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소중한 우리말 (1) 우리말의 음운체계.hwp
0.06MB

(1) 우리말의 음운 체계

 

단원의 길잡이

 

학습 목표

 

음운 체계를 알고, 그 특성을 이해할 수 있다.

통일 시대의 국어에 관심을 가지는 태도를 지닌다.

 

우리는 언어가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을 하기 힘든 까닭은 무엇일까요? 언어의 기본인 말소리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말소리는 대개 자음과 모음 등의 음운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언어마다 말소리를 이루는 자음과 모음이 다르고 그 체계도 다르답니다.

남한 사람과 북한 사람이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본 적이 있지요? 서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은 남한과 북한이 같은 말을 쓰기 때문입니다. 분단된 지 오래되어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변해 왔지만 그래도 남북한의 언어는 같은 언어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점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 단원에서는 우리말의 음운 체계와 그 특성을 알아보고, 남북한 언어의 차이를 살피는 활동을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말을 깊이 이해하고 나아가 통일 시대의 우리말에 관심을 갖는 태도를 길러 봅시다.

 

출처 : 천재교육 중학국어 3-1

3. 소중한 우리말 (1) 우리말의 음운체계.hwp
0.06MB

3. 소중한 우리말

 

단원의 길잡이

 

학습 목표

 

음운 체계를 알고, 그 특성을 이해할 수 있다.

통일 시대의 국어에 관심을 가지는 태도를 지닌다.

 

우리는 언어가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을 하기 힘든 까닭은 무엇일까요? 언어의 기본인 말소리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말소리는 대개 자음과 모음 등의 음운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언어마다 말소리를 이루는 자음과 모음이 다르고 그 체계도 다르답니다.

남한 사람과 북한 사람이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본 적이 있지요? 서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은 남한과 북한이 같은 말을 쓰기 때문입니다. 분단된 지 오래되어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변해 왔지만 그래도 남북한의 언어는 같은 언어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점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 단원에서는 우리말의 음운 체계와 그 특성을 알아보고, 남북한 언어의 차이를 살피는 활동을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말을 깊이 이해하고 나아가 통일 시대의 우리말에 관심을 갖는 태도를 길러 봅시다.

 

(1) 문제 해결 과정으로서의 읽기 

 

학습 목표 

 

1. 읽기는 글에 나타난 정보와 독자의 배경 지식을 활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임을 이해하고 글을 읽을 수 있다.

2. 책 한 권을 끝까지 읽으면서 통합적인 독서 활동을 할 수 있다. 

 

 

시계는 어떻게 달력을 이겼을까?   - 안광복

 

 

옛사람들은 왜 시계에 관심이 없었을까?

 

20세기 초만 해도 시계는 아주 귀한 물건이었다. 시계 하나가 기와집 한 채 값의 절반이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시계 보는 방법도 몰랐다. 사실 시계는 조선 시대에 이미 이 땅에 들어왔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에게 시계는 장식품에 지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이 시계에 별 관심이 없었다. 왜냐고? 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동창(東窓)이 밝아 올 때깨어나 농사일을 시작하고 해 떨어지면 일 그치는 식으로 살았다. 날 밝을 때 일하면 되지, 농사일을 꼭 오전 7시에 시작해서 오후 5시에 끝내야 할 이유가 뭐 있었겠는가.

사람들에게 정말 중요했던 것은 계절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달력이었다. 농사를 잘 지으려면 자연의 흐름을 잘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추워지는 10월에 볍씨를 뿌렸다가는 낭패를 볼 것이다. 조상들이 달력을 중요하게 생각한 데에는 자연의 흐름을 따라가려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절기는 농사 진도표였다.

 

조상들은 시계에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달력에는 매우 큰 관심을 가졌다. 약속 시간에 한두 시간 일찍 오거나 늦는 것은 별문제가 안 되었다. 그러나 달력에 적힌 절기(節氣)를 놓쳤다가는 그동안의 농사가 헛일로 돌아갈 터였다. 우리 조상들은 해의 움직임에 따라 정해진 절기에 맞춰 계절의 변화에 대비하며 한 해 농사를 지었다.

321일쯤인 춘분은 본격적으로 농사를 시작하는 시기이다. 춘분이 지나면 씨앗을 뿌릴 수 있다. 66일쯤인 망종부터 621일쯤인 하지까지는 모내기를 한다. 이 시기는 모내기와 보리 베기가 겹쳐서 1년 중 제일 바쁜 때이다. 모내기를 마치면 농부들은 고된 논일을 잠시 내려놓고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으며 놀았다. 88일쯤인 입추부터는 가을 채비를 하며 김장 채소인 무, 배추를 심는다. 923일쯤인 추분이 오면 논밭의 곡식을 거두어들인다. 그리고 이때 거두어들인 곡식으로 추석을 준비한다. 이처럼 절기는 농사 진도표의 구실을 했다. 그래서 조상들은 절기가 기록된 달력을 매우 중시했다.

