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잎사귀에 도토리알 얼굴 부비는 소리 후두둑 뛰어내려 저마다 멍드는 소리 멍석 위에 나란히 잠든 반들거리는 몸 위로 살짝살짝 늦가을 햇볕 발 디디는 소리 먼길 날아온 늦은 잠자리 채머리 떠는 소리 멧돌 속에서 껍질 타지며 가슴 동당거리는 소리 사그락사그락 고운 뼛가루 저희끼리 소근대며 어루만져주는 소리 보드랍고 찰진 것들 물 속에 가라앉으며 안녕 안녕 가벼운 것들에게 이별 인사하는 소리 아궁이 불 위에서 가슴이 확 열리며 저희끼리 다시 엉기는 소리 식어가며 단단해지며 서로 핥아주는 소리

도마 위에 다갈빛 도토리묵 한모

모든 소리들이 흘러 들어간 뒤에 비로소 생겨난 저 고요
저토록 시끄러운, 저토록 단단한,


핵심 정리

 

1. 갈래 - 자유시, 서정시

2. 성격 - 감각적, 개성적

3. 제재 - 도토리묵

4. 주제 - 도토리묵에 대한 개성적 통찰

5. 특징 

   - 시적 대상인 도토리를 의인화함.

   - 주로 청각적 이미지를 사용하여 대상을 효과적으로 표현함.

   - 도토리묵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는 소리'로 반복적으로 표현하여 운율을 형성함.

 

6. 작품 감상

 

 이 시는 우리의 생활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도토리묵'을 소재로 하여 시인의 창의적, 개성적 인식을 표현한 작품이다. 시인은 도토리묵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미각이 아닌 청각적 이미지를 중심으로 활용하여 다채롭게 그리고 있다. 

 

 

출처 : 미래엔 문학 자습서

 

 

 

 

2014 수능특강 문제로 점검하기

 

[31~33]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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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잎사귀 도토리알 얼굴 부비는 소리 후두둑 뛰어내려 저마다 멍드는 소리 멍석위에 나란히 잠든 반들거리는 몸 위로 살짝살짝 늦가을 햇볕 발 디디는 소리 먼 길 날아온 늙은 잠자리 채머리떠는 소리 맷돌 속에서 껍질 타지며 가슴 동당거리는 소리 사그락사그락 고운 뼛가루 저희끼리 소근대며 어루만져 주는 소리 보드랍고 찰진것들 물속에 가라앉으며 안녕 안녕 가벼운 것들에게 이별 인사 하는 소리 아궁이 불 위에서 가슴이 확 열리며 저희끼리 다시 엉기는 소리 식어 가며 단단해지며 서로 핥아 주는 소리

 

도마 위에 다갈빛 도토리묵 한 모

 

[A] [모든 소리들이 흘러들어 간 뒤에 비로소 생겨난 저 고요

저토록 시끄러운저토록 단단한,]

                                                                                                                                                   - 김선우, ‘단단한 고요

 

*채머리체머리머리가 저절로 계속하여 흔들리는 병적 현상또는 그런 현상을 보이는 머리.

*찰진: ‘차진의 방언반죽이나 밥 따위가 끈기가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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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윗글에 대한 감상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자연과의 교감에서 얻는 깨달음을 드러내고 있다.

② 자연 현상으로부터 인간의 도리를 유추하고 있다.

③ 자연으로부터 소외된 인간의 처지를 비판하고 있다.

④ 자연물이 인공물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⑤ 자연에 맞서 삶을 개척하는 인간의 의지를 찬양하고 있다.

 

32 ~㉤ 중 <보기>의 설명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3]

<보기>-------------------------------------------------------------------------------------------------------------------------------------------------------

시각청각미각후각촉각 등 감각 인상(感覺印象)의 종류와 그 원인이 되는 물리적 자극은 원래 1대 1로 대응한다그러나 시에서는 때때로 감각 인상의 종류가 그 물리적 자극의 본래 영역이 아닌 다른 영역으로 전이되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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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                               ② ㉡                                     ③ ㉢                                  ④ ㉣                                        ⑤ ㉤

         

33 [A]에 대한 이해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문장을 수식어로 끝맺음으로써 시적 여운을 강화한다.

② 수식어와 피수식어의 이질적 결합으로 지적 충격을 준다.

③ ‘ㄴ’과 ‘ㄹ’ 음의 반복은 시적 대상의 가벼운 속성과 어울린다.

④ ‘소리’와 ‘고요’ 사이의 의미상 모순에서 시적 긴장감이 형성된다.

⑤ ‘저’, ‘저토록’이라는 시어는 대상을 직접 보면서 말하는 듯한 효과를 낳는다.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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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4

32. 2

3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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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정리

 

1. 갈래 : 단편 소설, 본격 소설

2. 성격 : 사실적 현실 고발적

3. 배경 : 시간 1964년 어느 겨울밤

공간 서울 거리

4.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5. 문체 : 인상주의적(상투어를 쓰지 않고 참신하고 인상적인 언어의 사용), 상징적, 홑문장과 겹문장의 교차(홑문장과 겹문장의 교차는 이 소설의 비판적 어조에 기여함)

6. 주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여 느끼는 삶의 공동성과 파편적 개인성

뚜렷한 가치관을 갖지 못한 사람들의 심리적 방황과 인간적 연대감의 상실

 

감상의 길잡이

 

이 작품은 1965년 발표되어 동인 문학상을 수상한 단편 소설로 현실에서 소외되고 목표를 잃은 세 사람이 우연히 만나서 무심히 헤어지는 일상을 그리고 있다.

''''이라는 25세 동갑내기의 우연한 만남으로 이 소설은 시작된다. 그들은 선술집에서 우연히 만나 대화를 나누는데, 결코 자신의 진심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다. 심각하고 진지한 것에 대하여 말하고자 하나 가치 지향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현실과 내적 연관을 갖지 못한 주관적이고 자의식적인 사소한 대화만 있을 뿐, 두 사내는 철저한 개인주의로 무장되어 있다.

 

이 두 사람에 비해서 삼십대의 외판원 사내는 자신의 모든 것을 얘기하면서 자신의 고뇌와 비애를 공유(共有)할 것을 간청한다. 이를테면, 고통의 분배를 통한 인간적 연대 의식을 상대방에게 솔직히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만의 세계에 틀어박힌 ''''에게 그 사내는 부담스러운 존재일 뿐이다. 둘은 외판원 사내의 동행 요청에 마지못해 응하고 있고 내심으로 빨리 떠나고 싶어한다. 이러한 기미를 사내가 눈치챘음일까, 화재가 난 곳을 찾아가 아내의 시체를 판 돈을 버리는 행위는, 허위적이고 비인간적인 삶에 대한 분노요, 절망의 표현일 것이다.

이 작품은 사회적 연대감이나 공동체성을 완전히 상실한 비극적이고 외로운 현대인의 초상(肖像)이 잘 나타나 있다. 이들의 대화와 행동을 통해 우리는 당대의 도시적 삶의 황폐성과 파편성(破片性), 그리고 왜곡된 개인주의의 심화된 양상을 읽을 수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대학원생 안씨와 서적 외판원 아저씨는 60년대 도시에서 소외당한 현대인의 고독과 인간관계의 단절상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인물들이다.

 

7. 작품의 줄거리

 

구청 병사계에서 근무하는 ''는 선술집에서 대학원생인 ''과 만나 대화를 나눈다. 새까맣게 구운 참새를 입에 넣고 씹으면서 날개를 연상했던지, 날지 못하고 잡혀서 죽는 '파리'에 자신들을 비유한다. ''는 이미 삶의 현실에서 좌절을 맛본 후였기 때문에 감각이 다소 둔해진 상태이다. 부잣집 아들인 '' 역시 밤거리에 나온 이유는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저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미소를 짓는 예쁜 여자가 아니면 명멸하는 네온 사인들에 도취해 보기 위해서이다.

