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님믈 그리워하여 우니다니

산(山) 졉동새 난 이슷하요이다.

아니시며 거츠르신 들 아으

잔월효성(殘月曉星)이 아라시리이다.

넉시라도 님은 한듸 녀져라, 아으

벼기더시니 뉘러시니잇가.

과(過)도 허믈도 천만(千萬) 업소이다.

말힛마러신뎌

살읏븐뎌. 아으

니미 나를 하마 니자시니잇가.

아소 님하, 도람 드르샤 괴오쇼셔.

 

<현대어 풀이>

 

내가 임을 그리워하여 울고 지내니

산에서 우는 소쩍새와 나는 비슷합니다.

아니며 거짓인 줄을

희미한 달과 샛별(천지신명)이 알 것입니다.

넋이라도 임과 함께 살아 가고 싶어라.

헐뜯은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저는 아무런 잘못도 없습니다.

뭇 사람의 참언이었습니다.

슬프도다

임께서 저를 벌써 잊으셨습니까?

마소서 임이시여, 마음을 돌이켜 들으시어 사랑해 주소서.

 

 

* 핵심 정리

 

1. 지은이 - 정서(鄭敍, ?~?)

   고려 의종~ 인종 때의 문인으로 문장이 뛰어나고 묵죽화(墨竹畵)에도 능했다. 호는 과정(瓜亭). 의종의 이모부로 벼슬은 내시낭중(內侍郎中)에 이르렀다. 참소(讒訴-남을 헐뜯어 없는 죄를 있는 것처럼 꾸며서 고해 바침)로 귀양을 가 있으면서 의종의 소명(召命-임금이 신하를 부르는 명령)을 기다리다가 '정과정'을 지었다. '정중부의 난'으로 의종이 쫓겨난 후 명종 1년(1170년)에야 다시 기용되었다.

 

2. 연대 - 고려 의종 때(12세기)

3. 갈래 - 향가계 고려가요

4. 의의 - 10구체 향가의 전통을 잇고 있는 가요

          - 충신연주지시 및 유배 문학의 원류

5. 주제 - 연군의 정

6. 출전 - <악학궤범(樂學軌範)>

7. 창작 배경

  정서가 역모(逆謀)에 가담하였다는 누명(陋名)을 쓰고 귀양을 가게 되자, 의종(毅宗)은 "조정의 뜻에 의하여 어쩔 수 없는 일이니, 머지않아 부를 것인즉, 고향에 가 있으라."고 하였다. 정서는 동래로 가서 임금의 부름을 기다리며 살았으나, 20년이 되도록 소식이 없으므로, 거문고를 타며 슬피 자신이 심정을 노래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부른 노래를 그의 호를 따서 '정과정'이라 불렀다.

 

8. 유배 문학(流配文學)의 기원

 고려 의종 때의 권신(權臣-권세를 잡은 신하) 정서가 귀양지 동래(東萊)에서 부럴ㅆ다는 이 작품은 우리나라 최초의 유배 문학이며, 한글로 전하는 고려 가요 중에서 유일하게 작자가 확실한 노래이다. 조선 시대에 나온, '사미인곡'이나 '속미인곡' 같은 유배 문학은 충신연주지사(忠臣戀主之詞)가 대부분이나. 유배 문학의 이러한 성향은 '정과정'에서 시작된 것이다.

 

9. 전대(前代) 문학과의 계승 관계

 이 작품은 향찰로 표기되어 있지는 않지만, 형식면에서 10구체 향가의 전통을 잇고 있다. 연의 구분 없이 시상이 3단으로 전개되는 점'아소 님하'와 같은 감탄적 어구의 존재가 그것을 말해준다. 물론 전체가 11구로 되어 있어 시상이 4·4·2구로 분석되지 않고 낙구의 감탄사 위치도 10구체 향가와 약간 다른 점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 노래는 8구와 9구를 하나로 합하면 쉽게 10구체로 변형이 되고 고려 시대 가요의 특징인 분연(혹은 분장, 분절0이나 후렴구가 보이지 않으므로 10구체 향가의 해체기 형식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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