 

철 없는 과일들, 달력을 이기는 시계의 힘

 

그러나 시계는 점차 달력을 이기기 시작했다. 공업이 발달하면서 시계가 중요해졌다. 농사일은 욕심대로 되지 않는다. 아무리 기후가 좋고 열심을 땅을 가꾸었다 해도, 수확하는 작물의 양은 어느 정도를 넘을 수 없다. 곡식과 열매는 대부분 일 년에 한 번만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업은 다르다. 공장을 돌리는 데 계절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여름이건 겨울이건 공장은 언제나 돌아간다. 시간은 정말 돈이 되었다. 공장을 한 시간 더 돌리고 덜 돌리는 데에 따라 생산량이 엄청나게 차이 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점점 더 시간에 민감해졌다. 도시 곳곳에는 시계가 높다랗게 걸린 탑이 등장했다.

공업의 덩치는 나날이 커져 갔다. 공장을 돌리는 데에는 많은 자원이 필요했다. 여기서도 계절보다는 시간이 훨씬 더 중요했다. 필요하면 시간을 들여 자원을 캐면 된다. 자원을 얼마나 적절한 시점에 공장까지 가져오는지가 문제될 뿐이었다. 공업에 필요한 자원 가운데에는 고무나 사탕수수 등 농업과 임업을 통해 얻는 것이 많다. 더욱더 많은 재료가 필요해진 공업은 자연을 닦달하여 필요한 것을 마구 빼앗아 내기 시작했다.

농사에서도 자연의 질서를 벗어나는 경우가 갈수록 많아졌다. 지금은 과일에 제철이 없다. 대부분 비닐하우스에서 길러지기 때문이다. 석유를 때고 전기를 써서 공장을 돌리듯, 농산물도 석유와 전기로 난방을 해서 만들어 낸다’, 자연의 질서와 관계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으니 달력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시간이 돈?

 

옛 조상들은 먹고살기 위해 자연의 변화를 끊임없이 살펴야 했다. 그래서 자연의 변화를 잘 읽는 사람이 좋은 대접을 받았다. 농촌에서는 농사 경험이 많은 노인들이 그러했다. 그분들은 오랜 경험으로 자연이 어떻게 바뀔지, 바뀌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을에 큰비가 내리면, 다음 해 벌레가 많아지는 법이란다.” 시골 노인들은 이런 식의 충고를 입에 달고 살았다.

제아무리 욕심부려도, 인간이 계절을 바꿀 수는 없다. 옛사람들은 이 사실을 잘 알기에 욕심을 줄이고 자연에 맞춰 살고자 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이치에 따라 무리 없이 일을 풀어 나가려 하지 않고, 여의치 않으면 자연환경을 바꿔 버리려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땅이 없으면 산을 깎고 바다를 메우려 한다. 그래서 지구는 어떻게 바뀌어 버렸을까?

자연의 리듬을 잊은 인간에 대한 자연의 복수는 무섭다. 쇠고기 생산량을 증가시키려고 인위적으로 늘린 소 떼는 사막의 면적을 크게 늘려 놓았다. ‘철 없는 과일을 만들기 위해 석유나 석탄은 더 빨리 사라지고 있다. 사탕수수나 커피나무를 기르려고 밀림을 없애 버린 탓에 지구는 점점 더워진다. 지구가 더워지면서 홍수나 가뭄도 잦아졌다. 이 모두는 자연의 질서에 따라 살면 겪지 않을 위협들이다.

 

우리의 임금들은 심하게 가물거나 홍수가 들면, 자신이 덕이 없음을 반성했다. 비가 오지 않으면 기우제를 지내며 하늘에 빌었다. 그만큼 나라를 다스릴 때 자연에 신경 썼다는 의미이다.

하늘을 살피는 마음은 자연을 살피는 마음이다. 자연의 계절, 철을 아는 인간은 무리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세상을 온전하게 한다. 하지만 철을 모르는 인간은 욕심껏 제멋대로 살며 세상을 어지럽게 한다. 지금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자연을 살피는 마음이다. ‘시간은 돈이라며 째깍거리는 시계는 우리 마음을 조급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멈추어 서서 조급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연의 리듬을 담고 있는 달력의 의미를 곰곰이 곱씹어 봐야 한다.