 

자리를 옮기려고 일어섰을 때, 기운 없어 보이는 삼십대 사내가 동행을 간청한다. 중국집에 들어가 음식을 사면서, 자신은 서적 외판원이며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으나 오늘 아내가 죽었다는 것, 그리고 그 시체를 병원에 팔았지만 아무래도 그 돈을 오늘 안으로 다 써 버려야 하겠는데 같이 있어 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셋은 음식점을 나온다.

그때 소방차가 지나간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그 뒤를 따라 불구경을 나선다. 사내는 불길을 보더니 불 속에서 아내가 타고 있는 듯한 환상에 사로잡힌다. 갑자기 아내라고 소리치며 쓰다 남은 돈을 손수건에 싸서 불 속에 던져 버린다. ''''은 돌아가려 했지만 사내는 혼자 있기가 무섭다고 애걸한다.

 

우리는 여관에 들기로 한다. 사내는 같은 방에 들자고 했지만 ''의 주장으로 각기 다른 방에 투숙한다. 다음 날 아침 사내는 죽을 것이라 짐작했지만 도리가 없었노라고, 그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를 혼자 두는 것이라 생각했었다고 말한다. 우리는 스물다섯 살짜리지만 이제 너무 많이 늙었음에 동의하면서 헤어진다. ''''과 헤어져 버스에 오른다.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차창 밖으로 보인다.

 

8. 구성

 

발단 : ''''이라는 대학원생이 포장 마차에서 만나 무의미한 대화를 즐김.

전개 : 낯선 사내가 말을 걸어오며 자신의 불행을 말하고 동행해도 좋으냐고 간청함.

위기 : 화재가 난 곳에서 사내는 아내의 시체를 판 돈을 불 속에 던지고는 불안에 빠 짐.

절정 : 여관에 도착한 셋은 각각 다른 방에 투숙함.

결말 : 다음날 아침, 사내의 자살 밝혀짐. ''''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곳에서 헤 어짐.

 

9. 등장 인물의 성격

 

* -육사(陸士) 시험에 실패하고 구청 병사계에서 근무하는 스물다섯 살난 시골 출신 사 내. 소외감과 고독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현대 젊은이의 표상. 아저씨와 ''의 중간적 존재. 확실한 주관이 없는 인물.

* - ''와 동갑내기로 25세의 서울 부유한 집의 장남이며 대학원생. 삶을 냉소하면서 도 자기 구원을 시도하는 인물이다. 염세주의적이고 개인주의자.

* 아저씨(외판원) - 서른 대여섯 살의 가난한 사내. 마누라 시체를 병원에 판 죄책감에 빠져 괴로워하다가 여관방에서 자살한다. 도시인의 소외와 고독을 대표하는 인물.

 
 
미래엔 수록 부분
 

 

앞부분 줄거리
 1964년 겨울밤의 어느 선술집. '나'는 대학원생인 '안'을 우연히 선술집에서 만난다. 의미 없는 대화를 주고 받던 두 사람은 자리를 옮기던 중에 자신도 함께 갈 수 없겠냐고 묻는 '사내'와 함께 중국요릿집에 간다. 사내는 장례 비용이 없어 죽은 아내의 시신을 병원에 팔고 괴로워한다. 중국요릿집에서 나온 세 사람은 밤거리를 배회하다가 화재 난 곳을 찾아간다. 불길 속에서 죽은 아내의 환영을 본 사내는 남은 돈을 모두 볼 속에 던져 버린다.

 

 사내는 계속해서 울고 있었다. 사내는 가끔 여보라고 중얼거리며 오랫동안 울고 있었다. 우리는 여전히 열 발짝쯤 떨어진 곳에서 그가 울음을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 후에 그가 우리 앞으로 비틀비틀 걸어왔다. 우리는 모두 고개를 숙이고 어두운 골목길을 걸어서 거리로 나왔다. 적막한 거리에는 찬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었다.

몹시 춥군요.”라고 사내는 우리를 염려한다는 음성으로 말했다.

추운데요. 빨리 여관으로 갑시다.” 안이 말했다.

방을 한 사람씩 따로 잡을까요?” 여관에 들어갔을 때 안이 우리에게 말했다.

그게 좋겠지요?”

모두 한방에 드는 게 좋겠어요.”라고 나는 아저씨를 생각해서 말했다.

아저씨는 그저 우리 처분만 바란다는 듯한 태도로, 또는 지금 자기가 서 있는 곳이 어딘지도 모른다는 태도로 멍하니 서 있었다. 여관에 들어서자 우리는 모든 프로가 끝나 버린 극장에서 나오는 때처럼 어찌할 바를 모르고 거북스럽기만 했다. 여관에 비한다면 거리가 우리에게 더 좋았던 셈이었다. 벽으로 나누어진 방들, 그것이 우리가 들어가야 할 곳이었다.

모두 같은 방에 들기고 하는 것이 어떻겠어요?” 내가 다시 말했다.

난 아주 피곤합니다..” 안이 말했다. “방은 각각 하나씩 차지하고 자기로 하지요.”

혼자 있기가 싫습니다.”라고 아저씨가 중얼거렸다.

혼자 주무시는 게 편하실 거예요.” 안이 말했다.

우리는 복도에서 헤어져 사환이 지적해 준, 나란히 붙은 방 세 개에 각각 한 사람씩 들어갔다.

화투라도 사다가 놉시다.” 헤어지기 전에 내가 말했지만,

난 아주 피곤합니다. 하시고 싶으면 두 분이나 하세요.”하고 안은 말하고 나서 자기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도 피곤해 죽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라고 나는 아저씨에게 말하고 나서 내 방으로 들어갔다. 숙박계엔 거짓 이름, 거짓 주소, 거짓 나이, 거짓 직업을 쓰고 나서 사환이 가져다 놓은 자리끼를 마시고 나는 이불을 뒤집어 썼다. 나는 꿈도 안 꾸고 잘 잤다

다음날 아침 일찍 안이 나를 깨웠다.

그 양반 역시 죽어 버렸습니다.” 안이 내 귀에 입을 대고 그렇게 속사였다.

?” 나는 잠이 깨끗이 깨어 버렸다.

방금 그 방에 들어가 보았는데 역시 죽어 버렸습니다.”

역시 ……나는 말했다.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까?”

아직까진 아무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우선 빨리 도망해 버리는 게 시끄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실이지요?”

물론 그렇겠죠.”

나는 급하게 옷을 주워 입었다. 개미 한 마리가 방바닥을 내 발이 있는 쪽으로 기어오고 있었다. 그 개미가 내 발을 붙잡으려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나는 얼른 자리를 옮겨 디디었다.

밖의 이른 아침에는 싸락눈이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빠른 걸음으로 여관에서 멀어져 갔다.

난 그가 죽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안이 말했다.

난 짐작도 못했습니다.”라고 나는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난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코트의 깃을 세우며 말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합니까?”

그렇지요. 할 수 없지요. 난 짐작도 못 했는데…….” 내가 말했다.

짐작했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어요?” 그가 내게 물었다.

씨팔것, 어떻게 합니까? 그 양반 우리더러 어떡하라는 건지…….”

그러게 말입니다. 혼자 놓아두면 죽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그게 내가 생각해 본 최선의, 그리고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난 그 양반이 죽으리라는 짐작도 못 했으니까요. 씨팔것, 약을 호주머니에 넣고 다녔던 모양이군요.”

안은 눈을 맞고 있는 어느 앙상한 가로수 밑에서 멈췄다. 나도 그를 따라가서 멈췄다. 그가 이상하다는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김 형, 우리는 분명히 스물다섯 살짜리죠?”

난 분명히 그렇습니다.”

나도 그건 분명합니다.” 그는 고개를 한번 기웃했다.

두려워집니다.”

뭐가요?” 내가 물었다.

그 뭔가가, 그러니까…….” 그가 한숨 같은 음성으로 말했다. “우리가 너무 늙어 버린 것 같지 않습니까?”

우린 이제 겨우 스물다섯 살입니다.” 나는 말했다.

하여튼……하고 그가 내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 여기서 헤어집시다. 재미 많이 보세요.” 하고 나도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마침 버스가 막 도착한 길 건너편의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갔다. 버스에 올라서 창으로 내어다 보니 안은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내리는 눈을 맞으며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고 서 있었다.

