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모의고사 (화법) 정답.pdf
0.33MB
2023년 4월 모의고사(언매) 문제.pdf
6.61MB
2023년 4월 모의고사(언매) 정답.pdf
0.33MB
2023년 4월 모의고사(화법) 문제.pdf
5.91MB

농가월령가 정학유

 

 

[1월령] 정월(正月)은 맹춘(孟春)이라. 입춘(立春) 우수(雨水) 절후(節候)로다. 산중간학(山中間壑)에 빙설(氷雪)은 남았으나, 평교(平郊) 광야(廣野)에 운물(雲物)이 변()하도다. 어와 우리 성상(聖上) 애민 중농(愛民重農)하오시니, 간측(懇惻)하신 권농 윤음(勸農綸音) 방곡(坊曲)에 반포(頒布)하니, 슬프다, 농부(農夫)들아 아무리 무지(無知)한들 네 몸 이해(利害) 고사(姑捨)하고 성의(聖意)를 어길쏘냐? 산전 수답(山田水畓) 상반(相半)하여 힘대로 하오리라. 일 년 풍흉(一年豐凶)은 측량(測量)하지 못하여도, 인력(人力)이 극진(極盡)하면 천재(天災)를 면()하나니, 제 각각(各各) 권면(勸勉)하여 게을리 굴지 마라. 일년지계(一年之計) 재춘(在春)하니 범사(凡事)를 미리 하라. 봄에 만일 실시(失時)하면 종년(終年) 일이 낭패되네. 농지(農地)를 다스리고 농우(農牛)를 살펴 먹여, 재거름 재워 놓고 일변(一邊)으로 실어 내어 맥전(麥田)에 오줌 주기 세전(歲前)보다 힘써 하소.

1월령 : 정월에 해야 하는 농사일

 

 

[현대어 풀이]

 

1월은 초봄이라 입춘, 우수의 절기로다. 산골짜기에는 얼음과 눈이 남았으나, 들과 벌판에는 경치가 변하기 시작하는구나. 어와, 우리 임금께서 백성을 사랑하고 농사를 중히 여기시어, 농사를 권장하시는 말씀을 온 나라에 널리 알리시니, 슬프다 농부들이여. 아무리 무지한들 네 자신의 이해관계를 그만두고라도 임금의 뜻을 어기겠느냐? 밭과 논을 반반씩 균형 있게 힘대로 하오리라. 일 년의 풍년과 흉년을 헤아리지 못하여도, 사람의 힘을 다 쏟으면 자연의 재앙을 면하나니, 제각각 서로 부지런하기를 권하여 게을리 굴지 마라. 일 년의 계획은 봄에 하는 것이니 모든 일을 미리 하라. 봄에 만일 때를 놓치면 그해 일이 낭패되네. 농사지을 땅을 다스리고 일하는 소를 먹여, 재거름 재워 놓고 한편으로 실어 내어, 보리밭에 오줌 주기를 새해가 되기 전보다 힘써 하소.

 

 

핵심 정리

 

갈래 장편 가사, 월령체 가사

성격 교훈적, 계몽적

운율 3(4)·4, 4음보

제재 한 해의 농사일과 세시 풍속

주제 월령과 절기에 따른 농가의 일과 세시 풍속

특징

- 우리말 노래로 농업 기술의 보급을 시도한 최초의 작품임.

- 감탄형, 명령형 어미를 통해 내용을 제시하여 계몽적 성격이 잘 드러남.

- 농촌 생활과 관련된 구체적 어휘가 풍부하게 나타남.

 

7. 두 작품의 형식상 특징 비교하기


동동 농가월령가
차이점 매 연 후렴구가 있음. 4음보의 연속체로 후렴구가 없음.
공통점 서사와 1~12월령까지 총 13연으로 구성된 월령체 형식임.

 

 

'고2 문학 > 고2 비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헷갈리지 말자! 비상(한) 1학기 기말 핵심 정리  (0) 2023.06.26
태평천하[비상(한) 수록 부분]  (1) 2023.05.25
창 내고자 창 내고자~  (1) 2023.05.25
만흥  (5) 2023.05.25
이화우 흣뿌릴 제~  (0) 2023.05.25

이육사(李陸史)

 

1. 출생 1904. 4. 4, 경북 안동

사망 1944. 1. 16, 중국 베이징[北京]

2. 국적 한국

3. 요약

일제 강점기에 시인이자 독립운동가로서 강렬한 민족의식을 갖추고 있던 이육사는 일찍부터 각종 독립운동단체에 가담하여 항일투쟁의 불꽃을 피웠고, 생애 후반에는 총칼 대신 문학으 로 일제에 저항했던 애국지사였다.

 

일제 강점기의 대표적인 저항시인 이육사는 평생 치열한 민족정신으로 독립운동에 매진했고, 잦은 옥고로 인해 몸이 쇠약해진 뒤에는 총칼 대신 날카로운 펜을 휘둘러 일제와 싸웠던 항일투사였다.

 

이육사의 시 광야에는 대한독립과 민족의 자유를 염원하는 시어로 가득 차 있다. 19451217일자 자유신문에 발표된 이 시에 대하여 평론가 김용직은 민족의식을 바탕으로 한 가운데 유례가 없을 정도로 든든한 구조를 가진 작품이라고 찬탄하고 있다.

 

이외에도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청포도, 절정, 황혼등에는 암울한 식민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지식인의 고통스런 현실과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투철한 의지가 절절하게 그려져 있다.

 

퇴계 이황의 후손, 저항의 깃발을 치켜들다

 

이육사는 1904518일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원촌리에서 아버지 이가호와 어머니 허길의 6형제 가운데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호적에 기록된 이름은 원록(源祿), 두 번째 이름은 원삼(源三)이었고 훗날 활()로 개명했다. ()는 태경(台卿), 본관은 진성(眞城)으로 퇴계 이황의 14대 손이다. 그는 어린 시절 보문의숙(寶文義塾)이라는 신식학교를 운영했던 할아버지 이중직으로부터 전통 한학을 배웠다.