-<<지리 시간에 철학 하기>>

 

 

출처 : 천재교육, 중학교 국어 3-1

'중3국어 > 천재(박)' 카테고리의 다른 글

3. 소중한 우리말  (0) 2023.02.13
3. 소중한 우리말  (0) 2023.02.07
어머니는 왜 숲속의 이슬을 털었을까 - 이순원  (1) 2023.02.05
(2) 길모퉁이에서 만난 사람 - 양귀자  (0) 2023.02.05
1. 문학과 소통  (0) 2023.02.05

 아들아. 

이제야 너에게 하는 얘기지만, 어릴 때 나는 학교 다니기 참 싫었단다. 그러니까 꼭 너만 했을 때부터 그랬던 거 같구나. 사람들은 아빠가 지금은 소설을 쓰는 사람이니까 저 사람은 어릴 때 참 착실하게 공부를 했겠구나, 생각할지 모르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단다. 

 초등학교 때부터 아빠는 가끔씩 학교를 빼먹었단다. 집에서 학교까지 5리˚쯤 산길을 걸어가야 하는데, 학교를 가다 말고 그냥 산에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온 날도 있었단다.

 그러다 중학교에 다니면서부터는 정말 학교 다니기 싫었단다. 학교엔 전화가 있었도 집에는 전화가 없던 시절이니까 내가 학교를 빼먹어도 집안 식구들은 아무도 그걸 몰랐단다. 학교로 가는 길 중간에 산에 올라가 아무 산소가에나 가방을 놓고 앉아 멀리 대관령을 바라보다가 점심때가 되면 그곳에서 혼자 청승맞게 도시락을 까먹기도 했단다. 어떤 날은 혼자서 그러고, 또 어떤 날은 같은 마을의 친구를 꾀어서 같이 그러기도 하고.

 그러다 점점 대담해져서 아예 집에서부터 학교를 가지 않는 날도 있었단다. 배가 아프다, 머리가 아프다, 비가 와서, 눈이 와서, 오늘은 무서운 선생님 시간에 준비물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서, 하는 식으로 갖은 핑계를 댔단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니 우선 학교가 너무 멀었단다. 아빠가 태어난 대관령 아랫마을에 강릉 시내 중학교까지는 아침저녁으로 20리 길을 걸어 다녀야 했단다. 큰 산 아래의 오지˚ 마을이라 아직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버스도 다니지 않던 시절의 일이란다. 그러나 그거야말로 핑계고, 무엇보다 학교에 가도 재미가 없었단다. 지금 내가 아들인 너에게 그 얘기를 하고 있는 거란다. 

 

 오월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나는 학교에 가기 싫다고 말했다. 왜 안 가냐고 물어 공부도 재미가 없고, 학교 가는 것도 재미가 없다고 말했다.

 어린 아들이 그러니 어머니로서도 한숨이 나왔을 것이다.

 "그래도 얼른 교복으로 갈아입어라."

 "학교 안 간다니까."

 그 시절 나는 어머니에게 존댓말을 쓰지 않았다. 어머니를 만만하게 보아서가 아니라 우리 동네 아이들 모두 그랬다. 아버지에게는 존댓말을 어머니에게는 다들 반말로 말했다.

 "안 가면?"

 "그냥 이렇게 자라다가 이다음 농사지을 거라구."

 "에미가 신작로˚까지 데려다 줄 테니까 얼른 교복 갈아입어."

 몇 번 옥신각신하다가 나는 마지못해 교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러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어머니가 먼저 마당에 나와 내가 나오길 기다리고 섰기 때문이었다. 나는 잠시전 어머니가 싸 준 도시락까지 넣어 책가방을 챙겼다. 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오자 어머니가 지겟작대기를 들고 서 있었다. 나는 어머니가 그걸로 말 안 듣는 나를 때리려고 그러는 줄 알았다. 이제까지 어머니는 한 번도 나를 때린 적이 없었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이 조금은 낯설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 나는 신발을 신고도 마루에서 한참동안 멈칫거리다가 마당으로 내려섰다. 

 "얼른 가자."

 어머니가 재촉했다.

 "그런데 그 작대기는 왜 들고 있는데?"

 "에미가 이걸로 널 때리기라도 할까 봐 겁이 나냐?"

 "겁나긴? 때리면 도망가면 되지."

 "그래. 너는 에미가 무섭지고 않지? 그래서 에미 앞에 학교 가지 않겠다는 소리도 아무렇지 않게 하고."