 
 

문제로 점검하기 [2014년 EBS수능완성 A형][실전 모의고사 4회]

 

 

(40~43)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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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각기 계산하기 위해서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그때 한 사내가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우리 곁에서 술잔을 받아 놓고 연탄불에 손을 쬐고 있던 사내였는데술을 마시기 위해서 거기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불이 쬐고 싶어서 잠깐 들렀다는 꼴을 하고 있었다제법 깨끗한 코트를 입고 있었고 머리엔 기름도 얌전하게 발라서 카바이드등의 불꽃이 너풀댈 때마다 머리칼의 하이라이트가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어디선지는 분명하지는 않았지만 가난뱅이 냄새가 나는 서른대여섯 살짜리 사내였다아마 빈약하게 생긴 턱 때문이었을까아니면 유난히 새빨간 눈시울 때문이었을까그 사내가 나나 안 중의 어느 누구에게라고 할 것 없이 그냥 우리 쪽을 향하여 말을 걸어온 것이다.

“미안하지만 제가 함께 가도 괜찮을까요? 제게 돈은 얼마든지 있습니다만 ….”이라고 그 사내는 힘없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 힘없는 음성으로 봐서는 꼭 끼워 달라는 건 아니라는 것 같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와 함께 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는 것 같기도 했다. 나와 안은 잠깐 얼굴을 마주 보고 나서

“아저씨 술값만 있다면 ….”이라고 내가 말했다.

“함께 가시죠.”라고 안도 내 말을 이었다.

고맙습니다.” 하고 그 사내는 여전히 힘없는 음성으로 말하면서 우리를 따라왔다.

안은 일이 좀 이상하게 되었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고, 나 역시 유쾌한 예감이 들지는 않았다. 술좌석에서 알게 된 사람끼리는 의외로 재미있게 놀게 되는 것을 몇 번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지만, 대개의 경우, 이렇게 힘없는 목소리로 끼어드는 양반은 없었다. 즐거움이 넘치고 넘친다는 얼굴로 요란스럽게 끼어들어야만 일이 되는 것이었다. 우리는 갑자기 목적지를 잊은 사람들처럼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느릿느릿 걸어갔다. 전봇대에 붙은 약 광고판 속에서는 예쁜 여자가 ‘춥지만 할 수 있느냐’는 듯한 쓸쓸한 미소를 띠고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어떤 빌딩의 옥상에서는 소주 광고의 네온사인이 열심히 명멸하고 있었고, 소주 광고 곁에서는 약 광고의 네온사인이 하마터면 잊어버릴 뻔했다는 듯이 황급히 꺼졌다간 다시 켜져서 오랫동안 빛나고 있었고, 이젠 완전히 얼어붙은 길 위에는 거지가 돌덩이처럼 여기저기 엎드려 있었고, 그 돌덩이 앞을 사람들은 힘껏 웅크리고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중략)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마음씨 좋은 아저씨가 말하기 시작했다. “들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오늘 낮에 제 아내가 죽었습니다.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하고 있었는데 ….”

그는 이젠 슬프지도 않다는 얼굴로 우리를 빤히 쳐다보며 말하고 있었다. “네에에.” “그거 안되셨군요.”라고 안과 나는 각각 조의를 표했다. “아내와 나는 참 재미있게 살았습니다. 아내가 어린애를 낳지 못하기 때문에 시간은 몽땅 우리 두 사람의 것이었습니다. 돈은 넉넉하지 못했습니다만 그래도 돈이 생기면 우리는 어디든지 같이 다니면서 재미있게 지냈습니다. 딸기철엔 수원에도 가고, 포도철엔 안양에도 가고, 여름이면 대천에도 가고, 가을엔 경주에도가 보고, 밤엔 함께 영화 구경, 쇼 구경하러 열심히 극장에 쫓아다니기도 했습니다 ….”

“무슨 병환이셨던가요?” 하고 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급성 뇌막염이라고 의사가 그랬습니다. 아내는 옛날에 급성 맹장염 수술을 받은 적도 있고, 급성 폐렴을 앓은 적도 있다고 했습니다만 모두 괜찮았었는데 이번의 급성엔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 죽고 말았습니다.”

사내는 고개를 떨구고 한참 동안 무언지 입을 우물거리고 있었다. 안이 손가락으로 내 무릎을 찌르며 우리는 꺼지는 게 어떻겠느냐는 눈짓을 보냈다. 나 역시 동감이었지만 그때 사내가 다시 고개를 들고 말을 계속했기 때문에 우리는 눌러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A][“아내와는 재작년에 결혼했습니다. 우연히 알게 됐습니다. 친정이 대구 근처에 있다는 얘기만 했지 한 번도 친정과는 내왕이 없었습니다. 난 처갓집이 어딘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할 수 없었어요.”]

그는 다시 고개를 떨구고 입을 우물거렸다.

“뭘 할 수 없었다는 말입니까?” 내가 물었다.

그는 내 말을 못 들은 것 같았다. 그러나 한참 후에 다시 고개를 들고 마치 애원하는 듯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아내의 시체를 병원에 팔았습니다. 할 수 없었습니다.

난 서적 월부 판매 외교원에 지나지 않습니다할 수 없었습니다. 돈 사천 원을 주더군요. 난 두 분을 만나기 얼마 전까지도 세브란스병원 울타리 곁에 서 있었습니다. 아내가 누워 있을 시체실이 있는 건물을 알아보려고 했습니다만 어딘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냥 울타리 곁에 앉아서 병원의 큰 굴뚝에서 나오는 희끄무레한 연기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어떻게 될까요? 학생들이 해부 실습하느라고 톱으로 머리를 가르고 칼로 배를 찢고 한다는데 정말 그러겠지요?”

우리는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환이 다꾸앙과 파가 담긴 접시를 갖다 놓고 나갔다.

“기분 나쁜 얘길 해서 미안합니다. 다만 누구에게라도 얘기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한 가지만 의논해 보고 싶은데, 이 돈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저는 오늘 저녁에 다 써 버리고 싶은데요.”

“쓰십시오.” 안이 얼른 대답했다.

이 돈이 다 없어질 때까지 함께 있어 주시겠어요?” 사내가 말했다. 우리는 얼른 대답하지 못했다. “함께 있어 주십시오.” 사내가 말했다. 우리는 승낙했다.

“멋있게 한번 써 봅시다.”라고 사내는 우리와 만난 후 처음으로 웃으면서 그러나 여전히 힘없는 음성으로 말했다.

­                                                                                                                                       - 김승옥, ‘서울, 1964년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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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윗글의 서술상 특징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빈번한 장면 전환을 통해 사건을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② 대화를 통해 인물이 살아온 내력을 요약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③ 방언과 토속적 어휘를 사용하여 인물을 생동감 있게 그려 내고 있다.

④ 상반된 가치관을 지닌 인물들을 등장시켜 인물 간의 갈등을 심화하고 있다.

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한 과장된 묘사를 통해 비극적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있다.

 

41. ‘사내와 관련하여 ~을 이해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 감각적 심상을 통해 사내의 외양을 제시하고 있다.

② ㉡: 진술되는 말과 상반된 분위기의 음성을 통해 사내의 위선적 면모를 표출하고 있다.

③ ㉢: 동일한 행동을 반복하는 사내의 모습을 통해 사내의 복잡한 심정을 드러내고 있다.

④ ㉣: 자신의 결정에 대한 사내의 자조적(自嘲的) 변명이 나타나 있다.

⑤ ㉤: ‘우리’와의 동행을 요청하는 사내의 모습을 통해 사내의 외로움과 불안한 심리가 제시되고 있다.

 

42. 보기를 바탕으로 위 작품을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3)

(보기)

우리 사회의 1960년대는 산업적 발전을 이루었지만 경제적으로 힘든 계층이 존재하는 한편 인간성 상실개인주의의 만연 등의 병폐가 조금씩 표면으로 드러난 시대였다이 작품은 자본주의 사회의 우울한 풍경 속에서 진실한 관계를 맺지 못한 채 피상적인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감각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① 사내가 자신의 아내와 수원, 안양, 대천, 경주 등을 여행한 것은 자신의 경제적 무능을 아내에게 숨기기 위한 진실하지 못한 행동이라 할 수 있어.

