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 이육사

 

까마득한 날(과거)

하늘이 처음 열리고(천지개벽, 광야의 생성, 천지개벽의 시각적 형상화)

어디 닭 우는 소리(생명의 기척-대유법) 들렸으랴(설의법)

                                                                                                                                           1: 광야의 원시성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의인법)해 휘달릴 때도(역동적 이미지-활유법)

차마 이곳(광야-민족의 삶의 터전)을 범하진 못 하였으리라(광야의 신성함, 순수성)

                                                                                                                              2: 광야의 신성성과 순수성

 

끊임없는 광음(세월)

부지런한 계절이 피여선 지고(시간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표현함)

큰 강물(역사, 문명)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3: 광야의 역사성

 

 

지금(현재) (고난과 시련) 나리고

매화향기(고고한 의지, 광복의 기운)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부정적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저항과 투쟁의 씨앗화자의 희생정신)를 뿌려라(‘뿌려라라는 1인칭 주와 호응되지 않는 시적 허용에 해당하는 표현으로 굳은 의지의 표현이다. / 조국 광복을 위한 자기희생의 의지- 속죄양 모티프)

*속죄양 모티프

인류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삶에서 비롯된 모티프로, 자신을 희생하여 인류나 민족을 구원하려는 행위나 의식을 말한다. 우리 문학에서 이러한 속죄양 모티프는 일제 말의 대표적인 저항 시인인 이육사와 윤동주의 시에 잘 드러난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 이육사, 광야

마침내 호수 속 깊이 거무러져/ 차마 바람도 흔들진 못해라 - 이육사, 교목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 윤동주, 십자가

내가 오래 기르는 여윈 독수리야! 와서 뜯어 먹어라, 시름없이 윤동주, )

                                                                                                                4: 절망적 현실의 인식과 현실 극복 의지

 

 

다시 천고의 뒤(미래)

백마타고 오는 초인(화자가 간절히 기다리는 대상조국 광복을 실현할 존재)이 있어

이 광야(우리 민족의 삶의 터전)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적, 자기 희생적 태도)

                                                                                                                5: 미래 지향의 강한 의지

                                                                                                                                                       “자유신문”(1945)

 

 

 

 

 

 

 

 

핵심 정리

 

 

1. 갈래 자유시, 서정시

2. 성격 의지적, 저항적, 상징적

3. 제재 광야

4. 시의 어조 의지적 어조

5. 주제 고통스러운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신념

6. 특징

-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적 추이에 따라 시상이 전개됨.

- 종결 어미 ‘-()의 사용으로 의지적인 태도를 강조함.

- 각 연을 균등하게 3행씩 배열하고 시행이 점점 길어지는 배열 방식을 사용하여 음 악성을 획득함.

 

7. 해제

 ‘광야는 우리 민족의 삶의 터전으로, 천지창조 때부터 신성한 곳이었음을 표현하여, 일제의 국토 침략이 부당하는 것을 암시한다. 또한 일제강점기의 상황을 눈 내린다로 표현하여, 눈 속의 아득한 매화 향기로 자신의 독립 의지를 나타내었다. , 이시는 자신을 희생하여 자손들이 광복된 국가에서 역사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게 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작품인 것이다.

1연에서는 하늘이 처음 열리고닭 우는 소리로 천지창조와 생명 탄생을 표현하였다. 2연에서는 어떤 산맥도 차마 이곳만은 범접하지를 못하였다.’라고 하면서 광야의 탄생 배경을 설명하였다. 3연에서는 광야에서의 시간의 흐름과 역사의 태동을 표현하였다. 여기까지가 광야의 과거에 해당한다. 4연에서 현재의 광야에는 눈이 내리고 있으며, 시적 화자는 그러한 광야의 현재 상황을 암담하게 인식하고 있다. 아득한 매화 향기에 의지하여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리겠다는 표현에서, 시적 화자가 현실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5연에서는 자신이 뿌린 노래의 씨가 훗날에 나타날 초인의 노래가 되어 광야에 울려 퍼지기를 희망하고 있다. , 시인은 광야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습을 통해 현실 극복 의지와 예술성을 탁월하게 조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1,2,3 4 5
과거 현재 미래
역사의 신성함 절망과 극복 전망과 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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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쉽게 씌어진 시 윤동주

 

() 밖에 (암울한 시대, 자기 성찰의 시간, 암담하고 쓸쓸한 분위기)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다다미가 깔린 일본식 방 조국의 상실(암담한 공간))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天命-타고난 운명)인 줄 알면서도 (시인은 현실에 직접 참여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다루는 사람이라는 것에 대한 괴로움)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현실과 동떨어진 무의미한 삶)를 들으러 간다.

                                                                                                                  1~4: 암담한 현실에 괴로워하며 회의감을 느낌.

 

생각해보면 어린 때 동무들

하나, , 죄다 잃어버리고(상실)

 

(현실적 자아- 무력감)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무기력한 자신을 반성함)

 

 

인생(人生)은 살기 어렵다는데

()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암담한 현실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자신의 무의미한 삶에 대한 자각과 부끄러움의 표현)

                                                                                     5~7: 일제 강점기 상황에서 시를 쓰는 일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낌.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1연의 변형·반복 현실 재인식)

 

등불(암담한 현실을 헤쳐나가는 정신적 지표)을 밝혀 어둠(절망적 시대 상황-일제강점기)을 조금 내몰고,

시대(時代)처럼 올 아침(시간이 흐르면 새로운 시대가 오듯 아침또한 필연적으로 도래할 것이라는 믿음 - 조국 광복)을 기다리는 최후(最後)의 나(반성적 자아),

 

(내면적 자아)는 나(현실적 자아)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慰安)으로 잡는 최초(最初)의 악수(幄手)-반성적 자아와 현실적 자아의 화해(현실에 체념하고 우울하게 살아가는 현실적 자아와 이를 반성하고 극복하려는 반성적 자아 사이의 갈등과 분열이 화해로 극복.

                                                                                             8~10: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현실 극복의 의지를 다짐.

 

 

 

핵심 정리

 

1. 갈래 자유시, 서정시

2. 성격 고백적, 반성적, 저항적

3. 제재 시가 쉽게 쓰이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

4. 주제 자기 성찰을 통한 암울한 현실의 극복 의지

5. 출전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

6. 특징

- 두 자아의 대립과 화해를 통해 시상을 전개함.

- 상징적 시어의 대립을 통해 시적 의미를 강조함.

- 감각적 이미지를 사영하여 시적 대상을 구체화함.

 

7. 해제

 윤동주가 일본에 유학 중이던 1942년에 쓴 것으로 알려진 이 시는, 일제 강점기에 조국을 떠나와 일본에 살면서 시()나 쓰고 있는 자신의 무기력한 삶에 대한 부끄러움의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 시는 시적 화자의 심리의 변화를 중심으로 쌍을 전개하고 있는데, 암담한 현실 속에서 무력감과 상실감에 빠져 있던 시적 화자는(1~6) 그러한 자신에 대한 반성적 자기 성찰을 통해(7) 현실을 재인식하고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8~10). 자기 자신에 대한 꾸짖음과 도덕적 순결성으로 암담한 현실을 극복하고자 했던, 그리하여 갈등하고 부끄러워하지만 결코 절망하지 않았던 시인 윤동주의 모습을 솔직하고도 섬세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8. 시적 화자의 태도 변화

 

 이 시의 시적 화자는 첫부분에 제시된 암담한 상황 육첩방은 남의 나라에 좌절하지만, 중간 부분에 제시된 내적 성찰의 시를 통해 다시금 결연하게 그 현실에 맞서 나가려는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 시적 화자는 자신이 처한 상황 인식에서 오는 좌절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 현실 극복 의지 천명으로 태도 변화를 보이고 있다.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

반성적 자기 성찰 ……………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양심을 지키려는 노력)

             ↓ 시대처럼 올 아침(미래에 대한 희망)

내면적 자아와의 화해 ………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9. 윤동주 시에 표현된 부끄러움의 의미

일제 강점기를 살아내야 했던 지식인 청년이, 참회와 성찰의 과정에서 느낀 감정임.

스스로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과 반성, 연민 의식에서 비롯되어 미래의 삶을 규정함.

