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자의 열매 한강

 

[미래엔 수록 부분]

 

 앞부분 줄거리

 도시에서 사는 아내와 남편은 점점 서로 소통하지 못한다. 바닷가 빈촌에서 성장한 아내는 도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시에서 성장한 남편은 그런 아내를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결국, 자유를 꿈꾸던 아내는 마침내 침묵한다. 그러던 중 아내에게 연두색 피멍이 생기고, 그것은 점점 커져 그녀의 온몸에 퍼진다. 음식도 먹지 않고 베란다에서 햇볕을 쬐는 것만 좋아하던 아내는 점점 나무로 변해 간다.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은 그런 아내의 모습에 처음엔 놀라지만 그녀를 정성껏 돌본다. 말하는 것이 어려워진 아내는 어머니를 향해 마음속으로 편지를 쓴다.

 

 

 어머니.

 이제 어머니께 편지를 쓸 수 없게 되었어요. 어머니가 두고 가신 스웨터(생명의 근원인 모성(母性)을 환기함.)를 입어 볼 수도 없게 되었어요. 지난겨울 여기 올라오셨다가 깜빡 잊고 두고 가신 자주색 스웨터 말예요.

 그이가 출장 간 다음 날, 아침부터 오한이 들길래 그 옷을 입어 보았어요. 제때 빨아 두지 않았던 덕분에 묵은 반찬 냄새며 어머니 살냄새가 그대로 배어 있었어요. 다른 날 같으면 빨아 입었을지도 모르지만 너무 추워서, 또 그 냄새를 오랫동안 맡고 싶어서 그냥 입고 잠들어 버렸어요. 다음 날 새벽까지 오한은 멈추지 않고, 어머니, 얼마나 춥고 목말랐는지, 마침내 아침 햇빛이 안방 유리창에 비칠 때 나는 소리를 죽여 울었답니다. 그 따뜻한 빛을 좀 더 깊숙이 받아들이고 싶어서 베란다로 나가 옷을 벗었어요. 벌거벗은 살에 내리박히는 햇빛이 꼭 어머니 살내 같아서, 그 자리에 무릎을 끓고 앉아 어머니만 불렀어요.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요. 며칠일까 몇 주일일까, 아니면 몇 달일까요.(시간의 흐름을 느끼지 못함.) 제법 대기가 뜨거워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열기가 가시고, 그 뒤로 조금씩 쌀쌀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뿐이에요.

멀리 중랑천 너머 아파트의 창문들은 지금쯤 주황빛으로 밝혀졌겠지요. 거기 사는 사람들은 나를 볼 수 있을까요. 간선 도로에서 전조등을 내쏘며 달려가는 차들은 나를 볼 수 있을까요. 나는 지금 어떻게 생겼을까요.

 

 그이는 무척 친절해졌답니다. 커다한 화분을 구해 와서 거기 나를 심어 주었어요. 일요일이면 오전 내내 베란다 문턱에 걸터앉아 잔딧물도 잡아 줘요. 내가 수돗물을 싫어한다는 것을 기억하고는, 그렇게 피곤해만 하던 사람이 아침마다 물통 가득 뒷산 약수를 길어 와서 내 다리에 부어 준답니다. 얼마 전에는 기름진 새 흙을 한 아름 사 와서 갈아 주었어요. 비가 내린 다음 날, 오랜만에 도시의 공기가 깨끗해진 새벽녘이면 창문과 현관문을 활짝 열어 공기를 바꾸어 준답니다.

 

 이상하지요, 어머니. 보는 것, 듣는 것, 냄새 맡고 맛보는 것(동물적인 감각)이 없어도 모든 것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져요.(식물이 되어 오히려 주변을 생생하게 느끼는 ’) 선 도로를 거칠게 미끄러져 가는 차들의 질주를, 그이가 현관문을 열고 나에게로 다가오는 발소리의 미세한 울림을, 비 내리기 전이면 비옥한 꿈에 젖어 있는 대기를, 안개를 품은 새벽하늘의 희부연 빛을 나는 느껴요.

 가깝고 먼 곳에서 싹이 돋고 잎이 피는 것, 애벌레들이 알을 깨고 나오고, 개들과 고양이들이 새끼를 낳고, 옆 동 노인의 맥박이 멈출 듯 멈출 듯 멈추지 않고, 윗집 주방의 냄비에 시금치가 데쳐지고, 아랫집 전축 위에 놓인 항아리 가득 허리 잘린 국화 다발이 꽂히는 것을 느껴요. 낮이나 밤이나 별들은 유연한 포물선을 그리고, 해가 뜰 때마다 간선 도로변 플라타너스들의 몸은 간절히 그쪽으로 기울어집니다. 내 몸도 따라서 그쪽으로 활짝 펼쳐져요.(식물적인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것들)

이해할 수 있으세요? 이제 곧 생각할 수도 없게 되리라는 것을 알지만 나는 괜찮아요. 오래전부터 이렇게 바람과 햇빛과 물만으로 살 수 있게 되기를 꿈꿔 왔어요.

 어렸을 때 생각이 나요. 부엌으로 달려가 어머니 치마에 얼굴을 묻으면 아, 그 맛난 냄새. 참기름 냄새, 볶은 깨 냄새. 내 손에는 언제나 흙이 묻어 있었지요. 흙 묻은 손으로 어머니 치맛자락을 더럽히곤 했어요.

몇 살 때였을까요. 보슬비가 뿌리던 봄날 아버지가 모는 경운기에 실려 바닷가를 따라 달렸던 기억이 나요. 그때 나를 향해 웃어 주시던 우비 차림의 어른들, 젖은 머리카락이 이마에 찰싹 붙어서는 깡충깡충 뛰며 손 흔들어 대던 아이들의 얼굴이 팔랑개비처럼 맴돌아요.

 어머니한테 세상은 그 바닷가 빈촌이지요. 그곳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라셨지요. 그곳에서 아이를 낳고 그곳에서 일하고 그곳에서 늙어 오셨어요. 언젠가는 그곳의 선산 기슭에 아버지와 나란히 누우실 거예요.

 

 어머니, 어머니처럼 될까 봐 나는 멀리멀리 여기까지 떠나왔어요. 열일곱 살 때였지요. 무작정 집을 나와 달포(한 달이 조금 넘는 기간) 넘게 헤매 다녔던 부산, 대구, 강릉의 시가지들을 잊을 수 없어요. 일식당에서 나이를 속여 일을 하고 저녁이면 독서실에서 새우잠을 자면서도 나는 그곳이 좋았어요. 시가지의 휘황한 불빛, 시가지의 화려한 사람들이 좋았어요.

어머니, 낯선 사람들로 가득한 이 거리를 늙고 망가진 얼굴로 떠돌게 될 줄(도시 생활에 피폐해진 의 상태)을 그때는 몰랐어요. 고향에서도 불행했고 고향 아닌 곳에서도 불행했다면 나는 어디로 가야 했을까요.(삶이 방향성을 상실함.)

나는 한 번도 행복했던 적이 없었어요. 어떤 끈질긴 혼령이 내 목을, 팔다리를 옥죄며 따라다녔을까요. 아프면 울고 꼬집히면 소리치는 어린아이처럼, 나는 언제나 달아나고만 싶었어요. 울부짖고 싶었어요. 무엇이 나를 그토록 괴롭혀서, 무엇으로부터 달아나겠다고 나는 지구 반대편까지 가려고 했을까요. 왜 가지 못 했을까요, 바보처럼. 왜 훌훌 떠나 이 지긋지긋한 피를 갈지 못했을까요.(‘는 결혼 전에 외국에서 자유롭게 살고 싶어 했었음.)

 

 내 내장 속에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고 했어요. 먼 바람 소리 같은 것만 솨솨 메아리친다고 했어요. 손가락 끝으로 청진기를 두들기며 그 늙은 의사(‘의 상태에 대해 기계적인 진단만 내림.)가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어요. 청진기를 탁자에 올려놓은 의사는 초음파 검사기의 흑백 모니터를 틀었어요. 누워 있는 내 배에 희고 차가운 유액을 바르고는, 막대기처럼 생긴 차가운 기구로 명치에서 아랫배까지 살갗을 차근차근 문질러 내려갔어요. 그것을 통해서 내장들의 모습이 모니터에 나타나는 모양이었어요.

 노말(nomal-보통의, 평범한, 정상적인)인데.

 쯧, 하고 입맛을 다시며 의사가 중얼거렸지요.

 지금 보이는 게 위장인데……. 아무 이상 없어요.

 모든 것이 노말이라고 그분은 말했어요.

 위, , 자궁, 콩팥 모두 정상인데.

 그것들이 모두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것을 그는 왜 보지 못했을까요. 휴지를 몇 장 뽑아 유액을 대충 닦아 주더니, 일어나려고 하는 나에게 다시 누워 보라고 하고는 별반 아프지 않은 배 이곳저곳을 꾹꾹 누르기만 했어요. 아파? 하고 대뜸 반말로 묻는 그의 안경 쓴 얼굴을 쏘아보며 나는 연신 고개를 흔들었어요.

 여기도 괜찮고?

 여기도 안 아프고?

 안 아파요.

 

 주사를 맞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토악질을 했어요. 지하철 구내의 차가운 타일벽에 등을 대고 조그려 앉았어요. 통증이 멈추기를 기다리며 숫자를 세었어요.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고 그 의사가 말했거든요. 모든 것이 마음 탓이라고 스님 같은 말을 했어요. 마음을 편하게, 마음을 평화롭게, 하나, , , , 토하고 싶을 때는 숫자를 세면서, 한없이 평화롭게……. 기어이 눈물이 솟구칠 때까지 통증(식물로 변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고통)은 멈추지 않고, 거푸 위액을 게워 낸 뒤 엉덩이를 깔고 주저앉았어요. 흔들리는 지상이 제발, 멈추어 주기를 기다렸어요.

그것은 얼마나 먼 날의 일이었을까요.

 

 어머니, 자꾸만 같은 꿈을 꾸어요. 내 키가 미루나무만큼 드높게 자라나는 꿈을요. 베란다 천장을 뚫고 윗집 베란다를 지나, 십오 층, 십육 층을 지나 옥상 위까지 콘크리트와 철근을 뚫고(도시적 문명에 대한 비판과 거부) 막 뻗어 올라가는 거예요. 아아, 그 생장점(식물의 줄기나 뿌리 끝에 있으며 생장을 현저하게 하고 있는 부분) 끝에서 흰 애벌레 같은 꽃이 꼬물꼬물 피어나는 거예요. 터질 듯 팽팽한 물관 가득 맑은 물을 퍼 올리며, 온 가지를 힘껏 벌리고 가슴으로 하늘을 밀어 올리는 거예요. 그렇게 이 집을 떠나는 거예요. 어머니, 밤마다 그 꿈을 꾸어요.

 

 하루게 다르게 추어지고 있어요.(계절의 변화를 느낌.) 오늘도 세상의 땅에는 얼마나 많은 잎사귀가 떨어졌는지, 얼마나 많은 풀벌레가 죽어 갔는지, 얼마나 많은 뱀이 허물을 벗었고 어떤 개구리들은 일찌감치 겨울잠에 들었는지요.

자꾸만 어머니 스웨터 생각이 나요. 어머니 살냄새가 잘 기억나지 않아요. 그이더러 그 옷으로 내 몸을 덮어 달라고 말하고 싶지만 말할 길이 없어요.(식물로 변하여 말을 할 수가 없음.) 어쩌면 좋을까요. 그이는 말라 가는 나를 보면서 울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해요. 아시지요, 그이한테 가족은 나뿐이었어요. 그이가 부어 주는 약수에 따뜻한 눈물이 섞이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불끈 쥔 주먹이 겨냥할 곳 없어 허공을 휘저어 대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어머니, 무서워요. 내 사지를 떨구어야 해요(겨울이 되어 잎이 떨어짐). 이 화분은 너무 좁고 딱딱해요. 뻗어 나간 뿌리 끝이 아파요. 어머니, 겨울이 오기 전에 나는 죽어요. 이제 다시는 이 세상에 피어나지 못 하겠지요.

