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광 : 빛의 자극을 받아 빛을 내던 물질이, 그 자극이 멎은 뒤에도 계속하여 내는 빛.
-박용철, 「싸늘한 이마」
(나) 첩첩 산중에도 없는 마을이 여긴 있습니다. 잎 진 사잇길 저 모랫둑, 그 너머 강기슭에서도 보이진 않습니다. 허방다리 들어내면 보이는 마을.
갱(坑) 속 같은 마을. 꼴깍, 해가, 노루꼬리 해가 지면 집집마다 봉당에 불을 켜지요. 콩깍지, 콩깍지처럼 후미진 외딴집, 외딴집에도 불빛은 앉아 이슥토록 창문은 모과(木瓜)빛입니다.
기인 밤입니다. 외딴집 노인은 홀로 잠이 깨어출출한 나머지 무를 깎기도 하고 고구마를 깎다, 문득 바람도 없는데 시나브로 풀려 풀려 내리는 짚단, 짚오라기의 설레임을 듣습니다. 귀를 모으고 듣지요. 후루룩 후루룩 처마깃에 나래 묻는 이름 모를 새, 새들의 온기를 생각합니다. 숨을 죽이고 생각하지요.
참 오래오래, 노인의 자리맡에 밭은 기침소리도 없을 양이면 벽 속에서 ㉡겨울 귀뚜라미는 울지요. 떼를 지어 웁니다, 벽이 무너지라고 웁니다.
‘외로움’은 고립된 인간이 지닌 본원적 감정으로, 시에서 형상화되는 주된 정서 중 하나이다. (가)에서는 화자가 암울한 상황에서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며 느끼는 극한의 외로움과 그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은 바람을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나)에서는 외부와 단절된 채 살아가는 노인의 모습을 관찰하여 알게 된 노인의 외로움과, 누군가에 대한 노인의 애절한 그리움을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공간은 사물이 존재하는 장소라는 의미만 있는 것으로, 그 자체로는 무력하고 텅 빈 곳으로 인식이 되었다. 그러나 회화와 조각, 소설과 연극, 철학과 심리학 이론들이 공간이 지닌 구성적인 기능에 주목하면서 지금까지는 무의미하게 여겨졌던 공간이 충만하고 능동적이며 창조성을 지닌 유의미한 공간으로 재인식되었다. 기존 견해를 따르는 미술 비평가들은 공간과 관련하여 회화의 제재를 Ⓐ긍정적 공간, 배경을 Ⓑ부정적 공간이라 불렀다. 그런데 재인식된 공간은 배경 그 자체가 다른 요소들과 마찬가지의 중요성을 지닌 것으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기능이 있음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긍정적 부정 공간’이라고 부를 수 있다.
1문단 : 공간의 의미에 대한 새로운 인식
회화에서 대기에 대한 인상을 표현함으로써 텅 빈 곳으로 인식되던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 인상파 화가들은 이러한 긍정적 부정 공간을 통해 이전의 관습과 ㉠첨예하게대립하였다. 인상파 화가들은 태양 빛, 안개, 황혼 등의 배경을 섬세하게 표현하면서 이들을 제재와 융합하였다. 모네는 시간대와 계절을 달리하여 루앙 대성당 연작을 그렸는데, 이 그림들에서 공간과 빛이 화면을 주도하고 있어서 제재인 대성당을 능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에서도 배경의 긍정적 기능에 대한 이와 비슷한 생각을 찾아볼 수 있다. 클림트가 1904년과 1908년 사이에 그린 초상화 세 작품에서 배경에 있는 기하학적인 무늬들은 제재인 인물 못지않게 관람자의 시선을 끈다. 회화에서 공간은 입체파에 이르러 하나의 구성적 요소로서 완전히 자리 잡았다. 브라크는 공간에 대상과 동일한 색, 질감, 실질성을 ㉡부여하고, 공간과 대상을 거의 구별할 수 없게 뒤섞어 버렸다. 브라크의 <노르망디 항구>에서 바다와 하늘, 그리고 그려진 대상들 간의 공간들은 대상으로서의 등대, 부두, 배, 돛과 동일하게 조각난 요소들로 ㉢표현되어있다. 브라크는 입체파의 매력에 대해 자신이 감각한 새로운 공간을 구현하는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자연 안에서 ‘감촉할 수 있는 공간’을 발견한 그는 대상 주변에서 느껴지는 움직임, 지형에 대한 느낌, 사물들 사이의 거리를 표현하고자 했다.
