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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3]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김삿갓으로 잘 알려진 방랑 시인 김병연은 우여곡절이 많은 자신의 생활을 소재로 삼아 다양한 작품을 창작하였다. (가)는 작가의 사십 년 방랑 세월을 집약하여 드러낸 것이고, (나)는 북도 지방의 어느 마을에 갔던 김삿갓이 원 생원, 서 진사, 문 첨지, 조 석사라고 불리는 네 명의 마을 유지들에게 푸대접을 당한 후 그들을 희롱하기 위해 그들에게 써 준 것이다.
(가) 정처 없는 내 삿갓은 빈 배와 같은데 浮浮我笠等虛舟(부부아입등허주)
사십 년 평생 내내 쓰고 다녔네 一着平生四十秋(일착평생사십추)
소 따라 들판으로 가는 목동의 가벼운 차림이요 牧竪輕裝隨夜犢(목수경장수야독)
백사장의 갈매기와 벗하는 어부의 본색이라네 漁翁本色伴沙鷗(어옹본색반사구)
술 취하면 벗어 걸고 꽃나무를 바라보고 醉來脫掛看花樹(취래탈괘가화수)
흥이 나면 손에 들고 누각에 올라 달구경 하네 興到携登翫月樓(흥도휴등완월루)
속세 사람 의관은 모두 겉치레이니 俗子依冠皆外飾(속자의관개외식)
온 하늘에 비바람 가득해도 나는 걱정 없네 滿天風雨獨無愁(만천풍우독무수)
- 김삿갓, 「영립」
(나) 해 뜨자 원숭이가 언덕에 나타나고 日出猿生原 일출원생원
고양이 지나가자 쥐가 다 죽네 猫過鼠盡死 묘과서진사
황혼이 되자 모기가 처마에 이르고 黃昏蚊簷至 황혼문첨지
밤 되자 벼룩이 자리에서 쏘아 대네 夜出蚤席射 야출조석사
- 김삿갓, 「원생원」
한시의 일반적인 형식에 따라 (나)를 이해하면 해 뜨고 나니 ‘원숭이’가 나타나고 죽은 ‘쥐’를 마주치고, 황혼에는 ‘모기’, 밤에는 ‘벼룩’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화자의 안타까운 처지가 드러난다. 그런데 우리말 독음과 관련지어 이 시를 살펴보면 각 행의 마지막 세 글자가 각각 ‘원 생원’, ‘서 진사’, ‘문 첨지’, ‘조 석사’라는 네 사람을 지칭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의미는 다르지만 유사한 소리가 나는 한자들을 활용하여 자신을 푸대접하는 마을 유지들을 골려 주려는 작가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김삿갓이 떠나고 나서야 (나)의 창작 의도를 알아차린 마을 유지들은 창피함에 얼굴을 붉히고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전한다.
이와 같이 중의성을 활용해 눈앞의 상대를 희롱하는 의도가 잘 나타나는 작품으로 황진이의 시조도 자주 언급된다.
(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
일도창해하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 간들 어떠리
- 황진이
청산 속에 흘러가는 ‘벽계수’를 푸른 시냇물로, 빈산을 가득 채운 ‘명월’을 밝은 달로 풀이하면 한번 가면 돌아오기 어려운 인생과 그 덧없음을 토로하며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자연에서 쉬어 갈 것을 권유하는 운치 있는 내용으로 보인다. 그런데 ‘벽계수’가 당시 어느 왕족의 별칭이고, ‘명월’이 시조를 지은 ‘황진이’의 기명(妓名)﹡임을 알고 다시 읽어 보면 그 맛이 새롭다. 자신만은 다른 사람들처럼 황진이에게 절대 유혹당하지 않을 것이라 자신감을 드러냈던 ‘벽계수’에게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자신과 함께 풍류 생활을 즐길 것을 권유하는 황진이의 낭만과 여유가 느껴진다. 명월 황진이가 이 시조를 청아한 목소리로 읊는 동안 벽계수가 깜짝 놀라 말에서 떨어졌다는 일화가 함께 전해지는 것을 보면, 황진이의 언어유희가 상대방의 허를 찌른 것은 분명해 보인다.
﹡기명(妓名) : 기생으로서 가지는 딴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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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 ~ (다)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가)가 화자가 처한 상황에 도움을 주는 사물의 가치를 드러내고 있다면, (나)는 화자가 처한 상황을 부정적으로 느끼게 하는 소재들을 제시하고 있다.
② (가)가 화자가 선택한 삶에 대한 기대감과 만족감을 중점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면, (다)는 화자가 선택하지 않은 삶에 대한 미련과 안타까움을 토로하고 있다.
