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 상공에서 바라본 아마존 밀림은 그 크기가 실로 대단했다. 비행기로 한 시간이 넘게 날아가는 동안 온통 녹색으로 펼쳐진 광경에 마음이 절로 상쾌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풍경을 바라보던 나는 이내 가슴이 아팠다. 중간중간 산림이 없는 곳이 보였기 때문이다. 밀림 한가운데 건물들이 들어서 있고, 건물들을 연결하는 도로가 줄을 그어 놓은 것처럼 열대 우림을 가로질러 커다란 마을과 큰 도시로 연결되어 있었다.

 

 아마존 밀림은 그 크기가 한반도의 35배에 달하는데 지구의 산소 가운데 20퍼센트가 이곳에서 만들어진다고 한다. 과연 '지구의 허파'라고 불릴 만하다. 그러나 매일 축구장 면적의 100개에 달하는 크기가 농장이나 도로 건설 등으로 사라진다고 한다. 이 속도라면 50년 후에는 아마존 지역의 밀림은 물론, 지구 전체의 30퍼센트에 해당하는 동식물이 거의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것은 지구가 점점 더 더워지는 까닭이기도 하다.

 

 현재 지구 온난화를 방지하려는 여러 가지 방안이 연구되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 우리가 기댈 곳은 태양 에너지뿐이라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만약 식물들의 광합성을 대신할 수 있는 인공 광합성 자이가 개발되어 나무를 대신할 수 있다면 어떨까? 어쩌면 지구 온난화의 위기를 해결할 수도 있지 않을까?

 

처음 - 지구 온난화 위기를 해결할 방안으로 떠오른 인공 광합성 기술

 

 중간 1  태양 에너지를 이용한 자연 광합성의 신비로움

 

 모든 자연의 순환은 거대한 온실인 지구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 과정에서 식물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매일 먹는 밥 속의 탄소는 몸속에서 분해되어 무기질인 이산화 탄소로 연소된다. 마치 자동차가 유기물인 휘발유를 산화시켜 무기물인 인산화 탄소를 내뿜는 것과 같다. 자동차의 경우에는 이런 현상은 '산화' 혹은 '연소'라고 부르다. 그리고 사람의 경우에는 '호흡'이라고 부른다. 사람이 숨을 쉬는 것은 몸속 산화로 생긴 이산화 탄소를 세포와 허파 밖으로 내보내는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공기 중의 이산화 탄소는 식물의 광합성에 의해 다시 나무의 섬유소나 감자의 녹말로 전환된다. 이산화 탄소의 탄소가 녹말의 탄소로 순환된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광합성의 결과이며 녹말에 에너지가 저장된 것이다. 이처럼 광합성은 지구의 탄소 순환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지금 먹는 빵 속의 탄소는 오래전 공룡의 뒷다리 뼈에 들어 있던 탄소일지도 모른다. 탄소는 순환하기 때문이다.)

 

 광합성은 밝음과 어둠, 즉 명(明)과 암(暗)의 두 단계 반응으로 진행된다. 명반응은 빛이 관여하는 반응으로, 빛 에너지를 다음 반응에도 쓸 수 있는 화학 에너지로 만든다. 암반응은 빛에서 만들어 낸 에너지, 즉 명반응의 결과인 화학 에너지 같은 고에너지 물질을 써서 이산화 탄소를 포도당으로 만든다. 공기 속의 이산화 탄소를 빵으로 만드는 일을 하는 셈이다.

 

 빛 에너지를 확학 에너지로 만드는 명반응과 화학 에너지를 포도당으로 만드는 암반응은 모두 식물 세포에 들어 있는 조그만 공장인 엽록체에서 일어난다. 식물 세포엔ㄴ 아주 작은 크기의 엽록체가 세포 하나당 100개 정도 들어 있다. 그 엽록체가 백만 개 모이면 손톱 크기 정도가 된다.

 

 각각의 엽록체는 하나의 공장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나뭇잎은 밀가루보다도 작은, 아주 미세한 공장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공단에 비유할 수 있다.

 

 명반응은 태양 전지와 원리가 비슷하다. 태양 전지는 광촉매 등을 이용해 태양 에너지로 전기를 발생시키는 것인데, 광합성 작용에서는 엽록소가 태양 전지의 물질 역할을 한다.

 

 이때 명반응의 효율은 태양 전지보다 낮다. 그 까닭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식물은 자기한테 필요한 태양 에너지만 잡는다. 잎의 모든 표면에서 태양 빛을 모두 잡으면 잎이 더워서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또한 잎은 자신이 잡은 에너지를 다른 형태의 에너지인 확학 물질로 전달해야 하는데,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에너지가 바뀌면서 에너지 전달 효율이 떨어진다. 그래서 빛 에너지를 화학 에너지로 만드는 명반응은 그리 효율적이지 않다. 전달 과정에서 에너지 차이가 큰 반응은 그에 따른 에넞 손실도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반응 과정에서 만들어진 고에너지 물질을 이횽해 이산화 탄소에서 포도당을 만드는 암반응 과정은 다르다. 수많은 일꾼이 중간중간 반응에 참여한다. 그래서 효율이 더 높다.

 

중간1 - 명반응과 암반응으로 이루어지는 자연 광합성

 

 

중간2 인공 광합성으로 에너지와 식량 위지를 해결하다

 

 이산화 탄소는 사람이 호흡을 할 때 나오기도 하지만 공장에서 보일러를 돌릴 때도, 사람들이 자동차를 운전할 때도 나온다. 공장이 많아지고 에너지 소비가 늘면서 이산화 탄소는 점점 증가하고, 지구는 온실 안처럼 더워지고 있다. 그래서 남극의 빙산이 녹는 지구 온실 효과가 생겨난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를 해결하려고 자연 광합성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광합성은 지구 온난화와 에너지 이기라는 골치 아픈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매력적인 반응이기 때문이다.

 

 지구의 모든 에너지는 태양에서 비롯된다. 핵융합 반응이 태양을 모방한 것이라면, 인공 광합성은 자연 광합성을 모방한 것이다. 인공 광합성은 태양 에너지를 이용하려는 세 가지 방안 가운데 하나이다. 그렇다면 태양 에너지를 이용하여 에너지를 얻는 세 가지 방안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첫 번째 태양열을 전기로 바꾸는 태양 전지 장치이다. 지붕 위나 햇볕이 강한 사막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태양 전지판이 그 대표적인 예다. 두 번째는 태양 에너지를 광촉매로 이용해 물을 분해하여 산소와 수소로 변환시킨 뒤 수소를 사용하는 연료 전지를 이용한 방법으로 전기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세 번째는 태양에너지를 광촉매로 이용해 물을 분해하고 그것에서 발생한 전자를 고에너지 물질에 저장한 뒤 이를 사용해 메탄올과 같은 기초 확학 원료를 만드는 것이다. 이 반응이 자연 광합성과 가장 유사한 방법이다.

 

 인공 광합성이 자연 광합성과 다른 점이 있다면 빛을 잡는 것이 엽록소가 아닌 광촉매라는 것과 그 에너지로 포도당이 아닌 메탄올을 만든다는 것이ㅏㄷ. 그 까닭은 포도당을 만드는 과정이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좀 더 간단한 화합물로 만들어 다른 물질의 초기 원료로 쓰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인공 광합성은 자연 광합성에 비해 효율이 어떨까? 자연 광합성에서 식물은 태양 빛 가운데 눈에 보이는 가시광선 계열 중 빨강과 파랑의 두 가지 파장만을 흡수한다. 이것을 근거로 계산해 보면 잎에 도달하는 태양 에너지의 11퍼센트가 광합성 과정에서 포도당으로 변할 수 있다. 하지만 잎에서 반사되는 빛도 있어 실제로는 3~6퍼센트 정도만 포도당으로 변한다고 보면 된다. 연구 결과 아직은 인공 광합성이 자연 광합성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러나 명반응, 즉 잡은 태양 에너지를 유기 물질로 변화시키는 단계의 효율이 매우 낮아 현재 기술로는 자연 광합성 효율의 10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수년 사이에 효율을 3퍼센트로 올리는 데 그 목표를 두고 있다.

 

 중간2 - 광촉매를 이용하여 메탄올을 생성하는 인공 광합성의 원리와 한계

 

끝- 인공 광합성, 미래의 지구를 지키 수 있을까?