2문단 : 회화에서 배경으로서의 공간에 대한 가치 부여
회화에서 대상과 공간의 관계는 음악에서 소리와 침묵의 관계로 ㉣치환해볼 수 있다. 음악에서 침묵은 소리와 리듬을 인식하기 위한 요소이다. 음악사 전반에 걸쳐서 침묵이 중요한 의미를 지녀 온 것은 사실이지만, 기존의 음악에서 침묵은 일반적으로 악장의 끝부분에 놓여 다만 악장과 악장을 구별 지였을 뿐이다. 그런데 침묵의 기능을 강조한 새로운 음악에서는 악절 중간에 갑자기 휴지가 등장함으로써 침묵이 음악 구성에서 더욱 강력한 역할을 수행하게 만들었다.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 전주곡>은 말라르메의 시 「목신의 오후」에서 받은 느낌을 음악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플루트 독주의 음들은 목신이 걷다가 멈추고 멈추었다가 다시 출발하는 발걸음처럼 들린다. 특히 악절 중에 자주 나타나는 휴지들을 통해 목신의 움직임을 인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3문단 : 음악에서 휴지를 통한 침묵의 의의
현대 음악의 작곡가들은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의식적으로, 그리고 두드러지게 침묵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로저 셰턱은 스트라빈스키의 1910년 작품 <불새>의 피날레에는 음악 작품에서 찾아보기 힘든 몇 번의 침묵이 들어 있다고 지적했다. 침묵은 긍정적인 부정적 시간이다. 안톤 폰 베베른은 이러한 침묵의 창조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음악가이다. 그의 작품들은 매우 간결해서 어느 악장도 1분을 넘지 않았다. 그토록 간결한 악장의 연주들이 침묵의 시간과 서로 어울리면서 숨 막힐 듯한 침묵들로 자주, 그리고 아름답게 장식된다. 어떤 음악 평론가는 베베른의 음악에서 휴지는 정지가 아니라, 리듬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언급하기도 했다.
4문단 : 긍정적인 부정적 시간으로서의 침묵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스트라빈스키와 베베른
㉮공간과 시간에 대한 이러한 재평가는 공간 · 시간 경험을 주요한 것과 부차적인 것으로 양분하는 뚜렷한 구분 선을 지웠 다. 이는 물리학 분야에서는 ㉤충만한물체와 텅 빈 공간 사이에, 회화에서는 제재와 배경 사이에, 음악에서는 소리와 침묵 사이에, 지각에서는 형상과 배경 사이에 그어졌던 절대적 구분 선의 붕괴로 간주될 수 있다. 이처럼 텅 빈 것으로 간주되어 온 것들이 구성 요소의 하나로 기능한다는 인식에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 서구에서 이루어진 정치적 민주주의의 진전, 귀족적 특권의 붕괴, 생활의 세속화 등과 ‘위계의 평준화’라는 점에서 공통되는 특징이 있었다.
공간과 대상의 질적 차이를 없애고 서로 침투하는 방식을 보여 준 작품으로 브라크의 <바이올린과 물병이 있는 정물>이 있다. 바이올린의 목 부분은 나름대로 윤곽이 남아 있지만 몸통은 여러 부분들로 조각나, 대상만큼이나 강조되고 있는 공간과 섞여 있다. 석고, 유리, 나무, 종이, 공간이 유사한 형태의 흐름 속에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대상인 바이올린과 공간을 확실히 구별하기 어렵다. 브라크는 이렇게 설명한다. “파편화시킴으로써 저는 공간과 공간 안의 움직임을 확실히 표현할 수 있었으며 공간을 창조해 내고서야 비로소 대상들도 화폭 안으로 끌어들여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게슈탈트 심리학은 전체로서의 형태나 모양이라는 의미를 지닌 독일어 ‘게슈탈트(Gestalt)’를 사용해, 전체는 부분의 합 이상이며 인간은 어떤 대상을 개별적 부분의 조합이 아닌 전체로 인식하는 존재라고 주장하는 이론이다. 전경은 배경으로부터 두드러져 보이는 것으로 게슈탈트 심리학자들은 전경과 배경의 속성, 즉 무엇이 한 영역을 전경을, 다른 영역을 배경으로 지각하게 만드는지에 관심을 가졌다. 루빈은 그림을 통해 전경 – 배경의 가역성을 기술했다. 그림에서는 중앙의 꽃병 또는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두 얼굴의 실루엣을 볼 수 있다. 주의의 초점을 바꿈으로써 꽃병이 전경이 될 수도 있고 측면에서 본 두 얼굴이 전경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인간은 전경과 배경을 조직화하여 지각의 장을 마련하고 의식 속으로 받아들이는데, 이때 자신의 현재 욕구를 기초로 게슈탈트를 형성하여 지각하는 것이다. 전경으로 떠올렸던 게슈탈트를 해소하고 나면 그 전경은 배경으로 물러나고, 새로운 게슈탈트가 형성되어 전경으로 떠오른다.