 

 뒷부분 줄거리

 남편은 나무가 된 아내를 화분에 옮겨 심는다. 하지만 겨울이 다가와 나무는 결국 시들어 버리고 마지막으로 열매를 남긴다. 남편은 아내가 남긴 열매(생태계의 순환적 삶을 이어가는 꼬리)를 화분에 심으며, ‘봄이 오면 아내가 다시 돋아날까.’라고 생각해 본다.

 

 

 

핵심 정리

 

1. 갈래 현대 소설, 단편 소설

2. 성격 생태적, 환상적, 회상적

3. 배경 시간 : 1990년대 / 공간 : 서울

4. 주제 도시 문명의 황폐함을 비판하고 자연 순환적인 생명성을 소망함.

5. 구성

      발단 바닷가 빈촌에서 성장한 아내는 도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시에서 성장한 남편과 점차 소통하지 못함.

      전개 자유를 꿈꾸던 아내는 마침내 침묵하고, 아내에게 생긴 연두색 피멍은 서서히 온몸으로 퍼짐.

      위기 아내는 음식도 먹지 않고 베란다에서 햇볕을 쬐며 시간을 보내게 되고, 남편은 어느 날 식물로 변한 아내의 모                    습을 발견함.

      절정 식물이 되어 말을 못하는 아내가 마음속으로 어머니에게 편지를 씀.

      결말 화분에 옮겨 심어진 아내는 늦가을이 되자 결국 시들어 버리고 마지막 열매를 남rla.

 

6. 특징

       - 어머니에게 마음속 편지를 쓰는 형식으로 설정하여 생명의 근원인 모성(母性)을 환기함.

       - 주인공이 식물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생태학적 세계관을 드러냄.

       - 식물로 변해 가는 주인공의 상태를 다양한 감각적 이미지로 형상화함.

7. 해제

 이 작품은 사람이 나무로 변하는 비현실적인 상황을 설정하여 현대 사회의 폭력성을 비판하고 있는 소설이다. 등장인물인 아내는 콘크리트 속에서 점점 더 병들어 가며 말수가 줄어들고, 서서히 인간의 육체를 잃고 식물의 상태로 변화해 간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이러한 상상을 통해 작가는 도시의 인공적인 세계로부터 벗어나 자연스러운 순환 속에 있는 본원적 생명의 세계를 꿈꾸고 있다.

 

8. 작가

   한강(1970~ )

 소설가.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났으며, 소설가 한승원의 딸이다. 1993문학과 사회겨울호에 <서울의 겨울> 등 시 4편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이듬해에는 서울신문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었다. 섬세한 감성과 시적인 언어로 사회의 여러 문제를 근원적으로 진단하는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등이 있으며, 2016년에는 소설 채식주의자로 영국의 맨부커국제상을 수상하였다.

 

 

 

출처 : 미래엔 문학 교과서 + 미래엔 문학 자습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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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부

 

 

(‘민중상징)는 서로 어우러져

기대고 산다.』                                    의 속성서로 의지하며 살아감.

햇살(시련, 고통) 따가워질수록

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부정적 상황에서도 긍정적 태도를 보임.)

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

                                                                                                 1: 고난을 이겨 내고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민중의 모습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더 튼튼해진 백성()들을 보아라.』       의 속성힘을 합쳐 더욱 강하게 맞서 싸움.

죄도 없이 죄지어서 더욱 불타는(역설법, 무고하게 억압받는 민중의 모습)

마음들을 보아라. 벼가 춤출 때,

벼는 소리 없이 떠나간다.(희생적인 사랑을 실천함.)

                                                                                                2: 공동체 의식으로 더 튼튼해진 민중의 생명력

 

벼는 가을 하늘에도

서러운 눈 씻어 맑게 다스릴 줄 알고(서러움을 승화시킴 자기 정화)

바람 한 점에도

제 몸의 노여움을 덮는다.(노여움을 절제함.)의 속성서러움과 노여움을 승화시켜 성숙해짐.

저의 가슴도 더운 줄을 안다.(저항 의식을 지닌 민중의 모습)

                                                                                                3: 서러움과 노여움을 승화시키는 민중의 성숙한 모습

 

벼가 떠나가며 바치는

이 넓디넓은 사랑,의 속성희생적인 사랑을 바칠 줄 앎.

쓰러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서(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민중의 모습) 드리는

이 피 묻은 그리움,(민중이 열망하는 염원-자유, 평등)

이 넉넉한 힘(민중의 저력)…….

                                                                                             4: 희생적인 사랑을 하고 고난을 이겨 내는 민중의 힘

 

                                                                                                                                                              “우리들의 양식”(1974)

 

 

 

핵심 정리

 

1. 갈래 자유시, 서정시, 참여시

2. 성격 참여적, 예찬적, 상징적

3. 제재

4. 주제 민중의 공동체적 유대감과 강인한 생명력 예찬

5. 특징

             - ‘의 생장과 수확 과정에 따라 단계적으로 시상을 전개함.

             - 대상을 의인화하여 가 지닌 속성을 예찬함.

6. 해제

 이 작품은 의 다양한 모습을 통해 이 땅에서 살아온 민중의 한과 공동체 의식을 형상화하고 있는 시다. 의인화의 비유, 상징 등의 기법을 통해 벼의 생장 과정과 수확 과정을 그리는 동시에 민중이 지닌 기질과 덕성을 예찬하고 있다. 1970년대라는 그늘진 한국의 현대사를 경험한 작가는 전쟁과 독재 체제, 산업화의 그늘 속에서 희생을 감내해야 했던 민중들에 대한 깊은 관심과 사랑을 시로 담아 내었다.

 

7. 작가

   이성부(1942~2012)

 시인. 전라남도 광주 출생으로 광주고등학교 재학 당시에 전남일보신춘문예에 시 <바람>이 당선되었다. 언론 활동을 하면서 연작시 <전라도>를 발표하여 당대의 암울한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는 현실 참여적인 시 세계를 확립해 나갔다. 고통스런 농촌의 현실을 정직하게 노래하는 한편, 전통적 서정과 민중의 연대감을 지켜 가기 위해 애를 썼다. 민중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공동체적 삶의 정결성과 도덕성에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시적 상상력과 서정성을 잃지 않는 유연함을 지닌 것이 특징이다. 시집으로 이성부 시집, 우리들의 양식, 백제행, 전야, 빈산 뒤에 두고, 야간 산행등이 있고, 주요 작품으로는 <>, <산길에서>, <전라도7> 등이 있다.

 

 

2018학년도 고1 모의고사 기출 문제로 실력 점검하기

 

[36~39]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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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창 시절에는 유별나게도 학년이 바뀌고 반이 바뀌어 친구들과 뿔뿔이 흩어져야 하는 신학기가 싫었다. 마음으로 간절히 원했던 친구는 거의 언제나 다른 반으로 가 버렸고, 한 반이 되지 않기를 빌고 빌었던 친구는 어김없이 한 반으로 편성되곤 하는 불행 아닌 불행 앞에서 얼마나 많이 속상해 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학년이 바뀌면 처음 얼마 동안은 늘 마음을 잡지 못했다. 아침에 눈을 떠 학교에 갈 일을 생각하면 가슴 한쪽이 싸늘해지곤 하던 그 느낌을 지금도 나는 선연히 떠올릴 수가 있다.

(중략)

이제는 반이 나뉘고 새로운 급우들한테서 낯섦을 실컷 맛봐야 하는 신학기 따위는 영영 내 곁에서 사라졌다. 그 대신 사랑하고 믿어 주는 것보다 시기하고 미워하며, 또는 빼앗고 속이는 일이 더 많은 황폐한 세상살이에 낯가림하며 사는 나날속으로 내던져지고 말았다. 망망대해를 헤매는 것처럼 힘든 인생의 항해는 신학기 잠시의 외로움을 극복하는 일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두려움 가득한 일이다. 삶은 고난 투성이고 끝없는 인내를 요구하기만 하는데, 홀로 헤치는 파도는 높고 거칠기만 한 것이다. 바로 이때에 영혼을 함께 나눌 친구가 절실히 필요해진다. 인생이란 험난한 항해를 같이 겪고 있다는 동지애를 느낄 수 있는 친구, 혹은 내 삶의 따뜻한 동반자라는 느낌이 전해져 오는 친구와 같이 있는 시간에는 이 세상도 한번 살아 볼 만하다는 용기가 솟는다. 그런 친구와 돈독한 우정을 서로 교환하고 있는 이들이라면, 적어도 실패한 삶은 아니라고 단정할 수 있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그런 우정을 가꾸는 이들을 종종 만난다. 비록 나의 친구는 아니지만 그 모습을 보는 일은 참 아름답다. 언젠가 친구가 사업에 실패해서 낙향하여 쓸쓸히 살아가는 것을 안쓰러워하다 못해 자기도 다니던 직장을 정리하고 가족과 함께 시골로 내려가 친구 옆에서 땅을 일구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다. 이미 결혼하여 각각의 식솔을 이끌고 있는 두 사람한테는 참으로 어려운 결정이었겠지만, 양쪽 집의 가족들 모두는, 한결같이 이렇게 말하였다. 냉혹한 이 세상에 대항하기 위해 두 집이 힘을 합쳤으니 얼마나 든든하냐고. 누군가는 말했다. 친구 없이 사는 일만큼 무서운 사막은 없다고. 또 누군가는 말했다. 친구 없이 사는 것은 증인 없이 사라지는 일이라고.

- 양귀자, 사막을 같이 가는 벗-

 

 

() 우리가 눈발이라면

허공에서 쭈빗쭈빗 흩날리는

진눈깨비는 되지 말자.

세상이 바람 불고 춥고 어둡다 해도

사람이 사는 마을

가장 낮은 곳으로

따뜻한 함박눈이 되어 내리자.

우리가 눈발이라면

잠 못 든 이의 창문 가에서는

편지가 되고

그이의 깊고 붉은 상처 위에 돋는

새살이 되자.

- 안도현, 우리가 눈발이라면-

 

 

() 벼는 서로 어우러져

기대고 산다.

햇살이 따가워질수록

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

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더 튼튼해진 백성들을 보아라.

죄도 없이 죄지어서 더욱 불타는

마음들을 보아라. 벼가 춤출 때,

벼는 소리 없이 떠나간다.

 

 

벼는 가을 하늘에도

서러운 눈 씻어 맑게 다스릴 줄 알고

바람 한 점에도

제 몸의 노여움을 덮는다.

저의 가슴도 더운 줄을 안다.

 

 

벼가 떠나가며 바치는

이 넓디넓은 사랑,

쓰러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서 드리는

이 피 묻은 그리움,

이 넉넉한 힘…….

- 이성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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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 ~ ()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는 계절적 배경을 드러내는 소재를 통해 경건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는 구체적 지명을 제시하여 향토성을 드러내고 있다.

()()는 대상을 의인화하여 말을 건네는 방식으로 친근감을 드러내고 있다.

()()는 동일한 시어를 반복하여 시적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는 명사형으로 마무리함으로써 독자에게 여운을 주고 있다.

 

 

37. ~ 에 대한 이해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 : 글쓴이가 세상살이에서 헤쳐 나가야 할 고난을 의미한다.

② ㉡ : 글쓴이에게 부정적 의미의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③ ㉢ : ‘함박눈과 대조적인 의미를 지닌 시어이다.

④ ㉣ : ‘편지’, ‘새살처럼 세상에 필요한 존재이다

⑤ ㉤ : 화자에게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매개체이다.

 

38. ()<보기>와 같이 구조화할 때, 이해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A]

학창시절

                              경험                                          ⇒ [C]

[B]                                                                           깨달음

학창시절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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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글쓴이는 신학기 때 원했던 친구들과 반이 달라져 낯섦과 외로움을 경험했다.

[B] : 글쓴이는 [A]보다 세상살이가 더 힘들다는 것을 절실하게 경험했다.

[B] : 글쓴이는 사업에 실패해서 낙향한 친구와 함께 시골에서 돈독한 우정을 나누었다.