 

 현재 인간은 태양 에너지의 극히 일부분만 사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태양 빛을 잘 잡을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식물이 태양열을 이요해 감자를 만드는 효율을 두 배로 높일 수만 이다면 우리는 현재 생산하고 있는 식량의 두 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굳이 기름을 사용해 온실가스를 증가시키면서 지구의 온도를 높이지 않아도 된다. 태양이 주는 에너지를 두 배로 잘 잡아서 감자를 두 배로 수확하고, 그 감자로 알코올인 에탄올을 두 배로 만들어 자동차를 굴러가게 하면 된다. 인산화 탄소를 원료로 광합성을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완전한 '자원의 순환'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에는 녹색 잎이 아닌 다른 색으로 광합성을 하는 생물도 있다. 바로 바닷속 생물들이다. 바다의 깊이가 깊을수록 통과하는 빛의 파장은 변한다. 예를 들어 갈색 조류인 다시마 같은 해조류는 육지 식물이 흡수하지 않는 파장인 녹색을 흡수한다. 그렇다면 태양열을 두 배로 사용하는 방법으로 녹색 식물에 해조류의 광합성 영역을 더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실제로 이 기술은 향후 10년 안에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식물은 나름의 생존 목적이 있다. 그래서 유전 공학을 이용해 그들을 강제로 변화시키는 것은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킬 수 있으므로 식물의 원리를 정확히 파악해 인공적으로 광합성을 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여러 종류의 빛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능을 광촉매나 태양 전지의 집광 장치에 적용하고, 포도당을 만드는 기능을 광촉매와 연결시켜 좀 더 쉽게 포도당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자연 광합성을 모방한 인공 광합성은 인간이 도전할 만한 가장 고도의 기술이자, 지구를 살리는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다.

 

 끝 - 지구가 직면한 여러 가지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는 인공 광합성 기술

 

 

 * 핵심 정리

 

갈래 - 설명문

성격 - 객관적, 해설적, 체계적

제재 - 인공 광합성

주제 - 인공 광합성의 원리와 한계, 앞으로의 과제

특징

       ① 지구가 직면한 문제를 제시하며 경각심을 불러일으킴

       ② 유추의 방법으로 과학적 지식을 알기 쉽게 전달함

       ③ 과정, 비교대조 등의 방법으로 자연 광합성과 인공 광합성의 단계, 공통점과 차이점 등을 체계적이고 이해하기 쉽게 전달함.

 

 

출처 - 김은기, 고등학교 독서, 동아출판, 2019.

내 님믈 그리워하여 우니다니

산(山) 졉동새 난 이슷하요이다.

아니시며 거츠르신 들 아으

잔월효성(殘月曉星)이 아라시리이다.

넉시라도 님은 한듸 녀져라, 아으

벼기더시니 뉘러시니잇가.

과(過)도 허믈도 천만(千萬) 업소이다.

말힛마러신뎌

살읏븐뎌. 아으

니미 나를 하마 니자시니잇가.

아소 님하, 도람 드르샤 괴오쇼셔.

 

<현대어 풀이>

 

내가 임을 그리워하여 울고 지내니

산에서 우는 소쩍새와 나는 비슷합니다.

아니며 거짓인 줄을

희미한 달과 샛별(천지신명)이 알 것입니다.

넋이라도 임과 함께 살아 가고 싶어라.

헐뜯은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저는 아무런 잘못도 없습니다.

뭇 사람의 참언이었습니다.

슬프도다

임께서 저를 벌써 잊으셨습니까?

마소서 임이시여, 마음을 돌이켜 들으시어 사랑해 주소서.

 

 

* 핵심 정리

 

1. 지은이 - 정서(鄭敍, ?~?)

   고려 의종~ 인종 때의 문인으로 문장이 뛰어나고 묵죽화(墨竹畵)에도 능했다. 호는 과정(瓜亭). 의종의 이모부로 벼슬은 내시낭중(內侍郎中)에 이르렀다. 참소(讒訴-남을 헐뜯어 없는 죄를 있는 것처럼 꾸며서 고해 바침)로 귀양을 가 있으면서 의종의 소명(召命-임금이 신하를 부르는 명령)을 기다리다가 '정과정'을 지었다. '정중부의 난'으로 의종이 쫓겨난 후 명종 1년(1170년)에야 다시 기용되었다.

 

2. 연대 - 고려 의종 때(12세기)

3. 갈래 - 향가계 고려가요

4. 의의 - 10구체 향가의 전통을 잇고 있는 가요

          - 충신연주지시 및 유배 문학의 원류

5. 주제 - 연군의 정

6. 출전 - <악학궤범(樂學軌範)>

7. 창작 배경

  정서가 역모(逆謀)에 가담하였다는 누명(陋名)을 쓰고 귀양을 가게 되자, 의종(毅宗)은 "조정의 뜻에 의하여 어쩔 수 없는 일이니, 머지않아 부를 것인즉, 고향에 가 있으라."고 하였다. 정서는 동래로 가서 임금의 부름을 기다리며 살았으나, 20년이 되도록 소식이 없으므로, 거문고를 타며 슬피 자신이 심정을 노래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부른 노래를 그의 호를 따서 '정과정'이라 불렀다.

 

8. 유배 문학(流配文學)의 기원

 고려 의종 때의 권신(權臣-권세를 잡은 신하) 정서가 귀양지 동래(東萊)에서 부럴ㅆ다는 이 작품은 우리나라 최초의 유배 문학이며, 한글로 전하는 고려 가요 중에서 유일하게 작자가 확실한 노래이다. 조선 시대에 나온, '사미인곡'이나 '속미인곡' 같은 유배 문학은 충신연주지사(忠臣戀主之詞)가 대부분이나. 유배 문학의 이러한 성향은 '정과정'에서 시작된 것이다.

 

9. 전대(前代) 문학과의 계승 관계

 이 작품은 향찰로 표기되어 있지는 않지만, 형식면에서 10구체 향가의 전통을 잇고 있다. 연의 구분 없이 시상이 3단으로 전개되는 점'아소 님하'와 같은 감탄적 어구의 존재가 그것을 말해준다. 물론 전체가 11구로 되어 있어 시상이 4·4·2구로 분석되지 않고 낙구의 감탄사 위치도 10구체 향가와 약간 다른 점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 노래는 8구와 9구를 하나로 합하면 쉽게 10구체로 변형이 되고 고려 시대 가요의 특징인 분연(혹은 분장, 분절0이나 후렴구가 보이지 않으므로 10구체 향가의 해체기 형식으로 볼 수 있다.

 

 

 

'고려 역사 속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시리  (0) 2021.04.01
사모곡(思母曲)  (0) 2021.04.01
만전춘별사(滿殿春別詞)  (0) 2021.03.31
고려가요  (0) 2020.09.22
이옥설 - 이규보  (0) 2020.07.11

명칭과 장르적 성격

 

1. 속요

- 고려 시대의 노래 가운데 경기체가(景幾體歌)를 제외한 우리말로 된 서정가요를 가리키는 명칭

- 백성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온 시속(時俗)의 노래란 의미

- 일정한 틀이 정해져 있지 않지만 고려시대의 속요는 민중에 의해 자연 발생된 민요와는 구분되는 상당히 복잡한 형성 배경과 향유 계층 및 전승 과정을 지니고 있다.

 

2) 장르적 성격

음악적 성격 분장체, 음수율은 3음절 우세, 3음보격 중심, 여음(餘音)이라고도 하는 후렴구 발달, 잦은 반복구 사용 민요적 성격을 띤 가사들이 속악정재의 공연 방식에 따라 악곡에 맞추어 개편되는 과정을 반영.

 

2. 형성과정과 역사적 배경

- 속요는 고려 궁정에서 가창되었고, 조선 왕조 궁실에까지 전승되어 불려짐

- 대부분 여항의 노래인 민요에서 비롯되었고, 민요가 궁중으로 이입되면서 악곡적 배려에 따라 반복구 및 후렴구가 삽입되는 등 가사의 개변과 함께 일부 성격적 변모 겪음.