이 글은 공간이나 시간과 관련한 인식의 전환을 회화와 음악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무력하고 텅 빈 곳으로서의 공간에 대한 인식이 성분들로 충만한,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기능을 하는 것으로 전환되었음을 말하면서 인상파와 클림트, 브라크 등의 그림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공간에 대한 인식 전환은 음악에서의 침묵의 시간이 지닌 의미에 대한 가치 부여와 궤를 같이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음악에서의 침묵의 의미가 단순히 악장과 악장을 구별하는 것으로만 기능하지 않고, 중간에 휴지로 나타나면서 구성적인 기능을 하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문단에서 이러한 시간과 공간에 대한 재평가가 주요한 것과 부차적인 것으로 양분하는 뚜렷한 구분 선을 지웠으며, 이는 위계의 평준화로 볼 수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플럭서스(Fluxus)는 가장 급진적이고 실험적인 1960년대 미술 운동을 가리키는 말로 흐름, 끊임없는 변화, 움직임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끊임없이 움직인다는 플럭서스의 의미처럼 플럭서스 운동에 참여했던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국적을 가진 예술가들은 어떤 공통된 원칙이나 합의된 프로그램을 갖지 않고, 다만 예술의 범위가 관습적으로 생각해 왔던 것보다 훨씬 넓다든지, 예술을 비롯한 몇몇 낡은 기존 범주들이 더 이상 쓸모없어졌다는 깨달음을 공유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예술에 대한 기존의 관념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한 플럭서스는 삶과 예술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것, 즉 삶과 예술의 결합을 지향했다. 플럭서스의 대표적 예술가인 요제프 보이스는 삶과 예술의 결합을 “모든 인간은 예술가다.”라고 압축적으로 표현했다. 인간은 창의적인 존재이며, 누구나 창의성을 발휘해 다양한 것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각을 전공했던 보이스는 플럭서스 운동에 참여하면서 전통적인 조각에서 벗어나 행위 예술로 작업의 범주를 넓혀 나갔는데, 플럭서스 운동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예술 개념을 발전시켰다.
1문단 : 플럭서스의 대표적 예술가이자 삶과 예술의 결합을 지향한 요제프 보이스
보이스는 인간이 창의성을 발휘해 생산한 생산물은 화가나 조각가에 의한 것이든 물리학자에 의한 것이든 근본적으로 같다고 보았다. 전통적인 예술 활동의 범주에서 벗어난 이러한 보이스의 생각은 ‘확장된 예술 개념’으로ⓐ이어진다. 보이스의 확장된 예술 개념은 서구의 모순된 사회 구조와 서구인의 위기의식을 깨닫는 데서 시작한다. 산업 혁명 이후 서구 사회는 구조적인 면에서 총체적인 변화를 맞이하였고, 자본주의 발달은 물질 만능주의를ⓑ불러왔으며, 사회 구조는 전문적으로 더욱 세분화되었다. 그 결과 개인은 사회로부터 고립되고 정신과 영혼은 황폐해졌다는 것이 보이스의 생각이었다. 보이스의 깨달음은 예술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고, 이를 위해 삶의 현장인 사회의 구조와 형태에 적용하는 확장된 예술 개념을 끌어낸다. 확장된 예술 개념에 따라 조형 작업은 기존의 장르 개념에서 벗어나 인간의 삶에 유익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사회적 조각’으로 발전한다. 사회적 조각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전시되는 가시적이고 물질적인 예술 작품에서 벗어나 기존의 구태의연한 삶의 형태를 새롭게 변화시키는 사회의 모든 인간 행위, 직업, 인간관계 등을 포함한다.
