와 함께 티끌이 되었으면 좋겠구려."

여인이 말하였다.

당신의 목숨은 아직 남아 있지만, 저는 이미 귀신의 명부(冥府)에 실려 있답니다. 그래서 더 오래 볼 수가 없지요. 제가 굳이 인간세상을 그리워하며 미련을 가진다면 명부의 법도를 어기게 되니, 저에게만 죄가 미치는 게 아니라 당신에게도 또한 누가 미치게 된답니다. 저의 유골이 어느 곳에 흩어져 있으니, 만약 은혜를 베풀어주시려면 (그 유골이나 거두어) 비바람을 맞지 않게 해주세요."

두 사람은 서로 바라보며 눈물만 줄줄 흘렸다.

낭군님, 부디 안녕히 계십시오."

말이 끝나자 차츰 사라지더니 마침내 자취가 없어졌다.

 

이생은 (여인의 말대로) 유골을 거두어 부모님의 무덤 곁에다 장사를 지내 주었다. 장사를 지낸 뒤에는 이생도 또한 지나간 일들을 생각하다가 병을 얻어, 몇 달만에 세상을 떠났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마다 가슴 아파 탄식하며 그들의 아름다운 절개를 사모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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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3]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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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二更)쯤 되어 달빛이 희미한 빛을 토하며 들보를 비추었다. 그런데 회랑 끝에서 웬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멀리서부터 들려오더니 차츰 가까워졌다. 발걸음 소리가 이생 앞에 이르렀을 때 보니 바로 최 씨였다. 이생은 그녀가 이미 죽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너무도 사랑하는 나머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물었다.

“당신은 어디로 피난하여 목숨을 부지하였소?”

최 씨는 이생의 손을 잡고 한바탕 통곡하더니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저는 본디 양가의 딸로서 어려서부터 어버이의 가르침을 받들어 수놓기와 바느질에 힘쓰고 시서(詩書)와 인의(仁義)의 방도를 배울 뿐이었습니다. 오로지 규문의 법도만 알았을 뿐 어찌 집 밖의 일을 헤아릴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당신께서 붉은 살구꽃이 핀 담장 안을 한 번 엿보신 후 제가 스스로 푸른 바다의 구슬을 바쳤지요. 꽃 앞에서 한 번 웃고는 평생의 은혜를 맺었고, 휘장 안에서 다시 만났을 때에는 은정이 백 년을 넘칠 것 같았지요.

 

[A]말이 여기에 이르고 보니 슬프고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군요. 장차 평생을 함께하려고 하였는데 뜻밖의 횡액을 만나 구덩이에 뒹굴게 될 줄 어찌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끝까지 짐승 같은 놈에게 몸을 내맡기지 않고 스스로 진흙탕에서 육신이 찢기는 길을 택하였지요. 그건 천성이 저절로 그렇게 한 것이지 인정으로야 차마 견딜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답니다.

 

 외진 산골짜기에서 당신과 헤어진 후로 짝을 잃고 홀로 날아가는 새의 신세가 된 것이 너무 한스러웠습니다. 집도 없어지고, 부모님도 돌아가셨으니 고단한 혼백조차 의지할 곳이 없었지만 절의는 귀중하고 목숨은 가벼우니 쇠잔한 몸뚱이일망정 치욕을 면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했지요. 하지만 누가 마디마디 끊어져 재처럼 식어 버린 제 마음을 불쌍히 여겨 주겠습니까? 그저 조각조각 끊어진 썩은 창자만 모아 두었을 뿐, 해골은 들판에 던져졌고 간과 쓸개는 땅바닥에 버려져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지요. 가만히 지난날의 즐거움을 헤아려 보기도 하지만 오늘의 근심과 원한만이 마음에 가득 차 버렸습니다.

이제 추연(鄒衍)이 피리를 불어 적막한 골짜기에 봄바람을 일으켰으니 저도 천녀의 혼이 이승으로 돌아왔듯이 이곳으로 돌아오렵니다. 봉래산에서 십이 년 만에 만나자는 약속을 이미 단단히 맺었고, 취굴(聚窟)에서 삼생(三生)의 향이 그윽이 풍겨 나오니 그동안 오래 떨어져 있던 정을 되살려서 옛 맹세를 저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하겠어요. 만약 당신이 아직도 옛 맹세를 잊지 않으셨다면 저는 끝까지 잘해 보고 싶어요. 당신도 허락하시는 거지요?”

 이생은 기쁘고도 감격하여 말하였다. / “그건 바로 내가 바라던 바요.”