 "학교가 머니까 그렇지. 가도 재미없고."

 "공부, 재미로 하는 사람 없다. 그래도 해야 할 때에 해야 하니 다들 하는 거지."

 "지겟작대기는 왜 들고 있는데?"

 "너 데려다주는 데 필요해서 그러니 걱정 말고, 가방 이리 줘라."

 하루 일곱 시간씩 공부하던 시절이었다. 도시락까지 넣어 가방 무게가 만만치 않았다. 나는 어머니에게 가방을 내밀었다. 

 어머니는 한 손엔 내 가방을 들고 또 한 손엔 지겟작대기를 들고 나보다 앞서 마당을 나섰다. 나는 말없이 어머니의 뒤를 따랐다.

 그러다 신작로로 가는 산길에 이르러 어머니가 다시 내게 가방을 내주었다.

 "자, 여기서부터는 네가 가방을 들어라."

 나는 어머니가, 내가 학교에 가기 싫어하니 중간에 학교로 가지 않고 다른 길로 샐까 봐 신작로까지 데려다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어머니가 내주는 가방을 도로 받았다. 

 "너는 뒤따라오너라."

 거기에서부터는 이슬받이˚였다. 사람 하나 겨우 다닐 좁은 산길 양옆으로 풀잎이 우거져 길 한가운데로 늘어져 있었다. 아침이면 풀잎마다 이슬방울이 조록조록 매달려 있었다. 

 어머니는 내게 가방을 넘겨준 다음 두 발과 지겟작대기를 이용해 내가 가야 할 산길의 이슬을 떨어내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몸빼˚ 자락이 이내 아침 이슬에 흥건히 젖었다. 어머니는 발로 이슬을 떨고, 지겟작대기로 이슬을 떨었다.

 그런다고 뒤따라가는 내 교복 바지가 안 저는 것도 아니었다. 신작로까지 15분이면 넘을 산길을 30분도 더 걸려 넘었다. 어머니의 옷도, 그 뒤를 따라간 내 옷도 흠뻑 젖었다. 어머니는 고무신을 신고 나는 검은색 운동화를 신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물이 무릎에서 발끝까지 옷을 흠뻑 적신 다음에야 신작로에 닿았다. 

 "자, 이제 이걸 신어라."

 거기서 어머니는 품속에 넣어 온 새 양말과 새 신발을 내게 갈아 신겼다. 학교 가기 싫어하는 아들을 위해 아주 마음먹고 준비해 온 것 같았다. 

 "앞으로는 매일 떨어 주마. 그러니 이 길로 곧장 학교로 가. 중간에 다른 데로 새지 말로."

 그 자리에서 울지는 않았지만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니, 내일부터 나오지 마. 나 혼자 갈 테니까."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어머니가 매일 이슬을 떨어 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떤 날 가끔 어머니는 그렇게 내 등굣길의 이슬을 떨어 주었다. 또 새벽처럼 일어나 그 길 이슬을 떨어내도 집에서 신작로까지 산길을 가다 보면 내 옷과 신발도 어머니의 것처럼 젖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어머니는 내가 지나온 길 고비마다 이슬 떨이를 해 주셨다.

 아들은 어른이 된 뒤에야 그때 어머니가 이슬을 떨어 주신 길을 걸어 지금 내가 여기까지 왔다고. 돌아보면 꼭 그때가 아니더라도 어머니는 내가 지나온 길 고비마다 이슬 떨이를 해 주셨다.

 아들은 어른이 된 뒤에야 그때 어머니가 떨어 주시던 이슬 떨이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아마 그렇게 떨어내 주신 이슬만 모아도 내가 온 길 뒤에 작은 강 하나를 이루지 않을까 싶다. 

 

 아들아. 

 나는 그 강을 이제 '이슬강'이라고 이름 지으려 한다. 그러나 그 강은 이 세상에 없다. 오직 내 마음 안에만 있는 강이란다. 그때 아빠 등굣길의 이슬을 떨어 주시던 할머니의 연세가 올해 일흔넷이다. 어쩌면 할머니는 그때 그 일을 잊고 계실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빠한테는 그 길이 이제까지 아빠가 걸어온 길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도 안타까우며 마음 아픈 길이 되었단다. 

 이다음 어른이 되었을 때, 아빠처럼 너에게도 그런 아름다운 길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어린 날 나는 그 길을 걸어 나오며 내 앞에 펼쳐진 이 세상의 모든 길들을 바라 보았단다. 

 아들아, 길은 그 자체로 인생이란다. 그리고 그것을 걷는 것이 곧 우리의 삶이란다. 