2문단 : 요제프 보이스의 확장된 예술 개념의 내용
보이스는 또한 전후 미국과 소련의 냉전 체제로 인한 동양과 서양,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의 모순과 갈등을 직시하면서 마르크스의 ‘자본’이라는 개념에 주목했다. 마르크스는 자본을 잉여 가치의 획득을 위해 유통 과정에 투입된 화폐로 보고, 자본에 대한 자신의 논의를 바탕으로 인간을 생산 수단으로 파악하였다. 보이스는 이렇게 인간을 이해하면 인간의 자유와 창의력은ⓒ들어설틈이 없다고 보았다. 이에 근거해 마르크스의 자본 논의에 기대고 있는 마르크스주의와 공산주의를 비판했다. 또한 보이스는 자본주의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그는 합법화된 교환 수단으로서의 증서에 불과한 돈이라는 화폐 가치가 지배하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꼬집으면서‘자본’, ‘돈’, ‘일’, ‘수입’의 차이를 구분하고, 일에 투입되는 가장 중요한 요건인 인간의 능력이 간과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진정한 자본은 돈이 아닌 인간의 창의성을 의미하며, 인간의 창의성이 발휘된 일은 수입으로 정확히 환산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결국 일을 수행하는 능력인 창의성이 자본이고 돈은 경제적 가치를 지닌 것이 될 수 없다. 경제적 가치는 창의력과 생산물의 인과 관계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그는 확장된 예술 개념인 ‘예술=자본’이라는 공식을 도출했다.
3문단 : 요제프 보이스의 자본 개념의 내용
보이스의 사회적 조각은 사회적 변화를 지향하며, 어떤 이데올로기에도 얽매이지 않고 인간의 창의성과 따뜻한 감정인 온기에 의해 움직이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든 주어진 현실에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제 몫을 다할 때 예술가가 될 수 있으며, 이들이 만든 사회적 조각은 모든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따스한 조각’이 된다. 공동체에 따스한 온기가 스며든다면 일종의 치유 과정을 통해 현대 사회가 차갑고 경직된 모습에서 벗어나 인간의 영혼과 삶을 촉진하는 모습으로 변화하리라는 것이 보이스의 생각이었다. 이를 위해 보이스는 모든 인간의 사회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책임을 느끼고 각자의 창의성을 발휘해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보았다. 현대 미술사에서 보이스는 이데올로기에 인간을 종속시키고자 하는 시대에 맞선 인물로, 플럭서스의 자유로운 예술 운동의 흐름 속에서 창의적 인간을 발견하고 이를 예술로 이해하는 중요한 개념으로 삼았다.
보이스에 따르면, 돈이라는 화폐 가치는 교환 수단일 뿐이다. 그런데 돈을 자본으로 간주하는 모순이 발생하고, 그 결과 인간의 창의력은 그 힘을 잃게 된다. 1979년 보이스는 과학 기술과 제휴하여 복수의 작품을 기획 · 생산하는 멀티플 아트(multiple art) 작업을 통해 자본과 돈의 모순된 관계를 보여 주었다. 그는 독일의 10마르크 지폐와 프랑스의 10프랑 지폐, 오스트리아의 20실링 지폐에 각각 “예술=자본”, “나일론 같은 촉감”, “발행 불가”라는 내용을 사인펜으로 적은 후, 그 밑에 “요제프 보이스”라고 서명하였고, 이 지폐들을 10장에서 40장 인쇄하는 연작의 멀티플 아트 작업을 통해 지폐의 기능을 상실한 작품을 생산하였다.