윤동주의 마음과 행동의 규율이자, 그의 삶과 시를 지탱해 주는 근원적인 힘이라고 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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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만식

 

현실의 추()와 문학적 미() - 태평천하의 세계

                                                                                                                                                                이주형

 

 

 채만식(채만식(蔡萬植, 1902~1950)은 일제 침략기인 1902년에 나서 일제 강점 시대와 해방기를 거쳐 한국전쟁 발발 직전인 1950611일까지 살았다. 한국인으로서는 아마도 가장 운 나쁜 사람의 하나일 것이다. 이 시기는 민족적 수난과 고통, 사회적 혼란이 이어지던 때이니, 일생을 이런 나쁜 세상만 보고 좋은 세상은 보지 못한 채 보낸 한국인이 역사를 통틀어 얼마나 될 것인가? 그가 맞은 개인적 운도 나쁜 편이었다. 농읍(農邑, 전북 옥구군) 소지주의 아들도 나서 자랐다는 점과 교육받기가 어려웠던 시절에 서울에서 고보(高普-고등 보통학교)를 다니고 동경 유학까지 했다는 점은 행운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20대 초반 이후부터는 행운과 거리가 멀었으니, 본인의 뜻과 다른 시골 처녀와의 조혼과 집안의 경제적 침몰이 있고, 그에 이어 레디메이드 인생에서의 표현처럼 갈 곳 없는 초상집의 개가 된 식민지 지식인의 일생이 시작된 것이다. 경영이 어려웠던 신문사들을 전전하며 고초를 겪은 데다가, 성질마저 스스로 말한 것처럼 신경질’)(작가 단편 자서전)에다 결벽증까지 있었다. 거기에다 그는 시대와 타협하며 적당히 살기는커녕 반대로 그를 거부하며 피곤하게 살았다. 그는 나쁘고도 절실한 체험을 많이 했기에 할 이야기도 많았고, 그 이야기 거의가 나쁜 데 관한 것이었다. 그는 중·장편소설 15, 단편소설 70여 편, 희곡·촌극·시나리오· ‘대화소설’ 30여 편, 문학평론 40여 편, 수필·잡문 140여 편을 썼으니, 남긴 양으로도 한국 근대 소설가 가운데 몇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

 

 작가로서 채만식이 택한 것은 현실과의 불화가 작을 수 있는 예술주의의 길이 아니었다. 그는 예쁜 예술품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만족하는 예술가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도 민족·사회의 현실과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지식인으로서의 길을 더 중시했다.

 

 채만식은 자작 안내(自作案內)에서, 임화(林和, 1908~1953)나 김남천(金南天, 1911~1953)이 자신의 장편소설 탁류에 박태원(朴泰遠, 1909~1986)천변풍경과 꼭같은 유형의 세태소설이라는 레테르(사업자가 자신의 상품을 다른 상품과 구별하거나 그 고유성을 나타내기 위해서 드러내는 기호나 문자, 도형 따위의 표지.)를 붙이고 있다면서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그는 세상이 용인하는 대로 천변풍경이 좋은 예술품인 데야 틀림없겠지만 탁류가 그보다 못한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양자를 같이 값 치는 데는 단연 불복이라고 했다. 이유는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곱다고 하는 그런 심사때문이 아니라, 탁류에는 적극적인 작가의 의욕이 깔려 있는 데다가, 근본적으로 양 작품은 다른 문학 정신의 산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문학 정신의 차이란 어떤 것인가, 그리고 채만식의 그것은 무엇인가?

 

 하필 박태원 씨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누구든지 문학을 고려자기나 사군자(四君子)와 같이 치는 사람이면 몰라도(미상불(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게) 그러한 문학이 없는 게 아니요, 따라서 그네는 그걸로 자족할 것이지만) 문학이 적으나마 인류 역사를 밀고 나가는 한 개의 힘일진대 한인(閑人)의 소장(消長-쇠하여 줄어가거나 성하여 늘어가다)거리나 아녀자의 완롱물(玩弄物-아이들이 가지고 놀게 할 목적으로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물건)에 그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나는 목이 부러져도 주장을 하는 자이기 때문이다.(저작 안내)

 

 바로 예술주의와 현실주의(혹은 리얼리즘)라는 차이인 것이며, 채만식은 후자에 목숨을 걸 정도였던 것이다. 채만식의 문학은 실제로 철저하게 현실주의의 길을 걸었다. 그는 다른 글(사이비 농민소설)에서 생활을 통하여 인간의 세계하며 이데아를 표출시키는 리얼리즘의 도()”를 강조하기도 했다.

 

 그가 쓴 거의 대부분의 작품의 제재는 당대의 민족·사회 현실 혹은 역사와 관련된 문제였다. ‘리얼리즘의 도를 지키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작품들에 대해 그는 변변찮은 못난이 자식으로서, “만인이 그것을 추앙한댔자 추호도 기쁘지 않다고 했다. 이런 제재들을 다룰 때 채만식이 주로 취한 것은 부정적 현상의 전경화(前景化-언어라는 매개체를 비일상적으로 사용하여 두드러져 보이게 하는 일. 곧 상투적 표현을 깨뜨림으로써 새로운 지각을 일으키는 것으로, 프라하학파의 언어학과 시학에서 쓰인 개념이다.)였다. 부정적 현상들로 가득 찬 시대에만 산 그로서는 현실에 대해 근본적으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고, 작가로서도 부정적인 것을 그려내는 데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작품 전체로 볼 때 기본적인 구도는 부정면의 전경화에서 시작하여 긍정면의 모색으로 끝난다고 할 수 있다. 많은 개별 작품들 내에서 이런 구도가 보인다. 탁류, 태평천하, 패배자의 무덤, 도야지, 낙조, 소년은 자란다등 그의 대표작 반열에 드는 주요 작품들이 그런 구도를 갖는다. 시기적으로 볼 때에도, 첫 작품 과도기는 부정적 면으로 일관하는 작품이고, 1930년대 초기의 대부분 작품들 역시 그러하다. 30년대 말 작품인 패배자의 무덤이나 최후작인 소년은 자란다는 긍정적 전망을 보이는 것으로 끝난다. 30년대 후기 이후 더욱 암울한 시대에 와서 이런 구도가 분명해진다.

 

채만식이 체험한 시대는 탁류의 시대, 비극의 시대였으며, 그의 현실 인식 역시 탁류적 · 비극적이었으며, 자신이 말한 것처럼 니힐리즘의 독한 호흡에 빠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는 이 탁류가 씻겨나가야 하고, 결국 그렇게 될 것이라는 믿음은 가지고 있었다. 미래의 청류에 대한 희망이다.

 

부정면의 전경화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실 나는 그 길을 평생 두고 가려고는 않고, 그 길 부정면만 골라내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또한 우리네 스승이 경계한 바이라 잊어버린 것은 아니다. 그런 부정면을 통하여 기실 긍정면을 주장하기 위해서의 부정면은 결단코 유독하지는 않은 것이다.(자작 안내)

 

 그가 그린 많은 부정면의 반대적 양상이 곧 긍정면이 되는 것이다. 부정면의 소멸을 통해 긍정면들이 생성되고 마침내 청류의 사회, 청류의 역사가 도래하리라는 것이 그의 작품 구조가 가지는 논리다.

 

 그의 작품들에서 부정의 대상이 된 것은 당대의 여러 현상이나 인물 등 다양하며, 대부분 사회적·민족적 의미를 지니는 것들이다. 부정의 소설적 기법도 다양했다. 1930년대 전기까지는 주로 장면적 묘사에 의존했다. 그러나 1930년대 후기에 오면 우회적 기법, 즉 풍자·역설·반어·희화·과장 등 다양한 기법이 활용되었다. 한편 대화소설’·촌극·희곡 같은 장르의 활용 역시 많은 작품을 통해 시도되었다. 이런 기법들을 통해 예술적 효과, 흥미 유발, 검열 통과 등 여러 가지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채만식은 잘못된 역사, 잘못된 사회에 대해 깊은 반감을 가졌으며, 그것의 변혁을 갈망하고 있었던 작가였다. 그러나 변혁의 방법에 대한 그의 구상이 구체화되어 나타나지는 않는다. 이데올로기로 보면 사회주의가 하나의 방법으로 제시되지만 그 자신 사회주의 신봉자는 아닌 것으로 작품이나 실제 행동에서 나타난다. 작품에서 그는 카프의 작가들처럼 사회주의자 혹은 무산 계급의 힘과 투쟁의 현장이나, 그에 의한 변혁의 전망(믿음)을 분명하게 형상화하지 않았다. 또한 카프에도 가입하지 않고 동반자 작가로 남아 있었으며, 그 때문에 방랑적 작가라고 비판받기도 했다. 그러나 염상섭이 그의 작품들을 통해 보여준 것과 같은 심퍼사이저(동조자, 지지가)와는 달랐다. 또한 해방 후에도 채만식은 어떤 정치· 문화 단체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그는 진보적 사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념적 경사도, 어떠한 속박도 싫어하고 독자적으로 신경질적인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 살아간 자유주의자였다고 할 수 있다

 

 채만식 소설의 전개 과정은 기준에 따라 여러 단계로 구분해볼 수 있지만, 작품 내의 골간적 요소인 부정의 양상이 변화하는 것을 기준으로 다섯 단계로 나누어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작품 내적 변화는 시대 상황 및 문단 상황의 변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채만식이 등단을 한 것은 1924세 길로를 통해서이지만 처음 쓴 작품은 1923년의 중편 과도기이다. 이때부터 1927년까지의 작품은 발표작 2, 유작 2편이지만 기법이나 작가의식이 정제되지 못한, 습작의 수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과도기에서 이미 현실의 여러 문제들에 대한 부정의식이 강하게 표출되고 있다.

 

 채만식이 본격적으로 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28년부터인데 이때부터 1933년까지를 한 시기로 본다. 카프의 활동이 활발했던 시기였는데, 채만식은 동반자 작가로서 주로 노동자· 농민, 실직 인텔리 등 빈자들의 궁핍한 현실의 모습을 짧은 형식의 단편이나 대화소설이나 촌극을 통해 묘사했다. 앞 시기가 부정 의식의 출발기라면 이 시기는 부정적 현실의 사생(寫生)기 정도로 말할 수 있다.