 

가) 형성과정

사모곡과 동백목의 예를 통해 신라시대 민요도 고려 민간사회에 전승되어 속요에 흡수

  사모곡(思母曲)은 처음 신라의 목주라는 특정지방에서 불려지던 제목도 없는 노래였다. 그러나 점차 이 노래가 전국 적으로 확산되면서 <엇노래>라는 제목을 갖춘 보편성을 띤 노래로 탈바꿈하게 되고, 이어서 사모곡이라는 한자 조어(造語)로 바뀌면서 고려 궁중 무악으로 상승채택

고려사 악지, ’동백목(冬栢木)‘조에는 동백목(冬栢木)이 채홍철이 죄를 지어 먼 섬에 유배되어 있을 때 충선왕을 사모하여 지은 것이라고 하고, 한편으로 예부터 이 노래가 있었는데 홍철이 노래 가사를 고쳐서 자기의 뜻을 우의(寓意)했다고 한다고 첨언 동백목(冬栢木)이 채홍철이 새로 창작한 작품이 아니라 전래하는 기존의 가요를 재창작한 것

 

정과정, 이상곡처럼 향가의 속요화

민요에 기반을 둠

왕실에 유입돼 자리잡는 과정

 

고려 왕실에 계승된 삼국 속악의 일정한 기여

고려 역대 군주의 민요에 대한 기호

이러한 왕실의 취향에 영합한 왕립 음악기관과 문신들의 역할

행신(幸臣)들의 아첨과 기녀들의 공헌

 

민요가 궁중에 이입되어 속요화 하는 과정에 참여한 사람들

각 지방이나 개경의 관기(官妓)무녀(巫女) 등이 왕립 음악기관인 태악서와 관현방에 소석되어 왕실의 여러 행사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민요들이 유입

왕의 행신(倖臣)들이 제도(諸道)에 파견되어 지방의 민요 채집

사대부 계층에서도 민요를 채집하여 임금에게 올림

 

작자층

민중, 부녀자, 기녀와 악공, 왕과 측근의 운반자, 개작자, 편집자로서 넓은 의미의 작자층에 포함되면 동시에 향수자로서의 지위로 누림

 

3. 형식적 특성과 표현미

 

1) 형식적 특성

 

단형(單形) 속요 연 구분이 없고, 노랫말이 일관된 통일성 지님, 비교적 원래의 모습을 잘 지고 있는 노래.

사모곡, 유구곡, 상저가, 정읍사, 정과정, 이상곡, 처용가 등

분장(分章)형 속요 호흡이 긴 연시(聯詩), 매 연마다 후렴이 규칙적으로 붙거나, 유사한 사설이 병렬적으로 파생, 혹은 여러 노래들이 합성되어 이루어짐

청산별곡, 서경별곡, 쌍화점, 만전춘별사, 정석가, 동동 등

운율적 특징

3음보 1

후렴구나 여음을 갖춤

-여음들은 일반적으로 악기의 구음(口音)으로 추정. 이는 대개 속요가 궁중 무악(舞樂)의 악곡에 맞게 원래의 가사가 개편되면서 남은 흔적.

여음 및 후렴구는 단순히 악곡적 배려의 잔영에 그치지 않고, 속요의 율격미를 종성하는 동시에 시적 구조를 완결시키는 중요한 몫을 함

AABA형이 반복 구조가 유형화

반복과 병렬에 의한 전개

정과정, 이상곡 10구체 향가의 자취

정읍사, 사모곡, 만전춘별사 등 넓은 의미에서 시조형

 

표현 기법

탁월한 비유와 상징

언어 조탁면에서의 세심한 배려가 이룩하고 있는 운율미

 

4. 작품 세계

 

1) 짧은 형식의 속요

-상저가, 유구곡, 사모곡 : 연 구분이 없는 짧은 형식의 노래들. 대개 4구체 향가를 연상시키는 이 노래들은 남녀간의 애정을 다루고 있는 여타 속요와 달리 효()와 충()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단순 소박한 형태의 노래.

 

2) 펼침 형식의 속요

 

세련된 시적 언어의 구사가 돋보이고, 내용도 교술적 평면성을 벗어나 다양한 양상을 보임

 

 

'고려 역사 속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시리  (0) 2021.04.01
사모곡(思母曲)  (0) 2021.04.01
만전춘별사(滿殿春別詞)  (0) 2021.03.31
정과정(鄭瓜亭) - 정서(鄭敍)  (0) 2020.09.22
이옥설 - 이규보  (0) 2020.07.11

 문무왕 대에 광덕(廣德)과 엄장(嚴莊)이라는 두 승려는 우애가 있어 밤낮으로 이렇게 약속했다.

 "먼저 서방(西方-서방정토, 즉 극락 세계로서 동거토(同居土)라고도 하는데 부처와 중생이 동거한다는 뜻)으로 가는 사람은 반드시 서로 알리자."

 그 후 광덕은 분황사 서쪽 마을(어떤 사람은 황룡사의 서거방(西去房)이라 하는데 어느 것이 옳은지는 알 수 없다)에 숨어 신발 만드는 일을 하면서 처자식을 데리고 살았다. 엄장은 남악(南岳)에 암자를 짓고 살면서 나무를 베어 태우며 [화전] 농사를 지었다. 어느 날 해 그림자가 붉게 물들고 소나무 그늘에 어둠이 깔릴 무렵, 엄장의 집 창 밖에서 소리가 났다.

 "나는 벌써 서방으로 가네. 자네는 잘 있다가 빨리 나를 따라오게."

 엄장이 문을 밀치고 나가 바라보니, 구름 위에서 하늘의 음악 소리가 들려 오고 밝은 빛이 땅까지 뻗쳐 있었다.

 

 이튿날 그가 광덕이 살던 곳으로 찾아가 보니 광덕은 과연 죽어 있었다. 그래서 그의 아내와 함께 시신을 수습하여 함께 장사를 지냈다. 일을 마치자 엄장이 광덕의 부인에게 말했다.

 "남편이 죽었으니 나와 함께 사는 것이 어떻겠소?"

 광덕의 아내는 이를 허락하고 엄장의 집에 머물렀다. 밤이 되어 엄장이 정을 통하려고 하니, 부인이 허락하지 않으면서 말했다.

 "대사가 극락정토를 구하는 것은 물고기를 잡으려고 나무 위에 올라가는 것과 같습니다."

 엄장이 괴이하게 여겨 물었다.

 "광덕도 이미 그러했는데 나라고 해서 어찌 안 되겠소?"

 부인이 말했다.

 "남편과 나는 10여 년 동안 함께 살았지만 일찍이 하룻밤도 잠자리를 같이 한 적이 없는데, 하물며 몸을 더럽혔겠습니까? 그분은 다만 매일 밤 단정하게 앉아서 한결같이 아미타불을 외면서 16관(十六觀-'관'이란 보는 것, 염관(念觀)하는 것을 뜻하며 석가모니가 극락정토를 염원하던 수행법이다)을 짓고 관이 다 되어 미혹을 깨치고 달관하여, 밝은 달이 창으로 들어오면 때때로 그 위에 올라 가부좌를 했습니다. 이처럼 정성을 다했으니, 극락으로 가려고 하지 않아도 극락에 가지 않고 어디로 가겠습니까? 천 리를 가고자 하는 사람은 첫 발자국부터 알 수 있는 것인데, 지금 대사가 하는 일은 동방으로 가는 것이지 서방(극락)으로 간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엄장은 이 말을 듣고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고는 무럴 나와 바로 원효법사에게 가서 도 닦는 묘법을 간곡하게 물었다. 원요가 정관법(淨觀法-사고의 더러움을 없애고 번뇌의 유혹을 없애는 것을 말한다)을 지어 그를 지도하자, 엄장은 그제야 몸을 깨끗이 하고 잘못을 뉘우쳐 자신을 꾸짖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도를 닦아 역시 극락으로 가게 되었다.

 정관법은 원효법사 본전(本傳)과 「해동고승전」에 실려 있다. 그 부인은 바로 분황사의 계집종ㅇ으로 아마 부처님의 열아홉 응신(十九應身-중생의 제도와 교화를 위한 관음보살의 19종의 모습인데 「법화경」 보문품의 19설법에서 취한 것이다. 응신이란 삼신[法身, 報身, 應身]의 하나다.) 가운데 하나였다.

 일찍이 광덕은 이런 노래를 지었다.

 

 

   달님이시여,

   이제 또 서방으로 가셔서

   무량수불 앞에

   말씀을 가져다 전해 주십시오.

   다짐 깊으신 부처님을 우러르며

   두 손 모아 비옵나니

   원왕생(願往生-'원왕생 극락'의 준말로 죽어서 극락 세계에서 태어나고 싶다는 뜻), 원왕생을 바칩니다.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고 아뢰십시오.

   아아, 이 몸 버리시고

   마흔여덟 가지 소원(아미타불이 법장 비구였을 때 세운 마흔여덟 가지 큰 소원을 말한다)이

   모두 이루어질까요?

 

 

* 핵심 정리

 

1. 작자 - 광덕

2. 연대 - 문무왕(재위 661-681)

3. 갈래 - 향가(10구체)

4. 성격 - 기원가(祈願歌), 불교 신앙의 노래

5. 의의 - 기원가의 한 전형을 보이는 작품

6. 주제 - 극락왕생(極樂往生)에 대한 간절한 염원(아미타불에 귀의할 것을 서원함)

 

 

 

* 참고 문헌

일연, 김원중 옮김, 『삼국유사』, 민음사, 2019.