② 자신의 아내가 죽자 그 시신을 병원에 파는 사내의 선택에는 ‘서적 월부 판매 외교원’으로 생활하는 경제적 빈곤함이 영향을 미쳤음을 확인할 수 있어.

③ 아내의 죽음에 대해 말하는 사내를 두고 가려 하는 ‘안’과 ‘나’의 모습에서 인간성 상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

④ 전봇대에 붙은 약 광고판, 소주 광고의 네온사인과 길 위의 거지를 나란히 병치시켜 자본주의 사회의 우울한 풍경을 그려 내고 있어.

⑤ ‘즐거움이 넘치고 넘친다는 얼굴로 요란스럽게 끼어들어야만 일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나’의 모습에서 ‘나’가 즐거움을 좇으며 피상적인 관계를 맺으려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어.

 

43. [A]에서 확인할 수 있는 심정과 가장 어울리는 한자 성어는?

① 감탄고토(甘呑苦吐) ② 맥수지탄(麥秀之嘆)

③ 수구초심(首丘初心) ④ 자포자기(自暴自棄)

⑤ 절차탁마(切磋琢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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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2 

41.2

4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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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정리

 

1. 갈래 : 단편 소설, 본격 소설

2. 성격 : 사실적 현실 고발적

3. 배경 : 시간 1964년 어느 겨울밤

공간 서울 거리

4.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5. 문체 : 인상주의적(상투어를 쓰지 않고 참신하고 인상적인 언어의 사용), 상징적, 홑문장과 겹문장의 교차(홑문장과 겹문장의 교차는 이 소설의 비판적 어조에 기여함)

6. 주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여 느끼는 삶의 공동성과 파편적 개인성

뚜렷한 가치관을 갖지 못한 사람들의 심리적 방황과 인간적 연대감의 상실

 

감상의 길잡이

 

이 작품은 1965년 발표되어 동인 문학상을 수상한 단편 소설로 현실에서 소외되고 목표를 잃은 세 사람이 우연히 만나서 무심히 헤어지는 일상을 그리고 있다.

''''이라는 25세 동갑내기의 우연한 만남으로 이 소설은 시작된다. 그들은 선술집에서 우연히 만나 대화를 나누는데, 결코 자신의 진심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다. 심각하고 진지한 것에 대하여 말하고자 하나 가치 지향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현실과 내적 연관을 갖지 못한 주관적이고 자의식적인 사소한 대화만 있을 뿐, 두 사내는 철저한 개인주의로 무장되어 있다.

 

이 두 사람에 비해서 삼십대의 외판원 사내는 자신의 모든 것을 얘기하면서 자신의 고뇌와 비애를 공유(共有)할 것을 간청한다. 이를테면, 고통의 분배를 통한 인간적 연대 의식을 상대방에게 솔직히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만의 세계에 틀어박힌 ''''에게 그 사내는 부담스러운 존재일 뿐이다. 둘은 외판원 사내의 동행 요청에 마지못해 응하고 있고 내심으로 빨리 떠나고 싶어한다. 이러한 기미를 사내가 눈치챘음일까, 화재가 난 곳을 찾아가 아내의 시체를 판 돈을 버리는 행위는, 허위적이고 비인간적인 삶에 대한 분노요, 절망의 표현일 것이다.

이 작품은 사회적 연대감이나 공동체성을 완전히 상실한 비극적이고 외로운 현대인의 초상(肖像)이 잘 나타나 있다. 이들의 대화와 행동을 통해 우리는 당대의 도시적 삶의 황폐성과 파편성(破片性), 그리고 왜곡된 개인주의의 심화된 양상을 읽을 수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대학원생 안씨와 서적 외판원 아저씨는 60년대 도시에서 소외당한 현대인의 고독과 인간관계의 단절상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인물들이다.

 

7. 작품의 줄거리

 

구청 병사계에서 근무하는 ''는 선술집에서 대학원생인 ''과 만나 대화를 나눈다. 새까맣게 구운 참새를 입에 넣고 씹으면서 날개를 연상했던지, 날지 못하고 잡혀서 죽는 '파리'에 자신들을 비유한다. ''는 이미 삶의 현실에서 좌절을 맛본 후였기 때문에 감각이 다소 둔해진 상태이다. 부잣집 아들인 '' 역시 밤거리에 나온 이유는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저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미소를 짓는 예쁜 여자가 아니면 명멸하는 네온 사인들에 도취해 보기 위해서이다.

 

자리를 옮기려고 일어섰을 때, 기운 없어 보이는 삼십대 사내가 동행을 간청한다. 중국집에 들어가 음식을 사면서, 자신은 서적 외판원이며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으나 오늘 아내가 죽었다는 것, 그리고 그 시체를 병원에 팔았지만 아무래도 그 돈을 오늘 안으로 다 써 버려야 하겠는데 같이 있어 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셋은 음식점을 나온다.

그때 소방차가 지나간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그 뒤를 따라 불구경을 나선다. 사내는 불길을 보더니 불 속에서 아내가 타고 있는 듯한 환상에 사로잡힌다. 갑자기 아내라고 소리치며 쓰다 남은 돈을 손수건에 싸서 불 속에 던져 버린다. ''''은 돌아가려 했지만 사내는 혼자 있기가 무섭다고 애걸한다.

 

우리는 여관에 들기로 한다. 사내는 같은 방에 들자고 했지만 ''의 주장으로 각기 다른 방에 투숙한다. 다음 날 아침 사내는 죽을 것이라 짐작했지만 도리가 없었노라고, 그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를 혼자 두는 것이라 생각했었다고 말한다. 우리는 스물다섯 살짜리지만 이제 너무 많이 늙었음에 동의하면서 헤어진다. ''''과 헤어져 버스에 오른다.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차창 밖으로 보인다.

 

8. 구성

 

발단 : ''''이라는 대학원생이 포장 마차에서 만나 무의미한 대화를 즐김.

전개 : 낯선 사내가 말을 걸어오며 자신의 불행을 말하고 동행해도 좋으냐고 간청함.

위기 : 화재가 난 곳에서 사내는 아내의 시체를 판 돈을 불 속에 던지고는 불안에 빠 짐.

절정 : 여관에 도착한 셋은 각각 다른 방에 투숙함.

결말 : 다음날 아침, 사내의 자살 밝혀짐. ''''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곳에서 헤 어짐.

 

9. 등장 인물의 성격

 

* -육사(陸士) 시험에 실패하고 구청 병사계에서 근무하는 스물다섯 살난 시골 출신 사 내. 소외감과 고독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현대 젊은이의 표상. 아저씨와 ''의 중간적 존재. 확실한 주관이 없는 인물.

* - ''와 동갑내기로 25세의 서울 부유한 집의 장남이며 대학원생. 삶을 냉소하면서 도 자기 구원을 시도하는 인물이다. 염세주의적이고 개인주의자.

* 아저씨(외판원) - 서른 대여섯 살의 가난한 사내. 마누라 시체를 병원에 판 죄책감에 빠져 괴로워하다가 여관방에서 자살한다. 도시인의 소외와 고독을 대표하는 인물.

 
 
미래엔 수록 부분
 

 

앞부분 줄거리
 1964년 겨울밤의 어느 선술집. '나'는 대학원생인 '안'을 우연히 선술집에서 만난다. 의미 없는 대화를 주고 받던 두 사람은 자리를 옮기던 중에 자신도 함께 갈 수 없겠냐고 묻는 '사내'와 함께 중국요릿집에 간다. 사내는 장례 비용이 없어 죽은 아내의 시신을 병원에 팔고 괴로워한다. 중국요릿집에서 나온 세 사람은 밤거리를 배회하다가 화재 난 곳을 찾아간다. 불길 속에서 죽은 아내의 환영을 본 사내는 남은 돈을 모두 볼 속에 던져 버린다.

