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핵심정리

 

1. 작가: 김시습

2. 연대: 세조 때

3. 갈래: 한문 소설, 전기 소설, 단편소설

4. 성격: 전기(傳奇), 명혼소설(冥婚小說)

5. 표현: 직유, 은유, 과장법

6. 구성: 추보식 구성, 3단구성

7. 시점: 전지적 작가 시점

8. 배경: 시간적(고려 공민왕), 공간적(송도)

9. 제재: 남녀간의 사랑

10. 주제: 죽음을 초월한 남녀간의 사랑

11. 의의: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 소설로 조선시대의 소설, 특히 한문 소설의 발달에 큰 영향을 주었다.

12. 출전: ‘금오신화(金鰲新話)'

13. 기타: 중국 나라 瞿佑(구우)가 쓴 전등신화(剪燈神話)의 영향을 받음

 

* 작품 해제

한문 소설의 효시인 {金鰲新話(금오신화)} 중의 한 작품으로, 삶과 죽음을 초월한 사랑의 성취를 그린 冥婚小說(명혼 소설; 귀신과 결혼하는 내용의 소설) 또는 屍愛小說(시애 소설; 죽은 사람과 사랑을 나누는 내용의 소설)이라 불리는 작품이다.

 

전반부는 이승의 현실적 사건을, 후반부는 이승과 저승을 초월한 세계를 그린 2단 구성으로 된 작품이다.

 

작품 전반부에서 이생은 부모의 완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최 낭자와의 결혼에 성공한다.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 의사에 의한 만남과 혼인을 표현한 점에서 작자의 남녀의 애정에 대한 진보적 시각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렵게 성취한 두 사람의 사랑은 홍건적의 난리에 최 낭자가 죽음으로 해서 깨어지고 만다. 작자는 깨어진 두 사람의 사랑을 최 낭자의 幻身(환신)과 이생의 사랑이라는 전설적 구성으로 다시 이어 놓았다. 이 작품에 드러나는 귀신과의 사랑은 최치원의 <수이전(殊異傳)>에 나타나 있어 작자는 이러한 전설을 바탕으로 삼아 작품을 창작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설화가 아닌 소설인 까닭은 자신들의 사랑을 좌절시키려는 세계의 횡포에 대해 주인공들이 치열하게 저항하는데 있다. 즉 주인공과 세계 사이의 갈등이 치열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극적 모습이 귀신과의 사랑이다. 현실적으로 좌절된 사랑을 귀신과의 사랑으로 바꾸어 성취시키는 것은 분명히 逆說이지만, 이 점이 이 소설의 전기적 특성을 드러내는 요소이다.

 

이 작품은 전등신화'의 영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플롯이나 테마 면에서 독창성을 발휘하고 있으며, 또한 등장 인물의 개성적인 성격이나 구성, 장면 묘사에 있어서도 소설다운 면모를 지니고 있으며, 현실적이고 사실적으로 사건이 전개되기 때문에 금오신화에 실린 나머지 다른 작품에 비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래엔 수록 부분]

 

앞부분 줄거리

 

 개성에 사는 이생은 어느 봄날 우연히 담 너머로 아름다운 여인을 보게 되고, 여인(최 씨) 역시 이생에게 마음이 끌린다. 편지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두 사람은 결국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두 사람의 관계를 눈치챈 이생의 아버지는 이생을 지방으로 보내고, 최 씨는 상사병을 얻는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최 씨의 부모는 간곡한 딸의 청에 따라 이생의 부모를 설득하고 결국 이생과 최 씨는 혼례를 올린다. 

 

 

신축년(1361)에 홍건적이 서울을 점거하자 임금은 복주(福州)로 피난 갔다. 적들은 집을 불태워 없애버렸으며, 사람을 죽이고 가축을 잡아먹었다. 부부와 친척끼리도 서로 보호하지 못했고 동서로 달아나 숨어서 제각기 살길을 찾았다.

이생은 가족들을 데리고 외진 산골로 숨었는데, 한 도적이 칼을 빼어들고 뒤를 쫓아왔다. 이생은 달아나 목숨을 건졌지만, 최랑은 도적에게 사로잡혔다. 도적이 최랑의 정조를 빼앗으려 하자, 최랑이 크게 꾸짖었다.

창귀(倀鬼) 같은 놈아. 나를 죽여 먹어라. 내 차라리 죽어서 시랑(豺狼)의 밥이 될지언정 어찌 개돼지 같은 놈의 짝이 되겠느냐?"

도적이 노하여 최랑을 죽이고 살을 도려내었다.

 

이생은 거친 들판에 숨어서 겨우 목숨을 보전하다가, 도적이 이미 다 없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부모님이 사시던 옛집을 찾아갔다. 그러나 그 집은 이미 싸움 통에 불타 없어졌다. 또 최랑의 집에도 가보았더니 행랑채는 황량했으며, 쥐와 새들의 울음소리만 들려왔다.

이생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작은 누각으로 올라가서 눈물을 거두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날이 저물도록 우두커니 홀로 앉아 지나간 일들을 생각해 보니 완연히 한바탕 꿈만 같았다.

二更(이경)쯤 되자 희미한 달빛이 들보를 비춰 주는데 낭하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멀리서부터 차츰 가까이 다가왔다. 이르고 보니 바로 최랑이었다.

이생은 그가 이미 죽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너무도 사랑하는 마음에 의심하지도 않고 물어 보았다.

당신은 어디로 피난 가서 목숨을 보전하였소?"

여인이 이생의 손을 잡고 한바탕 통곡하더니, 이내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저는 본디 양가의 딸로서 어릴 때부터 가정의 교훈을 받아 수놓기와 바느질에 힘썼고, 시서(詩書)와 예법을 배웠어요. 그래서 규방의 법도만 알뿐이지, 그 밖의 일이야 어찌 알겠어요? 마침 당신이 붉은 살구꽃이 핀 담 안을 엿보았으므로, 제가 푸른 바다의 구슬을 바친 거지요. 꽃 앞에서 한번 웃고 평생의 가약을 맺었고, 휘장 속에서 다시 만날 때에는 정이 백년을 넘쳤었지요.

여기까지 말하고 보니 슬프고도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군요. 장차 백년을 함께 하자고 하였는데, 뜻밖에 횡액을 만나 구렁에 넘어질 줄이야 어찌 알았겠어요? 늑대 같은 놈들에게 끝까지 정조를 잃지 않았지만, 제 몸은 진흙탕에서 찢겨졌답니다. 천성이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지, 인정으로야 어찌 그럴 수 있었겠어요?

저는 당신과 외딴 산골에서 헤어진 뒤에 짝 잃은 새가 되었었지요. 집도 없어지고 부모님도 돌아가셨으니, 피곤한 혼백을 의지할 곳도 없는 게 한스러웠답니다. 절의(節義)는 중요하고 목숨은 가벼우니, 쇠잔한 몸뚱이일망정 치욕을 면한 것을 다행스럽게 여겼지요. 그러나 마디마디 끊어진 제 마음을 그 누가 불쌍하게 여겨 주겠어요? 한갓 애끊는 썩은 창자에만 맺혀 있을 뿐이지요.

해골은 들판에 내던져졌고 간과 쓸개는 땅바닥에 널려졌으니, 가만히 옛날의 즐거움을 생각해 보면 오늘의 슬픔을 위해 있었던 것 같군요.

이제 봄바람이 깊은 골짜기에 불어오기에, 저도 이승으로 돌아왔지요. 봉래산 십 이년의 약속이 얽혀 있고 삼세(三世)의 향이 향그러우니, 오랫동안 뵙지 못한 정을 이제 되살려서 옛날의 맹세를 저버리지 않겠어요. 당신이 지금도 그 맹세를 잊지 않으셨다면, 저도 끝까지 잘 모시고 싶답니다. 당신도 허락하시겠지요?"

이생이 기쁘고도 고마워하며 말하였다.

그게 애당초 내 소원이오."

그리고는 서로 정답게 심정을 털어놓았다. 재산을 얼마나 도적들에게 빼앗겼는지 이야기가 나오자, 여인이 말하였다.

조금도 잃지 않고 어느 산 어느 골짜기에 묻어 두었답니다."

이생이 또 물었다.

두 집 부모님의 해골을 어디에 모셨소?"

여인이 말하였다.

어느 곳에다 그냥 버려 두었지요."

정겨운 이야기를 끝낸 뒤에 잠자리를 같이 하였는데, 지극한 즐거움이 예전과 같았다.

 

이튿날 여인이 이생과 함께 자기가 묻혀 있던 곳을 찾아갔는데, 과연 금과 은 몇 덩어리가 있었고, 재물도 약간 있었다. 그들은 두 집 부모님의 해골을 거두고 금과 재물을 팔아 각각 오관산 기슭에 합장하였다. 나무를 세우고 제사를 드려 예절을 모두 다 마쳤다.

그 뒤에 이생도 또한 벼슬을 구하지 않고 최씨와 함께 살게 되었다. 목숨을 구하려고 달아났던 종들도 또한 스스로 돌아왔다. 이생은 이때부터 인간세상의 모든 일을 다 잊어버렸으며, 아무리 친척이나 손님들의 길흉사가 있더라도 방문을 닫아걸고 나가지 않았다. 언제나 최씨와 더불어 시를 지어 주고받으며 금실 좋게 지내었다.

 

그럭저럭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저녁에 여인이 이생에게 말하였다.

세 번이나 가약을 맺었지만 세상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즐거움이 다하기도 전에 슬프게 헤어져야만 하겠어요."

여인이 목메어 울자 이생이 놀라면서 물었다.

어찌 이렇게 되었소?"

여인이 대답하였다.