 

* 참고 자료

정경섭 엮음, 고전 문학의 이해와 감상1, 문원각, 2003.

 

 [당나라에서] 「덕경(德經)-노자의 '도덕경(道德經)'을 말함)」을 보내오자 대왕은 예를 갖추어 받았다.

 왕디 나라를 다스린 지 24년이 되던 해에 오악삼산(五岳三山-오악은 동악 토함산, 서악 계룡산, 남악 지리산, 북악 태백산, 중악 팔공산이며, 삼산은 경주 남산, 영천 금강산, 청도 부산이다)의 산신이 때대로 나타나 궁전 뜰에서 대왕을 모셨다.

 3월 3일 왕은 귀정문(歸正門) 누각 위에 올라가 주위 사람들에게 말했다.

 "누가 길거리에서 대덕(大德-중에게 부여하는 직위 명칭인데 덕망이나 풍모가 높은 중을 일컫는다.) 한 명을 데려올 수 있겠는가?"

 이때 마침 위엄과 풍모가 깨끗한 고승이 배회하며 가고 있었다. 신하들이 그를 데리고 와 뵙게 하니 왕이 말했다.

 "내가 말한 위엄과 풍모가 있는 승려가 아니다."

 그리고 돌려보냈다.

 

 다시 한 승려가 가사를 걸치고 앵통(櫻筒-삼태기를 메고 있어다고 한 곳도 있다)을 지고 남쪽에서 오고 있었다. 왕은 기뻐하며 그를 보보 누각 위로 맞아들였다. 통 안을 살펴보니 다구(茶具)가 가득 들어 있었다. 왕이 말했다.

 "그대는 누구인가?"

 승려가 아뢰었다.

 "소승은 충담(忠談)이라 합니다."

 "어디서 오는 길인가?"

 승려가 아뢰었다.

 "소승은 매년 중삼일(重三日-셋 풍속에서 액을 막는 제의(祭儀)가 있는 날로 3월 3일이다), 중구일(重九日-중양일이라고도하며 액을 막는 제의가 있는 날로 9월 9일이다)에 차를 끓여 남산 삼화령(三花嶺- 경주 남산에 있다고 하지만 확실하지 않은데, 이 위에 연꽃 모양의 불상 대좌가 있다고 한다) 미륵세존(彌勒世尊- 나타날 부처)께 올리는데, 지금도 차를 올리고 돌아오는 길입니다."

 왕이 말했다.

 "나에게도 차 한 잔 나누어 줄 수 있겠는가?"

 승려는 이에 차를 끓여 바쳤는데, 찻잔 속에서 향내가 풍겼다. 왕이 말했다.

 "짐은 일찍이 대사가 기파랑(耆婆郞)을 찬미한 사뇌가(詞腦歌)의 뜻이 매우 높다고 들었는데 정말 그런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짐을 위해 안민가(安民歌)를 지어 보라."

 왕이 말했다.

 충담은 곧바로 왕명을 받들어 노래를 지어 바쳤다. 왕이 아름답게 여겨 왕사(王師- 왕의 불교 수행을 돕는 승려를 말한다)로 봉했으나, 그는 삼가 재배하며 간곡히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안민가(경덕왕 말년에 지은 것으로 '찬기파랑가'보다 후대의 작품이며 호국의 정성이 깃들어 있다. 조지훈 교수는 충담사의 신분이 단순한 승려가 아니고 화랑도의 양면을 띤 인물로 보았다)는 다음과 같다.

 

   임금은 아버지요

   신하는 사랑을 주는 어머니라.

   백성을 어리석은 아이로 여기면,

   모든 백성들이 사랑을 알리라.

 

   꾸물거리며 사는 중생,

   이들을 먹여 다스려라.

   이 땅을 버리고 어디로 가라고 하면

   이 나라가 보전될 줄 알리라.

   아아,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하면

   나라는 태평을 지속하리.

 

 

 찬기파랑가는 다음과 같다.

 

   열어젖히자 벗어나는 달이

   흰구름 좇아 떠간 언저리

   백사장 펼친 물가에

   기파랑의 모습이 잠겼어라.

   일오천(逸烏川) 자갈벌에서

   낭의 지니신 마음 좇으려 하네.

   아! 잣나무 가지 높아

   서리 모를 씩씩한 모습이여!

 

 

 왕은 옥경(玉莖)의 길이가 여덟 치나 되었는데, 자식이 없어 왕비(「왕력」에는 삼모부인(三毛夫人)으로 되어 있다)를 폐하고 사량부인(沙梁夫人)으로 봉했다. 후비 만월부인(滿月夫人)은 시호가 경수태후(景垂太后)이며 각간 의충(依忠)의 딸이었다.

 왕이 하루는 표훈대사(表訓大師)를 불러 명했다.

 "내가 복이 없어 후사를 얻지 못했으니 원하건대 대사께서 하느님에게 청하여 사내아이를 점지하게 해 주시오."

 표훈대사가 하늘로 올라가 천제에게 말하고 돌아와 아뢰었다.

 "천제께서는 '딸을 구하는 것은 되지만 사내아이는 마땅치 않다.'라고 하셨습니다."

 왕이 말했다.

 "딸을 아들로 바꿔 주시오."

 표훈 대사가 다시 하늘로 올라가 청했다.

 천제가 말했다.

 "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사내아이가 태어난다면 나라를 위태롭게 할 것이다."

 표훈대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려 할 때 천제가 다시 불러 말했다.

 "하늘과 인간 사이를 어지럽혀서는 안 되는데 지금 대사는 이웃 마을처럼 오가면서 천기를 누설하고 있으니 지금 이후로는 오는 것을 금하노라."

 표훈대사가 와서 천제의 말을 전하니 왕이 말했다.

 "나라가 비록 위태롭게 되더라도 아들을 얻어 후사를 삼고 싶소."

 달이 차서 왕후가 태자를 낳으니(「삼국사기」에는 경덕왕 17년 7월 23일의 일로 기록되어 있다.) 왕은 매우 기뻐했다.

 

 태자가 여덟 살이 되었을 때 왕이 죽고 태자가 즉위했으니, 이 사람이 혜공대왕(惠恭大王)이다. [왕이] 어렸으므로 태후가 섭정에 나섰으나 정사가 다스려지지 않았고(그는 16년 동안 왕위에 있었는데 반란이 다섯 번이나 일어났다) 도적이 벌떼처럼 일어나도 막지 못했으니, 표훈대사의 말이 사실이었다. 태자는 원래 여자였다가 남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돌 때부터 즉위하기까지 하상 부녀자들의 놀이를 일삼고 주머니 차는 것을 좋아하며 도사(道士)들과 희롱했다. 그래서 나라가 크게 어지러워져 결국 선덕왕(宣德王)과 김양상(金良相- 김양상은 선덕왕의 이름이다. 김경신(金敬信)의 오기라는 설도 일리가 있다)에게 시해되었다. 표훈대사 이후로 신라에 성인이 태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 찬기파랑가 핵심정리

 

1. 작품 구조

 제1 -3구 하늘의 달 - 높이 우러러 보는 존재                    문사

 제4- 5구 냇물에 비친 달 - 냇물처럼 맑고 깨끗한 모습        답사

 제6 - 8구 조약돌 -원만, 강직한 인품을 따르고자 함

 제9 - 10구 잣나무 -고결한 절개와 굳은 의지에 감동           결

 

2. 작자 - 충담사

3. 연대 - 신라 경덕왕 때(8세기)

4. 갈래 - 향가(10구체), 서정시

5. 성격 - 대상에 대한 예찬(禮讚)의 노래

6. 표현 - 은유법, 상징법, 문답법

7. 의의 - '제망매가'와 함께 서정성이 돋보이는 향가의 백미

8. 기파랑의 고매한 인품을 예찬함.

 

 

* 안민가 핵심정리

 

 

1. 제1 - 4구  군(君), 신(臣), 민(民)을 가족 관계에 비유 ▶ 가족주의

   제5 -8구  백성을 풍족하게 해 주는 정치의 중요성  ▶ 수직적 질서와 민본주의

   제9 - 10구  군, 신, 민이 각각 자신의 도리를 지킴  ▶ 명분과 실제의 일치

 

 

2. 작자 - 충담사

3. 연대 - 신라 경덕왕 24년(765)

4. 갈래 - 향가(10구체)

5. 사상 - 유교적 충의(忠義)와 애민(愛民) 정신

6. 의의 - 향가로서는 유일하게 유교적인 성격을 띠고 있음

7. 주제 - 나라를 다스리는 올바른 방향

 

 

 

 

 

 

* 참고 문헌

일연, 김원중 옮김, 『삼국유사』, 민음사, 2019.