강연자 : 요제프 보이스는 1982년 6월 19일 독일 중부의 도시 카셀에서 5년마다 개최되는 세계 최대 규모의 국제 미술 행사인 도쿠멘타의 개막에 맞춰 행사장 본관 앞 광장에 현무암 기둥 7,000개를 부려 놓고, 그 돌무더기의 끝에 떡갈나무 한 그루를 심었습니다. ‘그의 기획’은 도시 전체에 7,000그루의 떡갈나무를 심는 것이었는데요, 나무를 한 그루 심을 때마다 현무암 기둥도 그 옆으로 옮겨졌습니다. 마지막 7,000그루째 나무는 1987년에 열린 도쿠멘타 개막일에 심어졌습니다. 이때 보이스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습니다. 지금 카셀에는 그때 심은 나무들이 자라 울창한 가로수를 이뤘습니다. 보이스는 평범한 개인들이 예술가가 되어 창의력을 발휘하면 사회 전체가 위대한 예술품이 되는 ‘혁명’을 이룬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허황된 이상주의자라는 비판도 받았지요. 그러나 콘크리트로 뒤덮였던 도시를 관통하는 푸른 숲길은 허황된 이상이 현실이 된 놀라운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 글은 플럭서스의 대표적인 예술가 요제프 보이스의 예술 개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삶과 예술의 결합을 지향한 보이스는 플럭서스 운동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예술 개념을 발전시켰다. 보이스는 자본주의의 물질 만능주의와 사회 구조의 세분화가 가져온 문제를 예술을 통해 변화시키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인간이 창의성을 발휘해 생산한 생산물은 그것이 무엇이든 예술이며, 창의성이 곧 자본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인간의 창의성과 따뜻한 감정인 온기에 의해 기존의 구태의연한 삶의 형태를 새롭게 변화시키는 ‘사회적 조각’을 진행했다. 현대 미술사에서 보이스는 플럭서스의 자유로운 예술 운동의 흐름 속에서 창의적 인간을 발견하고 이를 예술을 이해하는 중요한 개념으로 삼은 인물이었다.
어떤 개별 현상이나 법칙은 그 전제가 되는 보편 법칙으로부터 논리적으로 도출되는 형식을 띤다는 헴펠의 ‘포괄 법칙 설명 모형’이 자연 과학에서의 유력한 설명 모형으로 ⓐ등장한이래, 역사학에서도 이 설명 모형이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헴펠은 역사적 설명이 과학적 설명과 같은 설명의 한 종류에 불과하다고 주장한 반면에, 드레이는 역사적 이해에는 어떤 특수하고 독특한 것이 있고, 이로 인해 역사에서의 설명은 과학적 설명과는 확연히 다르다고 주장했다.
1문단 : 역사에서의 설명에 대한 헴펠과 드레이의 주장
드레이가 ⓑ언급한역사에서의 설명은 시저가 기원전 루비콘강을 건넌 행위와 같이 개개의 역사적 행위자의 행위에 대한 설명으로, 그에게 행위의 설명은 인간의 행위를 비판적·평가적 측면에서 합당한 행동이었음을 설명하면 충분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헴펠은 인간 행위를 이해하는 것은 인간 행위에 관한 관찰된 보편 법칙과 규칙성으로 논증하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일로 보았다. 그는 행위자의 이유에 기반한 행위의 설명은 비판적·평가적인 측면을 가진다고 ⓒ인정하기는하지만, 이것이 행위에 대한 이해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단호하게 부인했다. 반면 드레이는 일반 법칙으로 인간의 행위를 설명하는 것은 인간을 제약하는 결정론이라고 하면서 헴펠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대하였다. 그는 역사가들이 일반 법칙에 대해 언급하거나 알려고 하지 않으며, 그들이 역사적 행위를 설명하려고 할 때에는 특정 행위를 하기 위하여 가졌던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드레이에게 행위에 대한 설명은 행위자의 동기나 신념, 목적 등과 같은 이유를 명시적으로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2문단 : 역사에서의 설명에 대한 헴펠의 주장과 이에 대한 드레이의 반론
드레이는 이유에 기반한 행위의 설명을 ‘합리적 설명’이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행위에 대한 행위자의 근거를 드러냄으로써 설명한다는 것이다. 합리적 설명에서 설명적 역할을 하는 것은 행해진 그 일이 그 상황에서 해야 할 마땅한 일이었다는 사실이다. 그의 합리적 설명을 다음과 같이 도식으로 나타내어 이해해 볼 수 있다.
(도식) 행위자 A는 유형 C의 상황에 처해 있다. ……………………… ㉠
유형 C의 상황에서 해야 할 적절한 일은 X이다.……………… ㉡
이것이 A가 X를 한 이유이다.
위의 도식에 따르면 합리적 설명의 핵심은 그 행위가 주어진 상황에서 해야 할 적절한 행위라는 것을 보여 주는 데 있다.