저승길은 피할 수가 없답니다. 하느님께서 저와 당신의 연분이 끊어지지 않았고 또 전생에 아무런 죄도 지지 않았다면서, 이 몸을 환생시켜 당신과 잠시라도 시름을 풀게 해주었었지요. 그러나 제가 오랫동안 인간 세상에 머물면서 산 사람을 미혹시킬 수는 없답니다."

그리고는 몸종 향아를 시켜서 술을 올리게 하고는, 옥루춘곡(玉樓春曲)에 맞추어 노래 한 가락을 지어 부르며 이생에게 술을 권하였다.

 

칼과 창이 어우러져 싸움이 가득한 판에

옥 부서지고 꽃 떨어지니 원앙도 짝을 잃었네.

흩어진 해골을 그 누가 묻어 주랴.

피에 젖어 떠도는 혼이 하소연할 곳도 없었네.

무산의 선녀가 고당에 한번 내려온 뒤에

깨어진 종()이 거듭 갈라지니 마음 더욱 쓰라려라.

이제 한번 작별하면 둘이 서로 아득해질 테니

하늘과 인간세상 사이에 소식마저 막히리라.

 

노래를 한마디 부를 때마다 눈물이 자꾸 내려 거의 곡조를 이루지 못하였다. 이생도 또한 슬픔을 걷잡지 못하며 말하였다.

내 차라리 당신과 함께 황천(荒天)으로 갈지언정 어찌 무료하게 홀로 여생을 보전하겠소? 지난 번 난리를 겪고 난 뒤에 친척과 종들이 저마다 서로 흩어지고 돌아가신 부모님의 해골이 들판에 내버려져 있었는데, 당신이 아니었다면 그 누가 장사를 지내 드렸겠소? 옛 사람 말씀에, ‘어버이가 살아 계실 때에는 예로써 섬기고, 돌아가신 뒤에는 예로써 장사지내라' 하셨는데, 이런 일을 모두 당신이 감당해 주었소. 당신은 정말 천성이 효성스럽고 인정이 두터운 사람이오. 나는 당신에게 고맙기 그지없고,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하겠소. 당신도 인간 세상에 더 오래 머물다가 백년 뒤에 나와 함께 티끌이 되었으면 좋겠구려."

여인이 말하였다.

당신의 목숨은 아직 남아 있지만, 저는 이미 귀신의 명부(冥府)에 실려 있답니다. 그래서 더 오래 볼 수가 없지요. 제가 굳이 인간세상을 그리워하며 미련을 가진다면 명부의 법도를 어기게 되니, 저에게만 죄가 미치는 게 아니라 당신에게도 또한 누가 미치게 된답니다. 저의 유골이 어느 곳에 흩어져 있으니, 만약 은혜를 베풀어주시려면 (그 유골이나 거두어) 비바람을 맞지 않게 해주세요."

두 사람은 서로 바라보며 눈물만 줄줄 흘렸다.

낭군님, 부디 안녕히 계십시오."

말이 끝나자 차츰 사라지더니 마침내 자취가 없어졌다.

 

이생은 (여인의 말대로) 유골을 거두어 부모님의 무덤 곁에다 장사를 지내 주었다. 장사를 지낸 뒤에는 이생도 또한 지나간 일들을 생각하다가 병을 얻어, 몇 달만에 세상을 떠났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마다 가슴 아파 탄식하며 그들의 아름다운 절개를 사모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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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3]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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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二更)쯤 되어 달빛이 희미한 빛을 토하며 들보를 비추었다. 그런데 회랑 끝에서 웬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멀리서부터 들려오더니 차츰 가까워졌다. 발걸음 소리가 이생 앞에 이르렀을 때 보니 바로 최 씨였다. 이생은 그녀가 이미 죽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너무도 사랑하는 나머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물었다.

“당신은 어디로 피난하여 목숨을 부지하였소?”

최 씨는 이생의 손을 잡고 한바탕 통곡하더니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저는 본디 양가의 딸로서 어려서부터 어버이의 가르침을 받들어 수놓기와 바느질에 힘쓰고 시서(詩書)와 인의(仁義)의 방도를 배울 뿐이었습니다. 오로지 규문의 법도만 알았을 뿐 어찌 집 밖의 일을 헤아릴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당신께서 붉은 살구꽃이 핀 담장 안을 한 번 엿보신 후 제가 스스로 푸른 바다의 구슬을 바쳤지요. 꽃 앞에서 한 번 웃고는 평생의 은혜를 맺었고, 휘장 안에서 다시 만났을 때에는 은정이 백 년을 넘칠 것 같았지요.

 

[A]말이 여기에 이르고 보니 슬프고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군요. 장차 평생을 함께하려고 하였는데 뜻밖의 횡액을 만나 구덩이에 뒹굴게 될 줄 어찌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끝까지 짐승 같은 놈에게 몸을 내맡기지 않고 스스로 진흙탕에서 육신이 찢기는 길을 택하였지요. 그건 천성이 저절로 그렇게 한 것이지 인정으로야 차마 견딜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답니다.

 

 외진 산골짜기에서 당신과 헤어진 후로 짝을 잃고 홀로 날아가는 새의 신세가 된 것이 너무 한스러웠습니다. 집도 없어지고, 부모님도 돌아가셨으니 고단한 혼백조차 의지할 곳이 없었지만 절의는 귀중하고 목숨은 가벼우니 쇠잔한 몸뚱이일망정 치욕을 면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했지요. 하지만 누가 마디마디 끊어져 재처럼 식어 버린 제 마음을 불쌍히 여겨 주겠습니까? 그저 조각조각 끊어진 썩은 창자만 모아 두었을 뿐, 해골은 들판에 던져졌고 간과 쓸개는 땅바닥에 버려져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지요. 가만히 지난날의 즐거움을 헤아려 보기도 하지만 오늘의 근심과 원한만이 마음에 가득 차 버렸습니다.

이제 추연(鄒衍)이 피리를 불어 적막한 골짜기에 봄바람을 일으켰으니 저도 천녀의 혼이 이승으로 돌아왔듯이 이곳으로 돌아오렵니다. 봉래산에서 십이 년 만에 만나자는 약속을 이미 단단히 맺었고, 취굴(聚窟)에서 삼생(三生)의 향이 그윽이 풍겨 나오니 그동안 오래 떨어져 있던 정을 되살려서 옛 맹세를 저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하겠어요. 만약 당신이 아직도 옛 맹세를 잊지 않으셨다면 저는 끝까지 잘해 보고 싶어요. 당신도 허락하시는 거지요?”

 이생은 기쁘고도 감격하여 말하였다. / “그건 바로 내가 바라던 바요.”

두 사람은 다정하게 마주 앉아 그간의 회포를 풀었다. 그러다가 이생이 재산을 얼마나 도적에게 약탈당했는가에 대해 묻자 최 씨가 말하였다.

“조금도 잃지 않았어요. 아무 산 아무 골짜기에 묻어 두었답니다.”

이생이 또 물었다. / “양가 부모님의 유해는 어디에 있소?”

최 씨가 대답하였다. / “아무 곳에 그냥 버려져 있는 상태랍니다.”

두 사람은 그간의 정회를 다 나눈 후 나란히 잠자리에 들었다. 지극한 즐거움이 예전과 같았다.

다음 날 최 씨와 이생은 함께 재물이 묻혀 있다는 곳을 찾아갔다. 과연 금은 여러 덩이와 얼마간의 재물을 얻을 수 있었다. 그들은 양가 부모님의 유골을 수습한 후 금과 재물을 팔아 각각 오관산 기슭에 합장하였다. 묘소에 나무를 심고 제사를 드려 예를 극진히 갖추었다.

그 뒤 이생은 벼슬을 구하지 않고 최 씨와 함께 살았다. 목숨을 구하고자 달아났던 종들도 다시 스스로 돌아왔다. 이생은 이때부터 인간사에 게을러져서 비록 친척이나 손님들의 길흉사에 하례하고 조문해야 할 일이 있더라도 문을 걸어 잠그고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는 항상 최 씨와 더불어 시를 지어 주고받으며 금실 좋게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러갔다.

 

 어느 날 저녁 최 씨가 이생에게 말했다.

세 번이나 좋은 시절을 만났지만, 세상일은 뜻대로 되지 않고 어그러지기만 하네요. 즐거움이 다하기도 전에 갑자기 슬픈 이별이 닥쳐오니 말이에요.”

그러고는 마침내 오열하기 시작하였다. 이생은 깜짝 놀라서 물었다.

“무슨 일로 그러시오?”

최 씨가 대답하였다.

“저승길의 운수는 피할 수가 없답니다. 하느님께서 저와 당신의 연분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또 저희가 아무런 죄악도 저지르지 않았음을 아시고 이 몸을 환생시켜 당신과 지내며 잠시 시름을 잊게 해 주신 것이었어요. 그러나 인간 세상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산 사람을 미혹시킬 수는 없답니다.”

 

(중략)

 

 이생도 슬픔을 걷잡지 못하여 말하였다.

“내 차라리 당신과 함께 저세상으로 갈지언정 어찌 무료히 홀로 살아남을 수 있겠소? 지난번 난리를 겪은 후 친척과 종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돌아가신 부모님의 유해가 들판에 버려져 있을 때 당신이 아니었다면 누가 부모님을 묻어 드릴 수 있었겠소? 옛 성현이 말씀하시기를 ‘어버이 살아 계실 때는 예로써 섬기고, 돌아가신 후에는 예로써 장사 지내야 한다.’라고 했는데 당신의 천성이 효성스럽고 인정이 두터웠기 때문에 이런 일을 다 처리할 수 있었던 것이오. 당신의 정성에 너무도 감격하지만, 한편으로는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을 참을 길이 없었소. 부디 그대는 인간 세상에 더 오래 머물다가 백 년 후 나와 함께 흙으로 돌아가시구려.”

 

 최 씨가 대답하였다.