 

* 참고 자료

정경섭 엮음, 고전 문학의 이해와 감상1, 문원각, 2003.

 

 제 49대 헌강대왕 대에는 서울에서 동해 어귀에 이르기까지 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담장이 서로 맞닿았는데, 초가집은 한 채도 없었다. 길에는 음악과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았으며 바람과 비는 사철 순조로웠다. 이때 대왕이 개운포(開雲浦- 학성(鶴城) 서남쪽에 위치하므로 지금의 울주다)로 놀러 갔다 돌아오려 했다. 낮에 물가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구름고 안개가 캄캄하게 덮여 길을 잃었다. 왕이 괴이하게 여겨 주위 사람들에게 물으니 일관이 아뢰었다.

 "이는 동해에 있는 용의 변괴니, 마땅히 좋은 일을 하여 풀어야 합니다."

 그래서 용을 위해 근처에 절을 짓도록 유사(有司-벼슬아치, 즉 담당하는 관리)에게 명령했다. 명령을 내리자마자 구름이 걷히고 안개가 흩어졌다. 이 때문에 그곳의 이름을 [구름이 걷힌 포구라는 뜻의] 개운포라고 한 것이다.

 

 동해의 용은 기뻐하여 일곱 아들을 거느리고 왕의 수레 앞에 나타나 덕을 찬양하며 춤을 추고 음악을 연주했다. 그 중 한 아들이 왕의 수레를 따라 서울로 들어와 왕의 정사를 보필했는데, 이름을 처용(處容-양주동 박사는 '처용'의 원뜻에 대해 "한자의가 아닌 제융 혹은 치융이란 말에서 그 원뜻을 찾아야 한다."라고 했다)이라 했다. 왕은 미녀를 주어 아내로 삼아 그의 마음을 잡아 머물도록 하면서 급간(級干)이란 직책을 주었다. 그의 아내가 매우 아름다웠으므로 역신(疫神)이 흠모하여 밤이 되면 사람으로 변해 그 집에 와 몰래 자곤 했다.

 

 처용이 밖에서 집에 돌아와 두 사람이 자고 있는 것을 보고는 노래를 지어 부르고 춤을 추다가 물러났는데, 그 노래는 다음과 같다.

 

   동경(東京) 밝은 달에 밤새도록 노닐다가

   돌아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구나.

   둘은 내 것이지만 둘은 누구의 것인가.

   본래 내 것이지만 빼앗긴 것을 어찌 하리.

 

 이때 역신이 형체를 드러내 처용 앞에 꿇어앉아 말했다.

 "제가 공의 처를 탐내어 범했는데도 공이 노여워하지 않으니 감탄스럽고 아름답게 생각됩니다. 맹세코 오늘 이후로는 공의 형상을 그린 그림만 보아도 그 문에는 절대로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이로 인해 나라 사람들이 문에 처용의 형상을 붙여 사악함을 물리치고(이러한 미신은 불교 최전성기인 고려에 와서 궁중 의식으로서 처용무와 처용회로 발전되었다- 이동환 설) 경사스러운 일을 맞이하려고 했다.

 

 왕은 돌아오자 곧 영취산(靈鷲山) 동쪽 기슭의 좋은 땅을 가려 절을 세우고 망해사(望海寺- 경남 울주군 문수산에 있던 절로 지금은 소실되어 터와 주춧돌만 남아 있다)라 했다. 망해사를 또 신방사(新房寺)라고도 했는데, 이는 처용을 위해 세운 절이다. 또 왕이 포석정(鮑石亭-경주시 배동에 있는 임금의 별궁으로 지금은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웠다는 석구만 남아 있다)으로 행차하니, 남산의 신(神)이 나타나 어전에서 춤을 추었는데(『삼국사기』 「신라본기」제 11에는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네 사람이 어가(御駕) 앞에서 가무를 하였는데"라고 했다) 옆에 있는 신하들에게는 보이지 않고 왕에게만 보였다. 그래서 왕이 몸소 춤을 추어 형상을 보였다. 그 신의 이름은 혹 상심(祥審)이라고 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나라 사람들이 이 춤을 전하여 어무상심(御舞祥審) 또는 어무산신(御舞山神)이라고한다. 어떤 이는 이미 신이 나와 춤을 추었으므로 그 모습을 살펴 왕이 공장(工匠)에게 본떠 새기도록 하여 후대에 보이게 했으므로 상심(象審)이라고 했다고 한다. 혹은 상염무(霜髥舞)라고도 하는데, 이는 그 형상을 일컫는 말이다.

 

 또 금강령(金剛嶺)에 행차했을 때 북악(北岳)의 신이 춤을 추자 이름을 옥도금(玉刀鈐)이라 했고, 동례전(同禮殿)에서 연회를 할 때 지신(地神)이 나와서 춤을 추어 지백급간(地伯級干)이라 불렀다.

 

「어법집(語法集)」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그때 산신이 춤을 추고 노래 부르기를 '지리다도파(智理多都波)'라고 했다. '도파'란 말은 아마도 지혜(智)로써 나라를 다스리는(理) 사람이 미리 사태를 알아채고 모두(多) 달아나(逃) 도읍이(都)이 곧 파괴된다(破)는 뜻이다."

 이는 바로 지과 산신이 장차 나라가 망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춤을 추어 경계한 것이다. 그런데 나라 사람들이 이를 깨닫지 못하고 상서로움이 나타난 것이라고 하면서 즐거움에만 점점 더 탐닉하여 결국 나라가 망하고 만 것이다.

 

 

* 처용가 핵심 정리

 

1. 작자 - 처용

2. 연대 - 신라 49대 헌강와 때(9세기 경)

3. 갈래 - 향가(8구체), 무가(巫歌)

4. 성격 - 주술적

5. 의의 - 벽사진경(僻邪進慶)의 민요적 무가

          - 의식무(儀式舞), 또는 연희(演戱)의 형태로 고려, 조선 시대까지 계승됨

6. 주제 - 관용과 극기의 위풍(역신을 쫓아냄)

7. 처용의 정체

① 역사적 관점 - 용의 아들 처용이 서라벌에서 벼슬한 것은 지방 통제의 수단으로 지방 호족의 아들을 서라벌에 인질로 잡아두었던 역사적 사실과 관련지을 수 있다. 그리고 처용의 아내를 범한 역신은 타락한 중앙 귀족의 자제로 파악한다. 그렇다면, '처용가'는 지방 호족과 중앙 귀족의 갈등을 표현한 것이다.

② 신라 시대 서역(西域)과의 교역 사실과 관련한 관점 - 처용은 신라에 왔던 이슬람 상인 중의 한 사람일 것으로 추정.

③ 종교적 관점 - 처용을 축사(逐邪)와 벽사진경(僻邪進慶)의 주력(呪力)을 가진 무속적 ·신적 존재로 파악

 

 

❀ 고려 시대의 '처용가(處容歌)'

 

신라 성대(新羅聖代) 밝은 성대

천하 태평은 나후(羅侯-해와 다을 기리는 신으로 처용의 위용을 비김)의 덕

처용 아비여

이로써 사람들이 별말이 없게 되니

이로써 사람들이 별말이 없게 되니

모든 재앙(災殃)이

일시에 소멸하도다.

 

아아, 아비의 모습이여

처용 아비의 모습이여

머리 가득 꽂은 꽃이 무거워

기울어진 머리

아아, 수명(壽命)이 장수(長壽)할

넓은신 이마

산(山) 모양 비슷한

긴 눈썹

애인을 바라보듯

너그러운 눈

바람이 잔뜩 불어

우글어진 귀

복사꽃간치

붉은 얼굴

오향(五香) 맡으시어

우묵해진 코

아아, 천금을 머금으시어 넓으신 입에

백옥 유리같이 흰 이에

사람들이 기리고 복이 성하시어 앞으로 나온 턱에

칠보를 못 이기어 숙이신 어깨에

길경(처용무의 소품)에 겨워서 늘이신 소매에

지혜 모이어 덕이 있으신 가슴에

복과 지혜가 모두 넉넉하시어 부르신 배에

붉은 패옥에 겨워서 굽어지신 허리에

함께 즐겨 크게 평안하시어 기신 다리에

아아, 계면조에 맞추어 춤추며 도는 넓으신 발에

 

누가 만들어 세웠는가

누가 만들어 세웠는가.