③ (나)가 시간의 경과에 따라 괴로운 상황이 점차 심각해지고 있음에 주목하고 있다면, (다)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가까워지는 임과의 관계에 주목하고 있다.
④ (가)와 (나)가 괴로운 상황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참아 내는 태도를 예찬하고 있다면, (다)는 즐겁고 행복한 순간까지 받아들이지 못하는 청자의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
⑤ (가)와 (다)가 아름다운 풍경과 사람들을 예찬하며 자연 친화적인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면, (나)는 자연과 대비되는 인간의 모습에서 바람직한 가치를 찾아내고 있다.
2. ‘마을 유지’들이 (나)를 읽고 수용하는 과정을 추측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마을 유지들이 (나)의 표면적 의미에 주목했다면, (나)의 화자가 아침부터 밤까지 ‘원숭이’, ‘쥐’, ‘모기’, ‘벼룩’을 순서대로 마주치는 상황을 중심으로 작품을 이해하려 하였겠군.
② 마을 유지들이 (나)를 읽을 때 ‘원생원’, ‘서진사’, ‘문첨지’, ‘조석사’라는 소리가 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면, 김삿갓이 자신들을 염두에 두고 시를 지은 것도 알 수 있었겠군.
③ 마을 유지들이 (나)에 언급된 ‘원숭이’, ‘쥐’, ‘모기’, ‘벼룩’이 결국 자신들을 지칭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면, 자신들이 풍자의 대상이 된 것을 알고 화가 나거나 민망한 기분이 들었겠군.
④ 마을 유지들이 (나)를 읽고 김삿갓의 언어유희 방식에 대해 따져 보았다면, 김삿갓이 소재들의 특성과 소재 간의 차이점을 부각하여 부정적 인식을 드러내려 하였음을 알아차렸겠군.
⑤ 마을 유지들이 (나)와 같은 시를 지어 자신들에게 준 김삿갓의 진의를 알고 부끄러움을 느꼈다면, 자신들이 김삿갓을 대접했던 방식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를 얻었겠군.
3. <보기>를 참고하여 (가)와 (다)를 이해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흔히 ‘시적 화자’는 시인의 대리인으로서 시인 자신이 아니라고 설명하지만, (가)와 (다)의 경우 시적 화자가 시인과 동일시하기도 한다. (가)와 (다) 모두 시인의 삶과 시적 상황을 관련지어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삿갓은 과거 시험에서 자신의 조부를 비판하는 내용을 써서 급제했다가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자신을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 여겨 평생을 큰 삿갓을 쓰고 방랑했다고 알려져 있다. 서사와 시가에 능한 문인이자 당대 최고의 기생으로 인정을 받던 황진이는 왕족인 벽계수가 평소 자신을 과소평가한다는 말을 듣고, 그 앞에서 예술적 역량을 발휘하여 그를 말에서 떨어지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렇게 작가와 관련된 일화를 떠올리며 (가)와 (다)를 읽으면 그 의미를 더욱 풍부하게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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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가)의 ‘정처 없는 내 삿갓’이 방랑을 선택한 작가와 그가 선택한 삶과 관련된다면, (다)의 ‘명월이 만공산하니’는 황진이가 서사와 시가에 능한 문인으로서 널리 인정을 받던 상황과 관련되겠군.
② (가)의 ‘목동’과 ‘어부’가 스스로를 죄인이라 여기고 남들 앞에서 얼굴을 감추며 살던 사람들의 삶을 드러낸다면, (다)의 ‘수이 감’은 황진이를 과소평가하고 무시했던 벽계수의 행동을 드러내고 있군.
③ (가)의 ‘술 취하면’과 ‘흥이 나면’이 방랑 생활 속에서 자연을 즐기던 작가의 모습을 반영한 것이라면, (다)의 ‘쉬어 간들’은 무상한 인생 속에서 풍류적 삶을 권유하는 작가의 태도를 반영한 것이겠군.
④ (가)의 ‘속세 사람’들이 방랑 생활을 선택한 작가의 눈에 ‘겉치레’만 심한 사람들로 보였다면, (다)의 벽계수는 뛰어난 역량을 지닌 황진이의 눈에 자신의 행동을 ‘자랑’하고 과시하는 인물로 보였겠군.
⑤ (가)의 ‘온 하늘에 비바람 가득해도’가 떠도는 작가가 인생길에 경험한 시련이나 고통을 드러낸다면, (다)의 ‘일도창해하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는 작가가 파악한 인생의 유한성과 무상감을 표현한 것이겠군.
정답 1. ① 2. ④ 3.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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