“당신의 목숨은 아직도 한참 더 남아 있지만 저는 이미 귀신의 명부에 이름이 실렸으니 이곳에 더 오래 머물 수가 없답니다. 만약 제가 굳이 인간 세상을 그리워하며 미련을 두어 운명의 법도를 어기게 된다면 단지 저에게만 죄과가 미치는 게 아니라 당신에게도 누를 끼치게 될 거예요. 다만 제 유해가 아무 곳에 흩어져 있으니 만약 은혜를 베풀어 주시려면 그것이나 거두어 비바람과 햇볕 아래 그냥 나뒹굴지 않게 해 주세요.”

두 사람은 서로 바라보며 눈물만 줄줄 흘렸다. / “서방님, 부디 몸 건강히 지내세요.”

말을 마친 최 씨의 자취가 점차 희미해지더니 마침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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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윗 글에 대한 이해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최 씨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려고 이생으로 하여금 세상과 단절하게 하였다.

② 최 씨는 이생과 부부의 연을 이어가기 위해 하늘의 뜻을 거역하여 환생하였다.

③ 이생은 최 씨가 죽은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최 씨의 귀환을 수상하게 여겼다.

④ 이생은 죽은 부모에게 자신이 해야 할 도리를 극진하게 다할 만큼 효행에 충실하였다.

⑤ 이생은 최 씨가 인간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최 씨와의 재회를 후회하였다.

 

 

2. <보기>의 ⓐ와 ⓑ의 관점에 따라 [A]를 이해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우의(寓意)란 다른 대상에 빗대어 비유적인 뜻을 나타내거나 풍자하는 문학적 표현을 말한다. 이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해석하면 작품 속에 그려진 사건과 인물들은 실제의 사건, 인물들과 서로 대응하게 되며, 역사적인 의의를 획득하게 된다. 「이생규장전」 또한 우의로 읽는 것이 주제에 접근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럴 경우 수양 대군과 그의 일파가, 단종을 섬기며 절의를 지킨 충신들을 죽이고 단종의 왕위를 빼앗은 사건인 '계유정난'을 작가가 우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때 작품의 의미는 '최 씨'를 ⓐ'단종'을 우의한 것으로 보느냐, '충신의 일원'을 우의한 것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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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의 관점에 따르면 '몸을 내맡기'는 것은 왕위를 지키기 위해 수양 대군에게 저항하던 단종이 자신의 목숨을 내주게 되는 일에 대응한다고 볼 수 있겠군.

ⓑ의 관점에 따르면 '평생을 함께 하려고'는 끝까지 단종을 왕으로 섬기며 신하로서의 절의를 지키겠다는 충신으로서의 의지와 다짐에 대응한다고 볼 수 있겠군.

③ ⓑ의 관점에 따르면 '육신이 찢기는 길'은 단종을 왕으로 섬기던 충신들이, 수양 대군과 그 일파의 뜻에 따르지 않다가 그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일에 대응한다고 볼 수 있겠군.

④ ⓐ와 ⓑ의 어떤 관점에 따르더라도 '짐승 같은 놈'은 단종을 섬기던 충신들을 죽이고, 단종의 왕위를 빼앗은 수양 대군의 일파에 대응한다고 볼 수 있겠군. 

⑤ ⓐ와 ⓑ의 어떤 관점에 따르더라도 '뜻밖의 횡액'은 단종이나 그를 섬기던 충신들에게 예기치않게 일어난 사건인 계유정난에 대응한다고 볼 수 있겠군.

 

 

3. <보기>를 참고하여 윗글을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이생규장전」에는 애정 전기 소설의 주요 특징들이 잘 나타난다. 먼저 '전기(傳奇)'는 '기이한 것을 전하다'는 뜻으로, 현실계와 초현실계의 접촉에 의한 사건을 다루기 때문에 '환상성'과 '현실성'의 상반된 두 속성을 포함한다. 또한 애정 전기 소설의 남녀 주인공은 고독감을 지닌 인물들로 그려지는 가운데 남주인공은 소극적인 모습으로, 여주인공은 능동적인 모습으로 애정을 추구한다. 그들은 서로에게 독점적 애정을 보여주지만 그 애정은 여러가지 장애로 말미암아 지속되지 못한다. 이 과정에서 남녀 주인공은 만남과 헤어짐을 주요 사건으로 겪게 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때 숭고한 사랑을 위해 희생을 아끼지 않는 청춘 남녀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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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이승의 인물인 이생과 저승에서 '환생'한 인물인 최 씨가 만나 '정회를 다 나눈' 것에서 현실계와 초현실계의 접촉에 의한 사건을 다루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군.

② 최 씨가 '끝까지 잘해보고 싶'다고 먼저 제안하자 이생이 '바로 내가 바라던 바'라고 응하는 장면에서 남주인공보다 더 능동적으로 애정을 추구하는 여주인공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군.

③ 이생과 최 씨의 애정이 지속되지 못하고, '세 번'의 '좋은 시절'이 있다가도 '어그러지기만' 하였다는 점에서 주인공들이 만남과 헤어짐을 겪게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군.

④ 최 씨가 '짝을 잃고 홀로 날아가는 새'에 빗대어지는 것과 최 씨가 떠난 뒤 결국에는 '홀로 살아남'게 될 이생에게서 주인공들이 고독감을 지닌 모습으로 형상화된 점을 확인할 수 있군.

⑤ 최 씨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누를 끼치'지 않으려고 '인간 세상'에 '미련을 두'지 않는 것에서 주인공이 상대방에게 독점적 애정을 보여준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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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 위에 다갈빛 도토리묵 한모

모든 소리들이 흘러 들어간 뒤에 비로소 생겨난 저 고요
저토록 시끄러운, 저토록 단단한,


핵심 정리

 

1. 갈래 - 자유시, 서정시

2. 성격 - 감각적, 개성적

3. 제재 - 도토리묵

4. 주제 - 도토리묵에 대한 개성적 통찰

5. 특징 

   - 시적 대상인 도토리를 의인화함.

   - 주로 청각적 이미지를 사용하여 대상을 효과적으로 표현함.

   - 도토리묵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는 소리'로 반복적으로 표현하여 운율을 형성함.

 

6. 작품 감상

 

 이 시는 우리의 생활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도토리묵'을 소재로 하여 시인의 창의적, 개성적 인식을 표현한 작품이다. 시인은 도토리묵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미각이 아닌 청각적 이미지를 중심으로 활용하여 다채롭게 그리고 있다. 

 

 

출처 : 미래엔 문학 자습서

 

 

 

 

2014 수능특강 문제로 점검하기

 

[31~33]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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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잎사귀 도토리알 얼굴 부비는 소리 후두둑 뛰어내려 저마다 멍드는 소리 멍석위에 나란히 잠든 반들거리는 몸 위로 살짝살짝 늦가을 햇볕 발 디디는 소리 먼 길 날아온 늙은 잠자리 채머리떠는 소리 맷돌 속에서 껍질 타지며 가슴 동당거리는 소리 사그락사그락 고운 뼛가루 저희끼리 소근대며 어루만져 주는 소리 보드랍고 찰진것들 물속에 가라앉으며 안녕 안녕 가벼운 것들에게 이별 인사 하는 소리 아궁이 불 위에서 가슴이 확 열리며 저희끼리 다시 엉기는 소리 식어 가며 단단해지며 서로 핥아 주는 소리

 

도마 위에 다갈빛 도토리묵 한 모

 

[A] [모든 소리들이 흘러들어 간 뒤에 비로소 생겨난 저 고요

저토록 시끄러운저토록 단단한,]

                                                                                                                                                   - 김선우, ‘단단한 고요

 

*채머리체머리머리가 저절로 계속하여 흔들리는 병적 현상또는 그런 현상을 보이는 머리.

*찰진: ‘차진의 방언반죽이나 밥 따위가 끈기가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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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윗글에 대한 감상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자연과의 교감에서 얻는 깨달음을 드러내고 있다.

② 자연 현상으로부터 인간의 도리를 유추하고 있다.

③ 자연으로부터 소외된 인간의 처지를 비판하고 있다.

④ 자연물이 인공물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⑤ 자연에 맞서 삶을 개척하는 인간의 의지를 찬양하고 있다.

 

32 ~㉤ 중 <보기>의 설명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3]

<보기>-------------------------------------------------------------------------------------------------------------------------------------------------------

시각청각미각후각촉각 등 감각 인상(感覺印象)의 종류와 그 원인이 되는 물리적 자극은 원래 1대 1로 대응한다그러나 시에서는 때때로 감각 인상의 종류가 그 물리적 자극의 본래 영역이 아닌 다른 영역으로 전이되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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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                               ② ㉡                                     ③ ㉢                                  ④ ㉣                                        ⑤ ㉤

         

33 [A]에 대한 이해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문장을 수식어로 끝맺음으로써 시적 여운을 강화한다.

② 수식어와 피수식어의 이질적 결합으로 지적 충격을 준다.

③ ‘ㄴ’과 ‘ㄹ’ 음의 반복은 시적 대상의 가벼운 속성과 어울린다.

④ ‘소리’와 ‘고요’ 사이의 의미상 모순에서 시적 긴장감이 형성된다.

⑤ ‘저’, ‘저토록’이라는 시어는 대상을 직접 보면서 말하는 듯한 효과를 낳는다.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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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4

32. 2

3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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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정리

 

1. 갈래 : 단편 소설, 본격 소설

2. 성격 : 사실적 현실 고발적

3. 배경 : 시간 1964년 어느 겨울밤

공간 서울 거리

4.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5. 문체 : 인상주의적(상투어를 쓰지 않고 참신하고 인상적인 언어의 사용), 상징적, 홑문장과 겹문장의 교차(홑문장과 겹문장의 교차는 이 소설의 비판적 어조에 기여함)

6. 주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여 느끼는 삶의 공동성과 파편적 개인성

뚜렷한 가치관을 갖지 못한 사람들의 심리적 방황과 인간적 연대감의 상실

 

감상의 길잡이

 

이 작품은 1965년 발표되어 동인 문학상을 수상한 단편 소설로 현실에서 소외되고 목표를 잃은 세 사람이 우연히 만나서 무심히 헤어지는 일상을 그리고 있다.