 

 1934년에서 1938년 사이는 일제 강점 시대 채만식 문학의 성취도가 최고에 달한 시기였다. 현실 인식, 부정의 논리도 심화되고 기법도 다양하고 세련되었다. 짧은 길이의 작품은 사라졌다. 카프가 해체된 시기이기도 한데, 카프 해체에 뒤따른 문학, 특히 소설의 위기의식과 함께 소설의 다양한 모색이 이루어지던 때이다. 레디메이드 인생이 전환적 작품이거니와 채만식의 대표작들인 탁류, 태평천하, 치숙등이 나왔다. 부정 논리의 확대· 심화기쯤으로 말할 수 있다.

 

 1939년 초 채만식은 관재(官災, 투옥)’을 당하게 되는데, 이 해의 작품 패배자의 무덤에서부터 이전 작품들과는 달리 부정의식을 작품 외면에서 내보이지 않다가 마침내는 대일 굴종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도 억압이 극대화된 암흑기의 현실을 살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몸이 죽거나 의식이 식물화된 인물, 신변잡사 등이 작품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해방 직전에는 계속되는 구복(口腹)의 전령의 급함”(자작 안내)과 억압을 이겨내지 못하고 여인전기같은 임전보국(臨戰保國)’의 소설도 썼다. 그러나 그를 지배해왔던 부정의식은 결코 아주 사라진 것이 아니고 작품의 밑에서 잠행하는 상태였다가 해방 후 다시 전면으로 나오게 된다.

 

 해방 후 그는 부정의식을 다시 전면화하면서 작품 활동을 재개했다. 부정의식이 그에게서 사라졌다면 그는 더 이상 작가일 수 없었다. 해방기에 그는 해방 직전의 굴종을 자기비판함으로써 작품 활동 재개의 논리적 입지를 찾는 한편, 완숙한 의식과 기법으로 해방 공간의 부정적 양상들을 날카롭게 적출, 묘사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민족의 죄인은 해방 후 문인들의 대표적 자기비판 소설로서, 여기서 채만식은 과거의 과오를 절대적· 상대적 맥락으로 해명 · 비판하면서 앞으로의 방향을 간접적으로 표출했다. 이 시기에 그는 진보적 중간파로 남아 과거의 부정의식을 복원, 심화하여 주로 풍자적 기법에 기대면서 당대의 낮도깨비출몰 모습(단편 맹순사, 미스터 방에 각각 畵出魍魎之圖其一(화출망량지도기일)’ 其二라는 부제를 붙였다)을 그려냈다. 그는 이때 당대 현상만을 보는 데 그치지 않고 늙은 극동선수등을 써서 우리 근·현대사의 맥락을 짚어보려는 데도 큰 노력을 기울였다. 낙조에서는 동족상잔의 가능성을 경계하기도 했다. 소년은 자란다는 그의 마지막 작품(미발표 유작)으로 해방 전후의 민중 수난사와 함께 새로운 세대와 시대에 대한 기대를 표출했다.

 

 『태평천하1938조광(朝光)1월호에서 9월호까지 천하태평춘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고, 1940년과 1948년에 각각 초판(명성사[明星社] 발행)과 재판(동지사[同志社] 발행) 단행본이 나왔는데, 재판에서는 주인공의 직함을 장의(掌儀-조선 시대, 세자궁에 속해 있던 종구품 궁인직의 하나)’에서 직원(直員-일제 강점기, 형식적으로만 남아 있던 향교나 경학원에서 하던 직임의 하나)’으로, 제목도 천하태평춘에서 태평천하로 바꾸고 약간의 교정을 보았다. 초판을 그대로 찍어서 제목만 황금광시대(黃金狂時代), 애정의 봄이라 붙인 해적판이 각각 1949년과 1958년에 나왔다. 작품 내의 현재 시간은 19379월 어느 날의 석양 무렵부터 다음 날 점심때까지이다. 중일전쟁(1937727)이 내려진 직후인, 살벌한 시기이다. 작중에서, 일본군의 진격과 승리를 기원하는 윤직원과 올챙이(석서방)의 대화 속에 중일전쟁의 상황이 나온다.

 

 전체 15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장마다 내용을 요약 혹은 상징(비유)하여 재미있게 표현한 제목들이 붙어 있다. 이 작품은 이제 한국 근대 소설사를 대표하는 몇 개의 장편소설 중의 하나로 자리매김되고 있는데, 그럴 이유가 충분히 있다. 일제 강점 시대에는 장편소설 자체가 적었거니와 그중 다수가 대중 오락물로서의 통속소설이었다. 이때 태평천하는 풍자로 일관한 유일한 장편소설로서, 다른 어느 작품과도 유사하지 않은 독특한 문체를 가진 개성 있는 작품으로, 식민지 사회의 어두운 한 모습을 잘 그려내었던 것이다.

 

 1935년 카프가 정식 해산한 후 문단에는 문학 위기론이 팽배했는데 그 타개책의 하나로 풍자문학이 제시되었다. 최재서(崔載瑞, 1908~1964, 문학평론가)가 처음으로 풍자문학론을 통해 풍자문학을 부각시켰는데, 그는 자기 풍자를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보았다. 이에 대해서 안함광(安含光, 1910~?, 문학평론가)풍자문학론비판에서 사회 풍자가 문단 위기의 진정한 타개책이라 주장했다. 이어 19362월 한식(韓植)풍자문학에 대하여에서 풍자문학에 대한 체계적인 이론을 폈는데, 그는 풍자문학이 현실이 가지고 있는 모순과 불합리를 정면으로 공격할 수 없는 때에 간접적으로 배후 혹은 측면으로부터 그를 적발하여 그에 저항하며 그와 격투하는 문학상의 한 방법인데, 이는 진정한 리얼리즘 정신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또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직설적인 말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표면상 웃으면서 대상에게 달려드는 것이며, 비유· 암시 ·기지· 캐리커처 · 조소 등의 표현 수법을 이용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풍자의 의도와 방법을 한마디로 소살(笑殺)’이라고 표현했다. 다음 해에는 이운곡(李雲谷)이 또한 풍자문학의 길을 써서 풍자문학이야말로 확고한 이데올로기와 비판 정신을 가진 프로 작가나 진보적 자유주의 작가만이 쓸 수 있는, “가장 총명하고 영리한문학적 방법이라는 주장을 펴면서 작품 전체가 풍자로 침투되고 풍자로써 통일되어야올바른 풍자소설이라는 점을 덧붙여 말했다.

 

 채만식을 한마디로 말할 때 흔히 풍자작가라고 하지만 정작 풍자소설이라고 할 만한 것이 아주 많은 것은 아니다. 그의 작품 전체를 두고 볼 때 정면에서 웃음없이 그린 작품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성취도가 높은,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힐 만한 작품들 가운데는 풍자 수법을 기초한 것이 많다. 태평천하도 그중 하나다. 위에서 말한 풍자문학론은 이 작품이 연재되기 1,2년 전에 나온 것으로, 이 작품 구상의 큰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전에 이미 레디메이드 인생으로 풍자와 요설(전하려는 내용보다 많은 어휘를 사용하여 내용 전체를 남김없이 표현하는 문체. 대개 접속어, 동의어, 유사어를 많이 쓰며 문장이 길어진다.)의 수법을 써서 평판작을 내본 채만식으로서는 좋은 자극과 용기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태평천하는 안함광 이후 논자들의 풍자문학론과 맞아떨어지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태평천하에서 채만식은 명백히 부정면을 그리고자 했고, 그것을 욕하고자 했다. 그는 김남천이 이 작품에 대해 신문학 30년에 전례가 없을 정도로 부정적 인물만이 등장했으며, 부정적 인물만의 등장은 아무래도 문학의 본도가 아니라는 입장을 보인 것을 두고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그렇게밖에는 붓을 댈 수 없는 사정이나 부정면을 통해서야만 그 긍정면이 도리어 박력 있어 보여질 수법상의 경우가 또한 없는 게 아니다.

아무튼지 나는 눈치는 먹더라도 한동안 천하태평춘의 방향도 버릴 수는 없다. 그러한 부정면의 대() 긍정면의 관계를 알아볼 줄 모르고 문학적으로 표현된 현실의 ()’를 문학적 ()’로 보지를 못하고서 문학적 추로 여기는 성자(聖子)’들이 있으나, 그런 분들이 독자의 한 사람인 것을 나는 대단히 폐로워하는(성가시고 귀찮다) 동시에, 그들에게는 손쉽게 기꾸찌깡이나 한평생 읽고 있으리라 권면을 해둔다.(자작 안내)

 

 이 구절은 채만식 문학의 본질을 가장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것이다. 자기 작품에 그려진 현실의 추는 다름 아닌 문학적  미라는 것이다. 부정적인 현실을 문학적 기법을 통해 훌륭하게 그려냄으로써 긍정적 현실을 알려준다는 것인데, 여기에는 긍정적 현실의 지향도 문학적 기법과 함께 문학적 미에 포함된다는 뜻이 내포된다. 평생 기쿠치 간(1888~1948, 일본의 소설가· 극작가)이나 읽으라는 것은 통속소설이나 읽으라는 욕이다.