 

 사내는 계속해서 울고 있었다. 사내는 가끔 여보라고 중얼거리며 오랫동안 울고 있었다. 우리는 여전히 열 발짝쯤 떨어진 곳에서 그가 울음을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 후에 그가 우리 앞으로 비틀비틀 걸어왔다. 우리는 모두 고개를 숙이고 어두운 골목길을 걸어서 거리로 나왔다. 적막한 거리에는 찬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었다.

몹시 춥군요.”라고 사내는 우리를 염려한다는 음성으로 말했다.

추운데요. 빨리 여관으로 갑시다.” 안이 말했다.

방을 한 사람씩 따로 잡을까요?” 여관에 들어갔을 때 안이 우리에게 말했다.

그게 좋겠지요?”

모두 한방에 드는 게 좋겠어요.”라고 나는 아저씨를 생각해서 말했다.

아저씨는 그저 우리 처분만 바란다는 듯한 태도로, 또는 지금 자기가 서 있는 곳이 어딘지도 모른다는 태도로 멍하니 서 있었다. 여관에 들어서자 우리는 모든 프로가 끝나 버린 극장에서 나오는 때처럼 어찌할 바를 모르고 거북스럽기만 했다. 여관에 비한다면 거리가 우리에게 더 좋았던 셈이었다. 벽으로 나누어진 방들, 그것이 우리가 들어가야 할 곳이었다.

모두 같은 방에 들기고 하는 것이 어떻겠어요?” 내가 다시 말했다.

난 아주 피곤합니다..” 안이 말했다. “방은 각각 하나씩 차지하고 자기로 하지요.”

혼자 있기가 싫습니다.”라고 아저씨가 중얼거렸다.

혼자 주무시는 게 편하실 거예요.” 안이 말했다.

우리는 복도에서 헤어져 사환이 지적해 준, 나란히 붙은 방 세 개에 각각 한 사람씩 들어갔다.

화투라도 사다가 놉시다.” 헤어지기 전에 내가 말했지만,

난 아주 피곤합니다. 하시고 싶으면 두 분이나 하세요.”하고 안은 말하고 나서 자기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도 피곤해 죽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라고 나는 아저씨에게 말하고 나서 내 방으로 들어갔다. 숙박계엔 거짓 이름, 거짓 주소, 거짓 나이, 거짓 직업을 쓰고 나서 사환이 가져다 놓은 자리끼를 마시고 나는 이불을 뒤집어 썼다. 나는 꿈도 안 꾸고 잘 잤다

다음날 아침 일찍 안이 나를 깨웠다.

그 양반 역시 죽어 버렸습니다.” 안이 내 귀에 입을 대고 그렇게 속사였다.

?” 나는 잠이 깨끗이 깨어 버렸다.

방금 그 방에 들어가 보았는데 역시 죽어 버렸습니다.”

역시 ……나는 말했다.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까?”

아직까진 아무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우선 빨리 도망해 버리는 게 시끄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실이지요?”

물론 그렇겠죠.”

나는 급하게 옷을 주워 입었다. 개미 한 마리가 방바닥을 내 발이 있는 쪽으로 기어오고 있었다. 그 개미가 내 발을 붙잡으려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나는 얼른 자리를 옮겨 디디었다.

밖의 이른 아침에는 싸락눈이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빠른 걸음으로 여관에서 멀어져 갔다.

난 그가 죽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안이 말했다.

난 짐작도 못했습니다.”라고 나는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난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코트의 깃을 세우며 말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합니까?”

그렇지요. 할 수 없지요. 난 짐작도 못 했는데…….” 내가 말했다.

짐작했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어요?” 그가 내게 물었다.

씨팔것, 어떻게 합니까? 그 양반 우리더러 어떡하라는 건지…….”

그러게 말입니다. 혼자 놓아두면 죽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그게 내가 생각해 본 최선의, 그리고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난 그 양반이 죽으리라는 짐작도 못 했으니까요. 씨팔것, 약을 호주머니에 넣고 다녔던 모양이군요.”

안은 눈을 맞고 있는 어느 앙상한 가로수 밑에서 멈췄다. 나도 그를 따라가서 멈췄다. 그가 이상하다는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김 형, 우리는 분명히 스물다섯 살짜리죠?”

난 분명히 그렇습니다.”

나도 그건 분명합니다.” 그는 고개를 한번 기웃했다.

두려워집니다.”

뭐가요?” 내가 물었다.

그 뭔가가, 그러니까…….” 그가 한숨 같은 음성으로 말했다. “우리가 너무 늙어 버린 것 같지 않습니까?”

우린 이제 겨우 스물다섯 살입니다.” 나는 말했다.

하여튼……하고 그가 내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 여기서 헤어집시다. 재미 많이 보세요.” 하고 나도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마침 버스가 막 도착한 길 건너편의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갔다. 버스에 올라서 창으로 내어다 보니 안은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내리는 눈을 맞으며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고 서 있었다.

 
 

문제로 점검하기 [2014년 EBS수능완성 A형][실전 모의고사 4회]

 

 

(40~43)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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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각기 계산하기 위해서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그때 한 사내가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우리 곁에서 술잔을 받아 놓고 연탄불에 손을 쬐고 있던 사내였는데술을 마시기 위해서 거기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불이 쬐고 싶어서 잠깐 들렀다는 꼴을 하고 있었다제법 깨끗한 코트를 입고 있었고 머리엔 기름도 얌전하게 발라서 카바이드등의 불꽃이 너풀댈 때마다 머리칼의 하이라이트가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어디선지는 분명하지는 않았지만 가난뱅이 냄새가 나는 서른대여섯 살짜리 사내였다아마 빈약하게 생긴 턱 때문이었을까아니면 유난히 새빨간 눈시울 때문이었을까그 사내가 나나 안 중의 어느 누구에게라고 할 것 없이 그냥 우리 쪽을 향하여 말을 걸어온 것이다.

“미안하지만 제가 함께 가도 괜찮을까요? 제게 돈은 얼마든지 있습니다만 ….”이라고 그 사내는 힘없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 힘없는 음성으로 봐서는 꼭 끼워 달라는 건 아니라는 것 같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와 함께 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는 것 같기도 했다. 나와 안은 잠깐 얼굴을 마주 보고 나서

“아저씨 술값만 있다면 ….”이라고 내가 말했다.

“함께 가시죠.”라고 안도 내 말을 이었다.

고맙습니다.” 하고 그 사내는 여전히 힘없는 음성으로 말하면서 우리를 따라왔다.

안은 일이 좀 이상하게 되었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고, 나 역시 유쾌한 예감이 들지는 않았다. 술좌석에서 알게 된 사람끼리는 의외로 재미있게 놀게 되는 것을 몇 번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지만, 대개의 경우, 이렇게 힘없는 목소리로 끼어드는 양반은 없었다. 즐거움이 넘치고 넘친다는 얼굴로 요란스럽게 끼어들어야만 일이 되는 것이었다. 우리는 갑자기 목적지를 잊은 사람들처럼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느릿느릿 걸어갔다. 전봇대에 붙은 약 광고판 속에서는 예쁜 여자가 ‘춥지만 할 수 있느냐’는 듯한 쓸쓸한 미소를 띠고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어떤 빌딩의 옥상에서는 소주 광고의 네온사인이 열심히 명멸하고 있었고, 소주 광고 곁에서는 약 광고의 네온사인이 하마터면 잊어버릴 뻔했다는 듯이 황급히 꺼졌다간 다시 켜져서 오랫동안 빛나고 있었고, 이젠 완전히 얼어붙은 길 위에는 거지가 돌덩이처럼 여기저기 엎드려 있었고, 그 돌덩이 앞을 사람들은 힘껏 웅크리고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중략)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마음씨 좋은 아저씨가 말하기 시작했다. “들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오늘 낮에 제 아내가 죽었습니다.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하고 있었는데 ….”