''''이라는 25세 동갑내기의 우연한 만남으로 이 소설은 시작된다. 그들은 선술집에서 우연히 만나 대화를 나누는데, 결코 자신의 진심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다. 심각하고 진지한 것에 대하여 말하고자 하나 가치 지향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현실과 내적 연관을 갖지 못한 주관적이고 자의식적인 사소한 대화만 있을 뿐, 두 사내는 철저한 개인주의로 무장되어 있다.

 

이 두 사람에 비해서 삼십대의 외판원 사내는 자신의 모든 것을 얘기하면서 자신의 고뇌와 비애를 공유(共有)할 것을 간청한다. 이를테면, 고통의 분배를 통한 인간적 연대 의식을 상대방에게 솔직히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만의 세계에 틀어박힌 ''''에게 그 사내는 부담스러운 존재일 뿐이다. 둘은 외판원 사내의 동행 요청에 마지못해 응하고 있고 내심으로 빨리 떠나고 싶어한다. 이러한 기미를 사내가 눈치챘음일까, 화재가 난 곳을 찾아가 아내의 시체를 판 돈을 버리는 행위는, 허위적이고 비인간적인 삶에 대한 분노요, 절망의 표현일 것이다.

이 작품은 사회적 연대감이나 공동체성을 완전히 상실한 비극적이고 외로운 현대인의 초상(肖像)이 잘 나타나 있다. 이들의 대화와 행동을 통해 우리는 당대의 도시적 삶의 황폐성과 파편성(破片性), 그리고 왜곡된 개인주의의 심화된 양상을 읽을 수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대학원생 안씨와 서적 외판원 아저씨는 60년대 도시에서 소외당한 현대인의 고독과 인간관계의 단절상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인물들이다.

 

7. 작품의 줄거리

 

구청 병사계에서 근무하는 ''는 선술집에서 대학원생인 ''과 만나 대화를 나눈다. 새까맣게 구운 참새를 입에 넣고 씹으면서 날개를 연상했던지, 날지 못하고 잡혀서 죽는 '파리'에 자신들을 비유한다. ''는 이미 삶의 현실에서 좌절을 맛본 후였기 때문에 감각이 다소 둔해진 상태이다. 부잣집 아들인 '' 역시 밤거리에 나온 이유는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저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미소를 짓는 예쁜 여자가 아니면 명멸하는 네온 사인들에 도취해 보기 위해서이다.

 

자리를 옮기려고 일어섰을 때, 기운 없어 보이는 삼십대 사내가 동행을 간청한다. 중국집에 들어가 음식을 사면서, 자신은 서적 외판원이며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으나 오늘 아내가 죽었다는 것, 그리고 그 시체를 병원에 팔았지만 아무래도 그 돈을 오늘 안으로 다 써 버려야 하겠는데 같이 있어 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셋은 음식점을 나온다.

그때 소방차가 지나간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그 뒤를 따라 불구경을 나선다. 사내는 불길을 보더니 불 속에서 아내가 타고 있는 듯한 환상에 사로잡힌다. 갑자기 아내라고 소리치며 쓰다 남은 돈을 손수건에 싸서 불 속에 던져 버린다. ''''은 돌아가려 했지만 사내는 혼자 있기가 무섭다고 애걸한다.

 

우리는 여관에 들기로 한다. 사내는 같은 방에 들자고 했지만 ''의 주장으로 각기 다른 방에 투숙한다. 다음 날 아침 사내는 죽을 것이라 짐작했지만 도리가 없었노라고, 그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를 혼자 두는 것이라 생각했었다고 말한다. 우리는 스물다섯 살짜리지만 이제 너무 많이 늙었음에 동의하면서 헤어진다. ''''과 헤어져 버스에 오른다.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차창 밖으로 보인다.

 

8. 구성

 

발단 : ''''이라는 대학원생이 포장 마차에서 만나 무의미한 대화를 즐김.

전개 : 낯선 사내가 말을 걸어오며 자신의 불행을 말하고 동행해도 좋으냐고 간청함.

위기 : 화재가 난 곳에서 사내는 아내의 시체를 판 돈을 불 속에 던지고는 불안에 빠 짐.

절정 : 여관에 도착한 셋은 각각 다른 방에 투숙함.

결말 : 다음날 아침, 사내의 자살 밝혀짐. ''''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곳에서 헤 어짐.

 

9. 등장 인물의 성격

 

* -육사(陸士) 시험에 실패하고 구청 병사계에서 근무하는 스물다섯 살난 시골 출신 사 내. 소외감과 고독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현대 젊은이의 표상. 아저씨와 ''의 중간적 존재. 확실한 주관이 없는 인물.

* - ''와 동갑내기로 25세의 서울 부유한 집의 장남이며 대학원생. 삶을 냉소하면서 도 자기 구원을 시도하는 인물이다. 염세주의적이고 개인주의자.

* 아저씨(외판원) - 서른 대여섯 살의 가난한 사내. 마누라 시체를 병원에 판 죄책감에 빠져 괴로워하다가 여관방에서 자살한다. 도시인의 소외와 고독을 대표하는 인물.

 
 
미래엔 수록 부분
 

 

앞부분 줄거리
 1964년 겨울밤의 어느 선술집. '나'는 대학원생인 '안'을 우연히 선술집에서 만난다. 의미 없는 대화를 주고 받던 두 사람은 자리를 옮기던 중에 자신도 함께 갈 수 없겠냐고 묻는 '사내'와 함께 중국요릿집에 간다. 사내는 장례 비용이 없어 죽은 아내의 시신을 병원에 팔고 괴로워한다. 중국요릿집에서 나온 세 사람은 밤거리를 배회하다가 화재 난 곳을 찾아간다. 불길 속에서 죽은 아내의 환영을 본 사내는 남은 돈을 모두 볼 속에 던져 버린다.

 

 사내는 계속해서 울고 있었다. 사내는 가끔 여보라고 중얼거리며 오랫동안 울고 있었다. 우리는 여전히 열 발짝쯤 떨어진 곳에서 그가 울음을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 후에 그가 우리 앞으로 비틀비틀 걸어왔다. 우리는 모두 고개를 숙이고 어두운 골목길을 걸어서 거리로 나왔다. 적막한 거리에는 찬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었다.

몹시 춥군요.”라고 사내는 우리를 염려한다는 음성으로 말했다.

추운데요. 빨리 여관으로 갑시다.” 안이 말했다.

방을 한 사람씩 따로 잡을까요?” 여관에 들어갔을 때 안이 우리에게 말했다.

그게 좋겠지요?”

모두 한방에 드는 게 좋겠어요.”라고 나는 아저씨를 생각해서 말했다.

아저씨는 그저 우리 처분만 바란다는 듯한 태도로, 또는 지금 자기가 서 있는 곳이 어딘지도 모른다는 태도로 멍하니 서 있었다. 여관에 들어서자 우리는 모든 프로가 끝나 버린 극장에서 나오는 때처럼 어찌할 바를 모르고 거북스럽기만 했다. 여관에 비한다면 거리가 우리에게 더 좋았던 셈이었다. 벽으로 나누어진 방들, 그것이 우리가 들어가야 할 곳이었다.

모두 같은 방에 들기고 하는 것이 어떻겠어요?” 내가 다시 말했다.

난 아주 피곤합니다..” 안이 말했다. “방은 각각 하나씩 차지하고 자기로 하지요.”

혼자 있기가 싫습니다.”라고 아저씨가 중얼거렸다.

혼자 주무시는 게 편하실 거예요.” 안이 말했다.

우리는 복도에서 헤어져 사환이 지적해 준, 나란히 붙은 방 세 개에 각각 한 사람씩 들어갔다.

화투라도 사다가 놉시다.” 헤어지기 전에 내가 말했지만,

난 아주 피곤합니다. 하시고 싶으면 두 분이나 하세요.”하고 안은 말하고 나서 자기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도 피곤해 죽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라고 나는 아저씨에게 말하고 나서 내 방으로 들어갔다. 숙박계엔 거짓 이름, 거짓 주소, 거짓 나이, 거짓 직업을 쓰고 나서 사환이 가져다 놓은 자리끼를 마시고 나는 이불을 뒤집어 썼다. 나는 꿈도 안 꾸고 잘 잤다

다음날 아침 일찍 안이 나를 깨웠다.

그 양반 역시 죽어 버렸습니다.” 안이 내 귀에 입을 대고 그렇게 속사였다.

?” 나는 잠이 깨끗이 깨어 버렸다.

방금 그 방에 들어가 보았는데 역시 죽어 버렸습니다.”

역시 ……나는 말했다.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까?”

아직까진 아무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우선 빨리 도망해 버리는 게 시끄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실이지요?”

물론 그렇겠죠.”

나는 급하게 옷을 주워 입었다. 개미 한 마리가 방바닥을 내 발이 있는 쪽으로 기어오고 있었다. 그 개미가 내 발을 붙잡으려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나는 얼른 자리를 옮겨 디디었다.

밖의 이른 아침에는 싸락눈이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빠른 걸음으로 여관에서 멀어져 갔다.

난 그가 죽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안이 말했다.

난 짐작도 못했습니다.”라고 나는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난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코트의 깃을 세우며 말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합니까?”

그렇지요. 할 수 없지요. 난 짐작도 못 했는데…….” 내가 말했다.

짐작했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어요?” 그가 내게 물었다.

씨팔것, 어떻게 합니까? 그 양반 우리더러 어떡하라는 건지…….”