일제강점기 최고의 저항시인 이육사를 키워낸 안동 지방은 1894년 갑오의병을 창의하여 독립운동의 첫 장을 연 지방으로 친일행위나 태도를 인정하지 않은 기풍을 견지하고 있었다. 이처럼 엄중한 분위기 속에서 일제의 압력에 결코 굴하지 않는 강렬한 민족정신이 자라났을 것이다.

 

12세 때인 1915년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가세가 기울어지자 이육사의 가족들은 안동군 녹전면 신평동 듬벌이로 이사했다. 그러다 재차 대구로 이사한 뒤 이육사는 서화가로 명성을 떨치던 서병오에게 그림을 배웠다.

 

17세 때인 1921, 이육사는 영천 출신 안용락의 딸 안일양과 결혼한 다음 처가에서 가까운 백학학원에서 1년 동안 공부했는데, 바로 이때 원삼이란 이름을 사용했다. 1923년부터 9개월 동안 백학학원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다.

 

1923, 이육사는 19세의 나이로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경찰 기록에 따르면 당시 그는 도쿄쇼오소쿠(東京正則)예비학교, 니혼(日本)대학 전문부 등에서 공부했다. 하지만 검찰신문조서에는 이와 달리 킨죠우(錦城)고등예비학교에 1년간 재학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925년 귀국한 이육사는 대구 조양회관에서 주최한 신문화 강좌에 참여했다. 조양회관은 1922년 독립운동가 서상일이 민족계몽운동을 위해 세운 교육회관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만난 동지 이정기, 조재만 등과 함께 수시로 중국을 드나들며 독립운동을 모색했다. 19267월에는 베이징에 있는 중국(中國)대학 상과에 입학하여 7개월 동안 공부했다.

 

장진홍 사건과 대구격문사건에 휘말리다

 

19271018, 조선은행 대구지점에 신문지에 싸인 커다란 선물상자가 배달되었다. 은행 직원이 수상하게 여기고 길거리에 내놓자마자 그 안에 담겨있던 폭탄이 굉음을 울리면서 폭발하면서 경찰 4명을 포함하여 도합 6명이 부상을 당했다. 깜짝 놀란 대구경찰서 순사들이 범인을 잡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아무런 단서도 잡을 수 없었다. 수사가 미궁에 빠지자 다급해진 경찰은 대구에서 활동하던 애국지사들을 무차별로 잡아들인 다음 야만적인 고문을 가하며 자백을 강요했다.

 

이때 이육사는 형 이원기와 동생 원일, 원조와 함께 경찰서에 끌려가 갖은 곤욕을 치렀다. 평생 17차례에 걸친 체포와 투옥의 시발점이었다. 사건이 발생한 지 14개월이 지난 1929214, 일본 오사카에서 진범 장진홍이 체포되면서 이육사의 형제들은 사건과 관련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경찰은 그해 12월이 되어서야 그들을 석방했다. 한편 장진홍은 사형을 선고받자 이듬해인 1930731일 자결함으로써 비장한 최후를 맞았다.

 

192911월부터 시작된 광주학생의거가 확산되면서 19301월 중순 대구에서도 동맹휴학사태가 벌어졌다. 아울러 대구 일대에 일제를 성토하는 격문(어떤 일을 여러 사람에게 널리 알려 부추기기 위한 글)이 휘날렸다. 그러자 경찰은 예비검속 차원에서 대구청년동맹 간부였던 이육사를 체포했다가 19일에 풀어주었다. 그해 2월에는 중외일보 대구지사 기자로 임용되었지만 3월에 또 다시 체포되었다가 풀려났다.

 

그해 8월 조선일보사 대구지국으로 직장을 옮긴 그는 10월에 잡지 별건곤대구이육사란 필명으로 대구사회단체개관이란 글을 발표했다. 193113일에는 조선일보에 이활이라는 본명으로 첫 시 을 발표했다. 그 뒤에도 대구격문사건을 빌미로 체포되어 두 달 동안 수감되었다가 풀려나는 등 시련이 거듭되었다.

 

아호(문인, 학자, 예술가 등의 본이름 외에 따로 지어 부르는 이름) 육사(陸史)’에 얽힌 사연

 

이육사는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었을 때의 죄수번호 264번을 빌려 대구이육사(大邱二六四)’라는 호를 썼다. 그러다 반드시 일제의 식민지가 된 조선의 불행한 역사를 뒤엎겠다는 의지로 죽일 육()’, ‘역사 사()’를 사용한 육사(戮史)’로 바꾸었다. 도중에 고기 육()’, ‘설사할 사()’육사(肉瀉)’를 쓰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안 어른 이영우가 육사(戮史)’란 호는 너무 노골적이라 일제의 눈총을 받을 수 있으니 무난하게 평평한 산꼭대기를 뜻하는 ()’ 자로 바꾸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하자 그 조언을 받아들여 육사(陸史)’라는 호를 사용했다.

 

의열단의 군사간부교육을 받다

 

19323, 조선일보사에서 나온 이육사는 만주의 펑톈을 거쳐 베이징에 갔을 때 밀양 출신으로 김원봉과 함께 의열단을 설립했던 애국지사 윤세주를 만났다. 그의 권유에 따라 이육사는 1020일 난징 근교 탕산에 의열단이 설립한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1기생으로 입교했다.

 

장제스(蔣介石)의 후원으로 설립된 이 학교의 정식 명칭은 중국국민정부 군사위원회 간부훈련반 제6였다. 학생들은 재학 중 중국 국민군 보통병사 상위의 신분으로 견습사관 대우를 받았고, 졸업한 뒤에는 소위로 임관하게 되어 있었다.