[B] : 글쓴이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힘든 삶을 함께 헤쳐 나갈 친구가 있다면 실패한 삶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C] : 글쓴이는 [B]의 경험을 통해 힘들 때 진정한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친구의 필요성을 느꼈다

 

 

39. <보기>를 바탕으로 ()에 드러난 벼의 속성을 민중의 모습과 연결했을 때,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이성부의 는 벼의 속성을 민중과 연결시켜 희생과 인내를 통해 고난에 대응하는 민중의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 주고 있다. 이를 통해 고통스러운 현실에 분노와 절망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내면을 다스리고 서로 단결하는 공동체 의식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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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의식 서로 어우러져 기대고 산다

인내심 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

단결력 서로 몸을 묶어 더 튼튼해진다.

희생정신 사랑을 바치고 떠나간다.

생명력 쓰러져도 다시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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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                     ② ⓑ                        ③ ⓒ                      ④ ⓓ                     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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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지 이근삼

 

등장인물 중년 교수(본직(本職) 번역), , 장남, 장녀, 감독관, 천사

 

앞부분 줄거리

막이 오르면 장녀가 등장하여 관개들에게 가족을 소개하고, 장남이 등장하여 자신을 소개한다.(‘장녀장남은 극중 인물이면서 해설자 역할도 함.) 이어 원고지를 붙여 만든 양복을 입고 허리에 쇠사슬을 두른 교수가 나와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준다. 처는 교수에게 번역 일을 재촉하고, 교수는 이성이 마비된 듯 혼란스러워 한다.

 

교수 (신문을 혼자 읽는다.) 참 비가 많이 왔군. 강원도 쪽에 눈이 굉장한 모양인데. 또 살인 이야, 이번엔 두 살 난 애가 자기 아비를 죽였대. 참 지프차가 동대문을 들이받아 동 대문이 완전히 무너졌군.(비정상적인 사건들 부조리한 현대 사회의 모습) 지프차는 도망가 버리구. 이것 봐, 개성을 잃은 노동자-개성을 잃은 현대인의 모습 드러냄.라는 번역품이 착취사(노동자를 착취하여 돈을 버는 회사를 상징함.)에서 다시 나왔어. 이 씨가 또 당선됐군. 신경통에 듣는 한약이 새로 나왔는데. 끔찍해라. 남편이 자기 아내한테 또 매 맞았군.

 

처가 신문지를 한 장 다시 접는다. 날짜를 보더니

 

처 당신두 참, 그건 옛날 신문이에요. 오늘 것은 여기 있는데.

교수 (보던 신문 날짜를 읽고) 오라, 삼 년 전 신문을 읽고 있었군. 오늘 신문 이리 주시오. (오늘 신문을 받아 가지고 다시 읽는다.) , 비가 많이 왔군. 강원도 쪽에 눈이 굉장한 모양인데, 또 살인이야. 이번엔 두 살 난 애가 자가 자기 아비를 죽였대. , 지프차가 동대문을 들이받아 동대문이 완전히 무너졌군. 지프차는 도망가 버리구. 이것 봐, 개성을 잃은 노동자라는 번역품이 악마사에서 다시 나왔어. 이 씨가 또 당선됐군. 신경통에 듣는 한약이 새로 나왔는데. 끔찍해라. 남편이 자기 아내한테 또 매 맞았군.(삼 년 전 신문의 내용이 오늘 신문에서 다시 반복됨 현대인의 반복적이고 지루한 일상을 상징적으로 드러냄.)

 

처 참, 세상도 무척 변했군요. 삼 년 전만 해도 그런 일이 없었는데, 당신 피곤하시죠?

장녀 (옆방에서 화장을 하며, 장남에게) , 시계가 좀 늦는데 일어선 김에 밥이나 좀 줘라.

 

장남, 시계에 밥을 준다.

 

처 여기 좀 계세요. 저 밥을 좀 지을게요.(시계에 밥을 주는 행위와 동일한 의미를 지님. 시계에 밥을 주어 끝없이 돌아가게 하는 것처럼, 교수가 끝없는 노동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

교수 괜찮아. 밥 먹었어.

처 어디서요?

교수 여기서 먹었던가? 아니야, 거기서 먹었던 거 같기도 하구.(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이성적 판단을 하지 못함.)

처 언제요?

교수 오늘 아침에도 먹었구, 점심두……. 글쎄……. 그러다 보니 밥을 먹었는지 분간을 못 하겠군.

처 지금 하시는 번역은 언제 끝나요?

교수 지금 하는 번역이 몇 가지나 있지?

처 그러니까 밤낮 원고료를 잘리우지요. 자존심의 문제, 예술에 있어서의 창조성, 어떤 여자의 고백(돈을 벌기 위해 번역 일에 파묻혀 사는 교수의 상황을 나타냄.)……. 이렇게 뿐인가요?

교수 그렇겠지. 아이 피곤해.

처 어떤 것이건 빨리 끝내야지, 어떻게 해요. 집도 수리해야겠구, 축음기도 사야겠구, 또 이달에 아버지 생일도 있잖아요.(교수가 많은 번역 일을 해야 하는 이유)

교수 밤낮 생일을 치르고 있으니 어떻게 된 거요? 어제도 아버지 생일잔치를 했는데.(자신이 버는 돈의 사용 내역을 잘 모른 채 일만 함.)

처 당신두 참! 어제는 당신 아버지 생일이었어요. 이번엔 우리 아버지 생일구.

교수 그저께도 누구 아버지 생일이라고 해서 돈 만 환을 내지 않았소?

그건 대식이 동생 사촌의 며느리뻘 되는 여자의 아버지 생일이래서 그랬지요.(교수와 관련이 없는 사람의 생일까지 챙김. 교수가 지는 책임감이 크다는 것을 과장하여 제시함.)

교수 그 바로 전날에도 누구 아버지 생일이라고 해서 돈을 냈는데.

처 그건 순자 언니 조카뻘 되는 며느리 시누이의 아버지…….

교수 됐어, 됐어. (크게 하품을 하며) 아이, 피곤해.(이때 밖에서 시계가 여덟 시를 친다. 교수는 깜짝 놀라 일어선다.) 여덟 시야! 여덟 시! 늦겠군.

처 어디 가세요?

교수 어디 가긴 어디 가. 나 가는 데 모르시오? 옷 갈아입어야지.

 

전번(지난번) 모양 철쇄(가장으로서 끊임없이 노동을 하고 돈을 벌어야 하다는 의무감. 현대인들이 느끼는 구속과 책임감, 중압감)를 졸라맨다. 이어 도어 쪽으로 가서 철문 같은 도어를 열고 밖으로 나간다. 잠시 후 다시 들어온다.

 

처 왜 또 돌아오세요? 나가시기가 바쁘게.

교수 여덟 시를 치기에 아침 여덟 신 줄 알았지. 대학에 강의하러 나간다고 나섰더니 밖이 캄캄하지 않아. 생각해 보니 밤 여덟 시군. (소파에 누우면서) 오늘 밤은 좀 푹 쉬어야겠군.

처 공부는 안 하세요?

교수 공부?

처 아, 번역 말이에요.

교수 좀 쉬어야겠어.

처 그럼 좀 쉬다가 일어나세요. 전 옆방에 좀 갔다 오겠어요. 참 당신두 옷 좀 갈아입으세요.

 

전번 모양 철쇄를 바꾸어 맨다. 이어 퇴장.

 

교수 아이, 피곤해.

 

이때 고요한 음악이 들린다. 눈을 감고 자는 교수의 얼굴에 처음으로 미소가 돈다. 잠시 후 응접실 불이 서서히 꺼지고 플랫폼(역에서 기차를 타고 내리는 곳. 여기서는 연극 무대 위에 조금 높게 만든 단.) 방이 다시 나타난다.(공간이 다름을 나타내기 위한 장치.) 소파 앞에 초라하게 앉아 있는 처(남편 앞에서와는 다른 모습남편에게는 독촉하는 입장이었지만 자녀들에게는 독촉의 대상이 됨.)와 소파 앞에 자리 잡고 있는 장남, 장녀.

 

장녀 (처에게 명령조로) 양말, 하이힐!

장남 (처에게 명령조로) 잠바, 머플러!(명령조, 일방적 요구 소통이 부재한 현대 사회의 가족 관계를 보여 줌.)

 

처는 말이 떨어질 때마다 알았다는 듯이 머리를 끄덕이며 순응한다.(자녀의 물질적 욕망을 채워 주는 것이 부모의 의마라고 생각함.)

 

장녀 용돈, 교과서, 과자!

장남 떡국, 만둣국, 설렁탕!

장녀 영홧값, 연극값, 다방값!

장남 교제비, 차비, 동창회비!

 

장남, 장녀 같이 손을 내밀면서,

 

장녀 돈!

장남 돈!

장녀 자식에 대한 책임!

장남 자식에 대한 책임!

 

플랫폼 밤의 불이 꺼지며 다시 응접실이 밝아진다. 소파에 누워 철쇄마저 어느 사이에 풀어헤치고 행복하게 잠자는 교수가 보인다. 시계가 아홉 시를 친다. 시간이 한 시간 경과하였으믈 표시한다. 이때 창문을 열고 감독관이 방 안을 들여다본다. 얼굴이 흉측하게 생긴 데다 아래위를 까만 옷으로 차리고 있어 지옥의 옥리를 방불케 한다. 긴 회초리를 든 손을 방 안에 밀어 넣더니 잠자는 교수를 회초리로 때린다. 교수가 눈을 비비며 일어난다.

 

감독관 원고! 원고!

교수 (일어나며) , 곧 됩니다. 또 독촉이군.

감독관 (책상을 가리키며) 원고! 원고!

 

교수, 소파 한구석에 있던 가방을 집어 갖고서 황급히 책상에 가 앉는다. 가방에서 원고를 끄집어 내고 책을 펼친다.

 

감독관 원고! 원고!

 

이윽고 교수는 번역을 시작한다. 감독관이 창문을 닫고 사라진다. 처가 들어온다. 큰 자루를 손에 들고 있다.

 

처 어머나! 그렇게 벌거벗고 계시면 어떡해요.

 

막대기에 감긴 철쇄를 줄줄 끌어다 교수 허리에 감아 준다.(교수에게 다시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지워 줌.)

 

처 감기에 걸리면 큰일 나요.(진심으로 걱정하기보다는 감기에 걸려 원고를 쓰지 못하게 될까 봐 걱정함.)

 

교수는 말없이 번역을 한다. 처는 의자를 하나 끌어다 교수 옆에 앉더니 큰 자루를 벌리고 교수를 주시한다.

 

처 빨리! 빨리!

 

교수가 말없이 원고지 한 장 쭉 찢어 처에게 넘겨준다. 처는 빼앗듯이 원고지를 가로채더니 자루 안에 쓸어 넣는다. 그리고

 

처 삼백 환!(원고를 물질적인 가치로 환산함. 물질주의적 사고방식)

 

재빠르게 다음 페이지의 번역을 끝낸 교수가 다시 한 장을 찢어 처에게 넘긴다. 처는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처 육백 환! (이어) 구백 환!

 

플랫폼 방이 다시 밝아진다. 달콤한 음악과 더불어 장남, 장녀가 또 무엇을 먹으면서 거울 앞에 가더니 얼굴의 여드름을 짠다. 옆방에서는 여전히 교수와 처가 결사적으로 일을 한다. 처의 요란스러운 셈 소리가 삼천 환을 훨씬 넘었다. 감독관이 다시 창가를 지나가며 기웃거리고 사라진다. 일하던 교수가 갑자기 붓을 놓고 쓰던 원고지를 보더니 슬그머니 미소를 짓는다.

 

처 왜그러세요?

교수 참 신기한 일이야.

처 삼천 환을 겨우 넘었을 뿐인데 무엇이 신기해요.

교수 이 원고지(일상의 규격화된 틀. 물질적 가치, 노동의 결과물) 말이오. 다 이백 자 칸이 있는데 이 종이만은 백구십 자 칸(잠시 현실에서 벗어난 일탈, 여유, 해방)밖에 안 들었어. 열 자 모자라. 어째서 그럴까? 원고지가 한결 크고 시원해 보이는군. 마음이 탁 트이는 것 같다. 이상한데, 이상해.