 

 이 작품에서 채만식이 부정하려 한 것은 우선 잘못된 역사의 현장인 한말과 일제강점시대 그 자체이다. 한말에 대한 혐오는 윤직원 부자가 탐관오리와 화적패에 의해 수탈당하고 살해당하는 장면의 묘사에서 잘 나타난다. 이런 부패와 무법천지의 사회가 바로 민중으로 하여금 나만 빼고 다 망해버리라는 저주(염원)를 낳게 했으며, 또한 일제 식민지 시대는 그들로 하여금 윤직원처럼 반역사적 · 반사회적 · 반민중적 인물로 나아가게 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자신의 아전을 지켜주는 것이 최선의 권력이요 국가인 것이며, 그것이 곧 일제라는 믿음이 생겨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이 장면에 깔린 채만식의 생각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일제감정시대는 무엇보다 이러한 인물들을 끌어들여 조선인 사회를 썩어가게 한다는 점에서 혐오의 대상이 된다. 윤직원 같은 부정적 인물이 좋아하는, ‘태평천하라고 하는 식민지 현실이 바로 부정의 대상이다.

 

 작중에서 가장 초점적으로 부정되는 것, 즉 중심적 현실의 추는 바로 윤직원이라는 인물이다. 그는 일제강점시대가 되면서 일제 권력에서 보호처를 찾고, 철저히 일제에 굴종하면서 자산가로 성장한다. 서울에 거주하는 부재 지주로서 호남에 있는 내 땅가지고 내 맘대로하면서 소작인들을 착취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체계(일수) 돈놀이, 수형(手形, 어음) 할인 등의 고리 사금융업으로 도시민들을 착취하여 부를 축적한다. 그가 가장 증오한 것은 사회 변혁을 지향하는 저항적 · 진보적 이념이나 인물 즉 독립운동가, 사회주의자 등이다. 철저히 반사회적 · 반민족적 · 반민중적· 반역사적 인물이다.

 

 돈만으로는 식민지 사회에서의 안녕을 보장받을 수 없다고 본 윤직원은 족보에 도금칠하기, 스스로 직함 갖기, 양반 혼인, 권력자 배출 등 ‘4대 사업을 실천해 나간다. 이러한 인물을 부정하기 위해 작자가 활용한 것이 풍자 수법이다. 윤직원으로 하여금 무임승차 기술(奇術), 인력거 삯 깎기, 오래 살기 위해 오줌 먹기, 춘심이와의 유희 등등 우습기 짝이 없는 행동으로 스스로를 큰 체격 및 많은 재산에 역비례하여 왜소하게 비하함으로써 독자에게 소살당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가족들에게도 배척· 배신당하는, 고립무원의 인물로 만들어버림으로써 더욱더 초라한 인물이 되게 하는 것이다.

 

 작품의 대부분의 분량은 윤직원의 부정적 모습을 그린 것이지만, 또 많은 부분에서는 천민 자산가 윤직원가()를 구성하는 인물들, 즉 윤직원 직계 가족과 주변 인물 전체를 부정의 대상, ‘현실의 추로 그린다. 이 작품에는 한 가족 5대가 등장한다. 1세대 윤용규는 한말의 요호부민(살림이 부유하고 넉넉한 백성)으로, 화적패와 부패 관리에 맞서다 죽는다. 2세대가 윤직원이고 제3세대가 윤창식, 4세대는 윤종수·종학, 5세대는 윤경손이다. 염상섭의 삼대와 비할 때 윤직원은 조의관, 윤창식은 조상훈, 윤종학은 조덕기에 대응되는 세대라고 할 수 있는데, 앞의 두 세대 인물들은 상호 유사성이 많다. 윤창식은 개화기에 성장한 세대로서, 일정한 가치관과 삶의 지표 없이 노름, 계집질 등으로 세월을 보내는 타락한 유산층 자제다. 윤직원만큼 악을 행하지는 않지만 사회 · 민족 현실은 철저히 외면하고 향락만을 찾는 쓰잘 데 없는 인물이다. 윤종수 역시 식민지 시대의 쓰레기 같은 인물로서, 조부의 4대 사업 중 군수 배출 계획의 대상 인물이지만 무능하고 향락에 빠져 있을 뿐이다. 종수의 15살짜리 아들 경손이는 학생이지만 공부와는 거리가 멀고, 증조부의 애인15살짜리 동기(童妓) 춘심이와 연애를 한다. 이 집안 여인들은 윤직원의 딸, 며느리, 손부(孫婦)들은 모두 생과부들로서, 못난이들이다.

 

 가족 구성원들 대부분이 사이가 나빠 집안은 싸움을 근저당(根抵當) 해놓고쓰고 있다. 가족 외 인물들(대복이, 삼남이, 올챙이)은 모두 부정적으로 나타나고, 옥화는 창식의 첩이면서도 종수에게 (모르고) 매음을 하러 가기까지 하는 인물이다. 이들 모두 인간이 혐오스럽고 경멸스러운 존재들이다. 한마디로, 작중인물 모두가, 한 명만 빼고, 윤직원의 욕설을 빌려 표현하면 짝 찢을 년잡아 뽑을 놈이거나 그에 준한다. 여기서는 식민지 시대 사회에 대한 탁류의식에서 인간 혐오 의식에까지 나아간 작자의 모습이 느껴질 수 있다.

 

 이 시대는 이렇게 부정적 인물만이 있는 구제 불능의 시대인가? 작자는 그렇게만 보는 것은 아니다. 긍정적 인물로 한 사람, 종학이 있다. 그는 공부도 잘하고 동경 유학까지 하고 있는 지식인이며, 조부 윤직원이 경찰서장 배출 대상으로 계획한 인물이다. 작중의 부정적 인물, 부정적 상황들을 쏟아 내버리고 뒤집어 버려야 한다는 작자의 생각이 살아 있고, 그런 생각을 소설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돌파구 혹은 도구로서 종학이 설정된 것이다. 종학은 윤직원의 기대와는 반대로 윤직원이 가장 싫어하는 사회주의자가 되어 일본 경찰에 체포된다. 이로써 윤직원은 죽음을 만난 못난 패군지장(敗軍之將)의 꼴이 된다.

 

 결국 이 집안은, 아니 식민지 일제 강점 사회는 작품의 제14장 제목처럼 해 저무는 만리장성을 지나 무너지는 만리장성과 함께 파멸해야 하고 또 그렇게 될 것이 암시된다. 실제로 작품의 연재가 끝나고 정확히 7년 뒤에 그것은 현실화되었다. 만리장성을 무너뜨리는 주체는 누구인가? 작가는 호야(胡也, 胡亥)라고 했다. 구체적 인물은 종학인데, 그는 바로 이 집안 중심부에 있는 인물로서, 만리장성을 쌓은 진시황의 아들 호해인 셈이다.

 

 채만식 소설 세계에서 문학적 미를 완결시켜줄 수 있는 주체적 인물로 설정된 것은 바로 작중 부정의 대상이 된 집단 속에서 자생하는 새로운 세대이다. 종학뿐 아니라 탁류에서는 계봉, 패배자의 무덤에서는 종택의 어린 아들, 도야지에서는 문태석, 낙조에서는 박영춘, 소년은 자란다에서는 영호 등이 있다. 채만식은 기성세대에의 불신과 신세대에의 신뢰를 분명히 드러내지만, 그러나 부정면의 극복에 관한 논리는 아무래도 허약하다. 신세대가 어떤 논리적 바탕 위에서 어떻게 할 것인지를 그의 작품들은 보여주지 못했다. 종학의 경우에는 사회주의자로만 되어 있으며, 전보상의 체포 소식만 있을 뿐, 그의 말이나 행동이 직접적으로 그려진 것은 없다. 계봉 이하 다른 인물들은 사회주의자가 아닐뿐더러 다른 어떤 이념이나 방법도 구체화되어 있지 않다.

 

 김남천은 긍정적 인물이란 역사를 추진시키는 적극적인 성격적 전형인데 태평천하에 이르기까지 채만식 소설에서는 그런 인물이 설정되지 않았다는 불만을 토로한 바 있다.(현대 조선 소설의 이념) 그리고 종학은 이 집안이 망조가 들어가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기계적으로 잠시 빌려온 것이며, “그림자만 비친인물로, “엄연한 의미에서 작중인물이 아니었다고 단정한다. 그의 생각으로는 육체나 두뇌를 구비하고 행동을 하면서 작품 속에 들어오는인물이야말로 올바른 작중인물이요, ‘성격적 전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비판은 일정한 정당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유례가 없는 독특한 형식, 문체를 지닌다. 기본적으로 풍자의 수법으로 일관했지만, 세부적으로 극적 장면 구성, 판소리적 표현 방식, 경어체 등을 쓰고 있다. “무대는 이 집의 ……”, “다시, 오늘 밤으로 돌아와서 실골목의 장면인데……”, “이 장면은 그대로 커트가 됩니다.”, “관중이 없어서 웃어주질 않으니 좀 섭섭한 장면입니다.” 식의 지문도 직접 나타나지만, 극적 장면들의 집적(集積) 형태를 취한다. 각 장은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난 한 사건의 현장, 즉 하나의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예를 들면, 1장은 윤직원이 외출했다 귀가하는 장면, 12장은 이날 밤 아홉 시가 한 오 분가량 지나서부터 몇 시간 동안 시내 유곽에서 종수가 오입질하는 장면, 마지막 장은 전보 내용이 윤직원에게 통보되는 장면 등이다. 4장만 과거사를 파노라마장면을 섞어 묘사해놓은 것이다. 그러면서 작자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논평을 가한다. 장면 구성 형태 때문에 독자는 영화나 연극을 볼 때처럼 강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화자는 입니다식의 경어체를 써서 독자를 높여줌으로써 호감을 얻는 한편 직접 대화를 하는 듯한 느낌을 주어 자신과 그들의 거리를 가깝게 하면서 작중의 부정적 현상들에 대한 비판 의식을 공유하고자 한다. 그런 효과를 더욱 높이기 위해 작자는 또한 이 이야기를 쓰고 있는 당자 역시 전라도 태생이기는 하지만, 그 전라도 말이라는 게 좀 경망스럽습니다로 자신을 낮추기도 한다.