 

여기에서 그들은 아침 6시부터 저녁 9시까지 교양과목과 군사학을 교육받았다. 교양과목은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철학 등이고 군사학은 통신법, 선전법, 연락법 등을 비롯하여 탄약, 폭탄, 도화선, 뇌관 등 제조법, 폭탄 투척법, 피신법, 변장법, 서류은닉법, 삐라살포법, 암살법, 무기운반법, 철로폭파법, 열차운전법 등 다양했다. 교관은 한모, 왕현지, 김정우, 김원봉 등 중국인과 한국인이 뒤섞여 있었다.

 

1933423, 거행된 제1회 졸업식에는 교장 김원봉과, 남경중국일보 사장인 캉저(康澤)와 비밀공작법을 가르친 시에중용(協中庸) 등이 참석했다. 그때 이육사는 식후공연으로 준비한 연극 지하실의 대본을 쓰고 직접 연기자로 출연했다. 졸업식이 끝난 뒤에는 국내 노동자 농민에 대한 혁명의식 고취와 2기생 모집 임무를 부여받았다.

 

이육사는 그 후 베이징에 있는 북경대학 사회학과에 들어가 학업을 계속하는 한편 국내에서 발간된 대중창간 임시호에 평문 자연과학과 유물변증법을 게재했다. 같은 책 게재되지 못한 글 목록에는 이육사(李戮史)’레닌주의철학의 임무가 담겨있다.

러시아혁명의 성공과 함께 전 세계로 파급된 사회주의 사상에 깊이 빠져있었음을 알 수 있다. 5월에는 상하이에서 중국의 대문호 루쉰(魯迅)과 만나 교유했다.

 

총칼 대신 펜으로 일제와 맞서다

 

19337월 국내에 잠입하여 은밀하게 항일활동을 펼치던 이육사는 9월에 육사(陸史)’라는 필명으로는 처음으로 잡지 신조선에 시 황혼을 발표했다. 그런데 19343, 그가 군사간부학교 출신임이 밝혀지면서 경기도경찰부 형사들에게 체포되었다. 이때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면서 작성된 신원카드에 따르면 신분은 상민이었고, 신장은 약 165cm였다.

 

경찰은 이육사가 만주로 사라진 2년 전부터 요주의 인물로 지목하고 전국에 수배령을 내려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고문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중국에서의 행적에 대하여 비밀을 지킨 결과 석 달 뒤인 623일 기소유예 의견으로 석방될 수 있었다.

 

그해 7, 안동경찰서에서 작성한 이육사 감시보고서를 보면 석방 이후에도 경찰로부터 철저하게 감시받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배일사상, 민족자결, 항상 조선의 독립을 몽상하고 암암리에 주의의 선전을 할 염려가 있음. 민족공산주의로 전화하고 있는 것으로 본인의 성질로 보아서 개전의 정을 인정하기 어려움.'

 

본격적으로 문학의 길을 걷다

 

1935년부터 이육사는 정인보가 주도하는 신조선사에서 일하면서 신조선7편의 시를 발표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시인의 길을 걸었다. 이후 그는 중외일보사, 조광사, 인문사 등지로 일터를 옮겨 다니며 한시와 시조, 논문, 평론, 번역, 시나리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했다. 이 시기에 루쉰의 소설 고향을 번역하기도 했다.

 

193684, 이육사는 요양 차 머물고 있던 경주의 옥룡사에서 쓴 시조 두 수를 시인 신석초에게 보냈다. 이 작품들은 평시조의 자수율을 엄격하게 지킨 전형적인 시조로서 그의 문학적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뵈올까 바란 마음 그 마음 지난 바램.

하루가 열흘같이 기약도 아득해라.

바라다 지친 이 넋을 잠재울까 하노라.

 

1937에는 신석초, 윤곤강, 김광균 등과 함께 동인지 자오선을 발간하고 대표작 청포도, 교목, 파초등 상징적이고 서정성이 풍부한 시를 발표했다. 이어서 조광, 풍림, 문장선, 인문평론등의 지면을 통해 1941년까지 절정, 광인의 태양등 수많은 작품을 게재했다. 정한모 교수는 나라사랑16집에 실린 육사시의 특질과 시사적 의의에서 그를 이렇게 상찬(기리어 칭찬함)했다.

 

'그에 의하면 시는 행동이며 진정한 의미의 참여라고 한다. 그는 식민지적 압력에 대항하고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하여 대륙을 전전하며 숱한 고난과 역경을 체험하였다. 이러한 역경과 인고의 극복 노력은 기다림의 철학과 초인 의지로 승화된다. 온몸을 내던진 헌신적 투쟁의 수형(受刑-죄인이 형벌을 받음)의식으로 일제에 저항하여, 그러한 인고와 생명의 절정에서 끝없는 기다림과 초인에 대한 열망을 시로써 형상화함으로써 보다 진정한 저항 방식을 보여 준 것이다.'

 

베이징의 일본영사관 감옥에서 순국하다

 

19412, 이육사는 37세의 늦은 나이에 딸을 얻었다. 그는 기쁨 속에서도 경계하는 심정으로 딸의 이름을 기름지지 말라.’는 뜻의 옥비(沃非)’로 지었다. 하지만 호사다마라 했던가. 그해 4월에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을 겪었고, 가을에는 심해진 폐질환 때문에 성모병원에서 병마와 싸워야 했다. 모두가 잦은 투옥과 고문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1943년부터 태평양전쟁이 시작되자 일제는 한국인을 방패막이로 삼기 위해 내선일체를 표방하고 창씨개명을 강요하는 등 조선인에 대한 압박을 강화했다. 당시 일제가 일본어를 강요하고 한글 사용을 금지하자 분개한 이육사는 문예지에 한시(漢詩)만 발표하는 결기를 보였다.