 

교수는 여전히 미소를 지으면서 전면을 바라본다. 이때 무대 전체가 어두워지고 스포트라이트가 교수만을 포착한다. 잠시 모든 것이 조용해지며 과거를 상기시키는 감상적인 음악이 고요히 흘러나온다. 교수 전면에 또 하나의 스포트라이트가 투사되며 천사가 역시 미소를 지으며 가벼운 발레를 추면서 들어온다. 교수는 천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교수 (한참 있다) 오라, 생각이 나는 것 같아. 그래 바로 그거.(규격화된 틀을 깬 원고지를 보고 지난날의 꿈과 이상이 생각남.)

천사 나를 완전히 잊은 줄 알았어요.

교수 (일어서며) 분명 그래. 아직 잊지를 않았어. 나의 희망, 나의 정열의 옛 모습이야.

천사 쥐꼬리만 한 기억력이 아직 남아 있군요.

교수 언제 어떻게 돼서 당신과 헤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나에게도 불타는 듯한 정열이 있었어요. 그래요, 생각이 납니다. 밤을 새워 가며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진리를 위해 온 생애를 바치겠노라고 떠들던 때…….(꿈과 희망, 정열이 있던 지난날) , 꿈같은 시절이었습니다. 당신은 왜 나를 버렸어요?

천사 당신이 나를 떠났지요. 당신을 돕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미 늦었어요. 나한테 되돌아오기는 너무 늦었어요.

교수 내 꿈을 도로 찾아 주십시오. 생각할 힘을 주시오. 요즈음은 통 사고를 할 수가 없습니다.

천사 사고(생각하고 궁리함)할 필요가 없어요. 이미 사고(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가 난 걸요.

교수 이 함정에서 뛰어나가고 싶습니다. (천사가 서서히 사라진다.) 가지 마시오! 내 희망, 내 정열은 어떻게 되는 거요. 꿈을 주십시오! 내 꿈! 내 꿈!

 

꿈을 잃은 교수는 맥없이 전면을 바라보며 앉아 있다. 어둠 속에서 창을 여는 소리가 나며, 감독관이 얼굴을 나타낸다.

 

감독관 (회초리를 흔들며) 원고! 원고는 언제 쓰는 거야?

 

이 소리에 교수는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다시 비참한 표정으로 번역을 계속한다. 이러는 사이에 무대 전체가 암흑화된다. 잠시 후 새소리, 닭 우는 소리와 더불어 무대 전체가 밝아진다. 아침이다. 교수는 책상에 머리를 박은 채 자고 있다. 플랫폼 방에서는 장남이 반나체가 돼서 아령을 쥐고 운동을 하고 있다. 장녀가 아침 신문을 들고 응접실로 들어온다.

 

장녀 (관객들에게-관객들에게 상황을 설명함관객의 극중 몰입을 방해하여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도록 함.) 벌써 아침이 됐습니다. (자고 있는 교수를 가리키며) 아버지는 연구하시다 가끔 그대로 책상에서 주무신답니다. 그야말로 학자지요.(반어적 표현 공부나 연구보다는 돈 버는 일만 하는 모습) 여러분은 아침에 어머니가 먼저 안 나오시고 제가 이 방에 대신 왔다는 점을 이상하게 생각하실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니는 아침 일찍이 아버지 원고를 가지고 출판사로 달려갔으니 이렇게 제가 대신 왔습니다. 아시겠지요. 아버지가 밤늦도록 수고하시니 저도 아버지를 위해 한 가지 좋은 일은 해 드리고 있습니다. 아침마다 아버지께 신문을 읽어 드립니다. (교수를 깨운다.) 아버지. (교수, 눈을 비비며 머리를 든다.) 아버지, 아침 신문 왔어요. 읽어 드리겠어요.

교수 (하품을 하며) 그래, 읽어다오.

장녀 (신문을 읽는다) 비가 많이 왔어요. 강원도 쪽에 눈이 굉장한 모양이에요. 또 살인입니다.. 이번엔 두 살 난 애가 자가 자기 아비를 죽였대요. , 지프차가 동대문을 들이받아 동대문이 완전히 무너졌답니다. 지프차는 도망가 버리구. 이것 봐요, 개성을 잃은 노동자라는 번역책이 악마사에서 다시 나왔어. 이 씨가 또 당선됐답니다. 신경통에 듣는 한약이 새로 나왔군요. 끔찍도 해라. 남편이 자기 아내한테 또 매 맞았대요.(이전의 신문 내용과 동일함 부조리한 현실이 반복됨.)

교수 하룻밤 사이에 참 신기한 사건도 많아라.(반복되는 사건을 접하면서도 자각하지 못함.) 세상이 그렇게 변해서야 어디 살 수 있겠니. 너 왼쪽 손에 들고 있는 종이는 뭐냐?

장녀 이거요?

 

영자 신문을 교수에게 준다. 교수는 받기가 무섭게 기계적으로 번역을 한다.(희극적 상황으로 웃음을 유발함.)

 

장녀 뭘 번역을 하세요?

교수 이 영어를 우리말로 고치는 거야.

 

그대로 번역을 한다.

 

장녀 아버지두 참! 그거 오늘 아침 영어 신문이에요.

교수 (신문을 보더니) 그렇군! 난 영어길래 곧 번역하려구 했지.(번역을 하는 행위가 기계적으로 반복되었음을 알 수 있음.)

 

(시계가 여덟 번을 친다.) 교수는 무엇에 놀란 듯 황급히 일어나 가방을 들고 소파 쪽으로 가 철쇄를 바꾸어 맨다.)

 

교수 벌써 여덟 시야. 빨리 가야지, 빨리 가야지. 이번엔 분명 아침 여덟 시겠지. (무섭게 철문을 열고 퇴장하면서) 온ㄹ이 무슨 요일이더라?

장녀 모레가 일요일이구, 내일이 국경일이니까……. 오늘은 금요일이군요.

 

교수가 퇴장. 장남 등장. 장남과 장녀는 소파에 앉아 고약한 세리처럼 처의 귀가를 기다린다. 이윽고 처가 철문을 열고 들어온다. 피곤에 못 이겨 허둥지둥하면서도 돈 보따리는 꽉 끼고 있다. 현기증이 심한 듯 소파 앞에 무릎을 떨어뜨리며 주저앉는다. 장녀와 장남이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손을 번쩍 내민다. 처는 보따리를 헤치고 돈을 나누어 준다. 돈을 받자 두 자식은 일어서서 밖으로 나간다.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온다(풍자적 분위기 조성). 처가 마루에서 일어나 소파에 주저앉아 눈을 감는다.(인간적 유대감과 소통이 단절된 갖고의 모습) 잠시 후 창문이 열리더니 다시 감독관이 회초리로 처를 친다. 처가 깜짝 놀라 일어난다.

 

감독관 연탄 준비! 김장거리! 빨랫감!(처에게 주어진 현실의 압박감 교수가 번역하는 일과 동일함.)

처 아이, 또 독촉이군.

 

책상 쪽으로 가 천천히 흩어진 책이며 원고지를 정리한다. .

 

 

 

 

핵심 정리

 

1. 갈래 현대 희곡, 부조리극

2. 성격 반사실적, 서사적, 풍자적, 실험적, 반어적

3. 제재 어느 중년 교수의 일상

4. 주제 인간성을 상실한 현대인의 기계적인 삶에 대한 풍자

5. 구성

         발단 장녀, 장남, 교수, 교수의 처가 등장함.

         전개 피곤에 지쳐 있는 교수는 처의 추궁으로 인해 이성이 마비된 듯한 혼란에 빠짐.

         절정 장녀와 장남이 용돈을 요구하고, 감독관은 교수에게 빨리 번역하라고 독촉함.

         하강 교수는 천사에게 잃어버린 꿈을 되찾으려 하다 실패하고, 감독관을 다시 번역을 재촉함.

         대단원 교수는 장녀가 읽어 주는 영자 신문조차 번역하려 할 정도로 기계적이고 무 의미한 삶을 살아감.

6. 특징

       - 특별한 사건 전개 및 뚜렷한 갈등 양상이 드러나지 않음.

       - 무대 장치, 소도구, 인물의 대사와 행동 등이 희극적으로 과장되어 표현됨.

 

7. 해제

 이 작품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기형화된 삶을 살아가는 한 가족의 모습을 소재로 하여 현대인의 무의미한 일상과 인간 소외의 문제를 그린 희곡이다. 무대 장치와 분장, 소도구뿐만 아니라 대사와 동작에서도 반어와 풍자 등 희극적인 과장법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소파 커버의 원고지 무늬, 원고지를 세운 것 같은 벽 등의 설정을 통해 사실주의 극이 지닌 무대 배경에 대한 고정 관념을 깨뜨린다.

 

8. 작가

   이근삼(1929~2003)

 극작가. 1958년에 영문 희곡 <끝없는 실마리>를 미국 캐롤라이나 극단에서 공연하고, 귀국 후 1960사상계에 단막 희곡 <원고지>를 발표하여 국내 문단에 등장하였다. 풍자적 아이러니와 해학적인 기법을 동원하여 현대 사회의 물질주의와 인간 소외 등의 문제를 날카롭게 비판하였다. 또한 실험적인 기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사실주의적인 연극의 탈피를 시도한 부조리 연극의 대표적 작가이다. 주요 작품으로는 <국물 있사옵니다.>, <유랑 극단>, <게사니> 등이 있다.

 

 

출처 : 미래엔 문학 교과사 + 미래엔 문학 자습서

 

 

2024학년도 수능 특강 문제로 실력 점검하기

 

[01-06]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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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남 : 전 이 집 장남입니다. 이쪽 높은 방은 저하고 누이동생이 생활하는 곳입니다. 아버지를 소개하기 전에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비결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부모는 자식들에게 맡은 바 책임을 다하면 됩니다. 밥 세끼도 제대로 못 먹이고, 학비도 제대로 못 주는 부모들이 아들딸이 결혼할 때가 되면 아주 귀찮게 간섭을 한단 말입니다. 우리는 이런 버릇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 집이 비교적 행복한 것도 우리 부모의 열렬한 책임감 때문입니다. (자기 손목시계를 보며) 지금이 저녁 일곱 시 반이니 아마 아버지가 곧 돌아올 것입니다. 아버지는 늘 쾌활한 얼굴에다 발걸음은 참새처럼 가볍지요.

 

 

 

졸음이 오는 지루한 음악과 더불어 철문 도어가 무겁게 열리며 교수 등장. 아래위 양복이 원고지를 덧붙여 만든 것처럼 이것도 원고지 칸 투성이. 손에는 큼직한 낡은 가방을 들고 있다. 허리에 쇠사슬을 두르고 있는데 허리를 돌고 남은 줄이 마루에 줄줄 끌려 다닌다. 쇠사슬이 도어 밖까지 나가 있어 끝이 없다. 도어를 닫고 소파에 힘들게 앉는다. 여전히 쇠사슬을 끌고 다니면서 가방은 자기 옆에 놓고 처음으로 전면을 바라본다. 중년에 퍽 마른 얼굴, 이마에는 주름살이 가고 찌푸린 얼굴은 돌 모양 변화가 없다. 잠시 후 피곤하다는 듯이 두 손을 옆으로 뻗치면서 크게 기지개를 한다. ‘아아하고 토하는 큰 하품은 무엇에 두들겨 맞아 죽는 비명같이 비참하게 들려 오히려 관객들을 놀라게 한다. 장녀가 플랫폼에 나타난다.

 

장녀 : 저의 아버지랍니다. 밖에서 돌아오시면 늘 이렇게 달콤한 하품을 하신답니다. (교수는 머리를 기대고 잠을 자고 있다. 코를 고는데 흡사 고양이 우는 소리다.) 인제 어머님이 돌아오셔요. 어머님은 늘 아버지의 건강을 염려하세요.

 

적당한 곳에서 처가 나타난다. 과거에는 살도 쪘지만 현재는 몸이 거의 헝클어져 있다. 퇴색한 옷을 입고 있다. 소리를 안 내고 들어와 잠자는 교수의 주머니를 샅샅이 턴다. 돈을 한 주먹 쥐고 이어 교수의 가방을 턴다. 돈 부스러기를 몇 장 찾아내고 그 액수가 적음에 실망을 한다. 잠시 후 교수를 흔들어 깨운다.

 

장녀 : 제 말이 맞았지요?

 

플랫폼 방 불이 서서히 꺼진다.

 

: 여보, 여기서 그냥 주무시면 어떡해요. 옷도 안 갈아입으시고.