3문단 : 드레이의 합리적 설명 모델
그러나 이 도식에 대해서 두 가지 문제를 지적할 수 있는데, 첫째는 행위의 적절성이 행위자의 관점에서 평가되어야 하는지, 설명자의 관점에서 평가되어야 하는지가 나타나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 드레이는 설명을 구성하는 각 문장을 ⓓ진술하는것은 행위자가 아니라 설명자로 보았다. ㉠, ㉡은 행위를 설명하려는 설명자가 내리는 판단들이며, “유형 C의 상황에서 해야 할 적절한 행위는 X이다.”라고 단언하는 사람 역시 설명자, 다시 말하면 행위자 A의 행위를 관찰하는 사람인 것이다. 둘째는 행위자 A가 유형 C의 상황에서 무엇이 적절하고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 판단한 것이 설명자의 판단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 행위자 A의 행위를 합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드레이는 공감의 과정을 통해 일치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공감의 과정은 특정한 상황이 행위자에게 어떻게 보이고 그것에 기반하여 행위자가 어떻게 숙고했는지를 설명자가 재구성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설명자는 행위자의 감정에 이입하여 행위자의 판단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4문단 : 합리적 설명 모델의 문제점과 이에 대한 드레이의 주장
이러한 드레이의 견해는 자연 과학에서의 설명을 역사학에 도입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역사학은 자연 과학과 달리 연구자와 연구 대상에 해당하는 설명자와 행위자가 모두 인간이라는 사실에서 시작한다. 이러한 기본적 차이를 토대로 한 드레이의 합리적 설명은 이 기본적인 차이가 어떻게 합리적 행위에 대한 설명과 이해에 대한 방법론을 형성하고 이에 영향을 ⓔ가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드레이의 주장은 헴펠과의 논쟁 과정을 통해서 역사라는 학문의 성격을 보다 뚜렷하게 부각하는 데 기여하였다.
학생1 : 우리 학교 학생의 행위가 신문에 실렸어. ㉮고2 학생 A가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빨리 가야 해서 수업이 끝나자마자 서둘러서 집에 가는데, 길 잃은 아이를 보게 되었대. 집에 빨리 가야 했지만 아이의 부모님을 찾아 주고 집에 갔다는 내용이다.
학생2 : 좋은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A의 행위가 적절했는지는 의문이야.
학생1 : 그러게. ㉯A의 상황에서는 길 잃은 아이를 경찰에 신고하는 방법이 적절했을 것 같은데.
학생3 : 내가 A를 아는데, ㉰A는 어렸을 때 길을 잃어서 고생했던 경험이 있었대. 길 잃은 아이를 봤을 때 자신의 그 경험이 떠올랐고, 예약 시간 때문에 병원에 빨리 가려고 했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부모님을 찾아 주는 것이 더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그 일을 했을 거야.
① ㉮에는 행위의 적절성에 대한 평가가 없기 때문에 ㉮는 A의 행위에 대한 합리적 설명으로 볼 수 없다.
② ㉯에서 설명적 역할을 하는 것은 아이가 길을 잃었다는 상황이다.
③ ㉯를 통해 A가 처한 상황에서 A가 해야 할 적절한 행위에 대한 설명자의 판단과 행위자의 판단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④ ㉰는 학생 3이 행위의 관찰자가 되어 A의 행위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⑤ ㉰에서 학생 3은 A가 처한 상황에서 A가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재구성하여 A의 행위를 설명하고 있다.
5. 문맥상 ⓐ ~ ⓔ와 바꿔 쓰기에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 : 나온
② ⓑ : 말한
③ ⓒ : 헤아리기는
④ ⓓ : 이야기하는
⑤ ⓔ : 끼치는지
정답 1. ② 2. ④ 3. ⑤ 4. ② 5.③
1. 해제
이 글은 드레이의 합리적 설명 모델을 설명하고 있다. 헴펠은 인간의 행위를 그의 포괄 법칙 설명 모형에 따라 관찰된 보편 법칙과 규칙에 따라 설명하려 했다. 이에 반해 드레이는 인간의 행위를 이유에 기반하여 설명했고, 이러한 행위 설명을 인간의 행위에 대한 합리적 설명으로 보았다. 그는 사람이 어떤 특정한 행동을 했다고 할 때 그 특정한 행동은 특정한 상황에서 있을 수 있는 여러 행위들 중에서 가장 적절한 행위였음을 설명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적절한 행위였다고 판단하는 것은 공감의 과정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보았다. 드레이의 주장은 역사라는 학문의 성격을 보다 뚜렷하게 부각하는 데 기여하였다.