 

그해 4, 그는 충칭과 옌안에 가서 무기를 들여와 일제와 싸우고자 했다. 하지만 7월 초순 어머니와 형의 소상을 치르러 일시 귀국했다가 동대문경찰서 형사들에게 체포되었다. 며칠 후 베이징으로 압송된 그는 현지의 일본영사관 감옥에서 갖은 고문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해는 의열단 단원이자 친척이었던 이병희가 수습하여 화장했고, 연락을 받은 동생 이원창이 유골을 서울로 가져와 미아리 공동묘지에 안장했다. 1960년에 그의 유해는 고향 원촌의 뒷산으로 이장되었다.

 

이육사는 일제 강점기 활동했던 수많은 문인들 가운데 끝까지 가장 진취적이고 적극적으로 일제에 저항했던 애국지사의 표상이었다.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수여되었다.

해방 후인 1946년 동생 이원조에 의해 유고집 육사시집초간본이 서울출판사에서 발간되어 그의 작품 20여 편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서문은 신석초, 김광균, 오장환, 이용악이 썼다. 같은 해 조카 이동영에 의해 재범조사에서 간행된 육사시집재간본에는 초간본에 2편을 더한 22편의 시가 소개되었다. 서문은 청마 유치환이 썼다.

 

이념으로 찢겨진 이육사의 형제들

 

이육사의 6형제는 모두 재주가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우애도 몹시 깊었다. 하지만 그들은 일제 강점기에 갖은 고통을 당했고, 해방 후에는 이념에 따라 남북으로 찢겨졌다. 월간조선20151월호, 김태완 기자의 이육사의 딸 이옥비 여사 인터뷰기사를 바탕으로 그들의 운명을 간략하게 재구성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이원기는 이육사를 비롯한 3명의 동생과 함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의 범인으로 검거된 뒤 대구형무소에서 가혹한 고문을 당한 끝에 불구의 몸이 되어 신음하다가 1942년 세상을 떠났다. 그에게는 1968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셋째 이원일은 위당 정인보 문하에서 공부했는데 스승으로부터 장안 3재의 1으로 손꼽힐 정도로 수재였다. 일찍이 서화가로 이름을 날렸지만 남로당 활동을 하다 월북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조선노동당 재산 담당 직책으로 남한에 내려왔지만 고향인 안동까지 내려가지는 못했다. 그의 아들 이동선은 아버지를 찾으러 홀로 월북했다가 현지에 정착했는데, 김일성대학을 졸업한 뒤 평양시장을 역임했다.

 

넷째 이원조는 일제 강점기에 호세이(法政)대학 불문과를 졸업한 뒤 조선일보 학예부 기자로 일했다. 문학평론가로서 예리한 필봉을 휘둘렀으므로 당대의 내로라하는 문인들도 두려워했을 정도였다. 그는 1928, 1929년 연속으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와 소설이 당선될 정도로 문재가 출중했다. 해방 후 좌파 문학단체인 문학가동맹에 가입한 뒤 임화, 김남천, 설정식과 함께 활동하다가 1946년 박헌영을 따라 월북했다.

 

다섯째 이원창1940년까지 조선일보 인천지국 주재기자로 일했고, 해방 후에는 인천신문 창간에 간여하여 사회부장을 지냈다. 진보당 당수 조봉암의 비서로 근무하다 요시찰인물이 되었는데, 한국전쟁 때 셋째 형 이원일을 만나러 북으로 갔다가 폭격으로 사망했다.

 

막내 이원홍도 문재가 뛰어나 형제들이 문학을 권유했지만 미술을 택했다. 그는 19세 때 첫 출품한 전국미술대회에 입선의 성과를 거두었지만 축하파티 도중 심장마비로 요절했다.

 

이처럼 이육사의 형제들은 해방 전후에 언론계와 문화예술계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지만 남북 분단의 희생양이 되면서 오늘날 저항시인으로 굳건하게 자리매김한 이육사처럼 뚜렷한 명성을 얻지는 못했다.

 

이상각

 

참고자료

새로 쓰는 이육사 평전김희곤 지음. 지영사. 2002.

이육사 전집김용직, 손병희 공저. 깊은 샘. 2004.

이 달의 독립 운동가 상세자료-이원록대한민국 국가보훈처. 1994.

월간조선20151월호. 가족 이야기-시인 이육사의 딸 이옥비김태완 기자

 

'작가 알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황진이  (0) 2023.07.19
채만식  (1) 2023.05.25
한용운  (0) 2023.04.06
윤동주  (0) 2023.04.05
연암 박지원  (0) 2023.02.04

태평천하 채만식

(비상 수록 부분)

 

[앞부분 줄거리] 서울의 대지주인 윤 직원(일제 강점기에, 향교나 경학원(조선 시대, 1887년에 성균관을 고친 이름)의 직무, 또는 그 직무를 맡아 하던 사람) 영감은 인력거의 삯도 깎으려 하고, 기생을 데리고 다니면서도 아무것도 주려고 하지 않는 구두쇠이다. 그런 그에게도 구한말 화적(불한당. 떼를 지어 돌아다니며 재물을 마구 빼앗는 사람들의 무리)들에게 아버지가 죽임을 당한 아픈 기억이 있다. 그래서 윤 직원 영감은 일본인들이 불한당을 막아 주고 자신의 안전을 보장해 준다고 생각하여, 진심으로 그들에게 고마워하여 경찰서 무도장을 짓는 데 아낌없이 기부한다. 그는 재산을 지키기 위해 양반을 사고 족보에 도금을 하는 한편, 손자 윤종수와 윤종학을 군수와 경찰서장으로 만들어 가문을 빛내고자 한다. 그러나 아들 윤창식은 노름을 하며 가산을 탕진하고, 손자 윤종수 또한 방탕한 생활을 한다. 며느리나 손자며느리도 고분고분하지가 않고 딸은 남편과 사별한 후 와서 같이 살고 있다. 윤 직원 영감은 일본에서 유학 중인 손자 윤종학에게 모든 기대를 걸고 있다.