그러게 말입니다. 혼자 놓아두면 죽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그게 내가 생각해 본 최선의, 그리고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난 그 양반이 죽으리라는 짐작도 못 했으니까요. 씨팔것, 약을 호주머니에 넣고 다녔던 모양이군요.”

안은 눈을 맞고 있는 어느 앙상한 가로수 밑에서 멈췄다. 나도 그를 따라가서 멈췄다. 그가 이상하다는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김 형, 우리는 분명히 스물다섯 살짜리죠?”

난 분명히 그렇습니다.”

나도 그건 분명합니다.” 그는 고개를 한번 기웃했다.

두려워집니다.”

뭐가요?” 내가 물었다.

그 뭔가가, 그러니까…….” 그가 한숨 같은 음성으로 말했다. “우리가 너무 늙어 버린 것 같지 않습니까?”

우린 이제 겨우 스물다섯 살입니다.” 나는 말했다.

하여튼……하고 그가 내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 여기서 헤어집시다. 재미 많이 보세요.” 하고 나도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마침 버스가 막 도착한 길 건너편의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갔다. 버스에 올라서 창으로 내어다 보니 안은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내리는 눈을 맞으며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고 서 있었다.

 
 

문제로 점검하기 [2014년 EBS수능완성 A형][실전 모의고사 4회]

 

 

(40~43)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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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각기 계산하기 위해서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그때 한 사내가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우리 곁에서 술잔을 받아 놓고 연탄불에 손을 쬐고 있던 사내였는데술을 마시기 위해서 거기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불이 쬐고 싶어서 잠깐 들렀다는 꼴을 하고 있었다제법 깨끗한 코트를 입고 있었고 머리엔 기름도 얌전하게 발라서 카바이드등의 불꽃이 너풀댈 때마다 머리칼의 하이라이트가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어디선지는 분명하지는 않았지만 가난뱅이 냄새가 나는 서른대여섯 살짜리 사내였다아마 빈약하게 생긴 턱 때문이었을까아니면 유난히 새빨간 눈시울 때문이었을까그 사내가 나나 안 중의 어느 누구에게라고 할 것 없이 그냥 우리 쪽을 향하여 말을 걸어온 것이다.

“미안하지만 제가 함께 가도 괜찮을까요? 제게 돈은 얼마든지 있습니다만 ….”이라고 그 사내는 힘없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 힘없는 음성으로 봐서는 꼭 끼워 달라는 건 아니라는 것 같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와 함께 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는 것 같기도 했다. 나와 안은 잠깐 얼굴을 마주 보고 나서

“아저씨 술값만 있다면 ….”이라고 내가 말했다.

“함께 가시죠.”라고 안도 내 말을 이었다.

고맙습니다.” 하고 그 사내는 여전히 힘없는 음성으로 말하면서 우리를 따라왔다.

안은 일이 좀 이상하게 되었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고, 나 역시 유쾌한 예감이 들지는 않았다. 술좌석에서 알게 된 사람끼리는 의외로 재미있게 놀게 되는 것을 몇 번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지만, 대개의 경우, 이렇게 힘없는 목소리로 끼어드는 양반은 없었다. 즐거움이 넘치고 넘친다는 얼굴로 요란스럽게 끼어들어야만 일이 되는 것이었다. 우리는 갑자기 목적지를 잊은 사람들처럼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느릿느릿 걸어갔다. 전봇대에 붙은 약 광고판 속에서는 예쁜 여자가 ‘춥지만 할 수 있느냐’는 듯한 쓸쓸한 미소를 띠고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어떤 빌딩의 옥상에서는 소주 광고의 네온사인이 열심히 명멸하고 있었고, 소주 광고 곁에서는 약 광고의 네온사인이 하마터면 잊어버릴 뻔했다는 듯이 황급히 꺼졌다간 다시 켜져서 오랫동안 빛나고 있었고, 이젠 완전히 얼어붙은 길 위에는 거지가 돌덩이처럼 여기저기 엎드려 있었고, 그 돌덩이 앞을 사람들은 힘껏 웅크리고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중략)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마음씨 좋은 아저씨가 말하기 시작했다. “들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오늘 낮에 제 아내가 죽었습니다.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하고 있었는데 ….”

그는 이젠 슬프지도 않다는 얼굴로 우리를 빤히 쳐다보며 말하고 있었다. “네에에.” “그거 안되셨군요.”라고 안과 나는 각각 조의를 표했다. “아내와 나는 참 재미있게 살았습니다. 아내가 어린애를 낳지 못하기 때문에 시간은 몽땅 우리 두 사람의 것이었습니다. 돈은 넉넉하지 못했습니다만 그래도 돈이 생기면 우리는 어디든지 같이 다니면서 재미있게 지냈습니다. 딸기철엔 수원에도 가고, 포도철엔 안양에도 가고, 여름이면 대천에도 가고, 가을엔 경주에도가 보고, 밤엔 함께 영화 구경, 쇼 구경하러 열심히 극장에 쫓아다니기도 했습니다 ….”

“무슨 병환이셨던가요?” 하고 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급성 뇌막염이라고 의사가 그랬습니다. 아내는 옛날에 급성 맹장염 수술을 받은 적도 있고, 급성 폐렴을 앓은 적도 있다고 했습니다만 모두 괜찮았었는데 이번의 급성엔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 죽고 말았습니다.”

사내는 고개를 떨구고 한참 동안 무언지 입을 우물거리고 있었다. 안이 손가락으로 내 무릎을 찌르며 우리는 꺼지는 게 어떻겠느냐는 눈짓을 보냈다. 나 역시 동감이었지만 그때 사내가 다시 고개를 들고 말을 계속했기 때문에 우리는 눌러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A][“아내와는 재작년에 결혼했습니다. 우연히 알게 됐습니다. 친정이 대구 근처에 있다는 얘기만 했지 한 번도 친정과는 내왕이 없었습니다. 난 처갓집이 어딘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할 수 없었어요.”]

그는 다시 고개를 떨구고 입을 우물거렸다.

“뭘 할 수 없었다는 말입니까?” 내가 물었다.

그는 내 말을 못 들은 것 같았다. 그러나 한참 후에 다시 고개를 들고 마치 애원하는 듯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아내의 시체를 병원에 팔았습니다. 할 수 없었습니다.

난 서적 월부 판매 외교원에 지나지 않습니다할 수 없었습니다. 돈 사천 원을 주더군요. 난 두 분을 만나기 얼마 전까지도 세브란스병원 울타리 곁에 서 있었습니다. 아내가 누워 있을 시체실이 있는 건물을 알아보려고 했습니다만 어딘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냥 울타리 곁에 앉아서 병원의 큰 굴뚝에서 나오는 희끄무레한 연기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어떻게 될까요? 학생들이 해부 실습하느라고 톱으로 머리를 가르고 칼로 배를 찢고 한다는데 정말 그러겠지요?”

우리는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환이 다꾸앙과 파가 담긴 접시를 갖다 놓고 나갔다.

“기분 나쁜 얘길 해서 미안합니다. 다만 누구에게라도 얘기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한 가지만 의논해 보고 싶은데, 이 돈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저는 오늘 저녁에 다 써 버리고 싶은데요.”

“쓰십시오.” 안이 얼른 대답했다.

이 돈이 다 없어질 때까지 함께 있어 주시겠어요?” 사내가 말했다. 우리는 얼른 대답하지 못했다. “함께 있어 주십시오.” 사내가 말했다. 우리는 승낙했다.

“멋있게 한번 써 봅시다.”라고 사내는 우리와 만난 후 처음으로 웃으면서 그러나 여전히 힘없는 음성으로 말했다.

­                                                                                                                                       - 김승옥, ‘서울, 1964년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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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윗글의 서술상 특징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빈번한 장면 전환을 통해 사건을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② 대화를 통해 인물이 살아온 내력을 요약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③ 방언과 토속적 어휘를 사용하여 인물을 생동감 있게 그려 내고 있다.

④ 상반된 가치관을 지닌 인물들을 등장시켜 인물 간의 갈등을 심화하고 있다.

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한 과장된 묘사를 통해 비극적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있다.

 

41. ‘사내와 관련하여 ~을 이해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 감각적 심상을 통해 사내의 외양을 제시하고 있다.

② ㉡: 진술되는 말과 상반된 분위기의 음성을 통해 사내의 위선적 면모를 표출하고 있다.

③ ㉢: 동일한 행동을 반복하는 사내의 모습을 통해 사내의 복잡한 심정을 드러내고 있다.

④ ㉣: 자신의 결정에 대한 사내의 자조적(自嘲的) 변명이 나타나 있다.

⑤ ㉤: ‘우리’와의 동행을 요청하는 사내의 모습을 통해 사내의 외로움과 불안한 심리가 제시되고 있다.

 

42. 보기를 바탕으로 위 작품을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3)

(보기)

우리 사회의 1960년대는 산업적 발전을 이루었지만 경제적으로 힘든 계층이 존재하는 한편 인간성 상실개인주의의 만연 등의 병폐가 조금씩 표면으로 드러난 시대였다이 작품은 자본주의 사회의 우울한 풍경 속에서 진실한 관계를 맺지 못한 채 피상적인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감각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① 사내가 자신의 아내와 수원, 안양, 대천, 경주 등을 여행한 것은 자신의 경제적 무능을 아내에게 숨기기 위한 진실하지 못한 행동이라 할 수 있어.

② 자신의 아내가 죽자 그 시신을 병원에 파는 사내의 선택에는 ‘서적 월부 판매 외교원’으로 생활하는 경제적 빈곤함이 영향을 미쳤음을 확인할 수 있어.

③ 아내의 죽음에 대해 말하는 사내를 두고 가려 하는 ‘안’과 ‘나’의 모습에서 인간성 상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

④ 전봇대에 붙은 약 광고판, 소주 광고의 네온사인과 길 위의 거지를 나란히 병치시켜 자본주의 사회의 우울한 풍경을 그려 내고 있어.