 

 적극적 논평과 대상 묘사 방식은 조선 시대 판소리 사설의 수법을 계승했다. 판소리 사설에서 쓰였던 반어 · 자기 폭로 · 비유 · 과장 · 희화화 등의 표현법에다가 전라()도의 사투리의 어감까지 엮인 요설이 계속되어, 이 작품의 독자는 판소리 창자들의 아니라와 창을 들을 때와 유사한 느낌과 재미를 맛볼 수 있게 된다. 경어체로 된 화자의 해설(지문)은 또한 일제강점시대 독자들에게는 무성영화(활동사진) 변사의 설명을 듣는 느낌도 준다.

 

 자 부아라, 거리거리 순사요, 골골마다 공명헌 정사(政事), 오죽이나 좋은 세상이여…… 남은 수십만 명 동병(動兵)을 히여서, 우리 조선놈 보호히여주니, 오죽이나 고마운 세상이여? 으응? …… 제 것 지니고 앉어서 편안허게 살 태평세상, 이걸 태평천하라구 허는 것이여, 태평천하! ……

 

 이것은 부정적 인물인 윤직원을 통해 부정적 현실을 예찬하는 부분이다. 치숙에서 일관되게 이용된 이중 반어의 수법이다. 이를 통해 작자는 일제 현실을 비꼬면서, 윤직원과 일제 강점 하의 세상을 동시에 부정하는 것이다.

 

 초리가 길게 째져 올라간 봉의 눈, 준수하니 복이 들어 보이는 코, 뿌리가 추욱 처진 귀와 큼직한 입모, 다아 수부귀다남자의 상입니다.

나이? …… 올해 일흔두 살입니다. 그러나 시삐 여기진 마시오. 심장비대증으로 천식기가 좀 있어 망정이지, 정정한 품이 서른 살 먹은 장정 여대친답니다. 무얼 가지고 겨루든지 말이지요.

그 차림새가 또한 혼란스럽습니다. 옷은 안팎으로 윤이 지르르 흐르는 진솔 것이요, 머리에는 탕건에 받쳐 죽영(竹纓-매우 가는 댓가지를 마디마디 잘라서 실에 꿰고 그 사이에 구슬로 격자를 쳐서 만든 갓끈) 달린 통영갓(統營笠-경상남도 통영에서 생산되는 갓)이 날아갈 듯 올라앉았습니다.

[……]

이 풍신이야말로 아까울사, 옛날 세상이었더면 일도의 방백(一道方伯, 관찰사)일시 분명합니다. 그런 것을 간혹 입이 비뚤어진 친구는 광대로 인식 착오를 일으키고, 동경 · 대판의 사탕장수들은 캐러멜 대장감으로 침을 삼키니 통탄(몹시 안타깝고 한스러운 마음으로 탄식하다)할 일입니다.

 

 이것은 윤직원을 묘사하는 지문의 한 부분이다. 이 작품 속의 모든 지문들이 이와 유사하다. 이 인용문에는 앞에서 열거한 여러 판소리 사설적 표현 방식들이 섞여 있다. 우선, 예를 들면 봉의 눈”, “시삐 여기진 마시오”, “입이 비뚤어진 친구는”, “인식 착오”, “통탄할 일등등 언어적 반어로 가득 차 있다. 이 부분 전체가 겉으로는 추어올리지만 실제로는 크게 비하하는 반어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광대”, “일도의 방백”, “캐러멜 대장등으로 과거와 현재의 사물을 동원해가며 비유법을 쓴다. 여기에 그려진 윤직원의 모습은 재미있는 하나의 희화(戲畫)이다. 또한 여대치다같은 사투리나 수부귀다남자같은 문자 쓰기도 한다. 다른 지문에서 작중인물인 삼남이를 묘사하면서 눈은 사팔이어서 얼굴을 모로 돌려야 똑바로 보이고, 코는 비가 오면 고개를 숙여야 합니다고 하거나 고씨를 묘사하면서 이통이 세어 한 번 코를 휘어붙이면 지렛대로 떠곤질러도 꿈쩍을 않고라고 하는 것 등은 재미있는 과장의 한 예다.

 

 이처럼 태평천하는 정면적 · 객관적 묘사를 기본으로 하는 근대 리얼리즘 소설과는 매우 다르다. 투철한 역사 · 사회의식을 소설 창작의 기본 조건으로 생각했던 채만식이 이런 기법을 창안한 것은, 작중의 지문(윤직원과 고씨의 싸움 장면)에서 쓴 말을 빌리면, ‘총퇴각아니면 게릴라 전술을 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후자를 택한 결과이다. 총퇴각이란 역사 · 사회의식을 버린 예술주의 문학, 통속 문학 등으로 빠져나가는 것이다. 그는 판소리 사설에서 이용되었던 문학적 표현법들을 계승 · 발전시켜 잘못된 역사, 악한 현실, 추한 인물들 등 부정적 대상들을 겉으로 웃으면서 추어올리면서 바로 그 마각이 드러나게 해나가다가, 마지막 장면을 통해서는 이러한 것들이 몰락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암시한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만식은 부정적 현상들이 난무하는 시대 현실을 독자적인 문학적 기법과 비판의식으로 그려냄으로써 문학적 미를 추구하려 했는데, 태평천하는 그 대표적 성과물이다. 그가 추구한 문학적 미현실의 추를 그리는 것 자체가 아니라 긍정적 진실의 미를 찾는 데서 완성되는 것이다.

 

작가 연보

 

1902(1) 전라북도 옥구군 임피면 읍내리에서 부친 채규섭, 모친 조우섭 사이에서 9남매 중 5남으로 태어남.

1910(9) 임피보통학교 입학.

1914(13) 임피보통학교 졸업. 이후 향리에서 서당을 다니며 한문 수학

1918(17) 중앙고등보통학교 입학.

1920(19) 은선홍과 혼인.

1922(21) 중앙고등보통학교 졸업. 4, 일본 와세다 대학 부속 제일 와세다 고등학원 문 과 입학.

1923(22) 여름 방학에 귀향한 뒤 복교하지 않아 이후 학업 중단. 최초 중편 과도기탈 고.

1924(23) 강화의 사립학교 교원으로 취직. 조선문단세 길로발표.

1925(24) 동아일보사에서 기자로 근무.

1926(25) 동아일보사 사직. 실업 상태로 향리에서 암중모색. 크로포트킨 등의 무정부주의 와 사회주의 이론에 심취하며, 문학에의 길을 닦음.

1929(28) 이해 말부터 개벽사에 입사. 별건곤, 1, 혜성등의 편집에 종사함.

1932(31) 1년여에 걸쳐 현인 이갑기와 동반자 작가 논쟁을 벌임.

1933(32) 조선일보에 장편 인형의 집을 나와서발표. 이후 단편 레디메이드 인생(신 동아, 1934)을 발표하는 등 활발한 문예 활동을 펼침. 이후 카프 2차 사건의 발생과 함께 일시적으로 작품 활동 중지.

1936(35) 개성으로 옮겨가 새로운 생활 환경을 마련하고 본격적인 전업작가의 생활에 돌 입. 명일(1936)을 필두로 탁류(1937), 태평천하(1937) 등을 써내면서 당 대 문단의 중진 작가의 자리를 굳힘.

1940(39) 개성에서 안양으로 이거.

1941(40) 서울 근교 광장리로 이거.

1945(44) 일제 말기에 서울 근교를 떠나 고향으로 낙향하였다가 해방이 된 후 서울로 다 시 거처를 옮김.

1946(45) 다시 재낙향(옥구 익산)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집필활동에 전념하여 주 옥같은 해방기의 명편들을 남김. 논 이야기, 미스터 방등을 발표.

1948(47) 낙조, 민족의 죄인등을 발표.

1950(49) 예견하였던 민족상잔의 비극 6·25 전쟁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지병 악화로 타 계. 전북 옥구의 선영에 안장됨.

 

 

 

 

 

 

출처 : 채만식 장편소설 태평천하, 이주형 책임 편집, 문학과 지성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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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별산대(楊州別山臺)놀이 비상() 수록 부분

 

말뚝이 : 내가 다름이 아니라 우리 댁 샌님, 서방님, 도령님 모시고 과거를 보러 가는 산대굿 구경을 하다가 해 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의막(依幕)을 못 정했다우.

쇠뚝이 : 염려 마라, 정해 주마.

(삼현을 청하여 까끼걸음으로 장내를 돌다가 의막을 정하여 놓고서 말뚝이의 얼굴을 탁 친다. 삼현 중지.)