바늘도 실도 없이

바늘도 실도 없이

처용 아비를

누가 만들어 세웠는가.

많이 많이 세워 놓았구나.

12제국이 모두 만들어

아아, 처용 아비를 많이도 세워 놓았구나.

 

버찌야, 오얏아, 녹리(鹿梨)야

빨리 나와 내 신코를 매어라.

아니 곧 맨다면

궂은 말 떨어지리라.

서라벌 밝은 달 아래

밤새도록 노닐다가

들어와 내 자리를 보니

가랑이가 넷이로구나.

아아, 둘은 내 것인데

둘은 뉘 것이뇨.

이럴 적에

처용 아비만 본다면

열병신(熱病神)이야

횟감이로다.

천금(千金)을 주랴

처용 아비야

칠보(七寶)를 주랴 처용 아비야.

천금 칠보도 말고

열병신 잡아 날 주소서.

산이나 들이나

천 리 밖으로

처용 아비를

비켜 갈지어다.

아아, 열병대신(熱病大神)의

발원(發願)이로다.

 

<악학궤범>

 

1. 주제 - 역신을 몰아 내는 처용의 위용과 기상

2. 구조 - 서사(序詞)로서 처용의 힘을 설명

          - 처용의 위압적인 모습을 그림

          - 처용 가면을 제작하는 과정을 이야기함

          - 역신을 물리치는 처용의 위용을 말함

 

 

 

 

 

* 참고 문헌

일연, 김원중 옮김, 『삼국유사』, 민음사, 2019.

 

* 참고 자료

정경섭 엮음, 고전 문학의 이해와 감상1, 문원각, 2003.

 

 

 

 

 제 32대 효소왕 대에 죽만랑(竹曼郞)의 무리 가운데 득오(得烏-혹은 득곡(得谷)이라고도 한다) 급간이 있었는데, 화랑의 명부에 이름을 올려놓고 날마다 나오다가 열흘 동안 보이지 않았다. 죽만랑이 그의 어머니를 불러 물었다.

 "당신 아들은 지금 어디 있소?"

 득오의 어머니가 말했다.

 "당전(幢典)인 모량부(牟梁部)의 아간(阿干) 익선(益宣)이 제 아들을 부산성(富山城- 富山의 꼭대기에 있는 널따란 구릉)의 창고지기로 보냈는데, 급히 가느라 낭께 말씀을 드릴 겨를이 없었습니다."

 낭이 말했다.

 "네 아들이 만약 사사로운 일로 그곳에 갔다면 찾아볼 필요가 없겠지만 공적인 일로 갔으니 내가 가서 대접해야겠다."

 그리고 나서 떡 한 합과 술 한 동이를 갖고 좌인(左人-향언에서 모두갯지라고 하니, 노복을 말한다)들을 거느리고 떠나는데, 낭의 무리 137명 역시 의장을 갖추어 따라갔다.

 

 부산성에 도착하여 문지기에게 득오실(得烏失- 여시서 실은 골짜기나 고을을 뜻하는 향언 '실'의 음차라고 본다)의 행방을 물어보자 그가 말했다.

 "지금 익선의 밭에서 관례에 따라 부역을 하고 있습니다."

 낭은 밭으로 가서 가지고 간 술과 떡으로 득오를 대접했다. 그리고 익선에게 휴가를 얻어 득오와 함께 돌아오려고 했으나, 익선이 완강히 반대하면서 허락하지 않았다.

 

 그때 사리(使吏) 간진(侃珍)이 추화군(推火郡)의 세금 30석을 거두어 성안으로 수송하다가 선비를 귀중히 여기는 낭의 풍모를 아름답게 여기고 융통성 없는 익선을 야비하게 여겨, 가지고 가던 30석을 익선에게 주고 도움을 요청했으나 여전히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사지(舍知-신라 시대 17관등 중 제13위 관등) 진절(珍節)이 기마와 말 안장을 주니 그제야 허락했다.

 

 조정의 화주(花主-화랑을 관할하는 관직)가 그 소식을 듣고 사신을 보내어 익선을 잡아다가 그의 더럽고 추잡함을 씻어 주려 했는데, 익선이 달아나 숨었으므로 그의 맏아들을 잡아갔다. 이때는 몹시 추운 날이었는데, 성안에 있는 못 가운데서 익선의 아들을 목욕시키니 그대로 얼어 죽고 말았다.

 

 대왕은 그 말을 듣고는 모량리 사람으로 벼슬에 종사하는 자는 모두 내쫓아 다시는 관공서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고 검은색 옷[승복]을 입지 못하게 했으며, 만약 승려가 된 자라면 종을 치고 북을 울리는 절에는 들어가지 못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또 간진의 자손을 올려 평정호손(枰定戶孫)으로 삼아 표창했다. 이때 원측법사(圓測法師)는 해동의 고승이었으나 모량리 사람이었기 때문에 승직을 받지 못했다.

 

 이전에 술종공(述宗公)이 삭주도독사(朔州都督使)가 되어 임지로 부임하게 되었는데, 삼한에 전쟁이 있어 기병 3000명으로 그를 호송하게 했다. 가다가 죽지령(竹旨領)에 도착하니, 한 거사가 고갯길을 닦고 있었다. 공은 그것을 보고 감탄하고 칭찬했다. 거사 역시 공의 위세가 매우 큰 것을 좋게 보고 서로 마음 속으로 감동하게 되었다.

 

 술종공이 삭주에 부임하여 다스린 지 한 달이 되었을 때, 거사가 방 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그런데 아내도 같은 꿈을 꾸었다고 하여 매우 놀라고 괴상하게 여겼다. 이튿날 사람을 시켜 거사의 안부를 물으니 사람들이 말했다.

 "거사는 죽은 지 며칠 되었습니다."

 심부름 갔던 사람이 돌아와 보고하니, 거사가 죽은 날이 꿈을 꾼 날과 같은 날이었다. 공이 말했다.

 "아마 거사가 우리 집에 태어날 것 같소."

 다시 군사를 보내 고갯마루 북쪽 봉우리에 거사를 장사 지내게 하고 돌로 미륵 한 구(軀)를 만들어 무덤 앞에 세웠다.

 

 아내가 꿈을 꾼 날로부터 태기가 있어 아이를 낳자 이름을 죽지(竹旨)라 했다. 그는 장성하여 벼슬길에 올라 김유신 공과 함께 부수(副帥)가 되어 삼한을 통일하고 진덕, 태종, 문무, 신문 등 4대에 걸쳐 재상이 되어 나라를 안정시켰다.

 

 처음에 득오곡이 낭을 사모하여 노래를 지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나간 봄 그리매

   모든 것이 시름이로다.

   아름다운 모습에 주름이 니니

   눈 돌릴 사이에 만나 보게 되리.

   낭이여! 그리운 마음에 가는 길에

   쑥 우거진 마을에 잘 밤 있으리.

 

 

* 모죽지랑가 핵심정리

 

1. 작품의 구조

 제1· 2구 - 좋았던 젊은 날을 그리워함

 제3· 4구 - 낭의 늙은 모습이 안타까움

 제5· 6구 - 낭에 대한 충동적 그리움

 제7· 8구 - 재회할 수 없음에 대한 탄식

 

2. 작자 - 득오(득오곡)

3. 연대 - 효소왕(629 ~702때)

4. 성격 - 찬양과 추모의 노래

5. 의의 - 주술성이나 종교적 색채가 없는 순수한 개인적 서정시

6. 주제 - 죽지랑에 대한 추모, 또는 사모(思慕)의 정

 

* 참고 문헌

일연, 김원중 옮김, 『삼국유사』, 민음사, 2019.

 

* 참고 자료

정경섭 엮음, 고전 문학의 이해와 감상1, 문원각, 2003.

1. 작자 - 견우 노인(牽牛 老人)

2. 연대 - 신라 성덕왕 때(8세기 전반)

3. 갈래 - 향가(4구체), 서정시, 민요

4. 성격 - 민요적 단순성과 소박성

5. 의의 - 신라인의 미의식(美意識)을 보여 주는 서정시

6. 주제 - 꽃을 바치는 심정

7. 출전 - 「삼국유사」권2 수로 부인

 

 

* 참고 자료

정경섭 엮음, 고전 문학의 이해와 감상1, 문원각, 2003.