⑤ ‘즐거움이 넘치고 넘친다는 얼굴로 요란스럽게 끼어들어야만 일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나’의 모습에서 ‘나’가 즐거움을 좇으며 피상적인 관계를 맺으려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어.

 

43. [A]에서 확인할 수 있는 심정과 가장 어울리는 한자 성어는?

① 감탄고토(甘呑苦吐) ② 맥수지탄(麥秀之嘆)

③ 수구초심(首丘初心) ④ 자포자기(自暴自棄)

⑤ 절차탁마(切磋琢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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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2 

41.2

42. 1

4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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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정리

 

1. 갈래 : 단편 소설, 본격 소설

2. 성격 : 사실적 현실 고발적

3. 배경 : 시간 1964년 어느 겨울밤

공간 서울 거리

4.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5. 문체 : 인상주의적(상투어를 쓰지 않고 참신하고 인상적인 언어의 사용), 상징적, 홑문장과 겹문장의 교차(홑문장과 겹문장의 교차는 이 소설의 비판적 어조에 기여함)

6. 주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여 느끼는 삶의 공동성과 파편적 개인성

뚜렷한 가치관을 갖지 못한 사람들의 심리적 방황과 인간적 연대감의 상실

 

감상의 길잡이

 

이 작품은 1965년 발표되어 동인 문학상을 수상한 단편 소설로 현실에서 소외되고 목표를 잃은 세 사람이 우연히 만나서 무심히 헤어지는 일상을 그리고 있다.

''''이라는 25세 동갑내기의 우연한 만남으로 이 소설은 시작된다. 그들은 선술집에서 우연히 만나 대화를 나누는데, 결코 자신의 진심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다. 심각하고 진지한 것에 대하여 말하고자 하나 가치 지향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현실과 내적 연관을 갖지 못한 주관적이고 자의식적인 사소한 대화만 있을 뿐, 두 사내는 철저한 개인주의로 무장되어 있다.

 

이 두 사람에 비해서 삼십대의 외판원 사내는 자신의 모든 것을 얘기하면서 자신의 고뇌와 비애를 공유(共有)할 것을 간청한다. 이를테면, 고통의 분배를 통한 인간적 연대 의식을 상대방에게 솔직히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만의 세계에 틀어박힌 ''''에게 그 사내는 부담스러운 존재일 뿐이다. 둘은 외판원 사내의 동행 요청에 마지못해 응하고 있고 내심으로 빨리 떠나고 싶어한다. 이러한 기미를 사내가 눈치챘음일까, 화재가 난 곳을 찾아가 아내의 시체를 판 돈을 버리는 행위는, 허위적이고 비인간적인 삶에 대한 분노요, 절망의 표현일 것이다.

이 작품은 사회적 연대감이나 공동체성을 완전히 상실한 비극적이고 외로운 현대인의 초상(肖像)이 잘 나타나 있다. 이들의 대화와 행동을 통해 우리는 당대의 도시적 삶의 황폐성과 파편성(破片性), 그리고 왜곡된 개인주의의 심화된 양상을 읽을 수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대학원생 안씨와 서적 외판원 아저씨는 60년대 도시에서 소외당한 현대인의 고독과 인간관계의 단절상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인물들이다.

 

7. 작품의 줄거리

 

구청 병사계에서 근무하는 ''는 선술집에서 대학원생인 ''과 만나 대화를 나눈다. 새까맣게 구운 참새를 입에 넣고 씹으면서 날개를 연상했던지, 날지 못하고 잡혀서 죽는 '파리'에 자신들을 비유한다. ''는 이미 삶의 현실에서 좌절을 맛본 후였기 때문에 감각이 다소 둔해진 상태이다. 부잣집 아들인 '' 역시 밤거리에 나온 이유는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저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미소를 짓는 예쁜 여자가 아니면 명멸하는 네온 사인들에 도취해 보기 위해서이다.

 

자리를 옮기려고 일어섰을 때, 기운 없어 보이는 삼십대 사내가 동행을 간청한다. 중국집에 들어가 음식을 사면서, 자신은 서적 외판원이며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으나 오늘 아내가 죽었다는 것, 그리고 그 시체를 병원에 팔았지만 아무래도 그 돈을 오늘 안으로 다 써 버려야 하겠는데 같이 있어 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셋은 음식점을 나온다.

그때 소방차가 지나간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그 뒤를 따라 불구경을 나선다. 사내는 불길을 보더니 불 속에서 아내가 타고 있는 듯한 환상에 사로잡힌다. 갑자기 아내라고 소리치며 쓰다 남은 돈을 손수건에 싸서 불 속에 던져 버린다. ''''은 돌아가려 했지만 사내는 혼자 있기가 무섭다고 애걸한다.

 

우리는 여관에 들기로 한다. 사내는 같은 방에 들자고 했지만 ''의 주장으로 각기 다른 방에 투숙한다. 다음 날 아침 사내는 죽을 것이라 짐작했지만 도리가 없었노라고, 그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를 혼자 두는 것이라 생각했었다고 말한다. 우리는 스물다섯 살짜리지만 이제 너무 많이 늙었음에 동의하면서 헤어진다. ''''과 헤어져 버스에 오른다.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차창 밖으로 보인다.

 

8. 구성

 

발단 : ''''이라는 대학원생이 포장 마차에서 만나 무의미한 대화를 즐김.

전개 : 낯선 사내가 말을 걸어오며 자신의 불행을 말하고 동행해도 좋으냐고 간청함.

위기 : 화재가 난 곳에서 사내는 아내의 시체를 판 돈을 불 속에 던지고는 불안에 빠 짐.

절정 : 여관에 도착한 셋은 각각 다른 방에 투숙함.

결말 : 다음날 아침, 사내의 자살 밝혀짐. ''''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곳에서 헤 어짐.

 

9. 등장 인물의 성격

 

* -육사(陸士) 시험에 실패하고 구청 병사계에서 근무하는 스물다섯 살난 시골 출신 사 내. 소외감과 고독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현대 젊은이의 표상. 아저씨와 ''의 중간적 존재. 확실한 주관이 없는 인물.

* - ''와 동갑내기로 25세의 서울 부유한 집의 장남이며 대학원생. 삶을 냉소하면서 도 자기 구원을 시도하는 인물이다. 염세주의적이고 개인주의자.

* 아저씨(외판원) - 서른 대여섯 살의 가난한 사내. 마누라 시체를 병원에 판 죄책감에 빠져 괴로워하다가 여관방에서 자살한다. 도시인의 소외와 고독을 대표하는 인물.

 
 
미래엔 수록 부분
 

 

앞부분 줄거리
 1964년 겨울밤의 어느 선술집. '나'는 대학원생인 '안'을 우연히 선술집에서 만난다. 의미 없는 대화를 주고 받던 두 사람은 자리를 옮기던 중에 자신도 함께 갈 수 없겠냐고 묻는 '사내'와 함께 중국요릿집에 간다. 사내는 장례 비용이 없어 죽은 아내의 시신을 병원에 팔고 괴로워한다. 중국요릿집에서 나온 세 사람은 밤거리를 배회하다가 화재 난 곳을 찾아간다. 불길 속에서 죽은 아내의 환영을 본 사내는 남은 돈을 모두 볼 속에 던져 버린다.

 

 사내는 계속해서 울고 있었다. 사내는 가끔 여보라고 중얼거리며 오랫동안 울고 있었다. 우리는 여전히 열 발짝쯤 떨어진 곳에서 그가 울음을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 후에 그가 우리 앞으로 비틀비틀 걸어왔다. 우리는 모두 고개를 숙이고 어두운 골목길을 걸어서 거리로 나왔다. 적막한 거리에는 찬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었다.

몹시 춥군요.”라고 사내는 우리를 염려한다는 음성으로 말했다.

추운데요. 빨리 여관으로 갑시다.” 안이 말했다.

방을 한 사람씩 따로 잡을까요?” 여관에 들어갔을 때 안이 우리에게 말했다.

그게 좋겠지요?”

모두 한방에 드는 게 좋겠어요.”라고 나는 아저씨를 생각해서 말했다.

아저씨는 그저 우리 처분만 바란다는 듯한 태도로, 또는 지금 자기가 서 있는 곳이 어딘지도 모른다는 태도로 멍하니 서 있었다. 여관에 들어서자 우리는 모든 프로가 끝나 버린 극장에서 나오는 때처럼 어찌할 바를 모르고 거북스럽기만 했다. 여관에 비한다면 거리가 우리에게 더 좋았던 셈이었다. 벽으로 나누어진 방들, 그것이 우리가 들어가야 할 곳이었다.

모두 같은 방에 들기고 하는 것이 어떻겠어요?” 내가 다시 말했다.

난 아주 피곤합니다..” 안이 말했다. “방은 각각 하나씩 차지하고 자기로 하지요.”

혼자 있기가 싫습니다.”라고 아저씨가 중얼거렸다.

혼자 주무시는 게 편하실 거예요.” 안이 말했다.

우리는 복도에서 헤어져 사환이 지적해 준, 나란히 붙은 방 세 개에 각각 한 사람씩 들어갔다.

화투라도 사다가 놉시다.” 헤어지기 전에 내가 말했지만,

난 아주 피곤합니다. 하시고 싶으면 두 분이나 하세요.”하고 안은 말하고 나서 자기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도 피곤해 죽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라고 나는 아저씨에게 말하고 나서 내 방으로 들어갔다. 숙박계엔 거짓 이름, 거짓 주소, 거짓 나이, 거짓 직업을 쓰고 나서 사환이 가져다 놓은 자리끼를 마시고 나는 이불을 뒤집어 썼다. 나는 꿈도 안 꾸고 잘 잤다

다음날 아침 일찍 안이 나를 깨웠다.