두 사람은 다정하게 마주 앉아 그간의 회포를 풀었다. 그러다가 이생이 재산을 얼마나 도적에게 약탈당했는가에 대해 묻자 최 씨가 말하였다.

“조금도 잃지 않았어요. 아무 산 아무 골짜기에 묻어 두었답니다.”

이생이 또 물었다. / “양가 부모님의 유해는 어디에 있소?”

최 씨가 대답하였다. / “아무 곳에 그냥 버려져 있는 상태랍니다.”

두 사람은 그간의 정회를 다 나눈 후 나란히 잠자리에 들었다. 지극한 즐거움이 예전과 같았다.

다음 날 최 씨와 이생은 함께 재물이 묻혀 있다는 곳을 찾아갔다. 과연 금은 여러 덩이와 얼마간의 재물을 얻을 수 있었다. 그들은 양가 부모님의 유골을 수습한 후 금과 재물을 팔아 각각 오관산 기슭에 합장하였다. 묘소에 나무를 심고 제사를 드려 예를 극진히 갖추었다.

그 뒤 이생은 벼슬을 구하지 않고 최 씨와 함께 살았다. 목숨을 구하고자 달아났던 종들도 다시 스스로 돌아왔다. 이생은 이때부터 인간사에 게을러져서 비록 친척이나 손님들의 길흉사에 하례하고 조문해야 할 일이 있더라도 문을 걸어 잠그고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는 항상 최 씨와 더불어 시를 지어 주고받으며 금실 좋게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러갔다.

 

 어느 날 저녁 최 씨가 이생에게 말했다.

세 번이나 좋은 시절을 만났지만, 세상일은 뜻대로 되지 않고 어그러지기만 하네요. 즐거움이 다하기도 전에 갑자기 슬픈 이별이 닥쳐오니 말이에요.”

그러고는 마침내 오열하기 시작하였다. 이생은 깜짝 놀라서 물었다.

“무슨 일로 그러시오?”

최 씨가 대답하였다.

“저승길의 운수는 피할 수가 없답니다. 하느님께서 저와 당신의 연분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또 저희가 아무런 죄악도 저지르지 않았음을 아시고 이 몸을 환생시켜 당신과 지내며 잠시 시름을 잊게 해 주신 것이었어요. 그러나 인간 세상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산 사람을 미혹시킬 수는 없답니다.”

 

(중략)

 

 이생도 슬픔을 걷잡지 못하여 말하였다.

“내 차라리 당신과 함께 저세상으로 갈지언정 어찌 무료히 홀로 살아남을 수 있겠소? 지난번 난리를 겪은 후 친척과 종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돌아가신 부모님의 유해가 들판에 버려져 있을 때 당신이 아니었다면 누가 부모님을 묻어 드릴 수 있었겠소? 옛 성현이 말씀하시기를 ‘어버이 살아 계실 때는 예로써 섬기고, 돌아가신 후에는 예로써 장사 지내야 한다.’라고 했는데 당신의 천성이 효성스럽고 인정이 두터웠기 때문에 이런 일을 다 처리할 수 있었던 것이오. 당신의 정성에 너무도 감격하지만, 한편으로는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을 참을 길이 없었소. 부디 그대는 인간 세상에 더 오래 머물다가 백 년 후 나와 함께 흙으로 돌아가시구려.”

 

 최 씨가 대답하였다.

“당신의 목숨은 아직도 한참 더 남아 있지만 저는 이미 귀신의 명부에 이름이 실렸으니 이곳에 더 오래 머물 수가 없답니다. 만약 제가 굳이 인간 세상을 그리워하며 미련을 두어 운명의 법도를 어기게 된다면 단지 저에게만 죄과가 미치는 게 아니라 당신에게도 누를 끼치게 될 거예요. 다만 제 유해가 아무 곳에 흩어져 있으니 만약 은혜를 베풀어 주시려면 그것이나 거두어 비바람과 햇볕 아래 그냥 나뒹굴지 않게 해 주세요.”

두 사람은 서로 바라보며 눈물만 줄줄 흘렸다. / “서방님, 부디 몸 건강히 지내세요.”

말을 마친 최 씨의 자취가 점차 희미해지더니 마침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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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윗 글에 대한 이해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최 씨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려고 이생으로 하여금 세상과 단절하게 하였다.

② 최 씨는 이생과 부부의 연을 이어가기 위해 하늘의 뜻을 거역하여 환생하였다.