 성덕왕 대에 순정공(純貞公)이 강릉(江陵-지금의 명주(溟州)) 태수로 부임해 가다가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었다. 옆에는 바위가 마치 병풍처럼 둘러져져 있었는데, 천 길이나 되는 높이에 철죽이 활짝 피어 있었다. 순정공의 부인 수로(水路)가 그것을 보고 주위 사람들에게 말했다.

 "누가 내게 저 꽃을 꺾어 바치겠소?"

 따르던 사람이 말했다.

 "사람이 오를 수 없는 곳입니다."

 다들 나서지 못하고 있는데 옆에서 암소를 끌고 지나가던 노인이 그 꽃을 꺾어 와서 가사(歌詞)도 지어 부인에게 함께 바쳤다.

 그 노인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다시 이틀째 길을 가다가 또 임해정(臨海亭- 바닷가에 닿아 있는 정자라고도 한다)에서 점심을 먹는데, 바다의 용이 갑자기 부인을 낚아채 바닷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공이 넘어지면서 발을 굴렀으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또다시 한 노인이 말했다.

 "옛 사람이 말하기를 '여러 사람의 말은 무쇠도 녹인다.'라고 하니, 바닷속 짐승인들 어찌 여러 사람들의 입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경내의 백성들을 모아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 지팡이로 강 언덕을 두드리면 부인을 다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공이 이 말을 따르니, 용이 부인을 모시고 바다에서 나와 [그에게] 비쳤다. 공이 바다 속 일을 물었다. 부인은 이렇게 말했다.

 "일곱 가지 보물로 꾸민 궁전에 음식들은 맛이 달고 매끄러우며 향기롭고 깨끗하여 인간 세상의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부인의 옷에도 색다른 향기가 스며 있었는데, 이 세상에서는 맡아 볼 수 없는 향이었다.

 수로부인은 절세미인이어서 깊은 산이나 큰 못 가를 지날 때마다 신물(神物)에게 빼앗겼으므로 여러 사람이 해가(海歌)를 불렀다.

 그 가사는 이렇다.

 

   거북아, 거북아! 수로 부인을 내 놓아라.

   남의 아내를 약탈해 간 죄 얼마나 큰가?

   네가 만약 거역하고 내다 바치지 않으면

   그물을 쳐 잡아서 구워 먹으리라.

 

노인이 바친 헌화가는 이렇다.

 

   자줏빛 바위 가에

   암소 잡은 손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꽃을 꺾어 바치겠나이다.

 

 

* 참고 문헌

일연, 김원중 옮김, 『삼국유사』, 민음사, 2019.

 

* 참고 자료

정경섭 엮음, 고전 문학의 이해와 감상1, 문원각, 2003.

 움직이는 모든 것은 속도를 갖는 다. 속도란 움직임의 속도고, 살아 있음의 속도다. 어디선가 5년에서 8년 정도를 사는 토끼도, 80년을 사는 인간도, 200년을 사는 황소 거북도 평생 쉬는 호흡의 수는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대신 토끼는 인간보다 열 배는 빨리 숨을 쉬고, 거북이는 인간보다 2.5배 느리게 숨 쉬는 것이라고.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토끼는 동작이 빠르고 거북이는 움직임이 느린 것을 보면, 그 말도 그럴듯하게 들린다.

 움직임의 속도, 이는 단지 행동의 속도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맨눈으로는 꽃이 피는 것을 보지 못함은 꽃 피는 속도와 우리 지각의 속도 간의 간극 때문이다. 지각뿐 아니라 생각도 속도를 갖는다. 지각이나 발걸음보다 생각의 속도는 훨씬 더 편차가 크다. 

더보기

 처음 중심 내용 ▶ 개체마다 다른 움직임의 속도

 속도와 타이밍

 

 함께 산다는 것은 속도를 맞추어 사는 것이다. 걸음걸이의 속도를 맞추지 않고서는 함께 걸을 수 없는 것처럼, 속도를 맞추지 않고서는 함께 행동할 수 없고, 함께 대화할 수 없으며, 함께 생활할 수 없다. 물론 속도를 맞춘다는 것이 숫자로 표시되는 어떤 크기를 같은 값이 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신체와 영혼마다 각기 다른 속도가 있기에, 그것을 어느 하나에 일치시키려 한다면 '일치'는 자기 속도에 대한 억압이 된다. 속도를 맞춘다는 것은, 이를테면 걸음이 빠른 이가 같이 가는 느린 이의 속도에 자기 속도를 맞추려고 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 완급을 조절하는 것이며, 앞서갔다면 기다려주는 것이다. 느린 이도 평소보다는 빨리 걸으며 속도를 맞추려고 할 것이다.

더보기

중간① 1문단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

 속도를 맞춘다는 것은 리듬을 맞추는 것이다. 몸의 리듬, 영혼의 리듬, 말의 리듬, 생각의 리듬······. 리듬은 박자와 달라서, 하나의 박자 안에서 다른 속도의 움직임을 허용한다. 다른 속도를 갖는 것들이 하나처럼 움직일 수 있게 해 주는 것, 그것이 리듬이다. 오케스트라의 악기들이 교향곡의 같은 소절을 연주할 때 현과 목관, 금관, 타악기는 각각 다른 속도로 연주하지만 하나의 리듬을 형성한다. 하나의 소리 안에 상이한 속도들이 공존하고, 느린 속도와 빠른 속도가 하나의 박자 안에서 일치할 수 있는 것이다. 리듬을 맞춘다는 것은 허용되는 차이 안에서 서로에게 속도를 맞추어 응답하는 것이다. 역으로, 응답하는 능력이란 리듬을 맞추는 능력이다. 리듬을 놓치면, 타이밍을 놓치면, 응답은 응답이 아닌 것이 된다.

더보기

중간① 2문단 ▶속도를 맞춘다는 것의 의미

중간① 중심 내용 ▶ 속도를 맞춘다는 것의 의미와 타이밍의 중요성

 변속 능력

 

 누구도 혼자 사는 법은 없기에, 산다는 것은 언제나 살면서 만나는 이웃과 리듬을 맞추는 것이다. 농부는 대지의 변화에, 소와 벼의 움직임에 리듬을 맞추어야 하고, 노동자는 벨트 컨베이어의 속도에 신체의 속도를 맞추어야 한다. 속도에는 허용되는 리듬의 차이가 큰, 여유 있는 속도가 있고, 그게 아주 작은, 조급하고 팍팍한 속도가 있다. 그렇기에 속도와 리듬은 삶의 단면이다. 나의 속도는 내가 어떻게 사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런데 내 삶의 속도와 내가 사는 세상의 속도 간에는 대개 작지 않은 간극이 있기 마련이다. 그 간극이 크면, 불편함과 불화의 정도가 커지기 쉽다. 세상에서 요구하는 속도보다 내 삶의 속도가 느릴 때, 그래서 세상이 요구하는 속도를 따라기기 힘들 때 특히 그렇다.

더보기

중간② 1문단 ▶ 세상의 속도와 내 삶의 속도와의 관계

 물론 빠름을 악덕이라고 비난할 수만은 없다. 그것이 미덕인 것만은 아니듯이, 그것이 악덕인 것만도 아니다. 그때마다 필요한 속도가 있다. 다만, 느린 것은 빠른 것을 따라잡을 수 없지만 빠른 것은 느린 것만큼 느리게 갈 수 있다는 점에서 빠르다는 것은 능력으로, 느리다는 것은 무능으로 간주되기 쉽다. 그래서 좀 더 빠른 속도를 얻으려는 노력이 대체로 문명의 방향을 결저아는 것일지도 모른다. 공학도, 스포츠도, 교육도, 경제도 좀 더 빠른 속도를 만들고자 한다. 심지어 예술도 그런 것 같다. 비르투오소(virtuoso, 탁월한 기교의 연주자)의 전통이 강한 서구 예술의 전통 덕분에 피아니스트나 바이올리니스트도, 기타리스트도 좀 더 빠른 연주 속도에 인생을 건다. 하지만 빠르기만 한 연주는 예술이 아니라 묘기를 자랑하는 서커스에 지나지 않고, 감속할 줄 모르는 운전자가 모는 자동차는 살인 기계에 불과하다. 속도에서 중요한 것은 빠르기가 아니라 변속 능력이다. 휴식의 속도와 일의 속도, 연인의 속도와 친구의 속도, 성인의 속도와 아기의 속도에 맞추어 가속하거나 감속하는 능력이다.