그 양반 역시 죽어 버렸습니다.” 안이 내 귀에 입을 대고 그렇게 속사였다.

?” 나는 잠이 깨끗이 깨어 버렸다.

방금 그 방에 들어가 보았는데 역시 죽어 버렸습니다.”

역시 ……나는 말했다.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까?”

아직까진 아무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우선 빨리 도망해 버리는 게 시끄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실이지요?”

물론 그렇겠죠.”

나는 급하게 옷을 주워 입었다. 개미 한 마리가 방바닥을 내 발이 있는 쪽으로 기어오고 있었다. 그 개미가 내 발을 붙잡으려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나는 얼른 자리를 옮겨 디디었다.

밖의 이른 아침에는 싸락눈이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빠른 걸음으로 여관에서 멀어져 갔다.

난 그가 죽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안이 말했다.

난 짐작도 못했습니다.”라고 나는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난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코트의 깃을 세우며 말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합니까?”

그렇지요. 할 수 없지요. 난 짐작도 못 했는데…….” 내가 말했다.

짐작했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어요?” 그가 내게 물었다.

씨팔것, 어떻게 합니까? 그 양반 우리더러 어떡하라는 건지…….”

그러게 말입니다. 혼자 놓아두면 죽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그게 내가 생각해 본 최선의, 그리고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난 그 양반이 죽으리라는 짐작도 못 했으니까요. 씨팔것, 약을 호주머니에 넣고 다녔던 모양이군요.”

안은 눈을 맞고 있는 어느 앙상한 가로수 밑에서 멈췄다. 나도 그를 따라가서 멈췄다. 그가 이상하다는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김 형, 우리는 분명히 스물다섯 살짜리죠?”

난 분명히 그렇습니다.”

나도 그건 분명합니다.” 그는 고개를 한번 기웃했다.

두려워집니다.”

뭐가요?” 내가 물었다.

그 뭔가가, 그러니까…….” 그가 한숨 같은 음성으로 말했다. “우리가 너무 늙어 버린 것 같지 않습니까?”

우린 이제 겨우 스물다섯 살입니다.” 나는 말했다.

하여튼……하고 그가 내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 여기서 헤어집시다. 재미 많이 보세요.” 하고 나도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마침 버스가 막 도착한 길 건너편의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갔다. 버스에 올라서 창으로 내어다 보니 안은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내리는 눈을 맞으며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고 서 있었다.

 
 

문제로 점검하기 [2014년 EBS수능완성 A형][실전 모의고사 4회]

 

 

(40~43)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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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각기 계산하기 위해서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그때 한 사내가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우리 곁에서 술잔을 받아 놓고 연탄불에 손을 쬐고 있던 사내였는데술을 마시기 위해서 거기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불이 쬐고 싶어서 잠깐 들렀다는 꼴을 하고 있었다제법 깨끗한 코트를 입고 있었고 머리엔 기름도 얌전하게 발라서 카바이드등의 불꽃이 너풀댈 때마다 머리칼의 하이라이트가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어디선지는 분명하지는 않았지만 가난뱅이 냄새가 나는 서른대여섯 살짜리 사내였다아마 빈약하게 생긴 턱 때문이었을까아니면 유난히 새빨간 눈시울 때문이었을까그 사내가 나나 안 중의 어느 누구에게라고 할 것 없이 그냥 우리 쪽을 향하여 말을 걸어온 것이다.

“미안하지만 제가 함께 가도 괜찮을까요? 제게 돈은 얼마든지 있습니다만 ….”이라고 그 사내는 힘없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 힘없는 음성으로 봐서는 꼭 끼워 달라는 건 아니라는 것 같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와 함께 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는 것 같기도 했다. 나와 안은 잠깐 얼굴을 마주 보고 나서

“아저씨 술값만 있다면 ….”이라고 내가 말했다.

“함께 가시죠.”라고 안도 내 말을 이었다.

고맙습니다.” 하고 그 사내는 여전히 힘없는 음성으로 말하면서 우리를 따라왔다.

안은 일이 좀 이상하게 되었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고, 나 역시 유쾌한 예감이 들지는 않았다. 술좌석에서 알게 된 사람끼리는 의외로 재미있게 놀게 되는 것을 몇 번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지만, 대개의 경우, 이렇게 힘없는 목소리로 끼어드는 양반은 없었다. 즐거움이 넘치고 넘친다는 얼굴로 요란스럽게 끼어들어야만 일이 되는 것이었다. 우리는 갑자기 목적지를 잊은 사람들처럼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느릿느릿 걸어갔다. 전봇대에 붙은 약 광고판 속에서는 예쁜 여자가 ‘춥지만 할 수 있느냐’는 듯한 쓸쓸한 미소를 띠고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어떤 빌딩의 옥상에서는 소주 광고의 네온사인이 열심히 명멸하고 있었고, 소주 광고 곁에서는 약 광고의 네온사인이 하마터면 잊어버릴 뻔했다는 듯이 황급히 꺼졌다간 다시 켜져서 오랫동안 빛나고 있었고, 이젠 완전히 얼어붙은 길 위에는 거지가 돌덩이처럼 여기저기 엎드려 있었고, 그 돌덩이 앞을 사람들은 힘껏 웅크리고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중략)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마음씨 좋은 아저씨가 말하기 시작했다. “들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오늘 낮에 제 아내가 죽었습니다.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하고 있었는데 ….”

그는 이젠 슬프지도 않다는 얼굴로 우리를 빤히 쳐다보며 말하고 있었다. “네에에.” “그거 안되셨군요.”라고 안과 나는 각각 조의를 표했다. “아내와 나는 참 재미있게 살았습니다. 아내가 어린애를 낳지 못하기 때문에 시간은 몽땅 우리 두 사람의 것이었습니다. 돈은 넉넉하지 못했습니다만 그래도 돈이 생기면 우리는 어디든지 같이 다니면서 재미있게 지냈습니다. 딸기철엔 수원에도 가고, 포도철엔 안양에도 가고, 여름이면 대천에도 가고, 가을엔 경주에도가 보고, 밤엔 함께 영화 구경, 쇼 구경하러 열심히 극장에 쫓아다니기도 했습니다 ….”

“무슨 병환이셨던가요?” 하고 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급성 뇌막염이라고 의사가 그랬습니다. 아내는 옛날에 급성 맹장염 수술을 받은 적도 있고, 급성 폐렴을 앓은 적도 있다고 했습니다만 모두 괜찮았었는데 이번의 급성엔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 죽고 말았습니다.”

사내는 고개를 떨구고 한참 동안 무언지 입을 우물거리고 있었다. 안이 손가락으로 내 무릎을 찌르며 우리는 꺼지는 게 어떻겠느냐는 눈짓을 보냈다. 나 역시 동감이었지만 그때 사내가 다시 고개를 들고 말을 계속했기 때문에 우리는 눌러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A][“아내와는 재작년에 결혼했습니다. 우연히 알게 됐습니다. 친정이 대구 근처에 있다는 얘기만 했지 한 번도 친정과는 내왕이 없었습니다. 난 처갓집이 어딘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할 수 없었어요.”]

그는 다시 고개를 떨구고 입을 우물거렸다.

“뭘 할 수 없었다는 말입니까?” 내가 물었다.

그는 내 말을 못 들은 것 같았다. 그러나 한참 후에 다시 고개를 들고 마치 애원하는 듯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아내의 시체를 병원에 팔았습니다. 할 수 없었습니다.

난 서적 월부 판매 외교원에 지나지 않습니다할 수 없었습니다. 돈 사천 원을 주더군요. 난 두 분을 만나기 얼마 전까지도 세브란스병원 울타리 곁에 서 있었습니다. 아내가 누워 있을 시체실이 있는 건물을 알아보려고 했습니다만 어딘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냥 울타리 곁에 앉아서 병원의 큰 굴뚝에서 나오는 희끄무레한 연기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어떻게 될까요? 학생들이 해부 실습하느라고 톱으로 머리를 가르고 칼로 배를 찢고 한다는데 정말 그러겠지요?”

우리는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환이 다꾸앙과 파가 담긴 접시를 갖다 놓고 나갔다.

“기분 나쁜 얘길 해서 미안합니다. 다만 누구에게라도 얘기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한 가지만 의논해 보고 싶은데, 이 돈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저는 오늘 저녁에 다 써 버리고 싶은데요.”

“쓰십시오.” 안이 얼른 대답했다.

이 돈이 다 없어질 때까지 함께 있어 주시겠어요?” 사내가 말했다. 우리는 얼른 대답하지 못했다. “함께 있어 주십시오.” 사내가 말했다. 우리는 승낙했다.

“멋있게 한번 써 봅시다.”라고 사내는 우리와 만난 후 처음으로 웃으면서 그러나 여전히 힘없는 음성으로 말했다.

­                                                                                                                                       - 김승옥, ‘서울, 1964년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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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윗글의 서술상 특징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빈번한 장면 전환을 통해 사건을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② 대화를 통해 인물이 살아온 내력을 요약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③ 방언과 토속적 어휘를 사용하여 인물을 생동감 있게 그려 내고 있다.

④ 상반된 가치관을 지닌 인물들을 등장시켜 인물 간의 갈등을 심화하고 있다.

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한 과장된 묘사를 통해 비극적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있다.

 

41. ‘사내와 관련하여 ~을 이해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 감각적 심상을 통해 사내의 외양을 제시하고 있다.

② ㉡: 진술되는 말과 상반된 분위기의 음성을 통해 사내의 위선적 면모를 표출하고 있다.

③ ㉢: 동일한 행동을 반복하는 사내의 모습을 통해 사내의 복잡한 심정을 드러내고 있다.

④ ㉣: 자신의 결정에 대한 사내의 자조적(自嘲的) 변명이 나타나 있다.