                                                                                                                                         - ≪내 영혼이 한 뼘 더 자라던 날≫

˚리 - 거리의 단위. 1리는 약 0.393km에 해당한다. 

˚오지 - 해안이나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외부와의 접촉이 거의 없는 땅.

˚신작로 - 새로 만든 길이라는 뜻으로 자동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게 새로 낸 길을 이르는 말. 

˚이슬받이 - 양쪽에 이슬 맺힌 풀이 우거진 좁은 길.

˚몸빼 - 여자들이 일을 할 때 입는 바지의 하나. 일본에서 들어온 옷으로 통이 넓고 발목을 묶게 되어 있다.

 

                 

출처 : 천재교육, 중학교 국어 3-1 교과서

'중3국어 > 천재(박)' 카테고리의 다른 글

3. 소중한 우리말  (0) 2023.02.13
3. 소중한 우리말  (0) 2023.02.07
2. 문제 해결 과정으로서의 읽기와 쓰기  (0) 2023.02.07
(2) 길모퉁이에서 만난 사람 - 양귀자  (0) 2023.02.05
1. 문학과 소통  (0) 2023.02.05

[교과서 수록]

 

우리 동네 예술가 두 사람

 

북한산 자락에 둘러싸여서 사시사철 웅장한 자연의 작품을 감상하며 살 수 있는 우리 동네에 오면 예술인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우선은 미술관이 두 개나 있어서 자연 화가들이 자주 모이고 그림을 좋아하는 미술 애호가들의 발길도 잦다.

그런가 하면 소설가나 시인들도 여러 명 이 동네에 주민 등록을 얹어 놓고 있다. 자리를 잡고 살고 있는 그들이 얼마나 동네 예찬론을 펼쳤는지 앞으로 이 동네로 이사 오겠다고 마음먹은 소설가나 시인도 부지기수이다.

그 밖에도 음악이나 방송, 혹은 언론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가끔씩 만나게 되는데 나로서는 그들이 근방에 사는 사람들인지, 아니면 방문객들인지는 알 도리가 없다. 다만 다른 곳에 비해서 예술인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과 자주 부딪치게 되는 것만은 사실이다.

우리 동네의 또 하나의 특색은 규모가 작은 카페들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흔히 동네 앞 큰길을 우리는 카페 거리라고 부른다. 일일이 세어 보지 않아서 장담은 못 하지만 적어도 수십 개에 이르는 작고 아담한 카페들이 길 양쪽에 늘어서 있고, 각각 내걸고 있는 상호들은 또 얼마나 예술적인지 카페 간판들을 죽 읽다 보면 흡사 한 편의 서정시를 감상하는 기분이 되곤 한다.

그곳을 자주 찾는 글 동네 선배 말씀에 의하면 이들 카페의 주 고객들은 거의가 쟁이라고 했다. 일부러 먼 곳에서 찾아오는 쟁이와 근처의 쟁이들로 밤마다 북적거리는데 그 외에도 술 좋아하는 대학 교수들까지 합세해서 그 많은 카페 주인들을 먹여 살린다는 것이었다.

예술적인 동네 분위기 때문에 카페들이 많이 생겨났는지, 아니면 카페들이 많아서 예술인들이 많이 모이는 것인지, 그 앞뒤 연결 사항은 나도 잘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이곳 카페들이 술 좋아하는 빈약한 주머니 사정의 쟁이들을 넉넉하게 포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퇴폐와 환락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여느 술집들과는 여러모로 다르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 동네에서는 카페조차 예술적인 것이다.

이제까지 나는 우리 동네의 예술적 분위기에 대하여 긴 설명을 했다. 물론 끝없는 자기 극복과 한없는 자기 단련으로 고통의 창조 작업을 하고 있는 예술인들이 많이 모인다는 이야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예술가이야기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나는 내게 감동을 준 두 명의 예술가들에 관해 말하려고 여태까지 긴 서두를 펼치고 있었던 셈이다. 이 두 명의 예술가들이 만드는 작품은 어떤 것이고, 또 그들은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지금부터의 이야기가 말해 줄 것이다. 그 전에 한 가지 미리 말해 두는 바이지만, 이 두 사람의 예술가들을 보고 싶다면 언제라도 우리 동네에 오면 된다. 그들은 이 동네의 한가운데에서 매일같이 성실하고 끈질기게 자신의 진지한 예술에 몰두해 있으니까.