그는 이젠 슬프지도 않다는 얼굴로 우리를 빤히 쳐다보며 말하고 있었다. “네에에.” “그거 안되셨군요.”라고 안과 나는 각각 조의를 표했다. “아내와 나는 참 재미있게 살았습니다. 아내가 어린애를 낳지 못하기 때문에 시간은 몽땅 우리 두 사람의 것이었습니다. 돈은 넉넉하지 못했습니다만 그래도 돈이 생기면 우리는 어디든지 같이 다니면서 재미있게 지냈습니다. 딸기철엔 수원에도 가고, 포도철엔 안양에도 가고, 여름이면 대천에도 가고, 가을엔 경주에도가 보고, 밤엔 함께 영화 구경, 쇼 구경하러 열심히 극장에 쫓아다니기도 했습니다 ….”

“무슨 병환이셨던가요?” 하고 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급성 뇌막염이라고 의사가 그랬습니다. 아내는 옛날에 급성 맹장염 수술을 받은 적도 있고, 급성 폐렴을 앓은 적도 있다고 했습니다만 모두 괜찮았었는데 이번의 급성엔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 죽고 말았습니다.”

사내는 고개를 떨구고 한참 동안 무언지 입을 우물거리고 있었다. 안이 손가락으로 내 무릎을 찌르며 우리는 꺼지는 게 어떻겠느냐는 눈짓을 보냈다. 나 역시 동감이었지만 그때 사내가 다시 고개를 들고 말을 계속했기 때문에 우리는 눌러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A][“아내와는 재작년에 결혼했습니다. 우연히 알게 됐습니다. 친정이 대구 근처에 있다는 얘기만 했지 한 번도 친정과는 내왕이 없었습니다. 난 처갓집이 어딘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할 수 없었어요.”]

그는 다시 고개를 떨구고 입을 우물거렸다.

“뭘 할 수 없었다는 말입니까?” 내가 물었다.

그는 내 말을 못 들은 것 같았다. 그러나 한참 후에 다시 고개를 들고 마치 애원하는 듯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아내의 시체를 병원에 팔았습니다. 할 수 없었습니다.

난 서적 월부 판매 외교원에 지나지 않습니다할 수 없었습니다. 돈 사천 원을 주더군요. 난 두 분을 만나기 얼마 전까지도 세브란스병원 울타리 곁에 서 있었습니다. 아내가 누워 있을 시체실이 있는 건물을 알아보려고 했습니다만 어딘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냥 울타리 곁에 앉아서 병원의 큰 굴뚝에서 나오는 희끄무레한 연기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어떻게 될까요? 학생들이 해부 실습하느라고 톱으로 머리를 가르고 칼로 배를 찢고 한다는데 정말 그러겠지요?”

우리는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환이 다꾸앙과 파가 담긴 접시를 갖다 놓고 나갔다.

“기분 나쁜 얘길 해서 미안합니다. 다만 누구에게라도 얘기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한 가지만 의논해 보고 싶은데, 이 돈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저는 오늘 저녁에 다 써 버리고 싶은데요.”

“쓰십시오.” 안이 얼른 대답했다.

이 돈이 다 없어질 때까지 함께 있어 주시겠어요?” 사내가 말했다. 우리는 얼른 대답하지 못했다. “함께 있어 주십시오.” 사내가 말했다. 우리는 승낙했다.

“멋있게 한번 써 봅시다.”라고 사내는 우리와 만난 후 처음으로 웃으면서 그러나 여전히 힘없는 음성으로 말했다.

­                                                                                                                                       - 김승옥, ‘서울, 1964년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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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윗글의 서술상 특징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빈번한 장면 전환을 통해 사건을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② 대화를 통해 인물이 살아온 내력을 요약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③ 방언과 토속적 어휘를 사용하여 인물을 생동감 있게 그려 내고 있다.

④ 상반된 가치관을 지닌 인물들을 등장시켜 인물 간의 갈등을 심화하고 있다.

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한 과장된 묘사를 통해 비극적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있다.

 

41. ‘사내와 관련하여 ~을 이해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 감각적 심상을 통해 사내의 외양을 제시하고 있다.

② ㉡: 진술되는 말과 상반된 분위기의 음성을 통해 사내의 위선적 면모를 표출하고 있다.

③ ㉢: 동일한 행동을 반복하는 사내의 모습을 통해 사내의 복잡한 심정을 드러내고 있다.

④ ㉣: 자신의 결정에 대한 사내의 자조적(自嘲的) 변명이 나타나 있다.

⑤ ㉤: ‘우리’와의 동행을 요청하는 사내의 모습을 통해 사내의 외로움과 불안한 심리가 제시되고 있다.

 

42. 보기를 바탕으로 위 작품을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3)

(보기)

우리 사회의 1960년대는 산업적 발전을 이루었지만 경제적으로 힘든 계층이 존재하는 한편 인간성 상실개인주의의 만연 등의 병폐가 조금씩 표면으로 드러난 시대였다이 작품은 자본주의 사회의 우울한 풍경 속에서 진실한 관계를 맺지 못한 채 피상적인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감각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① 사내가 자신의 아내와 수원, 안양, 대천, 경주 등을 여행한 것은 자신의 경제적 무능을 아내에게 숨기기 위한 진실하지 못한 행동이라 할 수 있어.

② 자신의 아내가 죽자 그 시신을 병원에 파는 사내의 선택에는 ‘서적 월부 판매 외교원’으로 생활하는 경제적 빈곤함이 영향을 미쳤음을 확인할 수 있어.

③ 아내의 죽음에 대해 말하는 사내를 두고 가려 하는 ‘안’과 ‘나’의 모습에서 인간성 상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

④ 전봇대에 붙은 약 광고판, 소주 광고의 네온사인과 길 위의 거지를 나란히 병치시켜 자본주의 사회의 우울한 풍경을 그려 내고 있어.

⑤ ‘즐거움이 넘치고 넘친다는 얼굴로 요란스럽게 끼어들어야만 일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나’의 모습에서 ‘나’가 즐거움을 좇으며 피상적인 관계를 맺으려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어.

 

43. [A]에서 확인할 수 있는 심정과 가장 어울리는 한자 성어는?

① 감탄고토(甘呑苦吐) ② 맥수지탄(麥秀之嘆)

③ 수구초심(首丘初心) ④ 자포자기(自暴自棄)

⑤ 절차탁마(切磋琢磨)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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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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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1

4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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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학년도 고3 6월 모의고사 문제로 점검하기

 

[42~45]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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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사람마다 이 말삼 드러사라

  이 말삼 아니면 사람이라도 사람 아니니
  이 말삼 잇디 말고 배우고야 마로리이다          <제1수>

 

  아바님 날 나흐시고 어마님 날 기르시니
  부모(父母)곧 아니시면 내 몸이 업실랏다
  이 덕(德)을 갚흐려 하니 하늘 가이 업스샷다    <제2수>

 

  종과 주인과를 뉘라셔 삼기신고
  벌과   개미가 이 뜻을 몬져 아니
  한 마암애 두 뜻 업시 속이지나 마옵사이다      <제3수>

 

  지아비   밭 갈라 간 데 밥고리 이고 가
  반상을 들오되 눈썹에 마초이다
  진실로 고마오시니 손이시나 다르실가 <제4수>

 

  형님 자신 젖을 내 조처 먹나이다

  어와 우리 아우야 어마님 너 사랑이야
  형제(兄弟)가 불화(不和)하면 개돼지라 하리라    <제5수>

 

 

  늙은이는 부모 같고 어른은 형   같으니
  같은데 불공(不恭)하면 어디가 다를고
  나이가 많으시거든 절하고야 마로리이다 <제6수>
                                                                                                                                                 - 주세붕, 「오륜가」-

 

 

(나)
 나는 집이 가난해서 말이 없기 때문에 간혹 남의 말을 빌려 서 탔다. 그런데 노둔하고 야윈  말을 얻었을 경우에는 일 이 아 무리 급해도 감히 채찍을 대지 못한 채 금방이라도 쓰러지고 넘어질 것처럼  전전긍긍하기 일쑤요,  개천이나 도랑이라도 만나면 또 말에서 내리곤 한다.  그래서 후회하는 일이 거의 없다.  반면에 발굽이 높고 귀가 쫑긋하며 잘 달리는 준마를 얻었을 경우에는  의기양양하여 방자하게 채찍을 갈기기도 하고 고 삐를 놓기도 하면서 언덕과 골짜기를 모두 평지로 간주한 채 매우 유쾌하게 질주하곤 한다.  그러나 간혹 위험하게 말에서 떨어지는 환란을 면하지 못한다.