 

 

[절정] 15. 망진자(亡秦者 )는 호야(胡也)니라- 진나라를 망하게 할 자는 호해라는 자식이라는 뜻 사건 전개를 암시함.

 

일찍이 윤 직원 영감은, 그의 소싯적 윤 두꺼비 시절, 재갸(자기 또는 자신을 뜻함) 부친 말대가리 윤용규(작중 인물들의 천박한 별명들로 풍자의 효과를 얻음.)가 화적의 손에 무참히 맞아 죽은 시체 옆에 서서, 노적(곡식 따위를 한데에 수북이 쌓음. 또는 그런 물건)이 불타느라고 화광(타는 불의 빛)이 충천(하늘을 찌를 듯이 공중으로 높이 솟아오른)한 하늘을 우러러

이놈의 세상, 언제나 망하려느냐?”

우리만 빼놓고 어서 망해라!”(윤 직원 영감의 비윤리적이고 이기적인 가치관)

하고 부르짖은 적이 있겠다요.(‘-겠다요’: 판소리적 문체 조롱하는 어투를 통해 인물에 대한 서술자의 부정적 태도를 드러냄.)

이미 반세기(半世紀) , 그리고 그것은 당시의 나한테 불리한 세상에 대한 격분된 저주요 겸하여 웅장(규모가 우람하고 으리으리하다- 반어적, 냉소적, 풍자적)한 투쟁의 선언이었습니다.(편집자적 논평)

해서 윤직원 영감은 과연 승리를 했겠다요.(편집자적 논평- 나라는 망했고, 윤 직원 영감은 부자가 됨) 그런데……

 

식구들은 시아버지 윤직원 영감이 보기가 싫은 건넌방 고 씨(‘윤 직원 영감의 며느리)만 빼놓고,

울 아씨(윤 직원 영감의 딸), 태식이(윤 직원 영감이 늘그막에 둔 어린 아들), 뒤채의 두 동서(큰손자 며느리 박 씨’, 둘째 손자 며느리 조 씨’), 모두 안방에 모여 종수(‘윤 직원 영감의 큰 손자)를 맞이하는 예를 표하고, 그들의 옹위(주위를 둘러쌈) 아래 윤 직원 영감과 종수는 각기 아랫목과 뒷벽 앞으로 갈라 앉았습니다. 방금 점심 밥상을 받을 참입니다.

너 경손 애비, 부디 정신 채리라!……

윤 직원 영감이 종수더러 곰곰이 훈계를 하던 것입니다. 안식구가 있는 데라 점잖게 경손 애비지요.

…… 정신을 채리야 헐 것이 늬가 암만히여두 네 아우 종학(‘윤 직원 영감의 둘째 손자 작품에서 유일하게 긍정적인 인물)이만 못히여! 종학이는 그놈이 재주두 있고, 착실히여서, 너치름(처럼) 허랑허지두(언행이나 상황 따위가 허황하고 착실하지 못하지도) 않고 그럴 뿐더러 내년 내후년이머넌 대학교를 졸업허잖냐? 내후년이지?”

.”

그렇지? , 그래, 내후년이먼 대학교 졸업을 허구 나와서, 3년이나 다직(‘기껏’) 4년만 찌들어나머넌 그놈은 지가 목적헌, 요새 그 목적이란 소리 잘 쓰더구나 응? 목적……. 목적헌 경부(대한 제국 때에, 경찰 고등관인 경시의 아래. 경부보의 위에 있던 판임 경찰관)가 되야 각구서, 경찰서장이 된담 말이다! ? 알겄어.”

.”

그러닝개루 너두 정신을 바싹 채리 각구서, 어서어서 군수가 되야야 않겄냐?…… , 동생놈은 버젓한 경찰서장인디, 형 놈은 게우 군서기를 댕기구있담! 남부끄러서 어쩔 티여? ?…… 아 글씨, 군수 되구 경찰서장 되구 허머넌, 느덜 좋구 느덜 호강이지. 머 그 호강 날 주냐? 내가 이렇기 아등아등(계속 기를 쓰며 우기거나 애를 쓰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 잔소리를 허넌 것두 다 느덜 위히여서 그러지, 나는 파리 족통(‘을 속되게 이르는 말)만치두 상관읎어야! 알어듣냐?”

.”

그놈 종학이는 참말루 쓰겄어! 그놈이 어려서버텀두 워너니(워낙) 나를 자별허게(본디부터 남다르고 특별하게) 따르구, 재주두 있구 착실허구, 커서두 내 말을 잘 듣구…… 내가 그놈 하나넌 꼭 믿넌다 꼭 믿어. 작년 올루 들어서 그놈이 돈을 어찌 좀 히피(헤프게) 쓰기는 허넝가 부더라마는, 그것두 허기사 네게다 대머는 안 쓰는 심이지. 사내자식이 너처럼 허랑허지만 말구서, 제 줏대만 실헐 양이면 돈을 좀 써두 괜찮언 법이여 …… 그리서 지난달에두 5백 원 꼭 쓸 디가 있다구 핀지히였길래 두말 않고 보내주었다!”

 

마침 이때, 마당에서 헴헴, 점잖은 밭은기침(병이나 버릇으로 소리도 크지 아니하고 힘도 그다지 들이지 않으며 자주 하는 기침.) 소리가 납니다. 창식이(‘윤 직원 영감의 아들) 윤 주사가 조금 아까야 일어나서, 간밤에 동경서 온 전보 때문에 억지로 억지로 큰댁 행보를 하던 것입니다.

 

윤주사는 토방으로 내려서는 아들 종수더러, 언제 왔느냐고, 심상히(대수롭지 않고 예사롭게) 알은 체를 하면서, 역시 토방으로 내려서는 두 며느리의 삼가로운 무언의 인사(근심스럽게 말없이 드리는 인사), 마루까지만 나선 이복 누이동생 서울 아씨의 입인사를 받으면서, 방으로 들어가서는 부친 윤직원 영감한테 절을 한자리 꾸부리고서(절을 한 번 하고서), 아들 종수한테 한자리 절과, 이복동생 태식이한테 경례를 받은 후, 비로소 한옆(한쪽 옆)으로 꿇어 앉습니다.