더보기

중간② 2문단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변속 능력

중간② 중심 내용▶속도에서의 변속 능력의 중요성

 속도의 강박증

 

 '빨리빨리'나 '좀 더 빨리'가 일상어가 된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는 미친 가속의 체제다. 속도를 빠름의 정도로 간주하기에, 빠름이 미덕이 되고 빠름이 능력이 된 사회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새 그 속도에 홀려, 경쟁적인 가속의 흐름에 말려 자신의 속도를 잃고 달려가고 있다. '속도의 자연학'과 '능력의 윤리학'에서 속도는 단지 미덕이나 능력이 아니라 으미ㅜ와 강박이 된다. 살아남으려면 세상이 요구하는 속도로 반응할 수 있어야 한다.

더보기

중간③ 1문단 ▶미친 가속의 체제를 띠는 현대 사회

 이 미친 속도의 강박증을 말하면서 자본을 말하지 않는다면 치명적인 누락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속도의 미덕을 강박으로 바꾸고 속도에 사활을 거는 것을 외적인 강제로 만드는 것은 바로 자본이기 때문이다. "시간은 돈"이라는 말은 어느 세상에서나 토용되는 윤리적 명제가 아니다. 인디언들에게는 '시간'이라는 단어조차도 없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이야기다. 시간이 돈이 되는 것은, 고용 시간에 따라 돈을 지불하는 관계에 기인한다. 자본주의 이전의 서구에서조차 시간을 돈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은 빌려준 시간에 비례하여 대부금의 이자를 받던 고리대금업자나 상인들밖에 없었다.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자신이 고용한 시간만큼 돈을 지불한다. 여덟 시간 고용해 놓고 한 시간을 놀린다면, 한 시간 치의 임금을 그냥 버리는 것이다. 고리대금업자와 마찬가지로 이들에게도 '돈'이라는 말은 '귀중하다'를 뜻하는 은유적 표현이 아니다. 글자 그대로 시간이 돈이다.

 시간이 돈이기에 같은 시간이면 최대한 일을 빨리 처리하는 것 또한 그대로 돈이 된다. 생산도, 유통도, 소비도 모두 빠를수록 돈이 된다. 속도가 돈인 것이다. 점점 빨라져 가는 벨트 컨베이어의 속도를 따라가다 미쳐 버린 「모던 타임스」 속 찰리 채플린의 곤경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우리가 내 돈 주고 내가 필요한 것을 사서 쓰는 소비 또한 이제는 '미친'이라는 말이 과장으로 느껴지지 않는 그런 속도를 갖게 되었다. 미친 듯이 빠르게 생산되는 상품들은 미친 속도로 팔지 않으면 자본을 파멸로 몰고 간다. 휴대 전화는 2년이면 바꿀 생각을 하게 만들어야 하고, 자동차는 3~4년이면 바꿀 생각을 하게 해야 한다. 사물의 생존 기간을 크게 초과하는 미친 소비의 속도가 우리의 감각을 유혹하고, 그런 식의 감각적 삶을 강요한다. 우리는 대개 그 속도를 따라가며 산다. 그 속도감 속에서 세상을 본다.

더보기

중간③ 2+3+4문단 ▶미친 가속의 체제를 띤 혀대 사회의 속도를 따라가며 살고 있는 우리

 한 철학자가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에 '속도의 파시즘'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이런 맥락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빠른 속도 그 자체는 미덕도 악덕도 아니지만, 그것이 누구나 따라가야 할 강제와 강박이 되어 한결같이 빠름을 추구하는 사회는 파시즘적 사회라고 해야 하니까. 그러나 이런 속도의 경쟁을 단지 세상이 내게 강요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한다면 가장 중요한 것을 잊게 될지도 모른다. 무엇에 의해 시작되었든 간에 지금 속도란 우리 스스로 얻고자 하는 것이고, 우리 스스로 추구하는 미덕이란 점에서 속도의 강박은 바로 우리 자신의 삶에, 우리 자신의 내면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세상만이 아니라 우리의 신체, 우리의 영혼도 미친 속도를 향해 치달리고 있는 것이다.

더보기

중간③ 5문단 ▶세상과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속도의 강박

 

중간③ 중심 내용 ▶자본주의 사회에서 속도의 강박을 갖게 된 현대인

 내 영혼의 속도

 

 '자신의 속도'라는 것이 있을까? 자기 신체의 속도, 자기 영혼의 속도 같은 것이? 모를 일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것이라고 할 속도가 원래부터 따로 있다기보다는 자신이 살면서 익숙해진 것이 자신의 속도가 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신체와 영혼은 100년전 사람들의 속도를 답답해서 견딜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속도'라는 말로 무언가를 지칭할 수 있다면, 그것은 자신이 그때그때 필요한 것에 맞게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과 결부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더보기

중간④ 1문단 ▶'자신의 속도'의 의미

 세상의 실에 매달려 그 세상이 움직이는 속도로 춤추는 인형에게 그 춤은 자신의 춤이 아닐 것이다. 자기 속도를 가질 때, 우리의 삶은 춤이 된다. 자신의 삶이 된다. 중력이 작용하는 허공에서 빠르게 낙하하는 것은 자신의 속도를 가졌다고 할 수 없다. 그것은 그저 중력에 끌려 추락하는 것에 불과하다. 반대로 그 허공에서는, 정지한 듯 멈추어선 매야말로 자신의 속도를 갖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세상의 속도에 그저 따라가고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그 속도에 따라가기도 하지만 때로는 정지해서 그렇게 달려가는 세상이나 자신에게 눈을 돌릴 줄 알 때, 우리는 자신의 속도로 춤출 수 있다. 결정적인 것은 관성적인 속도에서 벗어나는 아주 작은 이탈의 성분, 강요되는 속도에서 벗어나는 데 필요한 최소치의 변속 능력일 것이다.

더보기

중간④ 2문단 ▶'자신의 속도'를 가져야 하는 까닭

 

중간④ 중심 내용 ▶ 세상의 관성적인 속도에서 벗어나 자신의 속도를 가져야 할 필요성

 그래서 나는 걸핏하면 편두통으로 밀고 가는 일의 속도를 조절하려고 글을 쓸 때면 일부러 엘피반(LP盤)을 걸어 놓는다. 20분마다 음반을 뒤집음 '순탄하게' 상승하는 작업의 속도에 일부러 정지를 일으키는 장애물을 끼워 넣는다. 그리고 그 정지의 시간에, 일의 속도에 맞춰 가빠지는 호흡을 수습하여 안단테의 속도로 돌려놓는다. 그리고 요즘은 시를 일삼아 읽는다. 느린 시인의 시간 속에서, 그 시간의 여백 속에서 다른 속도, 다른 삶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갖고. 황급히 써 내려가는 글 사이에 다른 리듬의 글이 끼어들 것이라는 허황된 믿음을 갖고. 그렇게 변하는 리듬 속에서 나의 속도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더보기

끝 중심 내용▶시간의 여백 속에서 나의 속도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출처 - 고등학교 독서, 고형진 외 5인, 동아출판

원출처 -이진경, 「삶을 위한 철학 수업」(문학 동네, 2013)

 

 

 

♥ 이렇게 내용을 파악해 보자.

 

1. 각 문단의 중심 내용을 적어 보자.

 

2. 처음, 중간, 끝의 중심 내용을 적어보자.

 

3. 위 활동을 중심으로 주제를 적어 보자.

 

 

 

♡ 정답

 

 

처음 : 개체마다 다른 움직임의 속도

 

중간① 1문단 ▶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

중간① 2문단 ▶ 속도를 맞춘다는 것의 의미

중간① 중심 내용▶ 속도를 맞춘다는 것의 의미와 타이밍의 중요성

 

중간② 1문단 ▶ 세상의 속도와 내 삶의 속도와의 관계

중간② 2문단 ▶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변속 능력

중간② 중심 내용 ▶속도에서의 변속 능력의 중요성

 

중간③ 1문단 ▶ 미친 가속의 체제를 띠는 현대 사회

중간③ 2+3+4문단 ▶ 미친 가속의 체제를 띤 혀대 사회의 속도를 따라가며 살고 있는 우리

중간③ 5문단 ▶ 세상과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속도의 강박

중간③ 중심 내용 ▶ 자본주의 사회에서 속도의 강박을 갖게 된 현대인

 

중간④ 1문단 ▶ '자신의 속도'의 의미

중간④ 2문단 ▶ '자신의 속도'를 가져야 하는 까닭

중간④ 중심 내용▶ 세상의 관성적인 속도에서 벗어나 자신의 속도를 가져야 할 필요성

 

끝 ▶ 시간의 여백 속에서 나의 속도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 갈래 - 설명문

주제 - 빠른 속도만을 강요하는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

      - 미친 가속의 체제에서 자신의 속도를 찾아야 할 필요성

+ Recent posts