! 의막을 정해 놓고 왔다. 혹시 그놈들이 담배질을 하더라도 아래윗간은 분명해야 하 지 않겠느냐.

말뚝이 : 영락없지!

쇠뚝이 : 그래서 말뚝을 뺑뺑 돌려서 박고 띠를 두르고 문은 하늘로 냈다.

말뚝이 : 그것 고래당 같은 기와집이로구나.

쇠뚝이 : 영락없지!

<중략>

 

말뚝이 : 저기들 있으니 들어 모시자.

(타령조. 까끼걸음으로 샌님 일행을 돼지 몰아넣듯 채찍질을 하면서 두두한다. 삼현 중지.)

샌 님 : 말뚝아!

말뚝이 : -!

샌 님 : 이 의막을 누가 정했느냐?

말뚝이 : 아는 친구 쇠뚝이가 정해 주었소. (쇠뚝이 앞에 가서) ! 우리 댁 샌님의 의막을 누가 정했느냐 하기에 네가 정했다고 했다. 그러하니 우리 댁 샌님을 한번 뵈어라.

쇠뚝이 : 내가 그러한 양반을 왜 뵈느냐?

말뚝이 : 너 그렇지 않다. 이 다음 우리 댁 샌님이 벼슬이라도 하면 너 괜찮다! 혹시 청편지(請片紙) 한장 쓰더라도 괜찮다.

쇠뚝이 : 그러면 네 말대로 뵙고 오마. 쳐라!

(양반 일행을 뵈러 간다. 까끼걸음으로 샌님 일행의 앞뒤를 보고서 말뚝이 앞에 와서 얼굴을 탁 친다. 삼현 중지.)

말뚝이 : 보고 왔느냐?

쇠뚝이 : 내가 샌님 일행을 뵈니 그게 무슨 양반의 자식들이냐. 한량의 자식들이지.

말뚝이 : 그렇지 않다. 분명한 양반이시다.

쇠뚝이 : 내가 뵈니 샌님이란 작자는 도포는 입었으나 전대(戰帶) 띠로 매고 두부 보자기로 쓰고 화선(花扇)을 들었으니, 그게 무슨 양반의 자식이냐? 바닥의 아들놈이지.

말뚝이 : ! 그렇지 않다. 그 댁이 빈난(貧難)해서 세물전(貰物廛)에서 의복을 세를 내 얻어 입고 와서 구색이 맞지 않아 그러하다!

 

 

 

핵심 정리

 

1. 갈래 민속극, 가면극

2. 성격 비판적, 풍자적, 해학적

3. 제재 양반의 의막 정하기

4. 주제 무능력하고 어리석은 양반에 대한 조롱과 비판

5. 특징

- 익살스럽고 과장된 표현이 사용됨.

- 비속한 일상어와 한자 성어 등이 혼재됨.

 

 

 

출처 : 비상() 문학 자습서

 

https://youtu.be/9OpkKW7K2s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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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전(비상 문학 수록 부분)

 

"양반이라는게 겨우 요것뿐이란 말이오? 양반은 신선이나 다름없다더니 정말 요것뿐이라면 그 많은 곡식만 축낸 것이 억울하오. 아무쪼록 좋은 쪽으로 잘 좀 고쳐 주시오."

 

군수는 부자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미 만들어진 증서를 내버리고 다시 고쳐 쓰기 시작하였다.

 

 

하늘이 백성을 낼 때 네 가지(사농공상士農工商)로 구분하였느니라. 이 가운데 가장 으뜸 가는 것이 선비요 곧 양반이니,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느니라. 양반은 몸소 농사짓지 않고 장사도 하지 않으며, 조금만 글을 읽으면 크게는 문과에 급제하고 작게는 진사가 되느니라. 문과에 급제하게 되면 홍패(합격증)를 받는데 그 길이는 비록 두 자밖에 안되지만 이것만 받게 되면 백 가지를 두루 갖추게 되니 돈 자루나 다름없는 것이니라. 진사가 나이 서른에 첫 벼슬을 하더라도 오히려 늦은 것이 아니니 이름 높은 음관(과거를 거치지 않고 조상의 덕으로 얻는 벼슬)이 될 수 있느니라. 게다가 남인에게 잘만 보이면 큰 고을 수령 자리는 따 놓은 당상이니 귓바퀴가 일산 덕분에 하얘지고, 종놈들의 "예이---" 하는 소리에 먹지 않아도 절로 배가 부르고, 방안에는 어여쁜 기생을 데려다 앉혀놓고, 들에는 학을 길러 날게 할 수 있느니라. 하다못해 시골에서 가난한 선비로 살더라도 자기 멋대로 할 수 있으니 이웃집 소를 빌려 자기 밭을 먼저 갈게 하고, 마을 사람을 불러다가 자기 밭을 먼저 김매게 할 수 있느니라. 만일 어떤 놈이 양반을 업신여기고 말을 듣지 않을 때는 그놈의 코에다 잿물을 들이 붓고 상투 꼬투리를 잡아 휘휘 돌리고 수염을 잡아 뽑는다 하더라도 감히 원망할 수 없으니......”

 

새로 고쳐 쓴 증서가 거의 반쯤 되었을 때, 부자는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어 귀를 꽉 막고 혀를 설레설레 내둘렀다.

"제발 그만! 그만하시오! 양반이라는 것이 참 맹랑하기도 하오. 나리님네들은 지금 나를 날도둑놈으로 만들 작정이오?"

부자는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손으로 머리를 싸매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달아나 버렸다. 그리고 그 뒤로 죽는날까지 다시는 '양반'이라는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핵심 정리

 

1. 갈래: 한문소설, 단편소설, 풍자소설

2. 성격: 풍자적, 고발적, 비판적, 사실적

3. 배경: 시간적-18세기

공간적- 강원도 정선군

4. 사상: 실학사상

5. 시점: 전지적 작가 시점

6. 제재: 양반 신분의 매매

7. 주제: 1) 양반들의 공허한 관념과 비생산성, 특권의식에 대한 비판과 풍자

2) 양반들의 무능과 위선적인 생활 태도, 허위 의식에 대한 비판과 풍자

8. 출전: <연암집> 8, ‘방경각외전

9. 작가: 박지원

10. ‘양반전의 특징

1) 몰락하는 양반들의 위선적인 생활 모습을 풍자함.

2) 전대(前代)에는 불가능했던, 평민 부자로 대표되는 새로운 인간형을 제시함.

3) 독특한 풍자와 해학으로 근대 의식을 보여줌

4)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실학사상을 문학 작품 속에 반영함

5) 사회 현실을 직시하고 문제점에 대해 분석적으로 접근함

 

11. ‘양반전에 나타난 근대적 성격

* 신분제의 동요 : 돈으로 신분을 사고 파는 세태를 보여 줌으로써 조선 후기에 엄격한 신분 제가 점차 붕괴되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이 일반화되고 있음을 드러냄.

* 지배층의 허위에 대한 비판 : 관념적이고 허례허식에 찬 양반 계층의 삶을 비판하고 있음.

* 새로운 계층의 등장 : 평민 부자의 등장이라는 점에서 시민 계급의 대두라는 사회 구조의 변화 가능성을 보여 줌,

 

12. ‘양반전에 나타나는 실학사상

몰락한 양반층 가운데 일부는 실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에 관심을 보이며 부패한 현실을 개혁하려는 지식인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이들이 바로 박지원, 정약용 등으로 대표되는 실학자들이다. 실학자들은 당대의 지배층이 현실과는 유리된 공리공론(空理空論)에 빠져 백성들의 궁핍한 현실을 외면하고 부정부패를 일삼는 것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실사구시(實事求是)정신을 바탕으로 실제 백성들의 생활을 향상시키는 데에 많은 관심을 두었다. ‘양반전은 이러한 시대적 현실을 반영하여 양반층의 허위의식과 부패상을 풍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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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鳳山)탈춤 김진옥· 민천식 구술, 이두현 채록

 

<비상() 수록 부분>

 

6과장(탈놀이에서 현대극의 에 해당하는 말) 양반춤

 

말뚝이 : (벙거지를 쓰고 채찍(‘말뚝이가 마부임을 나타냄.)을 들었다. 굿거리장단(흥미 유발, 흥취 조성)에 맞추어 양반 3형제를 인도하여 등장)

양반 3형제 : [말뚝이 뒤를 따라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점잔을 피우나, 어색하게 춤을 추며 등장.(양반의 희화화-양반 계급의 위선 풍자) 양반 3형제 중에서 맏이는 샌님[生員-생원님의 준말], 둘째는 서방님[書房], 끝은 도련님[道令]이다. 샌님과 서방님은 흰 창옷(‘소창옷의 준말. 웃옷의 하나로 두루마기와 비슷함.)을 썼다. 도련님은 남색 쾌자(소매가 없고 등솔기가 허리까지 트인 옷)복건(幅巾)을 썼다. 샌님과 서방님은 언청이며(샌님은 언청이 두 줄, 서방님은 한 줄이다.)양반의 희화화- 양반을 신체적 결함이 있는 인물로 묘사 부채와 장죽(長竹)을 가지고 있고, 도련님은 입이 삐뚤어졌고, 부채만 가졌다. 도련님은 일절 대사는 없으며, 형들과 동작을 같이하면서 형들의 면상을 부채로 때리며 방정맞게 군다.양반의 희화화- 체통 없이 방정맞은 인물로 묘사]

인물 소개 - ‘말뚝이양반 삼 형제가 등장함.