 아,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이 어쩌면 이렇게까지 달라지고 뒤 바뀔 수가 있단 말인가.  남의 물건을 빌려서 잠깐 동안 쓸 때 에도 오히려 이와 같은데,  하물며 진짜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경우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렇긴 하지만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  가운데 남에게 빌리 지 않은 것이 또 뭐가 있다고 하겠는가. 임금은 백성으로부터 힘을 빌려서 존귀하고 부유하게 되는 것이요, 신하는 임금으로 부터 권세를 빌려서 총애를 받고 귀한 신분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식은 어버이에게서, 지어미는 지아비에게서, 비복(婢僕) 은 주인에게서 각각 빌리는 것이 또한 심하고도 많은데,   대부분 자기가 본래 가지고 있는 것처럼 여기기만 할 뿐 끝내 돌이켜 보려고 하지 않는다. 이 어찌 미혹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다가 혹 잠깐 사이에 그동안 빌렸던 것을 돌려주는 일 이 생기게 되면,  만방(萬邦)의  임금도  독부(獨夫)가 되고 백승 (百乘)의 대부(大夫)도 고신(孤臣)이 되는 법인데, 더군다나 미 천한 자의 경우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맹자(孟子)가 말하기를 “오래도록 차용하고서 반환하지 않았으니,  그들이 자기의 소유가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겠는가.” 라고 하였다.  내가  이  말을 접하고서 느껴지는 바가 있기에, 「차마설」을 지어서 그 뜻을 부연해 보노라.
                                                                                                                                                               - 이곡, 「차마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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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가), (나)의 공통점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영탄적 표현을 통해 대상의 속성을 예찬하고 있다.
②  상반된 세계관이 대구의 형식을 통해 구체화되고 있다.
③  바람직하지 않은 인간에 대한 연민의 시선을 담고 있다.
④  삶의 태도에 대한 경계와 권고의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⑤  이상향에 대한 의식을 역설적 표현을 통해 진술하고 있다.

 

 

43. (가), (나)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가)는 관념적 덕목을 열거하여 각각이 지닌 모순점을 밝히고 있다.
② (가)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의식하지 않는 삶의 모습을 옹호 하며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③ (나)는 개인적 체험에서 얻은 깨달음을 사회적 차원으로 일반화 하고 있다.
④ (나)는 인물의 내면 심리를 형상화하여 욕망의 실현을 돕는 자연적 질서에 대한 경이감을 표출하고 있다.
⑤ (가)와  (나)는 모두 자연물이 지닌 덕성을 부각하여 인간적 삶에 대한 긍지를 드러내고 있다.

 

 

45. (나)의 ‘나’에 대한 이해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나’는  ‘노둔하고 야윈 말’을 빌리는 경우  ‘전전긍긍’하다가 위험에 처하기 때문에 후회하게 된다고 여기고 있다.
②‘나’는  ‘준마’를 빌려 탈 때의  ‘의기양양’한 감정이 그것을 소유할 때에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③‘나’는 ‘가지고 있는 것’이 없는 천한 사람들을 ‘미혹’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④‘나’는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권력이 빌린 것임을 돌아보는 ‘임금’의 모습을 ‘독부’로 표현하고 있다.
⑤‘나’는  ‘맹자’의  ‘이 말’에서, 빌린 것을 소유했다고 여기는 사람들에 대한 문제의식을 떠올리고 있다. 

 

44.     <보기>를 바탕으로  (가)를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3점]
<보  기>---------------------------------------------------------------------------------------------------------------------------------------------------
교훈적 내용의 시조에는 설득력을 높이기 위한 몇 가지 특징적인 표현 전략이 있다.  우선 윤리적 덕목을 실천해야 하는 인물을 화자로 설정하여 대화 형식을 취하는 경우가 있다.  또한 비유나 상징,  유추,  다른 인물이나 사물과의 대비 등을 통해 화자가 개인 윤리는 물론 가정과 사회의 윤리를 실천하는 주체로서 추구해야 하는 가치를 정당화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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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제3수>에서는  ‘벌과 개미’의 생태로부터 윤리적 실천의 주체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를 유추하고 있다.
②<제4수>에서는 화자로 내세운  ‘지아비’와 지어미의 문답 방식을 통해 아내가 추구해야 할 윤리적 가치를 정당화하고 있다.
③<제5수>에서 어머니의  ‘젖’은 어머니의 사랑을 상징하는 표현으로서,  ‘형님’과 ‘아우’가 이를 화제로 삼아 대화를 나누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④<제5수>의  ‘개돼지’는  <제1수>의  ‘사람이라도 사람 아니니’의 의미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서 화자가 추구하는 가치를 따르는 윤리적 주체와 대비되고 있다.
⑤<제6수>에서 ‘부모’와 ‘형’은,  <제2수>의 ‘부모’와 <제5수>의 ‘형님’과는 달리,  ‘늙은이’와 ‘어른’에 빗대어져 쓰임으로써 사회 윤리가 가정 윤리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45.     (나)의 ‘나’에 대한 이해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나’는  ‘노둔하고 야윈 말’을 빌리는 경우  ‘전전긍긍’하다가 위험에 처하기 때문에 후회하게 된다고 여기고 있다.
② ‘나’는  ‘준마’를 빌려 탈 때의  ‘의기양양’한 감정이 그것을 소유할 때에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③ ‘나’는 ‘가지고 있는 것’이 없는 천한 사람들을 ‘미혹’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④ ‘나’는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권력이 빌린 것임을 돌아보는 ‘임금’의 모습을 ‘독부’로 표현하고 있다.
⑤ ‘나’는  ‘맹자’의  ‘이 말’에서, 빌린 것을 소유했다고 여기는 사람들에 대한 문제의식을 떠올리고 있다.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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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오재기(守吾齋記)(정약용)

 

수오재(守吾齋), 즉 ‘나를 지키는 집’은 큰형님이 자신의 서재에 붙인 이름이다. 나는 처음 그 이름을 보고 의아하게 여기며, “나와 단단히 맺어져 서로 떠날 수 없기로는 ‘나’보다 더한 게 없다. 비록 지키지 않는다 한들 ‘나’가 어디로 갈 것인가. 이상한 이름이다.”라고 생각했다.

기 - ‘수오재’라는 이름에 대한 의문

 

장기로 귀양 온 이후 나는 홀로 지내며 생각이 깊어졌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이러한 의문점에 대해 환히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천하 만물 중에 지켜야 할 것은 오직 ‘나’뿐이다. 내 밭을 지고 도망갈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니 밭은 지킬 필요가 없다. 내 집을 지고 달아날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니 집은 지킬 필요가 없다. 내 동산의 꽃나무와 과실나무들을 뽑아 갈 수 있겠는가? 나무뿌리는 땅속 깊이 박혀 있다. 내 책을 훔쳐 가서 없애 버릴 수 있겠는가? 성현(聖賢)의 경전은 세상에 널리 퍼져 물과 불처럼 흔한데 누가 능히 없앨 수 있겠는가. 내 옷과 양식을 도둑질하여 나를 궁색하게 만들 수 있겠는가? 천하의 실이 모두 내 옷이 될 수 있고, 천하의 곡식이 모두 내 양식이 될 수 있다. 도둑이 비록 훔쳐 간다 한들 하나둘에 불과할 터, 천하의 모든 옷과 곡식을 다 없앨 수는 없다. 따라서 천하 만물 중에 꼭 지켜야만 하는 것은 없다.