교수 : 깜빡 잠이 들었군.

 

교수 일어선다.

 

: 어서 옷을 갈아입으세요. (처는 교수 허리에 칭칭 감긴 철쇄를 풀어 헤치고 소파 뒤의 막대기에 감겨 있는 또 하나의 굵은 줄을 풀어 교수 허리에 다시 감아준다.) 옷을 갈아입으시니 한결 시원하시지 않아요?

교수 : 난 잘 모르겠어.

 

(중략)

 

교수가 말없이 원고지 한 장 쭉 찢어 처에게 넘겨준다. 처는 빼앗듯이 원고지를 가로채더니 자루 안에 쓸어 넣는다. 그리고

 

처 삼백 환!

 

재빠르게 다음 페이지의 번역을 끝낸 교수가 다시 한 장을 찢어 처에게 넘긴다. 처는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처 육백 환! (이어) 구백 환!

 

플랫폼 방이 다시 밝아진다. 달콤한 음악과 더불어 장남, 장녀가 또 무엇을 먹으면서 거울 앞에 가더니 얼굴의 여드름을 짠다. 옆방에서는 여전히 교수와 처가 결사적으로 일을 한다. 처의 요란스러운 셈 소리가 삼천 환을 훨씬 넘었다. 감독관이 다시 창가를 지나가며 기웃거리고 사라진다. 일하던 교수가 갑자기 붓을 놓고 쓰던 원고지를 보더니 슬그머니 미소를 짓는다.

 

처 왜그러세요?

교수 참 신기한 일이야.

처 삼천 환을 겨우 넘었을 뿐인데 무엇이 신기해요.

교수 이 원고지 말이오. 다 이백 자 칸이 있는데 이 종이만은 백구십 자 칸밖에 안 들었어. 열 자 모자라. 어째서 그럴까? 원고지가 한결 크고 시원해 보이는군. 마음이 탁 트이는 것 같다. 이상한데, 이상해.

 

교수는 여전히 미소를 지으면서 전면을 바라본다. 이때 무대 전체가 어두워지고 스포트라이트가 교수만을 포착한다. 잠시 모든 것이 조용해지며 과거를 상기시키는 감상적인 음악이 고요히 흘러나온다. 교수 전면에 또 하나의 스포트라이트가 투사되며 천사가 역시 미소를 지으며 가벼운 발레를 추면서 들어온다. 교수는 천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교수 (한참 있다) 오라, 생각이 나는 것 같아. 그래 바로 그거.

천사 나를 완전히 잊은 줄 알았어요.

교수 (일어서며) 분명 그래. 아직 잊지를 않았어. 나의 희망, 나의 정열의 옛 모습이야.

천사 쥐꼬리만 한 기억력이 아직 남아 있군요.

교수 언제 어떻게 돼서 당신과 헤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나에게도 불타는 듯한 정열이 있었어요. 그래요, 생각이 납니다. 밤을 새워 가며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진리를 위해 온 생애를 바치겠노라고 떠들던 때……. , 꿈같은 시절이었습니다. 당신은 왜 나를 버렸어요?

천사 당신이 나를 떠났지요. 당신을 돕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미 늦었어요. 나한테 되돌아오기는 너무 늦었어요.

교수 내 꿈을 도로 찾아 주십시오. 생각할 힘을 주시오. 요즈음은 통 사고를 할 수가 없습니다.

천사 사고(思考)할 필요가 없어요. 이미 사고(事故)가 난 걸요.

교수 이 함정에서 뛰어나가고 싶습니다. (천사가 서서히 사라진다.) 가지 마시오! 내 희망, 내 정열은 어떻게 되는 거요. 꿈을 주십시오! 내 꿈! 내 꿈!

 

꿈을 잃은 교수는 맥없이 전면을 바라보며 앉아 있다. 어둠 속에서 창을 여는 소리가 나며, 감독관이 얼굴을 나타낸다.

 

감독관 (회초리를 흔들며) 원고! 원고는 언제 쓰는 거야?

 

이 소리에 교수는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다시 비참한 표정으로 번역을 계속한다. 이러는 사이에 무대 전체가 암흑화된다. 잠시 후 새소리, 닭 우는 소리와 더불어 무대 전체가 밝아진다. 아침이다. 교수는 책상에 머리를 박은 채 자고 있다. 플랫폼 방에서는 장남이 반나체가 돼서 아령을 쥐고 운동을 하고 있다. 장녀가 아침 신문을 들고 응접실로 들어온다.

 

장녀 (관객들에게-관객들에게 상황을 설명함관객의 극중 몰입을 방해하여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도록 함.) 벌써 아침이 됐습니다. (자고 있는 교수를 가리키며) 아버지는 연구하시다 가끔 그대로 책상에서 주무신답니다. 그야말로 학자지요. 여러분은 아침에 어머니가 먼저 안 나오시고 제가 이 방에 대신 왔다는 점을 이상하게 생각하실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니는 아침 일찍이 아버지 원고를 가지고 출판사로 달려갔으니 이렇게 제가 대신 왔습니다. 아시겠지요. 아버지가 밤늦도록 수고하시니 저도 아버지를 위해 한 가지 좋은 일은 해 드리고 있습니다. 아침마다 아버지께 신문을 읽어 드립니다. (교수를 깨운다.) 아버지. (교수, 눈을 비비며 머리를 든다.) 아버지, 아침 신문 왔어요. 읽어 드리겠어요.

- 이근삼, 원고지

 

() 가을 연기 자욱한 저녁 들판으로

상행 열차를 타고 평택을 지나갈 때

흔들리는 차창에서 너는

문득 낯선 얼굴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너의 모습이라고 생각지 말아 다오

오징어를 씹으며 화투판을 벌이는

낯익은 얼굴들이 네 곁에 있지 않느냐

황혼 속에 고함치는 원색의 지붕들과

잠자리처럼 파들거리는 TV 안테나들

흥미 있는 주간지를 보며

고개를 끄덕여 다오

농약으로 질식한 풀벌레의 울음 같은

심야 방송이 잠든 뒤의 전파 소리 같은

듣기 힘든 소리에 귀 기울이지 말아 다오

확성기마다 울려 나오는 힘찬 노래와

고속도로를 달려가는 자동차 소리는 얼마나 경쾌하냐

예부터 인생은 여행에 비유되었으니

맥주나 콜라를 마시며

즐거운 여행을 해 다오

되도록 생각을 하지 말아 다오

놀라울 때는 다만

<!>라고 말해 다오

보다 긴 말을 하고 싶으면 침묵해 다오

침묵이 어색할 때는

오랫동안 가문 날씨에 관하여

아르헨티나의 축기 경기에 관하여

성장하는 GNP와 증권 시세에 관하여

이야기해 다오

너를 위하여

그리고 나를 위하여

-김광규, 상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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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극적 특성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인물 간의 대화를 통해 다른 인물의 등장을 예고한다.

음악을 활용하여 문제 해결에 대한 인물의 의지를 부각한다.

무대 밖 목소리를 통해 무대에서 보이지 않는 공간의 상황을 전달한다.

무대의 잦은 전환을 통해 여러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속도감 있게 재현한다.

복수의 인물이 해설자의 역할을 맡아 관객을 향해 특정 인물과 상황을 소개하고 논평한다.

 

2. ()의 내용에 대한 이해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장녀는 아침마다 아버지에게 신문을 읽어 준다.

교수는 진리의 정열로 가득한 과거의 삶을 그리워한다.

장남은 부모의 책임감이 행복한 가정의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천사는 교수가 자신을 기억할 것이라고 기대하며 그를 방문한다.

아내는 경제적 이익을 바라면서 남편의 원고 번역을 강하게 독려한다.

 

3. <보기>를 참고하여 ()를 이해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이근삼의 원고지는 원고 독촉에 시달리는 교수와 주변 인물들을 통해 인간적 삶을 훼손하는 현대 사회의 모순을 고발한다. 현대 사회는 근대적 합리성이라는 이름으로 삶의 전 국면을 표준화하고 개인의 일상을 그러한 표준에 맞추도록 규제하고 강요한다. 표준화의 규격은 개성을 억압하고 개인을 구속하는데, 부모, 학생, 직장인 등 사회적 직분이란 규격에 갇힌 개인은 주어진 과업을 수행하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소품들은 현대인의 이러한 일상을 드러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독자는 이 작품의 소품에 주목함으로써 인물의 성격을 이해하고 현대 사회의 문제를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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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지 칸 투성이의 양복은 교수가 입은 옷으로, 표준화된 일상의 규격을 상징하는 소품이다.

쇠사슬은 교수가 허리에 차고 있는 것으로, 직장과 사회의 과중한 책임과 구속을 의미하는 소품이다.

또 하나의 굵은 줄은 처가 교수의 허리에 감아 주는 것으로, 현대인에게 집이 휴식이 아닌 구속의 공간임을 드러내는 소품이다.

백구십 자 칸의 원고지는 교수가 이상하게 여기는 것으로, 인간적 삶이 훼손된 현대 사회를 상징하는 소품이다.

회초리는 감독관이 휘두르는 것으로, 현대인을 억압하고 규제하는 현대 사회의 규율적 면모를 부각하는 소품이다.

 

4. ()의 표현상 특징을 가장 적절한 것은?

계절과 관련된 시어를 통해 화자의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시간적 배경을 묘사하여 화자의 정서 변화를 드러내고 있다.

수미상관의 구조를 통해 시적 상황의 반복과 순환을 부각하고 있다.

의문문을 사용하여 화자가 궁금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청자에게 구하고 있다.

특정한 종결어미를 반복하여 사용하면서 청자에게 특정한 인식과 행동을 권하고 있다.

 

5. 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한 것은?

① ⓐ는 자신을 지지하는 가족을 향한 애정을, 는 고통과 갈등이 없는 일상을 향한 애정을 의미한다.

② ⓐ는 타자의 도움 없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는 혼자 떠나는 여행에 대한 기대를 의미한다.

③ ⓐ는 희망과 정열을 깨닫고 실현할 수 있는 이성을, 는 일상과 자신을 비판적으로 돌아보는 성찰을 의미한다.

④ ⓐ는 가난에서 벗어나 경제적으로 성공하고자 하는 욕망을, 는 현재의 삶을 긍정하고 만족하고자 하는 자족감을 의미한다.

⑤ ⓐ는 이웃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들을 도우려는 연민을, 는 반복되는 일상에서 불안을 느끼고 절망하는 위기의식을 의미한다.

 

6. <보기>를 참고하여 ~ 을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원고지상행은 현대 사회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형상화하기 위해 사실이나 진실과는 상반되 말을 활용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원고지에서는 인물의 행동이나 처지와는 상반된 대사를 활용한다. 지시문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 인물의 대사를 통해 현대인의 무기력함을 부각한다. 상행에서는 화자의 말이 반어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 반어는 말하는 이가 참된 의미를 감추고 이와 반대되는 의미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반대되는 의미의 말을 통해 감춘 말의 의미를 강조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두 작품을 감상할 때는 인물이나 화자의 말이 지닌 축자적 의미를 참된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발화의 맥락을 살피면서 비판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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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 : 교수의 표정이나 하품 소리와는 일치하지 않는 표현으로, 극도로 고단한 교수의 삶이 애처롭게 느껴지는군.

② ㉡ : 생계에 매몰된 교수의 일상과는 상반되 표현으로, 학자로서이 정체성을 잃어 가는 교수의 처지가 안타깝군.

③ ㉢ : 이 표현의 숨겨진 의미는 낯선 얼굴과 같은 속물적 모습을 청자의 본모습으로 인정하라는 것으로, 나에게도 그런 속물적 모습이 있는지 살펴야겠군.

④ ㉣ : 이 표현의 숨겨진 의미는 흥미 위주의 소비문화에 매몰되지 말고 거리를 두라는 것으로, 그러한 문화를 비판적으로 인식해 봐야겠군.