⑤ ㉤: ‘우리’와의 동행을 요청하는 사내의 모습을 통해 사내의 외로움과 불안한 심리가 제시되고 있다.

 

42. 보기를 바탕으로 위 작품을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3)

(보기)

우리 사회의 1960년대는 산업적 발전을 이루었지만 경제적으로 힘든 계층이 존재하는 한편 인간성 상실개인주의의 만연 등의 병폐가 조금씩 표면으로 드러난 시대였다이 작품은 자본주의 사회의 우울한 풍경 속에서 진실한 관계를 맺지 못한 채 피상적인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감각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① 사내가 자신의 아내와 수원, 안양, 대천, 경주 등을 여행한 것은 자신의 경제적 무능을 아내에게 숨기기 위한 진실하지 못한 행동이라 할 수 있어.

② 자신의 아내가 죽자 그 시신을 병원에 파는 사내의 선택에는 ‘서적 월부 판매 외교원’으로 생활하는 경제적 빈곤함이 영향을 미쳤음을 확인할 수 있어.

③ 아내의 죽음에 대해 말하는 사내를 두고 가려 하는 ‘안’과 ‘나’의 모습에서 인간성 상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

④ 전봇대에 붙은 약 광고판, 소주 광고의 네온사인과 길 위의 거지를 나란히 병치시켜 자본주의 사회의 우울한 풍경을 그려 내고 있어.

⑤ ‘즐거움이 넘치고 넘친다는 얼굴로 요란스럽게 끼어들어야만 일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나’의 모습에서 ‘나’가 즐거움을 좇으며 피상적인 관계를 맺으려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어.

 

43. [A]에서 확인할 수 있는 심정과 가장 어울리는 한자 성어는?

① 감탄고토(甘呑苦吐) ② 맥수지탄(麥秀之嘆)

③ 수구초심(首丘初心) ④ 자포자기(自暴自棄)

⑤ 절차탁마(切磋琢磨)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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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2 

41.2

42. 1

4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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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학년도 고3 6월 모의고사 문제로 점검하기

 

[42~45]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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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사람마다 이 말삼 드러사라

  이 말삼 아니면 사람이라도 사람 아니니
  이 말삼 잇디 말고 배우고야 마로리이다          <제1수>

 

  아바님 날 나흐시고 어마님 날 기르시니
  부모(父母)곧 아니시면 내 몸이 업실랏다
  이 덕(德)을 갚흐려 하니 하늘 가이 업스샷다    <제2수>

 

  종과 주인과를 뉘라셔 삼기신고
  벌과   개미가 이 뜻을 몬져 아니
  한 마암애 두 뜻 업시 속이지나 마옵사이다      <제3수>

 

  지아비   밭 갈라 간 데 밥고리 이고 가
  반상을 들오되 눈썹에 마초이다
  진실로 고마오시니 손이시나 다르실가 <제4수>

 

  형님 자신 젖을 내 조처 먹나이다

  어와 우리 아우야 어마님 너 사랑이야
  형제(兄弟)가 불화(不和)하면 개돼지라 하리라    <제5수>

 

 

  늙은이는 부모 같고 어른은 형   같으니
  같은데 불공(不恭)하면 어디가 다를고
  나이가 많으시거든 절하고야 마로리이다 <제6수>
                                                                                                                                                 - 주세붕, 「오륜가」-

 

 

(나)
 나는 집이 가난해서 말이 없기 때문에 간혹 남의 말을 빌려 서 탔다. 그런데 노둔하고 야윈  말을 얻었을 경우에는 일 이 아 무리 급해도 감히 채찍을 대지 못한 채 금방이라도 쓰러지고 넘어질 것처럼  전전긍긍하기 일쑤요,  개천이나 도랑이라도 만나면 또 말에서 내리곤 한다.  그래서 후회하는 일이 거의 없다.  반면에 발굽이 높고 귀가 쫑긋하며 잘 달리는 준마를 얻었을 경우에는  의기양양하여 방자하게 채찍을 갈기기도 하고 고 삐를 놓기도 하면서 언덕과 골짜기를 모두 평지로 간주한 채 매우 유쾌하게 질주하곤 한다.  그러나 간혹 위험하게 말에서 떨어지는 환란을 면하지 못한다.

 아,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이 어쩌면 이렇게까지 달라지고 뒤 바뀔 수가 있단 말인가.  남의 물건을 빌려서 잠깐 동안 쓸 때 에도 오히려 이와 같은데,  하물며 진짜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경우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렇긴 하지만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  가운데 남에게 빌리 지 않은 것이 또 뭐가 있다고 하겠는가. 임금은 백성으로부터 힘을 빌려서 존귀하고 부유하게 되는 것이요, 신하는 임금으로 부터 권세를 빌려서 총애를 받고 귀한 신분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식은 어버이에게서, 지어미는 지아비에게서, 비복(婢僕) 은 주인에게서 각각 빌리는 것이 또한 심하고도 많은데,   대부분 자기가 본래 가지고 있는 것처럼 여기기만 할 뿐 끝내 돌이켜 보려고 하지 않는다. 이 어찌 미혹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다가 혹 잠깐 사이에 그동안 빌렸던 것을 돌려주는 일 이 생기게 되면,  만방(萬邦)의  임금도  독부(獨夫)가 되고 백승 (百乘)의 대부(大夫)도 고신(孤臣)이 되는 법인데, 더군다나 미 천한 자의 경우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맹자(孟子)가 말하기를 “오래도록 차용하고서 반환하지 않았으니,  그들이 자기의 소유가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겠는가.” 라고 하였다.  내가  이  말을 접하고서 느껴지는 바가 있기에, 「차마설」을 지어서 그 뜻을 부연해 보노라.
                                                                                                                                                               - 이곡, 「차마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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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가), (나)의 공통점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영탄적 표현을 통해 대상의 속성을 예찬하고 있다.
②  상반된 세계관이 대구의 형식을 통해 구체화되고 있다.
③  바람직하지 않은 인간에 대한 연민의 시선을 담고 있다.
④  삶의 태도에 대한 경계와 권고의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⑤  이상향에 대한 의식을 역설적 표현을 통해 진술하고 있다.

 

 

43. (가), (나)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가)는 관념적 덕목을 열거하여 각각이 지닌 모순점을 밝히고 있다.
② (가)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의식하지 않는 삶의 모습을 옹호 하며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③ (나)는 개인적 체험에서 얻은 깨달음을 사회적 차원으로 일반화 하고 있다.
④ (나)는 인물의 내면 심리를 형상화하여 욕망의 실현을 돕는 자연적 질서에 대한 경이감을 표출하고 있다.
⑤ (가)와  (나)는 모두 자연물이 지닌 덕성을 부각하여 인간적 삶에 대한 긍지를 드러내고 있다.

 

 

45. (나)의 ‘나’에 대한 이해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나’는  ‘노둔하고 야윈 말’을 빌리는 경우  ‘전전긍긍’하다가 위험에 처하기 때문에 후회하게 된다고 여기고 있다.
②‘나’는  ‘준마’를 빌려 탈 때의  ‘의기양양’한 감정이 그것을 소유할 때에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③‘나’는 ‘가지고 있는 것’이 없는 천한 사람들을 ‘미혹’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④‘나’는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권력이 빌린 것임을 돌아보는 ‘임금’의 모습을 ‘독부’로 표현하고 있다.
⑤‘나’는  ‘맹자’의  ‘이 말’에서, 빌린 것을 소유했다고 여기는 사람들에 대한 문제의식을 떠올리고 있다. 

 

44.     <보기>를 바탕으로  (가)를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3점]
<보  기>---------------------------------------------------------------------------------------------------------------------------------------------------
교훈적 내용의 시조에는 설득력을 높이기 위한 몇 가지 특징적인 표현 전략이 있다.  우선 윤리적 덕목을 실천해야 하는 인물을 화자로 설정하여 대화 형식을 취하는 경우가 있다.  또한 비유나 상징,  유추,  다른 인물이나 사물과의 대비 등을 통해 화자가 개인 윤리는 물론 가정과 사회의 윤리를 실천하는 주체로서 추구해야 하는 가치를 정당화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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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제3수>에서는  ‘벌과 개미’의 생태로부터 윤리적 실천의 주체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를 유추하고 있다.
②<제4수>에서는 화자로 내세운  ‘지아비’와 지어미의 문답 방식을 통해 아내가 추구해야 할 윤리적 가치를 정당화하고 있다.
③<제5수>에서 어머니의  ‘젖’은 어머니의 사랑을 상징하는 표현으로서,  ‘형님’과 ‘아우’가 이를 화제로 삼아 대화를 나누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④<제5수>의  ‘개돼지’는  <제1수>의  ‘사람이라도 사람 아니니’의 의미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서 화자가 추구하는 가치를 따르는 윤리적 주체와 대비되고 있다.
⑤<제6수>에서 ‘부모’와 ‘형’은,  <제2수>의 ‘부모’와 <제5수>의 ‘형님’과는 달리,  ‘늙은이’와 ‘어른’에 빗대어져 쓰임으로써 사회 윤리가 가정 윤리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45.     (나)의 ‘나’에 대한 이해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나’는  ‘노둔하고 야윈 말’을 빌리는 경우  ‘전전긍긍’하다가 위험에 처하기 때문에 후회하게 된다고 여기고 있다.
② ‘나’는  ‘준마’를 빌려 탈 때의  ‘의기양양’한 감정이 그것을 소유할 때에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③ ‘나’는 ‘가지고 있는 것’이 없는 천한 사람들을 ‘미혹’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④ ‘나’는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권력이 빌린 것임을 돌아보는 ‘임금’의 모습을 ‘독부’로 표현하고 있다.
⑤ ‘나’는  ‘맹자’의  ‘이 말’에서, 빌린 것을 소유했다고 여기는 사람들에 대한 문제의식을 떠올리고 있다.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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