해가 서쪽으로 뜨겄구나?”

윤직원 영감은 아들의 이렇듯 부르지도 않은 걸음을, 더욱이나 안방에까지 들어온 것을 이상타고 꼬집는 소립니다.

…… 멋하러 오냐? 돈 달라러 오지?”

동경서 전보(‘윤종학의 피검(정부 기간에 잡혀 감)을 알리는 소재로, 극적 반전을 유도함)가 왔는데요 ……

* 전보의 기능

사실의 전달 윤종학이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가 피검되었음을 알림.

사건의 반전 사건 전개에 극적인 반전을 유도함.

미래의 암시 윤 직원 영감 집안의 몰락을 예고함.

인물의 제시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상황 때문에 작품 전면에 등장시키기 어려운 윤종학을 간접적오로 제시함.

지체(어떤 집안이나 개인이 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신분이나 지위)를 바꾸어, 윤주사를 점잖고 너그러운 아버지로, 윤 직원 영감을 속사납고 경망스런 어린 아들로 둘러놓았으면(방향을 바꾸어 놓았으면) 꼬옥 맞겠읍니다.(편집자적 논평 - ‘윤 직원 영감의 경망스러운 모습을 비꼼)

동경서? 전보?”

종학이놈이 경시청에 붙잽혔다구요!”

으엉?”

외치는 소리도 컸거니와 엉덩이를 꿍 찧는 바람에, 하마 방구들이 내려앉을 뻔했습니다. 모여선 온 식구가 제가끔 정도에 따라 제각기 놀란 것은 물론이구요.

윤 직원 영감은 마치 묵직한 몽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양 정신이 멍해서 입을 벌리고 눈만 휘둥그랬지, 한동안 말을 못하고 꼼짝도 않습니다.(충격을 받은 윤 직원 영감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표현)

 

그러다가 이윽고 으르렁거리면서 잔뜩 쪼글트리고 앉습니다.

, 웬 소리냐? 으응? 으응?…… 거 웬 소리여? 으응? 으응?”

그놈 동무가 친 전본가 본데, 전보가 돼서 자세는 모르겠읍니다.”

윤주사는 조끼 호주머니에서 간밤의 그 전보를 꺼내어 부친한테 올립니다. 윤직원 영감은 채듯 전보를 받아 쓰윽 들여다보더니 커다랗게 읽습니다. 물론 원문은 일문이니까 몰라보고, 윤주사네 서사(대서(代書)나 필사(筆寫)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 민서방이 번역한 그대로지요.

종학, - 상 관계-, - 시청에 피검!(‘윤종학이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하여 경시청에 잡혀감)…… 이라니 ? 이게 무슨 소리다냐?”

종학이가 사상관계로 경시청에 붙잽혔다는 뜻일 테지요!”

사상관계라니?”

그놈이 사회주의에 참예(참여)……

으엉?”

아까보다 더 크게 외치면서, 벌떡 뒤로 나동그라질 뻔하다가 겨우 몸을 가눕니다.

윤직원 영감은 먼저에는 몽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같이 멍했지만, 이번에는 앉아 있는 땅이 지함(땅이 움푹 가라 앉아 꺼짐)을 해서 수천 길 밑으로 꺼져 내려가는 듯 정신이 아찔했습니다.(‘윤종학이 잡혀갔다는 사실보다 사회주의에 참여했다는 사실에 더 놀라는 윤 직원 영감’)

그러나 그것은 결단코 자기가 믿고 사랑하고 하는 종학이의 신상을 여겨서 가 아닙니다.

윤 직원 영감은 시방 종학이가 사회주의를 한다는 그 한가지 사실이 진실로

옛날의 드세던 부랑당패가 백 길 천 길로 침노(성가시게 달라붙어 손해를 끼치거나 해치는)하는 그것보다도 더 분하고, 물론 무서웠던 것입니다.

 

()나라를 망할 자 호(: 오랑캐)라는 예언을 듣고서, 변방을 막으려 만리장성을 쌓던 진시황, 그는 진나라를 망한 자 호(: 오랑캐)가 아니요, 그의 자식 호해(胡亥)(소제목의 의미 - ‘윤 직원 영감을 진시황에, ‘윤종학을 호해에 비유하여 윤 직원 영감의 심리를 드러냄.)을 눈으로 보지 못하고 죽었으니, 오히려 행복이라 하겠습니다.

 

 

[결말] “사회주의라니? 으응? 으응?……

윤직원 영감은 사뭇 사람을 아무나 하나 잡아먹을 듯, 집이 떠나게 큰소리로 포효(咆哮)를 합니다.

…… 으응 ? 그놈이 사회주의를 허다니! 으응? 그게, 참말이냐? 참 말이여?”

허긴 그놈이 작년 여름방학에 나왔을 때버틈 그런 기미가 좀 뵈긴 했어요!”

그러머넌 참말이구나! 그러머넌 참말이여, 으응!…….”

윤직원 영감은 이마로 얼굴로 땀이 방울방울 배어오릅니다.

…… 그런 쳐 죽일 놈이, 깎어 죽여두 아깝잖을 놈이! 그놈이 경찰서장 허라닝개루, 생판 사회주의허다가 뎁다 경찰서에 잽혀 ? 으응?…… 오사(형벌이나 재앙으로 제 목숨대로 살지 못하고 비명(제 목숨대로 다 살지 못함)에 죽음) 육시(이미 죽은 사람의 시체에 다시 목을 베는 형벌을 가함.)를 헐 놈이, 그놈이 그게 어디 당헌 것이라구 지가 사회주의를 히여? 부자놈의 자식이 무엇이 대껴서 부랑당패에 들어?……

아무도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고개를 떨어뜨리고 섰기 아니면 앉았을 뿐, 윤 직원 영감이 잠깐 말을 그치자 방안은 물을 친 듯이 조용합니다.