⑤ ㉤ : 이 표현의 숨겨진 의미는 듣기는 힘들지만 현대 사회의 문제를 떠올리게 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으로, 그러한 소리가 지적하는 우리 사회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봐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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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최인훈

 

[미래엔 수록 부분]

 

앞부분 줄거리

이명준은 아버지가 월북하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아버지 친구의 집에서 자란다. 철학과 3학년이 된 명준은 개인적인 밀실(외부와의 접촉이 차단된 개인적 공간)만을 치장하는 남한 사회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지닌다. 그는 월북한 아버지 때문에 이유 없이 경찰서에 끌려가 조사를 받게 되는데, 이로 인해 남한에 대한 회의적인 생각이 더욱 강해진다. 그는 애인인 윤애의 집을 방문하여 설움을 달래지만, 불온(사상이나 태도 따위가 통치 권력이나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맞서는 성질이 있음.) 인물로 낙인찍혔다는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윤애를 남겨둔 채 월북한다.

그러나 북한 역시 명준이 원하던 곳은 아니었다. 이상적인 혁명가로 생각했던 아버지는 젊은 여인과 재혼하여 부르주아 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북한 사회는 사회주의 제도의 공식적인 명령과 복종만 있는 공허한 광장같은 곳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도움으로 노동신문의 기자가 되지만, 부르주아적이라는 비판을 받고는 모든 것에 회의를 느껴 공사장에 인부로 지원한다. 명준은 공사 중 다쳐 병원에 입원하게 되는데, 이때 위문을 온 국립 발레단에 속한 은혜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은혜는 병준이 반대하는 상황에서도 예술제가 열리는 러시아로 떠난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명준은 군대에 지원한다. 북한군 장교로 부산까지 내려온 그는 낙동강 전선에서 은혜를 다시 만난다. 명준에게 용서를 빌기 위해 간호병으로 참전한 은혜를 보며 명준은 다시금 사랑을 느낀다. 그러나 낙동강 전투의 패배로 은혜는 죽고, 명준은 포로가 된다. 명준은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거쳐 판문점의 포로 송환 위원회에 서게 된다.

 

 방 안 생김새는, 통로보다 조금 높게 설득 자들이 앉아 있고, 포로는 왼편에서 들어와서 바른편으로 빠지게 돼 있다. 네 사람의 공산군 장교와, 인민복(신해혁명 이후 쑨원이 입었던 것과 같은 모양의 중국의 국민복. 웃옷에 주머니가 네 개 있고 깃을 세웠음.)을 입은 중공 대표가 한 사람, 합쳐서 다섯 명. 그들 앞에 가서, 걸음을 멈춘다. 앞에 앉은 장교가, 부드럽게 웃으면서 말한다.

"동무, 앉으시오."

명준은 움직이지 않았다.

"동무는 어느 쪽으로 가겠소(이데올로기적 대립과 갈등의 상황에서 선택을 강요받음)?"

"중립국."

그들은 서로 쳐다본다. 앉으라고 하던 장교가, 윗몸을 테이블 위로 바싹 내밀면서, 말한다.

"동무, 중립국도, 마찬가지 자본주의 나라요. 굶주림과 범죄가 우글대는 낯선 곳에 가서 어쩌자는 거요?"

"중립국."

"다시 한 번 생각하시오. 돌이킬 수 없는 중대한 결정이란 말요. 자랑스러운 권리를 왜 포기하는 거요?"

"중립국."

이번에는, 그 옆에 앉은 장교가 나앉는다.

"동무, 지금 인민공화국에서는, 참전 용사들을 위한 연금 법령을 냈소. 동무는 누구보다도 먼저 일터를 가지게 될 것이며, 인민의 영웅으로 존경받을 것이오. 전체 인민은 동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소. 고향의 초목도 동무의 개선을 반길 거요."

"중립국."

그들은 머리를 모으고 소곤소곤 상의를 한다.

처음에 말하던 장교가, 다시 입을 연다.

"동무의 심정도 잘 알겠소. 오랜 포로 생활에서, 제국주의자들의 간사한 꼬임수에 유혹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도 용서할 수 있소. 그런 염려는 하지 마시오. 공화국은 동무의 하찮은 잘못을 탓하기보다도, 동무가 조국과 인민에게 바친 충성을 더 높이 평가하오. 일체의 보복 행위는 없을 것을 약속하오. 동무는……"

"중립국."

중공 대표가, 날카롭게 무어라 외쳤다. 설득하던 장교는, 증오에 찬 눈초리로 명준을 노려보면서, 내뱉었다.

"좋아."

눈길을, 방금 도어를 열고 들어서는 다음 포로에게 옮겨 버렸다.

 

 아까부터 그는 설득자들에게 간단한 한마디만을 되풀이 대꾸하면서, 지금 다른 천막(남한과 유엔 측이 설득하는 공간)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을 광경을 그려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도 자기를 세워 보고 있었다.

"자넨 어디 출신인가?"

"……"

", 서울이군."

설득자는, 앞에 놓인 서류를 뒤적이면서,

"중립국이라지만 막연한 얘기요. 제 나라보다 나은 데가 어디 있겠어요. 외국에 가본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얘기지만, 밖에 나가 봐야 조국이 소중하다는 걸 안다구 하잖아요? 당신이 지금 가슴에 품은 울분은 나도 압니다. 대한민국이 과도기적인 여러 가지 모순을 가지고 있는 걸 누가 부인합니까? 그러나 대한민국엔 자유가 있습니다. 인간은 무엇보다도 자유가 소중한 것입니다. 당신은 북한 생활과 포로 생활을 통해서 이중으로 그걸 느꼈을 겁니다. 인간은……"

"중립국."

"허허허,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내 나라 내 민족의 한 사람이, 타향 만 리 이국땅에 가겠다고 나서서, 동족으로서 어찌 한마디 참고되는 이야길 안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이곳에 남한 2천만 동포의 부탁을 받고 온 것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건져서, 조국의 품으로 데려오라는……"

"중립국."

"당신은 고등교육까지 받은 지식인입니다. 조국은 지금 당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위기에 처한 조국을 버리고 떠나 버리렵니까?"

"중립국."

"지식인일수록 불만이 많은 법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제 몸을 없애 버리겠습니까? 종기가 났다고 말이지요. 당신 한 사람을 잃는 건, 무식한 사람 열을 잃은 것보다 더 큰 민족의 손실입니다. 당신은 아직 젊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할 일이 태산 같습니다. 나는 당신보다 나이를 약간 더 먹었다는 의미에서, 친구로서 충고하고 싶습니다. 조국의 품으로 돌아와서, 조국을 재건하는 일꾼이 돼주십시오. 낯선 땅에 가서 고생하느니, 그쪽이 당신 개인으로서도 행복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나는 당신을 처음 보았을 때, 대단히 인상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뭐 어떻게 생각지 마십시오. 나는 동생처럼 여겨졌다는 말입니다. 만일 남한에 오는 경우에, 개인적인 조력을 제공할 용의가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명준은 고개를 쳐들고, 반듯하게 된 천막 천장을 올려다본다. 한층 가락을 낮춘 목소리로 혼잣말 외듯 나직이 말할 것이다.

"중립국."

설득자는, 손에 들었던 연필 꼭지로, 테이블을 툭 치면서, 곁에 앉은 미군을 돌아볼 것이다. 미군은, 어깨를 추스르며, 눈을 찡긋하고 웃겠지.

 

 나오는 문 앞에서, 서기의 책상 위에 놓인 명부에 이름을 적고 천막을 나서자, 그는 마치 재채기를 참았던 사람처럼 몸을 벌떡 뒤로 젖히면서, 마음껏 웃음을 터뜨렸다. 눈물이 찔끔찔끔 번지고, 침이 걸려서 캑캑거리면서도 그의 웃음은 멎지 않았다.

 준다고 바다(남한과 북한이 주장하는 이상적 이데올로기)를 마실 수는 없는 일. 사람이 마시기는 한 사발의 물.(실제적인 현실) 준다는 것도 허황하고 가지거니 함도 철없는 일. 바다와 한 잔의 물(이상과 현실). 그 사이에 놓인 골짜기와 눈물과 땀과 피(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와 그로 인한 고통). 그것을 셈할 줄 모르는 데 잘못이 있었다. 세상에서 뒤진 가난한 땅에 자란 지식 노동자의 슬픈 환상. 과학(객관적 사실)을 믿은 게 아니라 마술(허황된 이상)을 믿었던 게지. 바다를 한 잔의 영생수로 바꿔 준다는 마술사의 말(이념의 허상만 내세운 남한과 북한의 권력자들의 말). 그들은 뻔히 알면서 권력이라는 약을 팔려고 말로 속인 꾀임을. 어리석게 신비한 술잔을 찾아 나섰다가, 낌새를 차리고(이데올로기의 허상을 깨닫게 됨.) 항구를 돌아보자, 그들은 항구를 차지하고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참을 알고 돌아온 바다의 난파자들을 그들은 감옥에 가둘 것이다. 못된 균을 옮기지 않기 위해서. 역사는 소걸음으로 움직인다. 사람의 커다란 모순과 업()에 비기면, 아무 자국도 못 낸 것이나 마찬가지다. 당대까지 사람이 만들어 낸 물질 생산의 수확을 고르게 나누는 것만이 모든 시대에 두루 맞는 가능한 일이다. 마찬가지 아닌가. 벌써 아득한 옛날부터 사람 동네가 알아낸 슬기, 사람의 조건이 아직도 풀어 나가야 할 어려움의 크기에 대면, 아무것도 아니다. 사람이 이루어 놓은 것에 눈을 돌리지 않고, 이루어야 할 것에만 눈을 돌리면, 그 자리에서   그는 삶의 힘을 잃는다. 사람이 풀어야 할 일을 한눈에 보여 주는 것 그것이 죽음이다. 은혜의 죽음을 당했을 때, 이명준 배에서는 마지막 돛대가 부러진 셈이다.(삶의 희망과 의지를 잃음.) 이제 이루어 놓은 것에 눈을 돌리면서 살 수 있는 힘이 남아 있지 않다. 팔자소관으로 빨리 늙는 사람도 있는 법이었다. 사람마다 다르게 마련된 몸의 길, 마음의 길, 무리의 길, 대일 언덕 없는 난파꾼은 항구를 잊어버리기로 하고 물결 따라 나선다.(이념의 갈등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고자 함.) 환상의 술에 취해 보지 못한 섬에 닿기를 바라며. 그리고 그 섬에서 환상 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 무서운 것을 너무 빨리 본 탓으로 지쳐 빠진 몸이, 자연의 수명을 다하기를 기다리면서 쉬기 위해서. 그렇게 해서 결정한, 중립국행이었다.

 

 

뒷부분 줄거리

 명준은 석방된 포로 30명과 함께 중립국인 인도로 가게 된다. 인도행 선박인 타고르호에 탄 그는 될 수 있는 대로 단순노동을 하며 살리라 마음먹고 새로운 삶을 꿈꾼다. 그러나 따라오던 갈매기 두 마리를 은혜와 자신의 딸이라 생각하다가 결국 마카오 근해에서 투신자살한다.

 

 

 

 

 

핵심 정리

 

1. 갈래 현대 소설, 사회 소설, 분단 소설

2. 성격 관념적, 철학적

3. 배경 시간 : 해방 직후부터 6·25 전쟁 직후까지/ 공간 : 남한과 북한, 타고르호 안

4. 주제 이데올로기의 갈등 속에서 진정한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인간의 바람직한 모습

5. 구성

           발단 명준은 월북한 아버지 때문에 고초를 겪고 남한 사회에 회의를 느껴 월북함.

           전개 명준은 북한 사회의 부자유와 이념의 허상에 환멸을 느낌.

           위기 명준은 6·25 전쟁에 인민군으로 참전하였다가 포로가 됨.

           절정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되는 과정에서 명준은 남한도 북한도 아닌 제3국을 선택함.

           결말 명준은 제3국으로 가는 타고르호에서 바다에 투신하여 자살함.

6. 특징

          - 상징적인 소재를 통해 인물의 삶과 지향점을 암시하고 있음.

          - 전체적으로 주인공이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내용이 전개됨.

          - 관념적이고 철학적인 용어가 많이 나타나며, 부분적으로 의식의 흐름 수법을 활용함.