 

 

우선 그 첫 번째 예술가

 

그이는 늘 흰 가운을 입고 있다. 그리고 여자이다. 이렇게 말하면 여류 조각가를 상상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 짐작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이가 빚어내는 작품도 일종의 조각이라면 조각일 수도 있다.

그이는 매일 아침 9시에 일터로 나와서 다시 저녁 9시가 되면 가운을 벗고 집으로 돌아간다. 일터에서의 그이는 다소 무뚝뚝하고 뻣뻣하다. 남하고 싱거운 소리를 나누는 일도 거의 없다. 잘 웃지도 않는다. 오히려 늘 화를 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 얼굴로 그이는 늘 일을 하고 있다. 그이가 만드는 작품은 불티나게 팔리고 있으므로 하기야 쉴 틈도 많지 않다. 묵묵히 일만 하고 있는 그이를 우리는 김밥 아줌마라고 부른다. 따라서 그이가 만드는 작품은 자연히 김밥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이의 김밥은 보통의 김밥과는 아주 다르다. 언제 먹어도 그이만이 낼 수 있는 담백하고 구수한 맛이 사람을 끌어당긴다. 그이의 김밥은 절대 맛을 속이지 않는다.

김밥 아줌마는 작품을 만들 때 사람들이 보고 있으면 막 화를 낸다. 누군가 쳐다보면 마음이 흔들려서 실패작만 나온다는 것이다. 김밥을 말고 있을 때는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들은 척을 하지 않는다. 한 번 더 말을 시키면 여지없이 성질을 내며 일손을 놓아 버린다. 그이는 파는 일엔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김밥을 만드는 그 행위에만 몰두해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언젠가 나도 무심히 김밥 마는 것을 구경하고 있다가 당했다. 쳐다보고 있으니까 김밥 옆구리가 터지는 실수를 다 한다고 신경질을 내는 그이가 무서워서 주문한 김밥을 싸는 동안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서 먹어 본 김밥은 그이에게 당한 것쯤이야 까맣게 잊어버리고도 남을 만큼 그 맛이 환상적이었다. 그 김밥은 돈 몇 푼의 이익을 위해 말아진 그런 김밥이 아니었다. 나는 그래서 그이의 김밥을 서슴지 않고 작품이라 부른다.

 

 

그 두 번째 예술가

 

그는 이제 막 오십 고개를 넘은 남자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머리에 얹어 놓고 있는 빵떡모자와 아직은 듬직한 몸체, 그리고 늘 웃는 얼굴의 그이는 일 년 열두 달 거의 빠짐없이 하루에 두 차례씩 내가 사는 연립 주택의 마당에 나타난다. 자식들의 결혼 날이거나 아니면 길이 꽁꽁 얼어붙어 오르막인 이곳까지 트럭이 못 올라오는 한겨울 며칠을 제외하면 오전 10시 무렵과 오후 4시경에는 어김없이 주홍 휘장을 두른 그의 트럭을 볼 수가 있다.

그가 등장하는 모습은 언제나 일정하다. 먼저 귀에 익은 바퀴 구르는 소리와 함께 그가 운전하는 주홍 트럭이 언덕배기를 올라온다. 차를 세운 다음에는 얼른 확성기를 들고 운전석에서 뛰어내린다. 빵떡모자를 쓴 그는 확성기에 대고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골라 온 물건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른다. 양파나 버섯 있어요. 싱싱한 오이와 배추도 있어요. 엄청 달고 맛있는 복숭아나 포도 있어요…….

그다음엔 그를 기다리고 있던 이웃들이 하나씩 둘씩 모여드는 것이다. 언덕배기를 내려가서 또 버스를 타고 가야 이웃 동네의 시장이 나오는지라 이웃들은 대부분 그에게서 필요한 먹거리들을 사고 있다. 게다가 뜨내기 행상 트럭도 아니고 고정적으로 드나드는 단골인지라 물건만큼은 믿고 사도 좋았다.

하기야 그에게는 자신의 트럭 안에 있는 온갖 야채와 과일이 국내 최고라는 자신이 차고도 넘친다. 최고의 품질만을 고집하고 있다는 장사에 대한 그의 소신은 실제에 있어서도 과히 틀린 바는 없다. 그는 오이 하나를 사는 손님일지라도 이 오이의 산지는 어디이고 도매가격은 또 얼마나 높은 최상품인가를 일일이 설명하느라고 늘 입이 쉴 새가 없다.