사회 계약론은 국가의 형성에 대해 논의하는 이론이다. 사회 계약론은 인간을 다른 인간과 함께 사회를 이루어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존재라고 보며, 인간은 국가가 형성되기 이전에는 규범과 질서가 존재하지 않는 자연 상태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다양한 갈등과 이해관계가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 이를 ⓐ중재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회 구성원들 간의 합의인 사회 계약을 통해 국가가 형성되었다는 것이 사회 계약론의 입장이다. 인간 사회와 국가와의 관계는 기원전 4세기에 플라톤에 의해 논의되었고, 그 이후에도 여러 철학자에 의해 ⓑ주창되었지만 사회 계약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와 실천이 관심으로 떠오른 것은 17세기 이후의 일이었다. 이 시기에 사회 계약을 다룬 대표적인 학자로는 홉스, 로크, 루소가 있다. 이들의 사회 계약론은 자연 상태에 대한 논의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1문단 : 사회 계약론의 개념과 기본 입장
홉스는 『리바이어던』을 출간하며 사회 계약론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하였다. 홉스는 인간 행위의 모든 원천을 신의 의지와 속성으로부터 추론하는 종교와 단절하면서 인간 중심주의를 주장하였고 인간의 본성을 철저히 개인의 자발적인 운동에서 찾아야 한다고 하였다. 홉스는 인간은 본래 이기적인 존재로 태어나며, 자기 보전을 위한 이익 추구의 욕구, 자발적으로 자기 보전을 ⓒ도모하는 자유 의지, 그리고 다양한 방법 중에서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방안을 선택하는 합리적 행동의 근거인 이성이 본성에 내재되어 있다고 보았다. 인간의 삶의 터전인 자연은 항상 한정적이고, 인간은 자기 보전을 위해 자신의 힘을 사용하는 권리인 자연권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인간들은 서로의 권리를 침해하면서 끝없는 갈등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홉스는 이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고 표현하며 자연 상태는 결과적으로 개인이 자기 보전을 장담할 수 없는 살벌한 전쟁 상태가 된다고 하였다. 홉스는 개인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는 동시에 개인 간의 갈등 상황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사회 계약을 통해 개인의 자연권을 국가에 양도하여 전쟁 상태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고 보았다. 이는 자연권의 양도가 자신에게 더 이로울 것이라는 이성적인 판단에 의해서 가능하며 개인은 계약을 통해 혼란에서 벗어나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사회 계약의 결과는 모든 구성원을 대표하는 인위적 인격인 국가가 형성되는 것으로, 계약의 주체인 개인들은 각자의 자연권을 결합하여 이를 인위적 인격에 양도하게 된다. 이 모든 권력을 양도받은 인위적 인격인 국가의 통치자를 주권자라고 하고 그가 가지는 절대 권력을 주권이라고 하였다. 홉스는 주권은 절대 양도되거나 분리될 수 없으며 절대 군주에게 독점되는 권한이어야 한다고 하였다.
2문단 : 홉스의 사회 계약론
로크는 경험주의와 자유주의의 관점에서 사회 계약론을 이야기하였다. 로크에 따르면 자연 상태는 모든 인간이 자유롭고 평등하며 독립적인 상태로, 인간은 자유와 이성을 본성으로 갖는다. 자유의 주체로서 인간은 재산권의 보존을 핵심으로 하는 자연권의 보유자이고, 이성의 주체로서 인간은 재산권을 합리적으로 보호하는 수단인 자연법의 집행자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재산은 개인의 생명, 소유물, 자유를 통칭하는 개념으로 자기 보전과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자발적인 욕구를 기반으로 한다. 로크는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난 존재이며 자연 상태에서는 누구에게나 동등한 완전한 평등성이 ⓓ전제되어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인간이 자연법을 무시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자연권을 무한정으로 추구하며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면 개인 간의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보았다. 자연법을 위반했을 때 이를 제어할 권력의 주체가 분명하지 않으므로 얼마든지 전쟁과 같은 상태로 변할 수 있는 불안과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로크는 인간들이 생명과 재산을 보호받고 자유를 누리는 안전한 삶을 보장받기 위해 사회 계약을 통하여 국가를 형성한다고 보았다. 사회 계약을 통해 개인은 자연법 집행권을 국가에 양도하고, 국가는 구성원 간의 갈등을 해결하는 동시에 구성원들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로크는 저항권을 주장하였다. 국가는 사회 계약에 의해 권력을 얻게 되지만 개인들은 저항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국가가 개인들의 자유를 침해하게 된다면 개인들은 국가에 양도하였던 권리를 되찾아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혁명을 통해 국가에 부여된 권력을 전복하고 새로운 정부를 ⓔ출범시킬 수도 있다.