7. 해제

 이 작품은 남한과 북한의 이념적 대립 상황에서 진실한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주인공 명준이 겪는 갈등을 그린 소설이다. 작가는 남과 북을 상징하는 밀실광장이라는 두 공간을 경험한 이명준을 통해 남과 북의 현실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또한 이 두 공간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중립국을 선택하지만 결국 자살을 하는 이명준은, 이념의 갈등 속에서 좌절하고 마는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 준다. 이 작품은 6·25 전쟁 전후의 혼란한 시대 상황을 배경으로 하여 분단으로 인한 이념적 갈등, 개인과 사회의 이상적인 관계, 사랑을 통한 인간 구원의 문제 등 심오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8. 작가

   최인훈(1936~2018)

 소설가이자 극작가. 함경북도 회령에서 출생하였으며 8·15 광복 후 원산으로 이주하였고 6·25 전쟁이 일어나자 가족과 함께 월남하였다. 1959자유문학에서 단편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라울전>을 발표하며 등단하였다. 분단과 전쟁, 독재의 문제와 같은 현대사의 단면을 지적으로 치밀하게 탐구하는 소설을 주로 썼다. 주요 작품으로는 <회색인>, <총독의 소리>, <하늘의 다리> 등의 소설과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등의 희곡이 있다.

 

출처 : 미래엔 문학 교과서 + 미래엔 문학 자습서

 

 

2006학년도 수능 기출로 실력 점검하기

 

[56-60]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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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부분의 줄거리 광복 직후, 이명준은 남한과 북한 사회 모두에 환멸을 느낀다. 6·25 전쟁에 참여했다가 포로가 된 명준은 석방 과정에서 남도 북도 아닌 중립국을 선택하고, 배를 타고 제삼국으로 떠난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없다. 무엇이든지 바라보면서, 자기 안에 있는 빈 데를 메우지 않으면, 금방 쓰러져 버릴 것 같다. 얼마를 그러고 있다가 또 뱃간으로 돌아온다. 방은 아까처럼 비어 있다.

자기 자리로 올라간다. 자려고 해서가 아니다. 그저 찾는 것도 없이, 머리맡을 어물어물 더듬는다. 손에 딱딱한 물건이 잡힌다. 부채다. 문간에서 기척이 난다.

얼른 돌아다보았으나, 아무도 나타나지는 않는다. 되도록 천천히 다락에서 내려와, 마루에 내려선다. 무슨 할 일이 없는가 찾는 사람처럼, 두리번거린다. 방 안에 새삼스레 그의 주의를 끌 만한 것은 없다. 발끝으로 살살 밀어서 유리 조각을 한곳에 모으고, 꽉 밟는다. 소리가 나지 않는다. 더 힘 있게 밟는다. 그만한 힘으로 발바닥을 올려 밀 뿐, 유리는 바스러질 대로 바스러진 모양인지, 꿈쩍도 않는다. 복도로 나선다. 복도에도 인기척은 없다. 선장실로 올라간다. 선장은 없다. 벽장문을 연다. 총이 제자리에 세워져 있다. 벽장문을 닫는다. 서랍을 열고, 아까 선장이 들어오는 바람에 미처 돌려 놓지 못한 총알을 제자리에 놓는다. 몹시 중요한 일을 마친 사람처럼, 홀가분해진다. 테이블로 가서 해도를 들여다본다. 이 배가 밟아 온 자국이 연필로 그려져 있다. 선장이 하는 것처럼 컴퍼스를 손가락으로 꼬나 잡고, 해도 위를 재 보는 시늉을 한다. 한참 장난을 하다가 컴퍼스를 던져 버린다. 그때 여태까지 한 손에 부채를 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안다.

아까, 침대에서 손에 잡힌 대로, 들고 온 것이다. 의자에 걸터앉아서 부채를 쭉 편다. 바다가 있고, 갈매기가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부채를 접었다 폈다 하다가, 스르르 눈을 감는다. 머릿속으로 허허한 벌판이 끝없이 열리며, 희미한 모습이 해돋이처럼 차츰 떠올라 온다.

…… 펼쳐진 부채가 있다. 부채의 끝 넓은 테두리 쪽을, 철학과 학생 이명준이 걸어간다. 가을이다. 겨드랑이에 낀 대학 신문을 꺼내 들여다본다. 약간 자랑스러운 듯이. 여자를 깔보지는 않아도, 알 수 없는 동물이라고 여기고 있다.

책을 모으고, 미라를 구경하러 다닌다.

정치는 경멸하고 있다. 그 경멸이 실은 강한 관심과 아버지 일 때문에 그런 모양으로 나타난 것인 줄은 알고 있다. 다음에, 부채의 안쪽 좀 더 좁은 너비에, 바다가 보이는 분지가 있다. 거기서 보면 갈매기가 날고 있다. 윤애에게 말하고 있다. 윤애 날 믿어 줘. 알몸으로 날 믿어 줘. 고기 썩는 냄새가 역한 배 안에서 물결에 흔들리다가 깜빡 잠든 사이에, 유토피아의 꿈을 꾸고 있는 그 자신이 있다. 조선인 콜호스(구소려의 집단 농장) 숙소의 창에서 불타는 저녁놀의 힘을 부러운 듯이 바라보고 있는 그도 있다. 구겨진 바바리코트 속에 시래기처럼 바랜 심장을 안고 은혜가 기다리는 하숙으로 돌아가고 있는 9월의 어느 저녁이 있다. 도어에 뒤통수를 부딪히면서 악마도 되지 못한 자기를 언제까지나 웃고 있는 그가 있다.

그의 삶의 터는 부채꼴, 넓은 데서 점점 안으로 오므라들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은혜와 둘이 함께 있던 동굴이 그 부채꼴 위에 있다. 사람이 안고 뒹구는 목숨의 꿈이 다르지 않느니. 어디선가 그런 소리도 들렸다. 그는 지금, 부채의 사북(접었다 폈다 하는 부채의 아랫머리나 가위다리의 교차된 곳에 박아 돌쩌귀처럼 쓰이는 물건) 자리에 서 있다. 삶의 광장은 좁아지다 못해 끝내 그의 두 발바닥이 차지하는 넓이가 되고 말았다. 자 이제는? 모르는 나라, 아무도 자기를 알 리 없는 먼 나라로 가서, 전혀 새 사람이 되기 위해 이 배를 탔다. 사람은,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 성격까지도 마음대로 골라잡을 수도 있다고 믿는다. 성격을 골라잡다니! 모든 일이 잘 될 터이었다. 다만 한 가지만 없었다면. 그는 두 마리 새들을 방금까지 알아보지 못한 것이었다. 무덤 속에서 몸을 푼 한 여자의 용기를, 방금 태어난 아기를 한 팔로 보듬고 다른 팔로 무덤을 깨뜨리고 하늘 높이 치솟는 여자를, 그리고 마침내 그를 찾아내고야 만 그들의 사랑을.

돌아서서 마스트(돛대)를 올려다본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다. 바다를 본다. 큰 새와 꼬마 새는 바다를 향하여 미끄러지듯 내려오고 있다. 바다. 그녀들이 마음껏 날아다니는 광장을 명준은 처음 알아본다. 부채꼴 사북까지 뒷걸음질 친 그는 지금 핑그르르 뒤로 돌아선다. 제정신이 든 눈에 비친 푸른 광장이 거기 있다.

자기가 무엇에 홀려 있음을 깨닫는다. 그 넉넉한 뱃길에 여태껏 알아보지 못하고, 숨바꼭질을 하고, 피하려 하고 총으로 쏘려고까지 한 일을 생각하면, 무엇에 씌었던 게 틀림없다. 큰일 날 뻔했다. 큰 새 작은 새는 좋아서 미칠 듯이, 물속에 가라앉을 듯, 탁 스치고 지나가는가 하면, 되돌아오면서, 그렇다고 한다. 무덤을 이기고 온, 못 잊을 고운 각시들이, 손짓해 부른다. 내 딸아.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 옛날, 어느 벌판에서 겪은 신내림이, 문득 떠오른다. 그러자, 언젠가 전에, 이렇게 이 배를 타고 가다가, 그 벌판을 지금처럼 떠올린 일이, 그리고 딸을 부르던 일이, 이렇게 마음이 놓이던 일이 떠올랐다. 거울 속에 비친 남자는 활짝 웃고 있다.

- 최인훈,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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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위 글의 서술상 특징을 <보기>에서 골라 바르게 묶인 것은?

<보기>-----------------------------------------------------------------------

. 풍자적 어조를 통해 이야기의 비극성을 약화시키고 있다.

. 서술의 초점을 한 인물에 맞추어 사건을 전개하고 있다.

. 작중 인물의 회상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있다.

. 현재형 어미를 사용하여 일상적 삶의 모습을 부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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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ㄴ     , ㄹ      , ㄷ      , ㄹ      ,

 

 

57. 위 글의 사북 자리’, ‘삶의 광장’, ‘푸른 광장에 대한 감상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펼쳐진 부채에 비유된 삶의 광장은 점점 좁아지는 양상을 띠고 있군.

사북 자리두 발바닥이 차지하는 넓이로 표현될 만큼 삶의 위기감이 고조된 공간이군.

사북 자리에서, 주인공은 잃어버린 사회적 지위를 회복하려고 노력하고 있군.

사북 자리에서, 주인공은 삶의 광장에서 푸른 광장으로 생각을 전환하고 있군.

주인공은 무덤 속에서 몸을 푼 여자푸른 광장에 연결짓고 있군.

 

58. <보기>의 밑줄 친 부분을 바탕으로 위 글을 이해하고자 할 때, 필요한 활동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보기>-----------------------------------------------------------------------------------------------------------------------------------------

작품에 반영된 사회적· 문화적 상황을 문학 작품 창작 당시와 연관시켜 해석할 때 드러나는 의미를 상황의 구체적 의미라 한다. 이것은 그 작품을 낳게 한 계기이기도 하며, 또 그 작품을 창작할 당시의 핵심적인 고민과 과제이기도 하다.

한편, 구체적 상황의 의미로부터 특정한 시대와 장소를 넘어 공유할 수 있는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데, 이를 사회적·문화적 상황의 보편적 의미라 한다. 몇백 년 전의 작품의 가치를 오늘의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이러한 보편적 의미가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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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준이 활동한 공간적 배경이 되는 곳을 실제로 답사하여 현장 체험을 한다.

이명준이 은혜와 함께 있던 동굴이 우리 신화에서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아본다.

이명준의 삶과 사랑이 시대를 초월하여 오늘날 독자들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 있는지 살펴본다.

이명준의 성격과 행동을 분석하고 종합한 후, 그것을 중심으로 이명준의 일대기를 작성해 본다.

이명준이 겪은 사건을 작품이 창작된 시대의 상황 및 그 시기에 작가가 지녔던 가치관과 연결하여 그 의미를 알아본다.

 

59. - 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 : 인물의 행동을 짧은 문장으로 서술하여 불안한 심리를 드러내고 있다.

② ㉡ : 이어질 내용에서 그림의 소재가 중요한 기능을 하게 됨을 미리 알려준다.

③ ㉢ : 상념에서 현실 세계로 의식이 돌아오고 있음을 보여 준다.

④ ㉣ :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원했던 자신에 대한 뉘우침이 드러난다.

⑤ ㉤ : 경쾌하게 날고 있는 새의 모습에 주인공의 심리를 투영하고 있다.

 

60. 의 의미를 알아보기 위해 사전을 찾아보았다. <보기>의 밑줄 친 부분과 유사하지 않은 것은?

<보기>--------------------------------------------------------------

타다 1. 불이 붙어서 타다. ¶ 화재로 집이 불타다.

2. (비유적으로) 매우 붉은 빛으로 빛나다 불타는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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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창 물오른 싱싱한 생선이 나왔다.

어린 동생은 자기의 나이를 손꼽아 세었다.

분홍색 메꽃이 군데군데 두렁을 수놓고 있다.

바람 소리도 잠들고 짐승들 울음소리마저 사라졌다.