그뿐이 아니다. 지난번에 사 간 그 고구마가 과연 꿀맛이었는지, 엊그제 사 간 배추로 담근 김치가 연하고 사근사근한지도 고객들한테 끊임없이 확인한다. 그런 과정에서 행여 고객의 불만이 포착되기라도 하면 그는 아예 장사고 뭐고 없이 그것의 규명에만 매달린다. 그 고구마가 달지 않은 것은 삶는 방법에 문제가 있었는지 아니면 그런 고구마를 도매 시장에서 떼 온 자신의 안목이 모자라서였는지를 속 시원하게 판가름하지 않으면 직성이 안 풀리는 사람이 바로 주홍 트럭의 주인인 빵떡모자 아저씨인 것이다.

그는 자신이 파는 물건이 최고라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 트럭 행상을 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손님이 없을 때는 늘 자신의 물건들을 정리하고 다듬는 일에 몰두해 있는 사람이고 호박 한 개를 집을 때도 두 손으로 조심조심 그것을 받들어 올린다. 그는 자기가 팔고 있는 쑥갓이나 양파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나는 그가 다른 화제를 입 밖에 올리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는 언제나 마늘이나 포도, 쪽파나 무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것들이 왜 좋은 물건인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가령 이런 식이다.

이 마늘 보세요. 어느 한 군데도 흠이 없잖아요. 요렇게 불그스름하고 중간짜리가 상품이지요. 그리고 요 반듯반듯하게 패인 줄을 보세요. 이런 것은 짜개면 어김없이 여덟 쪽이지요. 이보다 더 좋은 마늘 파는 사람 있으면 어디 나와 보라고 하세요. 정말이에요. 그런 사람이 나 말고 또 있다면, 만약 그렇다면 나 그날로 이 장사 집어치울 거예요. 아니, 정말 그렇게 한다니까요.”

내가 보기에는 만약 그런 사람이 나타나면 장사를 집어치우는 것으로 끝낼 그가 결코 아니다. 아마 그 이상의 불행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예술가들만큼 자존심이 센 사람은 없으니까. 그리고 최고의 가치만을 추구하는 주홍 트럭의 그는 분명 예술가임이 틀림없으니까.

 

 

긴데요,의 김대호 씨

 

김대호 씨는 느리고 길다.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나의 이 간결한 인물 묘사에 대해 단숨에 동의할 것이다. 나는 그것을 믿는다. 왜냐하면 그처럼 길고 느린 사람은 아직까지 만나 본 적이 없으니까. 김대호 씨는 도대체가 빠릿빠릿한 구석이 전혀 없다. 아무리 급한 일이 생겨도 김대호 씨 특유의 느릿느릿한 걸음에 속력이 붙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 거기에 대해서 그는 아주 그럴싸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그래 봤자 마찬가지니까요, 저는 다리가 길잖아요. 남들 두 걸음 걸을 때 한 발자국만 옮기면 되는데 뭐 할라고 귀찮게 뛰고 그런대요.”

그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다. 그는 자그마치 1미터 86센티미터의 키를 가지고 있으니 보폭도 그만큼 넓은 게 사실이다. 김대호 씨는 하도 길어서 어지간한 사람은 그하고 이야기하다 보면 목 부근에 통증을 느끼기 십상이다. 키가 크다 보니 신체의 여러 부분도 남들보다 유별나게 길다. 얼굴도 길고, 코도 길고, 손가락도 길다. 김대호 씨는 팔도 길어서 남들은 옆 책상에서 무엇을 집어 오려면 일어나야 하는데도 그는 앉은 채 팔만 뻗으면 대부분 가능하다. 그뿐만 아니라 김대호 씨는 말도 아주 느릿느릿, 말꼬리를 길게 빼는 버릇을 가지고 있다. 성질 급한 누구는 김대호 씨의 말을 듣다 답답해서 혈압이 올랐다는 소문도 있고, 실제로 어떤 친구는 한숨씩 자고 일어나서 들어도 김대호 씨의 말을 이해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더라는 실험 보고까지 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는 자신이 길다는 것을 아주 잘 안다. 그래서 하루에도 몇 번씩 제가 긴데요.”라고 말하는지도 모른다. 정말이다, 그는 늘 그렇게 말한다.

전화벨이 울린다. 김대호 씨가 전화를 받는다. 그러면 사무실 내의 모든 눈이 그에게 쏠린다. 전화를 건 사람은 아마도 김대호 씨를 바꿔 달라고 하는 모양이다. 그러면 그는 그 특유의 느릿느릿한 말투로 이렇게 말한다.

제가 긴데요.”

그러면 모두들 웃음을 참지 못하고 킥킥거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행여라도 전화를 건 상대방이 못 알아듣고 다시 묻기라도 하면 이번엔 더욱 느린 박자로 또박또박 대답을 해 준다.