③ 이생은 최 씨가 죽은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최 씨의 귀환을 수상하게 여겼다.

④ 이생은 죽은 부모에게 자신이 해야 할 도리를 극진하게 다할 만큼 효행에 충실하였다.

⑤ 이생은 최 씨가 인간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최 씨와의 재회를 후회하였다.

 

 

2. <보기>의 ⓐ와 ⓑ의 관점에 따라 [A]를 이해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우의(寓意)란 다른 대상에 빗대어 비유적인 뜻을 나타내거나 풍자하는 문학적 표현을 말한다. 이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해석하면 작품 속에 그려진 사건과 인물들은 실제의 사건, 인물들과 서로 대응하게 되며, 역사적인 의의를 획득하게 된다. 「이생규장전」 또한 우의로 읽는 것이 주제에 접근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럴 경우 수양 대군과 그의 일파가, 단종을 섬기며 절의를 지킨 충신들을 죽이고 단종의 왕위를 빼앗은 사건인 '계유정난'을 작가가 우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때 작품의 의미는 '최 씨'를 ⓐ'단종'을 우의한 것으로 보느냐, '충신의 일원'을 우의한 것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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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의 관점에 따르면 '몸을 내맡기'는 것은 왕위를 지키기 위해 수양 대군에게 저항하던 단종이 자신의 목숨을 내주게 되는 일에 대응한다고 볼 수 있겠군.

ⓑ의 관점에 따르면 '평생을 함께 하려고'는 끝까지 단종을 왕으로 섬기며 신하로서의 절의를 지키겠다는 충신으로서의 의지와 다짐에 대응한다고 볼 수 있겠군.

③ ⓑ의 관점에 따르면 '육신이 찢기는 길'은 단종을 왕으로 섬기던 충신들이, 수양 대군과 그 일파의 뜻에 따르지 않다가 그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일에 대응한다고 볼 수 있겠군.

④ ⓐ와 ⓑ의 어떤 관점에 따르더라도 '짐승 같은 놈'은 단종을 섬기던 충신들을 죽이고, 단종의 왕위를 빼앗은 수양 대군의 일파에 대응한다고 볼 수 있겠군. 

⑤ ⓐ와 ⓑ의 어떤 관점에 따르더라도 '뜻밖의 횡액'은 단종이나 그를 섬기던 충신들에게 예기치않게 일어난 사건인 계유정난에 대응한다고 볼 수 있겠군.

 

 

3. <보기>를 참고하여 윗글을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이생규장전」에는 애정 전기 소설의 주요 특징들이 잘 나타난다. 먼저 '전기(傳奇)'는 '기이한 것을 전하다'는 뜻으로, 현실계와 초현실계의 접촉에 의한 사건을 다루기 때문에 '환상성'과 '현실성'의 상반된 두 속성을 포함한다. 또한 애정 전기 소설의 남녀 주인공은 고독감을 지닌 인물들로 그려지는 가운데 남주인공은 소극적인 모습으로, 여주인공은 능동적인 모습으로 애정을 추구한다. 그들은 서로에게 독점적 애정을 보여주지만 그 애정은 여러가지 장애로 말미암아 지속되지 못한다. 이 과정에서 남녀 주인공은 만남과 헤어짐을 주요 사건으로 겪게 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때 숭고한 사랑을 위해 희생을 아끼지 않는 청춘 남녀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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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이승의 인물인 이생과 저승에서 '환생'한 인물인 최 씨가 만나 '정회를 다 나눈' 것에서 현실계와 초현실계의 접촉에 의한 사건을 다루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군.

② 최 씨가 '끝까지 잘해보고 싶'다고 먼저 제안하자 이생이 '바로 내가 바라던 바'라고 응하는 장면에서 남주인공보다 더 능동적으로 애정을 추구하는 여주인공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군.

③ 이생과 최 씨의 애정이 지속되지 못하고, '세 번'의 '좋은 시절'이 있다가도 '어그러지기만' 하였다는 점에서 주인공들이 만남과 헤어짐을 겪게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군.

④ 최 씨가 '짝을 잃고 홀로 날아가는 새'에 빗대어지는 것과 최 씨가 떠난 뒤 결국에는 '홀로 살아남'게 될 이생에게서 주인공들이 고독감을 지닌 모습으로 형상화된 점을 확인할 수 있군.

⑤ 최 씨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누를 끼치'지 않으려고 '인간 세상'에 '미련을 두'지 않는 것에서 주인공이 상대방에게 독점적 애정을 보여준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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