오월의 신록을 살찌게 하는 비가 부슬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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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 이육사

 

까마득한 날(과거)

하늘이 처음 열리고(천지개벽, 광야의 생성)

어데 닭 우는 소리(생명력) 들렸으랴

                                                                                      1: 광야의 원시성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역동적 이미지-의인법)

참아 이곳(광야-민족의 삶의 터전)을 범하던 못 하였으리라(광야의 신성함)

                                                                                     2: 광야의 신성성

 

끊임없는 광음(세월)

부지런한 계절이 피여선 지고(시간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표현함)

큰 강물(역사, 문명) 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3: 역사와 문명의 시작

 

지금(현재) (고난과 시련) 나리고

매화향기(민족정신, 독립의 기운)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조국 광복을 위한 자기희생의 의지-속죄양 모티프)

                                                                                 4: 현재의 암담한 상황과 현실 극복 의지

 

다시 천고의 뒤(미래)

백마타고 오는 초인(조국의 광복을 실현하고 조국의 역사를 찬란히 꽃피울 존재. 이상적 구원자)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적, 자기 희생적 태도)

                                                                                    5: 미래 지향의 강한 의지

자유신문”(1945)

 

 

 

핵심 정리

 

1. 갈래 자유시, 서정시

2. 성격 의지적, 저항적, 상징적

3. 제재 광야

4. 주제 고통스러운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신념

5. 특징

            -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적 추이에 따라 시상이 전개됨.

            - 종결 어미 ‘-()의 사용으로 의지적인 태도를 강조함.

 

 

 

출처 : 미래엔 문학 자습서

 

 

2022학년도 수능 특강으로 실력 점검하기

 

[07~11]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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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마득한 날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 이육사, 광야

 

 

() 오늘, 북창을 열어

장거릴 등지고 산을 향하여 앉은 뜻은

사람은 맨날 변해 쌓지만

태고로부터 푸르러 온 산이 아니냐.

 

고요하고 너그러워 수()하는 데다가

보옥(寶玉)을 갖고도 자랑 않는 겸허한 산.

 

마음이 본시 산을 사랑해

평생 산을 보고 산을 배우.

 

그 품 안에서 자라나 거기에 가 또 묻히리니

이승의 낮과 저승의 밤

아아(峨峨)라히(산이나 큰 바위 따위가 험하게 우뚝 솟아.) 뻗쳐 있어 다리 놓는 산.

 

네 품이 고향인 그리운 산아

미역취 한 이파리 상긋한 산 내음새

산에서도 오히려 산을 그리며

꿈 같은 산 정기(精氣)를 그리며 산다.

-김관식, 거산호(居山好)2

 

() 밖을 내다보기 위해, 혹은 빛을 끌어들이기 위해 인간들은 집에 창을 낸다. 나도 집 앞 개울 건너 밤나무 숲을 바라보기 위해 큰 창을 냈다. 창살도 없는 통유리창 때문에 저만치 있는 밤나무 숲이 마치 우리 집 마당처럼 보인다. 유리창은 이렇게 경치를 빌려 보는 데 편리한 것인 줄만 알았지 유리창을 통해 경치가 집 안으로 들어올 수도 있다는 건 미처 몰랐다.

새벽에 눈을 뜬 지 채 5분만 안 되어서였다. ‘하는 생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맹렬한 속도로 날아온 새가 유리창에 부딪히면서 땅으로 떨어졌다.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뛰어나가 보니 목뼈가 부러져 즉사한 새가 창밖에 널브러져 있었다. 부부였을까, 한 마리도 아닌 두 마리였다. 무슨 새인지 알 수 없었다. 크기는 참새보다는 비둘기에 가까웠지만 깃털은 참새와 비슷했다.

작년에도 유리창에 부딪혀 새가 즉사한 불상사가 두 번이나 있었기 때문에 새가 왜 그런 실수를 하는지 알고 있다. 밖에서 유리창 안을 들여다보면 앞산이 그대로 비쳐 보인다. 낮에는 안의 사물들과 겹쳐 보이지만 해 뜨기 전 어둑신한 새벽녘이면 유리 속은 더 어둡기 때문에 도리어 그 안에 비친 앞산은 실물보다 훨씬 깊고 신비한 심산유곡처럼 보이는 것이다.

새가 속은 것이다. 그리고 나는 새를 속여 먹은 것이다. 산에다 덫을 놓아 오소리나 멧돼지, 산토끼 등을 닥치는 대로 사냥해 그 간을 내먹고 피를 빠는 인간들한테 분노하고 치를 덜 자격이 나한테 있을까. 이런 자괴감조차 나는 믿을 수가 없다. 나는 아차산 골짜기에 이 집을 새로 지을 때 자연 진화적인 집을 지으려고 애썼다. 높게 짓지 않으려 했고, 외벽도 흙벽의 부드러운 질감을 닮은 마감재를 썼으며, 황토색과 초가지붕 빛깔의 중간쯤 되는 부드러운 색으로 칠했다. 자연 진화적 좋아하네. 창살도 없는 통유리창을 어쩔 것이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이렇게 자연을 무자비하게 파괴하고 착취하다가는 결국 인간도 살아남지 못하리라. 이렇게 너스레를 떠는 것을 초목이나 산짐승이 알아듣는다면 그런 인간 우월주의에 아마 구역질이 날 것이다. 자연과 문명은 어차피 적대적인 것이 아닐까.

촌구석에서 태어난 내가 처음으로 문명과 충돌한 것도 유리창을 통해서였다. 어머니에 의해 서울로 끌려오다시피 하다가 경유한 소도시 개성에서 나는 처음으로 유리창이라는 걸 보았다. 석양을 반사한 유리창은 화염을 내뿜는 것 같았다. 나는 비명을 지르면 엄마 치마꼬리에 매달렸다. 그전부터 나에게 유리와 불의 이미지는 따로가 아니었다. 오빠가 읍내 소학교 다닐 때 학교에서 받아 온 학용품 중 화경(火鏡)이 내가 난생 처음 본 유리였다. 하필이면 그 볼록한 유리의 쓸모가 불을 만드는 거라니. 화경을 통해 까만 종이 위에 햇빛을 모으면 연기가 모락모락 나면서 타들어 가 구멍이 생겼다. 그걸 가지고 어른 몰래 장난을 치다가 짚 더미에 불이 옮겨 붙어 집을 태울 뻔한 일이 있었다. 그 무섭고 불길한 물건으로 온통 창을 싸바른 기차를 타고 도시로 온 게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과 영이별하는 것이었다.

아차산에는 온갖 새들이 산다. 그러나 생긴 걸 보고 이름을 알 수 있는 까치, 참새, 굴뚝새 등 동네로 자주 내려오는 새들이고, 소리로 무슨 새인지 알 수 있는 것은 소쩍새와 뻐꾹새가 고작이다. 봄부터 지금까지 산에 온갖 잡새들이 별의별 소리로 지저귀지만 어떻게 생긴 새인지 그 모습을 본 적은 없다. 나는 혜경이랑 산에 갈 때마다 새소리에 홀린 나머지 죽어서 무언가로 태어날 수만 있다면 새로 태어나고 싶다는 소리를 여러 번 했다. 우리 집 유리창에 부딪혀 죽은 새는 한 쌍이었으니 필시 엄마 아빠였을 것이다. 둥지에서 먹이를 찾으러 나간 엄마 아빠를 기다리다 지친 새끼들이 피나게 울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듣고 즐거워한 온갖 새소리 중에는 그 어린 새끼들의 슬픈 원성도 들어 있었을 것이다. 인간과 자연을 갈라놓는 건 이런 극복할 수 없는 착각이 아닐까.

-박완서, 죽은 새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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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의 공통점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대구를 이루는 문장을 나열하여 주제를 강조하고 있다.

역설적 표현을 사용하여 이상향에 대한 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예찬적 어조로 대상을 묘사하여 삶에 대한 교훈을 제시하고 있다.

자연물에 인격을 부여하여 대상에 대한 화자의 태도를 암시하고 있다.

계절을 드러내는 소재들을 대비하여 화자가 놓인 상황을 보여 주고 있다.

 

8. - 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 : 부사어 비로소를 통해 변화가 이루어지는 시적 상황이 부각되고 있다.

② ㉡ : 1인칭 주어를 사용한 명령형 문장을 통해 화자의 의지적 태도가 부각되고 있다.

③ ㉢ : 의문형 문장을 통해 산의 변화하는 모습에서 떠올린 화자의 깨달음이 부각되고 있다.④ ㉣ : 사동 표현이 사용된 문장을 통해 새가 죽은 사건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가 부각되고 있다.

⑤ ㉤ : 부사어 하필이면을 통해 화경의 파괴적 속성에 대한 글쓴이의 거부감이 부각되고 있다.

 

9. 의 기능에 대한 이해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는 화자가 구속된 상태를 자각하게 하고, 는 글쓴이가 자유로운 세계를 지향하게 한다.

② ⓐ는 화자가 이웃과 교감할 수 있게 하고, 는 글쓴이가 자신에 대한 성찰을 시도하게 한다.

③ ⓐ는 화자가 사물의 본질을 탐구할 수 있게 하고, 는 글쓴이가 바깥 대상과의 괴리를 확인하게 한다.

④ ⓐ는 화자가 바깥 대상과 통할 수 있게 하고, 는 글쓴이가 바깥 대상과의 괴리를 확인하게 한다.

⑤ ⓐ는 화자가 미래를 비관적으로 바라보게 하고, 는 글쓴이가 미래에 대한 흼아적 전망을 떠올리게 한다.

 

10. <보기>를 참고하여 ()를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한국 문학의 전통 속에서 산은 흔히 접할 수 있는 자연물일 뿐 아니라 혼탁한 인간사로부터 분리된 곳, 자연의 순리나 인간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 구현된 곳으로 인식되어 왔다. ()의 화자는 여기에서 나아가 산을 통해 자신의 삶과 죽음에 관해 사유하며, 산에 대한 깊은 애착과 지향을 드러낸다. 이러한 화자의 태도는 가난과 병고에 맞서다 삶을 마감하기 전, 시인이 도달한 정신적 경지와도 맞닿아 있다.

-------------------------------------------------------------------

장거릴 등지고 산을 향하여 앉는 화자의 모습에서, 혼탁한 인간사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지향이 드러나는군.

화자가 산을 바라보며 고요, ‘너그러, ‘겸허함 등의 덕목을 떠올리는 것에서, 한국 문학의 전통적 자연관을 발견할 수 있겠군.

평생 산을 보고 산을 배우다가 그곳에서 묻히겠다고 하는 화자의 말에서 죽음을 자연의 순리로 받아들이려는 태도가 드러나는군.

화자가 산을 이승의 낮과 저승의 밤다리 놓는것으로 묘사하는 것에서, 이승의 삶에서 도달할 수 없는 산에 대한 깊은 애착이 드러나는군.

꿈같은 산정기를 그리며 산다는 화자의 말에서, 가난과 병고에도 불구하고 숭고한 가치를 추구하려 하던 시인의 정신적 경지를 읽어 낼 수 있겠군.

 

11. <보기>를 참고하여 (), ()를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의 공간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구성된 상징화된 공간으로, 국토가 형성되는 태초의 모습과 민족사의 전개를 보여 준다. 이 공간에서 암담한 상황 속에서도 역사적 관점에서 새로운 미래를 꿈꾸던 작가의 지향이 투영되어 있으므로, 그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제 강점기라는 창작 배경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의 공간은 글쓴이가 머무르며 경험한 실재하는 장소이며, 자연에 대한 현대 문명의 폭력성과 이를 자각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비판적 사유를 이끌어 내는 단초가 된다. 독자들은 ()()에 나타난 공간의 성격을 작품이 창작된 맥락과 관련지어 이해함으로써 감상의 폭을 넓힐 수 있다.

-------------------------------------------------------------------

()에서 까마득한 날광야는 원시적 국토의 모습을 나타낸 공간으로, 일제의 침략 이전 평화를 누리던 민족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 주는군.

()에서 지금광야는 화자의 현실 인식을 함축하는 공간으로, 암담한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좇고자 하는 작가의 지향을 반영하고 있군.

()에서 천고의 뒤광야는 조국의 미래를 형상화한 공간으로, 작가가 꿈꾸던 민족사적 가치가 실현된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군.

()에서 이 집은 자연과 어울리는 모습이 되게 하려는 의도에 따라 지어진 공간으로, 글쓴이가 자신의 위선적인 사고방식을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장소이기도 하군.

()에서 아차산은 죽은 새가 살고 있었으리라고 짐작되는 공간으로, 현대 문명의 폭력성에 의해 침탈되고 있는 자연을 연상하게 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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