…… 오죽이나 좋은 세상(‘윤 직원 영감이 말하는 태평천하를 의미함.)이여? 오죽이나 ……

 

윤직원 영감은 팔을 부르걷은 주먹으로 방바닥을 땅 치면서 성난 황소가 영각(소가 길게 우는 소리)을 하듯 고함을 지릅니다.

화적패가 있너냐아? 부랑당 같은 수령(守令)들이 있너냐?…… 재산이 있대야 도적놈의 것이요, 목숨은 파리 목숨 같던 말세(末世)(‘윤 직원 영감이 살았던 사회의 모습)넌 다 지내가고오……. 자 부아라, 거리거리 순사요, 골골마다 공명헌 정사(政事), 오죽이나 좋은 세상이여 …… 남은 수십만 명 동병(動兵)을 히여서, 우리 조선놈 보호히여 주니(일제 강점기), 오죽이나 고마운 세상이여? 으응 ?…… 제 것 지니고 앉아서 편안허게 살 태평세상, 이걸 태평천하(‘윤 직원 영감의 가치관1. 비뚤어진 역사의식을 드러냄)라구 허는 것이여 태평천하!…… 그런디 이런 태평천하에 태어난 부자놈의 자식이, 더군다나 왜지 가 떵떵거리구 편안허게 살 것이지(나라가 식민지 상황이건 말건 개인만 잘 살면 된다는 윤 직원 영감의 생각), 어찌서 지가 세상 망쳐 놀 부랑당 패(‘윤 직원 영감의 가치관2 사회주의를 부정적으로 생각함.)에 참섭(어떤 일에 끼어들어 간섭함)을 헌담 말이여, 으응?”

 

땅 방바닥을 치면서 벌떡 일어섭니다. 그 몸짓이 어떻게도 요란스럽고 괄괄한지, 방금 발광이 되는가 싶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모여선 가권(호주나 가구주에게 딸린 식구)들은 방바닥 치는 소리에도 놀랐지만, 이 어른이 혹시 상성(본래의 성질을 잃어버리고 전혀 다른 사람처럼 됨.)이 되지나 않는가하는 의구의 빛이 눈에 나타남을 가리지 못합니다.

…… 착착 깎어 죽일 놈!…… 그놈을 내가 핀지히여서, 백 년 지녁(징역. 죄인을 교도소에 가두어 노동을 시키는 형벌)을 살리라구 헐걸! 백 년 지녁 살리라구 헐 테여 ……. 오냐, 그놈을 삼천 석 거리는

직분(分財)하여 줄라구 히였더니(윤종학에게 재산을 나누어 주려고 했음.), 오냐, 그놈 삼천 석 거리를 톡톡 팔어서, 경찰서으다가 사회주의 허는 놈 잡어 가두는 경찰서으다가 주어버릴걸! 으응, 죽일 놈!”

마지막의 으응 죽일 놈 소리는 차라리 울음소리에 가깝습니다.

…… 이 태평천하에! 이 태평천하에 ……

쿵쿵 발을 구르면서 마루로 나가고, 꿇어앉았던 윤주사와 종수도 따라 일어섭니다.

…… 그놈이 만석꾼(곡식 만 섬가량을 거두어들일 만한 논밭을 가진 큰 부자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의 집 자식이, 세상 망쳐 놀 사회주의 부랑당 패에 참섭을 히여. 으응, 죽일 놈! 죽일 놈!”

연해 부르짖는 죽일 놈 소리가 차차로 사랑께로 멀리 사라집니다. 그러나 몹시 사나운 그 포효가 뒤에 처져 있는 가권들의 귀에는 어쩐지 암담한 여운이 스며들어(‘윤 직원 영감집안의 붕괴 암시), 가뜩이나 어둔 얼굴들을 면면상고(아무 말도 없이 서로 얼굴만 물끄러미 바라봄.), 말할 바를 잊고, 몸 둘 곳을 둘러보게 합니다. 마치 장수의 주검을 만난 군졸들처럼 ……

 

同志社,[동지사] 1948. 12. 5>

 

 

 

 

핵심 정리

 

1. 갈래 풍자 소설, 가족사 소설

2. 성격 비판적, 풍자적, 반어적

3. 시점 전지적 작가 시점

4. 배경 1930년대 일제 강점기, 서울

* 이 작품이 발표된 1930년대 후반은 일제가 우리의 민족 문화를 말살하고, 우리나라를 병참 기지화하여 인적· 물적 자원을 약탈하던 시기였다. 이로 인해 우리 민족이 겪은 심리적· 물리적 고통은 매우 극심했다. 그런데 윤 직원 영감이 이런 시대를 태평천하라고 인식하는 것은 그가 역사의식이 결여된 인물이며 친일파, 대지주로서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들에만 관심이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5. 제재 일제 강점기의 타락한 삶

6. 주제 부조리한 사회 현실에 대한 풍자적 비판

7. 특징

- 희화화의 방식으로 인물에 대한 풍자의 효과를 높임.

- 방언과 구어체 및 판소리 사설의 문체를 사용하여 작품에 생동감을 부여함.

8. 전체 구성

발단 인력거를 탄 윤 직원 영감이 그 삯 때문에 인력거꾼과 승강이(서로 자기주장을 고집하여 옥신각신하며 다툼)를 함.

전개 - ‘윤 직원 영감의 집안 내력과 재산 축적 과정을 제시함.

위기 - ‘윤 직원 영감은 둘째 손자인 윤종학에게 기대를 걺.

절정 - ‘윤 직원 영감윤종학이 사상 관계로 피검되었다는 전보를 받음.

결말 - ‘윤 직원 영감윤종학이 사회주의 운동을 한 것에 분노함.