3문단 : 로크의 사회 계약론
마지막으로 루소는 자유주의의의 관점에서 사회 계약론을 이야기하였다. 루소는 인간이 자기 보전의 이기적 욕구, 타인에 대한 연민과 동정심, 자유의 주체로서 갖는 자유 의지, 그리고 인간의 완성 가능성의 근거인 이성 등 네 가지 본성을 가진다고 하였다. 루소에 따르면 자연 상태는 고립된 상태로 자기 보전의 욕구만 존재하며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한 원시 상태에서 출발한다. 그 후 기술 및 인간 정신의 진보로 불평등이 심화되고 인간의 자유 의지가 발현되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특수 의지가 발현되면서 원시 상태는 투쟁이 만연하는 전쟁 상태로 진화하게 된다. 하지만 루소는 인간에게는 연민과 동정심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고립된 상태에서 벗어나 사회적 존재가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이처럼 인간이 사회적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은 합리적 사고를 바탕으로 공동의 선을 적극적으로 실현하려는 ㉢일반 의지의 근거가 된다. 또한 자유는 인간의 자격 그 자체로, 인간으로서의 권리와 의무 및 도덕성의 근원이 되며 사적 이익의 추구에서 벗어나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일반 의지를 따르기로 하는 사회 계약의 바탕이 된다. 또한 루소는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시민 상태로 이행함으로써 원초적 존재에서 탈피하여 사회적 존재로 격상될 수 있는 완성 가능성을 갖추고 있다고 보았고, 이는 일반 의지가 참된 이익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는 능력인 이성을 기반으로 한다고 하였다. 루소는 일반 의지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인 사회 계약을 거쳐 국가가 형성되기 때문에 국가는 개인들이 가지는 일반 의지의 실천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보았다. 또한 국가는 절대 권력을 가지게 되지만 이는 모든 사람의 자발적 합의를 바탕으로 하므로 구성원 모두가 절대 권력을 가진 주권자라고 주장하였으며, 어떤 통치 행위를 취하더라도 그것은 구성원 모두에 의한 통치라고 하였다.
주권이라는 개념은 16세기 말 보뎅에 의해 시작된 개념으로, 처음에 주권의 개념이 규정될 당시에는 주권이 국가가 대내외적으로 가지는 절대적이고 영구적인 최고의 권력을 의미했다. 대외적으로는 교황권으로부터 군주권의 독립성을 강조하고, 내부적으로는 군주의 권리가 최고임을 과시하기 위해 성립된 개념인 것이다. 따라서 보뎅은 국가의 절대 권력이 중요함을 주장하며 국가는 사회 질서 유지를 임무로 하기 때문에 국가는 주권에 기반하여 국민을 통치하고 국가의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 글은 사회 계약론의 개념에 대해 설명하고 사회 계약론을 주장한 학자들의 견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회 계약론은 국가의 형성에 대해 논의하는 이론으로, 규범과 질서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갈등과 이해관계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 구성원들 간의 합의인 계약을 통해 국가가 형성되었다는 입장이다. 사회 계약론의 형성에 영향을 준 대표적인 학자로는 홉스와 로크, 루소가 있는데 이들은 자연 상태에 대한 논의를 바탕으로 사회 계약론을 이야기하였다. 홉스는 사회 계약을 통해 군주에게 절대 권력이 주어진다고 하였고, 로크는 개인의 재산 보호를 위해 국가가 형성되지만 국가의 권력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없다고 하였다. 루소는 사회 계약을 통해 자연 상태가 시민 상태로 이행되며 국가는 개인들의 일반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