제가 긴, , .”

그래서 김대호 씨를 사람들은 아예 긴데요라고 부른다. 그의 별명은 김대호 씨가 속한 사무실만이 아니라 회사 전체에 널리 퍼져 있어서 언제부턴가는 아무도 그의 진짜 이름을 부르지 않게 되어 버렸다.

물론 그를 별명으로 부르는 데 어떤 악의가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그렇게 스스럼없이 별명이 통하는 것만 보아도 김대호 씨의 대인 관계가 아주 원만한 편이라는 것을 능히 짐작할 수가 있다. 사실로 그는 키가 큰 만큼 이해의 길이도 길고, 느리고 낙천적인 만큼 주위 사람들을 편하게 해 주는 품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미덕은 품성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좀 느리기는 하지만 그는 맡은 일만큼은 빈틈없이 해내는 사람이었다. 덤벙거리지 않으니 실수도 없고, 진득한 성격이라 잔꾀를 부릴 줄도 몰라 일에 하자를 내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말하자면 사람들은 김대호 씨를 사랑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래서 그를 아끼는 몇몇 사람은 요즘 김대호 씨에게 이런 충고까지 하고 있었다.

긴데요 씨, 장가를 가고 싶으면 우선 그 느린 말투부터 고쳐요. 아니, 제가 긴데요, 하는 전화받는 말버릇부터 고치자고. 지난번에도 겨우 아가씨 하나 소개해 주었더니 긴데요, 때문에 어긋나고 말았잖아. 뭐라더라, 전화받는 것만 보아도 얼마나 촌스러운 사람인지 당장 알겠다나? 그 느려 터진 말로 제가 긴데요라니, 그게 뭡니까? 그래 가지고 뭐가 되겠습니까?”

요즘 유행하는 누구의 말씨까지 흉내 낸 그 충고는 노총각인 김대호 씨에게 상당한 설득력을 발휘한 모양이었다. 그는 아주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혼자 웅얼웅얼 연습도 여러 번 했다. 천성이 느린 사람이라 그것도 연습이라고 며칠을 웅얼거리더니 마침내 어느 날, 오늘부터는 긴데요가 아니라 김대호로 돌아오겠다고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날 그를 찾는 첫 전화가 걸려 왔다. 사무실 식구들은 모두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올 세련된 말을 기대하며 귀를 모았다.

김대호 씨는 큰기침을 하고 수화기를 들었다. 전화를 건 상대방은 아마 이렇게 물었을 것이었다.

김대호 씨 좀 부탁합니다.”

그러나 그는 많은 연습에도 불구하고 얼결에 이렇게 대답하고 말았다.

, 제가, 전데요.”

물론 사무실 안은 당장에 웃음바다가 되었고, 그 일로 김대호 씨는 긴데요에 이어 제가 전데요라는 긴 별명까지 하나 더 가지게 되었다. 그는 그 한 번의 실패를 끝으로 더 이상 긴데요를 고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에이, 저는 아무래도 긴데요가 더 어울려요. 사실로도 저는 길잖아요.”

정말이다. 그는 길다. 그리고 느리기도 하다. 진실을 말하자면 우리 옆에 이렇게 길고도 느린 사람이 존재하는 것도 행복한 일인 것이다. 요즘처럼 정신없이 핑핑 돌아가는 혼 빠진 세상에서는. 그래서 우리의 김대호 씨는 오늘도 걸려 오는 전화에 대고 그 느릿느릿한 말투로 여전히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제가 긴데요…….”

- 길모퉁이에서 만난 사람

 

 

 

어휘 풀이

자연 자연히. 사람의 의도적인 행위 없이 저절로.

애호가 어떤 사물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

예찬론 무엇이 훌륭하거나 좋거나 아름답다고 찬양하는 견해.

부지기수 헤아릴 수가 없을 만큼 많음. 또는 그렇게 많은 수효.

빵떡모자 차양이 없이 동글납작하게 생긴 모자.

휘장 넓은 천을 여러 폭으로 이어서 주위를 빙 둘러치는 막.

행상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물건을 파는 일. 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

소신 굳게 믿고 있는 바. 또는 생각하는 바.

사근사근하다 사과나 배 따위를 씹는 것과 같이 매우 보드랍고 연하다.

규명 어떤 사실을 자세히 따져서 바로 밝힘.

진득하다 성질이나 행동 등이 질기고 끈기가 있다.

하자 옥의 얼룩진 흔적이라는 뜻으로, ‘을 이르는 말.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