 

 

말뚝이 : (가운데쯤에 나와서) 쉬이.(재담의 시작. 관객의 시선 집중 유도, 주의를 환기함. 음악과 춤을 멈춤) (음악과 춤 멈춘다.) 양반 나오신다아!(‘양반들위엄) 양반이라고 하니까 노론(老論), 소론(少論), 호조(戶曹), 병조(兵曹), 옥당(玉堂)을 다 지내고 삼정승(三政丞), 육판서(六判書)를 다 지낸 퇴로 재상(退老宰相)(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보펴넞ㄱ인 양반)으로 계신 양반인 줄 알지 마시오. 걔잘량이라는 ''자에 개다리소반이라는 ''자 쓰는 양반이 나오신단 말이오.(말뚝이의 조롱 언어유희를 통해 양반들조롱함)

양반들 : 야아, 이놈 뭐야아!(‘양반들의 호통)

말뚝이 : , 이 양반들, 어찌 듣는지 모르갔소. 노론, 소론, 호조, 병조, 옥당을 다 지내고 삼정승, 육판서 다 지내고 퇴로 재상으로 계신 이 생원네 3형제분이 나오신다고 그리하였소.(말뚝이의 변명)

양반들 : (합창) 이 생원이라네.(‘양반들안심) (굿거리장단으로 모두 춤을 춘다.(갈등의 일시적 해소) 도령은 때때로 형들의 면상을 치며 논다. 끝까지 그런 행동을 한다.- ‘양반들의 우스꽝스러운 행동)

 

재담1 - ‘양반이라는 단어의 뜻풀이에 대한 재담

 

 

말뚝이 : 쉬이. (반주 그친다.) 여보, 구경하시는 양반들, 말씀 좀 들어 보시오.(민속극의 특징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없음. 관객을 극 중에 개입시킴.) 짤따란 곰방대로 잡숫지 말고(관객의 신분이 서민임을 알 수 있음) 저 연죽전(煙竹廛-담뱃대를 파는 가게)으로 가서 돈이 없으면 내게 기별이래도 해서 양칠간죽(洋漆竿竹-빨강, 파랑, 노랑의 빛깔로 알록지게 칠한 담배설대.), 자문죽(紫紋竹-아롱진 무늬가 있는 중국산 대나무. 흔히 담뱃대로 쓴다.)을 한 발 가웃(수량을 나타내는 표현에 사용된 단위의 절반 정도 분량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씩 되는 것을 사다가 육모깍지(‘육무깍지의 와전. 육각형 모양의 담뱃대), 희자죽(喜子竹-담뱃대를 만드는 데 쓰는 대나무의 일종), 오동수복(梧桐壽福) 연변죽(담뱃대의 한 종류)을 사다가 이리저리 맞추어 가지고 저 재령(載寧) 나무리 거이 낚시 걸 듯(재령 나무리에서 게를 낚을 때에는 낚시를 줄줄이 걸어 놓는 데서 온 표현인 듯함.) 죽 걸어 놓고 잡수시오.

양반들 : 머야아!

말뚝이 : , 이 양반들, 어찌 듣소. 양반 나오시는데 담배와 훤화(喧譁-시끄럽게 지껄이며 떠듦.)를 금하라고 그리하였소.

양반들 : (합창) 훤화를 금하였다네. (굿거리 장단으로 모두 춤을 춘다.)

 

재담2 담배와 훤화에 대한 재담

 

 

말뚝이 : 쉬이. (춤과 반주 그친다.) 여보, 악공들 말씀 들으시오.(악공을 극 중에 개입시킴) 오음 육률(五音六律-예전에, 중국 음악의 다섯 가지 소리와 여섯 가지 율()) 다 버리고 저 버드나무 홀뚜기(‘호드기의 방언. 봄철에 물오른 버드나무 가지의 껍질을 고루 빝ㄹ어 뽑은 껍질이나 짤막한 밀집 토막 따위로 만든 피리.) 뽑아다 불고 바가지 장단 좀 쳐 주오.(양반의 권위와 어울리지 않는 음악 - ‘양반들의 권위를 무시하고 조롱함.

양반들 : 야아, 이놈 뭐야!

말뚝이 : , 이 양반들, 어찌 듣소. 용두 해금(奚琴), , 장고, 피리, 젓대(가로 대고 부는 피리) 한 가락도 뽑지 말고 건 건드리지게(아름답게, 멋들어지게) 치라고 그리하였소.

양반들 : (합창) 건 건드러지게 치라네. (굿거리장단으로 춤을 춘다.)

 

재담3 - ‘양반들을 맞이하는 장단에 대한 재담

 

생 원 : 쉬이. (춤과 장단 그친다.) 말뚝아.(앞의 재담과 달리 양반이 재담을 시작함등장 순서의 변화로 독자에게 또 다른 흥미를 유발함)

말뚝이 : 예에.

생 원 : 이놈, 너도 양반을 모시지 않고 어디로 그리 다니느냐?

말뚝이 : 예에, 양반을 찾으려고 찬밥 국 말어(서민의 생활상) 일조식(日早食)하고, 마구간에 들어가 노새 원님(‘노 생원님과의 발음의 유사성을 이용한 언어유희)을 끌어다가 등에 솔질을 솰솰 하여 말뚝이님 내가 타고(‘말뚝이자신이 노 생원위에 탄다는 의미) 서양(西洋) 영미(英美), 법덕(法德-프랑스와 독일을 아울러 이르는 말), 동양 3무른 메주 밟듯 하고(쉽게 두루 돌아다니고), 동은 여울이요 서는 구월이라, 동여울 서구월 남드리 북향산 방방곡곡(坊坊曲曲) 면면촌촌(面面村村), 바위 틈틈이, 모래 쨈쨈이, 참나무 결결이 (황해도 봉산을 중심으로 안 가 본 데가 없다는 뜻 과장과 익살, 열거, 동음 반복, 대구)다 찾아다녀도 샌님 비뚝한 놈도 없습디다.(격식을 갖추지 않은 표현 양반에 대한 조롱의 의도, 반항심이 담겨 있음)

 

재담4 - ‘말뚝이의 양반 찾기에 대한 재담

 

<중략>

 

생 원 : 네 이놈, 양반을 모시고 나왔으면 새처(‘사처의 방언. 손님이 길을 가다가 묵는 집)를 정하는 것이 아니고 어디로 이리 돌아다니느냐?

말뚝이 : (채찍을 가지고 원을 그으며 한 바퀴 돌면서)(특별한 무대 장치 없이 극 중 장소를 표현함.) 예에, 이마만큼 터를 잡고 참나무 울장을 드문드문 꽂고, 깃을 푸근푸근히 두고, 문을 하늘로 낸 새처를 잡아놨습니다.(‘양반들이 머물 새처를 마구간 모양으로 표현함으로써 양반들을 가축으로 비하함 양반에 대한 조롱)

생 원 : 이놈 뭐야!

말뚝이 : , 이 양반, 어찌 듣소. 자좌오향(子坐午向-북쪽을 등지고, 남쪽을 향함. 정남향.)에 터를 잡고 난간 팔자(八字)로 오련각(五聯閣)과 입 구()자로 집을 짓되, 호박 주초(주춧돌)(琥珀柱礎)에 산호(珊瑚) 기둥에 비취 연목(서까래)(翡翠椽木)에 금파(金波) 도리(서까래를 받치는 나무)를 걸고 입 구자로 풀어 짓고, 쳐다보니 천판자(天板子-위를 막은 널빤지), 내려다보니 장판방(壯版房-장판지로 바닥을 바른 방)이라. 화문석(花紋席-꽃의 모양을 놓아 짠 돗자리) 칫다 펴고 부벽서(付壁書-벽에 붙이는 글)를 바라보니 동편에 붙은 것이 담박영정(澹泊寧靜-욕심이 없어 마음이 깨끗하고 고요함.) 네 글자가 분명하고, 서편을 바라보니 백인당중유태화(百忍堂中有泰和-백 번 참는 집안에 큰 평화가 있다.)가 완연히 붙어 있고, 남편을 바라보니 인의예지(仁義禮智), 북편을 바라보니 효자 충신(孝子忠臣)이 분명하니, 이는 가위(그런 뜻에서 참으로) 양반의 새처방이 될 만하고, 문방제구(文房諸具) 볼작시면 용장 봉장(용이나 봉을 그린 장.), , 두지(‘뒤주의 방언), 자기 함롱(函籠-옷을 넣는, 큰 함처럼 생긴 농.), 반다지,(궤 모양의 가구) 샛별 같은 놋요강, 놋대야 받쳐 요기 놓고, 양칠간죽 자문죽을 이리저리 맞춰 놓고,(화려한 양반 거처의 전형적인 형태 및 세간) 삼털 같은 칼담배를 저 평양 동푸루(지명) 선창에 돼지 똥물에다 축축 축여 놨습니다.(‘양반들에 대한 조롱

생 원 : 이놈 뭐야!