 

그러나 유독 이 ‘나’라는 것은 그 성품이 달아나기를 잘하며 출입이 무상하다. 아주 친밀하게 붙어 있어 서로 배반하지 못할 것 같지만 잠시라도 살피지 않으면 어느 곳이든 가지 않는 곳이 없다. 이익으로 유혹하면 떠나가고, 위험과 재앙으로 겁을 주면 떠나가며, 질탕한 음악 소리만 들어도 떠나가고, 미인의 예쁜 얼굴과 요염한 자태만 보아도 떠나간다. 그런데 한번 떠나가면 돌아올 줄 몰라 붙잡아 만류할 수 없다. 그러므로 천하 만물 중에 잃어버리기 쉬운 것으로는 ‘나’보다 더한 것이 없다. 그러니 꽁꽁 묶고 자물쇠로 잠가 ‘나’를 굳게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승 - ‘나’를 지켜야 하는 까닭

 

나는 ‘나’를 허투루 간수했다가 ‘나’를 잃은 사람이다. 어렸을 때는 과거 시험을 좋게 여겨 그 공부에 빠져 있었던 것이 10년이다. 마침내 조정의 벼슬아치가 되어 사모관대에 비단 도포를 입고 백주 도로를 미친 듯 바쁘게 돌아다니며 12년을 보냈다. 그러다 갑자기 상황이 바뀌어 친척을 버리고 고향을 떠나 한강을 건너고 문경 새재를 넘어 아득한 바닷가 대나무 숲이 있는 곳에 이르러서야 멈추게 되었다. 이때 ‘나’도 땀을 흘리고 숨을 몰아쉬며 허둥지둥 내 발뒤꿈치를 쫓아 함께 이곳에 오게 되었다. 나는 ‘나’에게 말했다.

“너는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왔는가? 여우나 도깨비에게 홀려서 왔는가? 바다의 신이 불러서 왔는가? 너의 가족과 이웃이 소내에 있는데, 어째서 그 본고장으로 돌아가지 않는가?”

 

그러나 ‘나’는 멍하니 꼼짝도 않고 돌아갈 줄을 몰랐다. 그 안색을 보니 마치 얽매인 게 있어 돌아가려 해도 돌아갈 수 없는 듯했다. 그래서 ‘나’를 붙잡아 함께 머무르게 되었다.

전 - ‘나’를 잃어버렸던 과거에 대한 반성

이 무렵, 내 둘째 형님 또한 그 ‘나’를 잃고 남해의 섬으로 가셨는데, 역시 ‘나’를 붙잡아 함께 그곳에 머무르게 되었다.

 

유독 내 큰형님만이 ‘나를 잃지 않고 편안하게 수오재에 단정히 앉아 계신다. 본디부터 지키는 바가 있어 ‘나’를 잃지 않으신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것이야말로 큰형님이 자신의 서재 이름을 ‘수오’라고 붙이신 까닭일 것이다. 일찍이 큰형님이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 나의 자(字)를 태현(太玄)이라고 하셨다. 나는 홀로 나의 태현을 지키려고 서재 이름을 ‘수오’라고 하였다.”

이는 그 이름 지은 뜻을 말씀하신 것이다.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무엇을 지키는 것이 큰일인가? 자신을 지키는 것이 큰일이다.”라고 하셨는데, 참되도다, 그 말씀이여!

드디어 내 생각을 써서 큰형님께 보여 드리고 수오재의 기문(記文)으로 삼는다.

결 -<수오재기>를 쓰게 된 내력

 

 

핵심 정리

[이 작품은] 글쓴이가 큰형 정약현이 집에 붙인 당호(堂號) ‘수오재’를 통해 얻은 깨달음을 쓴 고전 수필로, 의문으로 시작해서 반성과 사색의 결과로 깨달음을 얻게 되는 과정을 보여 주고 있다.

*갈래 : 한문 수필, 기(記)
*성격 : 반성적, 회고적, 교훈적, 자경적(自警的)
*제재 : ‘수오재’라는 집의 이름
*주제 : 본질적 자아를 지키는 것의 중요함.
*특징
① 자문자답을 통해 사물의 의미를 도출함.
② 의문에서 출발하여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드러냄으로써 독자의 공감을 유도함.
*출전 :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어휘 풀이

*장기(長鬐) : 경상북도 포항시 장기면. 정약용은 신유박해로 인해 그해 3월에서 10월까지 장기에서 유배 생활을 했음.
*사모관대(紗帽冠帶) : 예전에, 벼슬아치가 입던 옷과 모자.
*도포(道袍) : 예전에, 통상 예복으로 입던 남자의 겉옷.
*새재 : 문경(聞慶)새재. 경상북도 문경시와 충청북도 괴산군 사이에 있는 고개.

 

이해와 감상

‘수오재기’는 ‘나를 지키는 집’이라는 당호(堂號)에 의문을 제기하여 글쓴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담아낸 글이다.
글쓴이는 이러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 ‘나’와 ‘또 하나의 나’를 구분하여 현상적 자아에 대비되는 본질적 자아의 모습을 그려 내고 있다. 본질적 자아라고 할 수 있는 ‘나’는 간직하고 지켜 내야 할 자아의 내면이고, 내가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고 미혹에 빠지려고 할 때 중심을 잡아 줄 수 있는 든든한 기둥과 같은 것이다. 글쓴이는 본질적 자아, 즉 내면적 자아를 유지할 때 비로소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거나 유혹당하지 않게 된다는 깨달음을 통해 큰형님이 ‘수오재’라는 이름을 지은 속뜻을 알게 되었음을 드러내고 있다. 글쓴이가 귀양지에서 ‘나’와 대화를 나누고 ‘나’의 모습을 살펴본다는 내용은 반성과 성찰의 행위를 보여 주는 이 글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작품 연구실

‘깨달음의 과정’을 통해 본 ‘수오재기’의 구성

 

‘수오(守吾)’의 의미

글쓴이는 과거 시험을 통해 관직에 오른 후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고 ‘미친 듯이’ 다니다 보니 어느새 자신의 본질적인 ‘나’는 사라지고 귀양을 가는 처지에 이르렀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과거는 결국 현상적인 자아에 매몰되어 본질적인 자아를 잃어버린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나를 지킨다.’ 라는 말은 나의 본성을 온전한 상태로 유지함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수오재기’의 주제 형상화 방식

‘수오재기’는 ‘나를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이러한 주제를 구현하기 위해 글쓴이는 ‘나를 지킨다’는 말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는 데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것은 독자와 자신이 유사한 상황에 있음을 제시하는 공감의 기법을 사용한 것이다. 이러한 의문 제기 뒤에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면서 ‘나’를 지킨다는 말의 의미를 이해했음을 밝히고, 자신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주제를 드러내어 독자를 효과적으로 이해시키고 있다.

 

‘수오재기’의 양식적 특징

‘수오재기’는 전통적인 한문 문학 양식의 하나인 ‘기(記)’에 해당한다. 기(記)란 어떤 사건이나 경험을 하게 된 과정을 기록하는 것으로, 독자의 공감을 불러일으켜 교훈이나 깨달음을 제시하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 이 글 역시 ‘수오재’라는 이름에 대한 사연을 적고, 그에 따른 자신의 깨달음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記)’라고 할 수 있다.

 

작가 소개 - 정약용(丁若鏞, 1762 ~ 1836)

조선 후기의 학자로 호는 다산(茶山), 여유당(與猶堂)이다. 실학사상을 집대성하여 발전시켰고, 민족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려 낸 작품을 남겼다. 한국의 역사 · 지리 등에도 관심을 보여 주체적 사관을 제시했으며, 서학을 통해 서양의 과학 지식을 도입했다. 주요 저서로 “목민심서(牧民心書)”, “흠흠신서(欽欽新書)”, “경세유표(經世遺表)” 등이 있다.

 
출처 : 천재교육
 

 (記)

기(記) - 사물을 객관적인 관찰과 동시에 기록하여 영구히 잊지 않고 기념하고자 하는 데에 목적을 두는 글이다. 

설(說) - 이치에 따라서 사물을 해석하고 자신의 의견을 서술하는 한문문체. 설체는 ‘설’의 자의(글자의 뜻)가 말하듯이 해석과 서술을 주로 하는 문체이다. 다시 말하여 설체는 의리(뜻과 이치)를 해설하는 자기의 의사를 가지고, 종횡억양(縱橫抑揚: 자유스럽고 분망하게 글을 짓는 것을 이름.)을 가하여 좀더 상세하게 서술하는 것이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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