 

9. 등장인물의 대조적 형상화

부정적 인물 긍정적 인물
윤 직원 영감’, ‘윤창식’, 윤종수 윤종학
작품의 전면에 등장함.
도덕적으로 타락했으며, 풍자와 비판의 대상이 됨.
작품 속에 실제로 등장하지 않음.
일제 강점기 현실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한 긍정적 인물임.

 

10. 서술상의 특징과 효과

 

서술상의 특징 효과
서술자의 편집자적 논평이 나타남.
‘-겠다요’, ‘-ㅂ니다등과 같은 어투를 사용함.
방언이나 비속어를 사용하고, 상황을 반어적으로 표현함.
서술자의 개입을 통해 작가의 의도대로 인물을 비판함.
경어체 문장을 통해 판소리하는 창자처럼 독자와 가까운 위치에서 인물을 조롱하고 희화화함.
방언, 비속어, 반어적 표현 등을 사용하여 대상을 희화화하고 격하하여 웃음을 유발함.

 

11. 채만식 소설에 나타나는 풍자

채만식의 소설에는 일제 강점기 지식인으로서 지녔던 시대 비판 정신을 풍자로 표현한 것이 많음.

• 「태평천하: 민족의식이 결여되고 이기적인 윤 직원 영감을 통해 당시 조선의 상황을 깊이 인식하고 비판함.

• 「레디메이드 인생: 일제 강점기 지식인이 겪는 경제적 고통과 지적 갈등을 지식인 스스로 풍자하는 형식을 취함.

• 「치숙: 작가가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인물의 입을 통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인물을 부정하는 풍자 기법을 사용함.

 

12. 제목 태평천하의 의미

윤 직원 영감이 인식하는 일제 강점기의 모습을 단적으로 드러낸 표현으로, 일반 민중에게는 일제 강점기가 견디기 힘든 고통스러운 시기였음.

윤 직원 영감의 잘못된 역사의식을 반어적으로 풍자함 반민족적, 반사회적, 친일적 성향을 지닌 사람들에 대한 풍자

 

13. 태평천하의 전통 계승 양상

 

태평천하는 우리 문학의 전통 중 판소리 사설의 수법과 놀부의 인간형을 계승하였다. 이 작품의 서술자는 ‘-입니다와 같은 경어체를 사용함으로써 독자와 가까운 위치에서 독자와 한편이 되어 등장인물을 조롱하고 있으며, 독자와 등장인물의 중간에서 등장인물을 평가하면서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또한 윤 직원 영감은 윤리나 도덕, 인정과 같은 덕목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의 이익과 돈만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놀부의 인간형을 계승하고 있다.

 

 

 

출처 : 비상(한) 문학 자습서

'고2 문학 > 고2 비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헷갈리지 말자! 비상(한) 1학기 기말 핵심 정리  (0) 2023.06.26
농가월령가(1월령)  (0) 2023.06.08
창 내고자 창 내고자~  (1) 2023.05.25
만흥  (5) 2023.05.25
이화우 흣뿌릴 제~  (0) 2023.05.25

() 내고쟈 창()을 내고쟈 작자 미상

 

 

(- 내면적 고뇌를 해소할 수 있는 매개체) 내고쟈 창()을 내고쟈 이내 가슴에 창() 내고쟈- ‘aaba’

고모장지(고무래 들창. ‘건설방과 방 사이, 또는 방과 마루 사이에 칸을 막아 끼우는 문. 미닫이와 비슷하나 운두가 높고 문지방이 낮다..) 셰살장지( 문살이 가는 장지(障紙).) 들장지(들창문. 들어올려서 매달아 놓게 된 장지.) 열장지 암돌져귀 수돌져귀(문짝을 문설주에 달아 여닫는 데 쓰는 두 개의 쇠붙이.) 목걸새(걸쇠를 거는 구멍난 못. 문고리에 꿰는 쇠. 문고리를 거는 기능을 함.) 크나큰 쟝도리(장도리-못을 박거나 끌을 사용할 때 쓰는 연장.) 바가 이내 가슴에 창()을 내고쟈

잇다감 하(너무) 답답ᄒᆞᆯ 제면 여다져 볼가 ᄒᆞ노라

 

 

[현대어 풀이]

창을 내고 싶구나, 창을 내고 싶구나. 이 내 가슴에 창을 내고 싶구나.

고모장지. 세 살장지, 들장지, 열장지, 암톨쩌귀, 수톨쩌귀, 배목걸쇠를 크나큰 장도리로 뚝딱 박아 이 내 가슴에 창을 내고 싶구나.

이따금 너무 답답할 때면 여닫아 볼까 하노라.

 

핵심 정리

 

1. 갈래 사설시조

2. 성격 해학적, 의지적

3. 제재

4. 주제 삶의 답답함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

5. 특징

- 마음에 창을 낸다는 기발한 발상을 통해 문학성을 획득함.

- 비애와 고통을 웃음으로써 극복하려는 해학성이 돋보임.

 

6. 표현상의 특징

반복 및 열거의 사용과 그 효과

반복(a-a-b-a의 문장 구조)과 열거(창의 종류와 부속품 등)을 통해 수다스럽고 과장된 표 현을 사용함. 해학성을 유발하며, 화자의 간절한 마음을 강조해 줌.

 

불가능한 상황의 설정 현실에서 일어나기 힘든 불가능한 상황으로, 화자의 정서가 매우 절박한 것임을 보여 줌.

독자들에게는 다소 엉뚱한 발상으로 여겨져 화자의 절박함과는 별개로 웃음을 자아내는 해학적 표현으로 인식됨.

 

 

 

'고2 문학 > 고2 비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농가월령가(1월령)  (0) 2023.06.08
태평천하[비상(한) 수록 부분]  (1) 2023.05.25
만흥  (5) 2023.05.25
이화우 흣뿌릴 제~  (0) 2023.05.25
수양산 바라보며~  (5) 2023.05.25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