말뚝이 : , 이 양반, 어찌 듣소, 쇠털 같은 담배(삼털같은 칼 담배)를 꿀물(똥물)에다 축여 놨다 그리 하였소.

양반들 : (합창) 꿀물에다 축여 놨다네. (굿거리장단에 맞춰 일제히 춤춘다. 한참 추다가 춤과 음악이 끝나고 새처방으로 들어간 양을 한다.- 특별한 무대 장치가 없고 장면 전환이 자유로움.)

양반들 : (새처 안에 앉는다.)

 

<중략>

 

재담5 - ‘양반들의 새처를 정하는 것에 대한 재담

 

생 원 : 쉬이. (음악과 춤을 멈춘다.) 여보게, 동생. 우리가 본시(본래부터) 양반이라, 이런데 가만히 있자니 갑갑도 하네. 우리 시조(時調) 한 수씩 불러 보세.(양반 문화의 일종 유식함을 과시하려는 의도임)

서 방 : 형님, 그거 좋은 말씀입니다.

양반들 : (시조를 읊는다.) "……반 남아 늙었으니 다시 젊지는 못하리라……."(시조 탄로가주제 : 인생무상) 하하. (하고 웃는다. 양반 시조 다음에 말뚝이가 자청하여 소리를 한다.)

말뚝이 : "낙양성 십리 허에, 높고 낮은 저 무덤에……."(민요 성주풀이주제 : 인생무상) : ‘양반들의 시조가 말뚝이가 부르는 민요와 크게 다를 바가 없음.

 

글자 놀이1 - ‘양반들의 시조 읊기

 

 

생 원 : 다음은 글이나 한 수씩 지어 보세.(유식함을 과시하려는 의도임.)

서 방 : 그럼, 형님이 먼저 지어 보시오.

생 원 : 그러면 동생이 운자(韻字-한시의 운으로 다는 글자)를 내게.

서 방 : , 제가 한 번 드리겠습니다. '', ''잡니다.

생 원 : , 그것 어렵다. 여보게, 동생. 되고 안 되고 내가 부를 터이니 들어보게. (영시조(詠時調)"울룩줄록 작대산(作大山)하니, 황천풍산(黃川豊山)에 동선령(洞仙嶺)이라."(아무런 의미 없이 지명을 나열한 문장 스스로 무식함을 드러냄.)

서 방 : 하하. (형제, 같이 웃는다.) 거 형님, 잘 지었습니다.(양반들의 학식이 형편없음을 드러냄.)

생 원 : 동생, 한 구 지어 보세.

서 방 : 그럼 형님이 운자를 하나 내십시오.

생 원 : '', ''잘세.

서 방 : , 그 운자 벽자(僻字-흔히 쓰지 아니하는 까다로운 글자.)로군. (한참 낑낑거리다가) 형님, 한 마디 들어 보십시오. (영시조로) "짚세기 앞총은 헝겊총하니, 나막신 뒤축에 거멀못이라.“(평민들의 생활 용어를 나열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음. 무지와 허세를 풍자함.)

 

<중략>

 

글자 놀이2 - ‘양반들의 운자 놀이

 

생 원 : 그러면 이번엔 파자(破字-한자의 자획을 나누거나 합하여 맞히는 수수께끼.)나 하여 보자. 주둥이는 하얗고 몸뚱이는 알락달락한 자(파자놀이가 아니라 단순한 수수께끼임. 피마자의 형상과 색깔에서 착안함.)가 무슨 자냐?

서 방 : (한참 생각하다가) 네에, 거 운고옥편(韻考玉篇-한자의 운자를 분류하여 풀어놓은 사전.)에도 없는 자인데, 그것 참 어렵습니다. 그 피마자(󰜋麻子-아주까리)라고 하는 자가 아닙니까?(양반의 무식과 허세 풍자)

생 원 : , 거 동생 참 용할세.(서로를 칭찬하여 치켜세우는 양반들의 허위의식)

서 방 : 형님, 내가 그럼 한 자 부르라우?

생 원 : 부르게.

서 방 : 논두렁에 살피(‘살포의 방언. 논에 물꼬를 트거나 막을 때 쓰는 농기구.) 짚고 섰는 자가 무슨 잡니까?(논임자의 말뜻에서 착안한 수수께끼.)

생 원 : (한참 생각하다가) , 그것 참 어려운 잘세. 그것은 논임자가 아닌가?(양반의 무식과 허세 풍자)

서 방 : 하하, 그것 형님 잘 맞췄습니다. (이러는 동안에 취발이 살짝 들어와 한편 구석에 서 있다.)

 

글자 놀이3 - ‘양반들의 파자 놀이

 

생 원 : 이놈, 말뚝아.

말뚝이 : 예에.

생 원 : 나랏돈 노랑돈(몹시 아끼는 많지 않은 돈을 낮잡아 이르는 말) 칠 푼 잘라먹은 놈(‘취발이의 죄목 상인들이 부를 축적하려고 부정을 저지름), 상통(‘얼굴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 무르익은 대초[大棗]빛 같고, 울룩줄룩 배미(뱀의) 잔등 같은 놈을 잡아들여라.

말뚝이 : 그놈의 심()이 무량 대각(無量大角)이요, 날램이 비호(飛虎-썩 용맹스럽고 날쌤.) 같은데, 샌님의 전령(傳令- 명령이 적힌 증서 양반의 권위를 상징함.)이나 있으면 잡아 올는지 거저는 잡아 올 수 없습니다.

생 원 : 오오, 그리하여라. 옛다, 여기 전령 가지고 가거라. (종이에 무엇을 써서 준다.)

말뚝이 : (종이를 받아 들고 취발이(경제적 여건을 갖춘 상인 계층 상징)한테로 가서) 당신 잡히었소.

취발이 : 어데, 전령 보자.

말뚝이 : (종이를 취발이에게 보인다.)

취발이 : (종이를 보더니 말뚝이에게 끌려 양반의 앞에 온다.)

말뚝이 : (취발이 엉덩이를 양반 코앞에 내밀게 하며- 양반의 권위를 조롱하고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반영됨.) 그놈 잡아 들였소.

생 원 : , 이놈 말뚝아. 이게 무슨 냄새냐?

말뚝이 : , 이놈이 피신(避身)을 하여 다니기 때문에, 양치를 못 하여서 그렇게 냄새가 나는 모양이외다.(말뚝이의 변명 - ‘양반들이 속음으로써 어리석은 양반ㄷㄹ을 풍자하고 조롱함.)

생 원 : 그러면 이놈의 모가지를 뽑아서 밑구녕에다 갖다 박아라. (양반의 횡포)

 

<중략>

 

말뚝이 : 샌님, 말씀 들으시오. 시대(時代)가 금전이면 그만인데(부패와 황금만능주의 확산), 하필 이놈을 잡아다 죽이면 뭣 하오? 돈이나 몇 백 냥 내라고 하야 우리끼리 노나 쓰도록 하면, 샌님도 좋고 나도 돈냥이나 벌어 쓰지 않겠소?(부패한 사회상 반영) 그러니 샌님은 못 본 체하고 가만히 계시면 내 다 잘 처리하고 갈 것이니,(당시 양반의 물욕과 부패상 풍자) 그리 알고 계시오.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일제히 어울려서 한바탕 춤추다가 전원 퇴장한다.- 과장의 마무리)

-6과장 끝-

 

취발이잡아들이기 - ‘양반들취발이를 잡아들이나 금전으로 타협함.

 

 

 

핵심 정리

 

1. 갈래 가면극, 민속극

2. 성격 풍자적, 해학적

3. 배경 신분제가 붕괴되기 시작한 조선 후기 사회

4. 제재 - ‘말뚝이의 양반 조롱

5. 주제 양반에 대한 풍자와 비판

6. 특징

- 일정한 재담 구조가 반복되면서 이야기가 전개됨.

- 각 과장이 독립된 이야기로 구성됨.(옴니버스식 구성)

- 언어유희, 과장과 희화화를 통해 양반을 조롱하고 풍자함.

7. 작품에 나타난 재담의 구조

쉬이 *재담의 시작으로, 음악과 춤을 멈추게 함.
*주의를 환기하고 시선을 집중시킴.
양반들의 위엄
(인물 등장)
양반들과 그들의 하인인 말뚝이가 등장하여 그들의 상하 관계를 정상적으로 보여 줌.
말뚝이의 조롱
(갈등 형성)
말뚝이양반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무능과 허위를 조롱하고 비판하여 양반들의 위엄이 떨어짐.
양반들의 호통
(갈등 고조)
양반들말뚝이의 말을 들은 후, ‘말뚝이에게 호통하면서 그가 한 조롱을 부정함.
말뚝이의 변명
(갈등 하강)
말뚝이가 표면적으로는 자신의 조롱을 부정하면서, ‘양반들의 위엄을 긍정하는 척함.
양반들의 안심
(갈등 해소)
양반들말뚝이의 변명으로 자신들의 위엄이 세워졌다고 생각하나, 관객들은 양반들의 무지를 깨닫게 됨.
*재담의 마무리로, 각 재담의 내용을 구분함.
*흥취와 분위기를 고조함.
*‘말뚝이양반들의 갈등을 일시적으로 해소함.

 

 

 

출처 : 비상() 문학 자습서

 

https://youtu.be/azHF79nw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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